9. 태초에 원죄의 형체는 뱀이다

 

  ● 성경에서 말하는 길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세상의 길을 만들어 놓은 아스팔트길도 아니고, 이루어진다는 황금길도 아니고 구원의 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구원을 얻어야 하나? 인생이 왜 구원을 얻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나?
 그것을 알기 위해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간의 조상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솜씨로 빚으셔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생명을 불어넣어서 만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의 결정체이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피가 같으므로 그 생김새가 하나님과 꼭 동일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피로 시작해서 피로 그치는 역사이다.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지음 받은 아담 해와는 에덴동산에서 육신의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땀을 흘리지 않고도 달마다 맺히는 열 두 가지종류의 생명과일을 먹으면서 생명수강가의 생명수를 마시면서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인생으로 하나님께 지은바 된 존재였다.
 
 그런데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인생이 왜? 구원이란 것을 갈구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영생할 존재가 범죄를 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구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생명과일을 먹고, 생명수를 마실 수 있었던 것이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해와에게 땀을 흘려 밭을 갈고 고되게 손이 부르트도록 노력을 해야 먹고살게끔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셨다. 

 이렇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인생이 범죄하여 사망에 빠졌으므로 다시 거기서 구원을 받고 건짐을 받아야만 죽는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지에서 걸어가는 사람에게 "저기 물에 빠져 죽으니 건져라!"하는 사람은 없다. 장마 물에 뱀이 막 물고, 댓목이 내려치는 속에서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자기가 생명을 내걸고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가서 그를 건져주어야 그 사람을 구원해주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 영원히 죽게된 인생에게 사망에서 건짐을 받아야할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

 
    ●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먹고 사망에 이르게 된 당시 상황은?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먹고 사망에 이르게 된 당시의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성경상에서 인간의 조상이 범죄하기 전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셨을 당시의 에덴동산에는 선악과 이외에는 죄의 구성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없었다. 범죄라는 글자도 모르는 상태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과 똑같이 빚어서 생명을 부어넣어 만드신 영생하는 인간은 일남일녀, 한 쌍밖에는 없었으므로 다른 범죄의 조건이 없었다.
 
 아담이 해와 이외에 다른 여성이 있어야 아담의 입장에서 거기에 생각이 동하여, 음란한 생각이 나겠지만 음란이란 글자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또 아담 이외에 남자가 더 있어야 해와가 볼 때에 자기 남편 이외에 다른 총각이 있으니 거기에서 생각이 달라지면서 음란한 생각이 동하고 범죄의 구성이 될 수 있지만 거기엔 음란이란 종류도 모르는 세계였다. 

 상대적인 남자나 여자가 있어야 시기나 질투가 있지만 거기에는 시기의 조건도 질투의 조건도 없는 세계이다. 
 
 또한 옷을 짜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하거나 땅을 많이 점령하고 재산을 쌓아서 자식에게 물려줄 필요가 없었다.
 
 찬란한 옷을 입을 필요가 없고 화려한 금은보화로 꾸밀 필요가 없는 조건 속에서 재물의 욕심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형상이 똑같았으므로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그 영광을 누리니, 왕이나 면류관이라는 영광은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다. 
 
 생명수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고 생명과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세계였다. 
  
 죄질 조건이 억만 가지가 되는 지금의 세계와는 달리,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속에서, 죄에 젖어진 것이 하나도 없고 죄질 조건도 없는 바탕 속에서 선악과만 먹지 않으면 인간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지 않았을 텐데 그 하나를 먹음으로 인해 인류전체는 사망의 자리에 떨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세상에서 "이제 다시 너를 볼 수 없겠구나! 너 젊은것이 이제 월남엘 가면 이 할미는 너를 못보고 죽겠구나!"하고 통곡하는 그런 이별의 눈물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처럼 억만 가지 죄지을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선악과 하나만 먹지 않았으면 그대로 두 인생은 죽지 않고 자손 만대 오늘날 우리까지도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천군 천사와 화답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하고 즐기며 하나님 앞에 찬송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세상이 계속 연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좋은 조건에서 그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도 죽고 인류 전체를 사망의 바다로 빠지게 하여 인류를 파멸에 집어넣은 사실을, 온 세상이 예수 나기 전에도 몰랐고 예수 난 다음에도 원죄의 소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 죄의 흐름을 안 사람이 없다. 
 
 인간이 죽게 된 근본적인 원인인 원죄가 어디 거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는 상태이므로 완전히 구원의 길이란 봉해져 있는 상태이다. 
 
 산이 있는데, 평야가 있고 바다가 보이는 그런 산이 아니고 하늘 꼭대기에 빈틈이 없이 꽉 막힌 산이 있다. 거기에 굴이 있는데 굴 뚜껑을 찾을 수가 없다. 이쪽은 새까만, 흑암의 세상이다. 구원의 문도 찾지 못한 상태이므로 캄캄한 세계이다. 
 
 수천 년 동안 헤일 수 없는 수가 연구하고 갖은것을 다해도 문을 찾지 못했다. 그 굴의 뚜껑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라고 하면서 이름을 지은 것이 성경의 역사이다. 
 
 구원이라는 문을 찾아야하는데, 그것을 찾은 빛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을 찾은 사람이 없다. 
  
 성경 60권 중에서 예수가 최고의 거물인데 예수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뚜껑을 찾지 못한 자가 "내가 구원의 주인공이다" "너희들이 나를 믿으면 구원 얻고 "주여!"라고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날 불러주면, 내 이름만 불러주면 구원 얻는다. 내가 문이다. 나를 통해야 구원의 길로 들어간다."라고 하는 말은 허풍이다. 예수가 문도 찾지 못한 상태이므로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허덕이다가 그 문을 찾아서 문을 연 존재가 감람나무이다. 문이 꽉~ 막힌 그 산에서 그 문의 뚜껑을 찾아 그 안을 환히 들여다보니 구멍이 있는 곳을 알았다. 문을 열고 긴 굴을 통과해야 되는데 그것이 죄의 소재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 짓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문을 열 때까지의 노력은 기가 막혔다.  그런 다음 여러 사람의 죄를 해결 짓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원죄가 어떻게 인생에게 왔나?'하는 실마리를 푼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종이 한 장의 차이이지만 그것을 찾기까지는 끝없는 노력으로 된 것이다. 원죄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서 현실의 우리에게 왔는지를 안 층이 첫 번째 길을 찾은 단계이다.
 
 그것은 아담 해와의 원죄가 해와인 엄마의 피로써 그 다음대의 아벨과 가인에게 그 죄가 흘러 내려왔다. 

 그 핏줄기를 따라 그 다음 자손에게 그대로 아담 해와가 지은 원죄가 엄마의 피를 타고 계속 흘러 내려온 것을 알게된 것이 죄의 소재를 발견한 것이다. 
 
 아담 해와의 죄가 엄마의 피를 통해 흘러 흘러 내려와 오늘날 죄 덩이가 된 것이다. 태초의 원죄와 조상만대의 조상들이 일생 지은 죄가 피에 섞여있는 것이다. 

 그 섞인 피가 자범죄와 혼합되어서 그 다음 어린아기 그리고 그 다음대의 아기에게 계속 흘러 내려왔다. 또, 부모 두 사람의 조상인 네 사람의 죄가 뭉쳐서 내려와 그 다음 사람에게 흘러 내려왔다. 만일 조상이 만이라면 조상 만대의 죄가 전체 혼합되어 엄마의 피를 통하여 흘러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혈통, 내력을 찾는다. 이것을 예수가 몰랐고 기성교인 전체 신학교 교수가 모른다. 그것을 찾은 때가 첫 번째 뚜껑을 연 때이다. 
 
 죄를 지은 연고로 죽게되었으므로 죄를 해결 짓는 방법을 알아야 되는데 예수가 길도 모르고 죄의 소재도 모르고 원죄가 어디 거한 줄도 모르고 자기에게 원죄가 온 것도 알지 못했다. 


        ● 원죄의 형체는 뱀이다.
 
 뱀의 죄(罪)는 인간(人間) 몸 전체 뼈속에서부터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나?'하는 구원의 방법을 찾기 전에,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의 인간들이다.
 
 태초에 아담 해와가 죽게된 원인인 죄가 어디 거하며 죄를 어떻게 해결 지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고 죄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 의인이 되기 전에는 구원이란 얻을 수 없다.

  죽음에서 다시 삶의 회복을 할 길이 없는 캄캄한 속에서 이제 구원을 얻는 데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죄이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주된 원인은 바로 죄(罪)인데, 죄 중에서 가장 근본의 죄는 원죄이다. 

 죄는 처음에는 적은 죄였지만 태초부터 인간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양이 하늘의 숫자로 불려지면서 그 죄가 그 혈통으로 흘러 현재의 인간의 핏줄기 속에 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죄 중에서 음란죄보다 더 큰 죄는 원죄이다.
 
 그러므로 원죄를 벗어버리기가 가장 어렵게 되어있다. 그것이 인체의 어느 곳에 스며있는지 아는 자가 없다. 어디도 안 스며있는 곳이 없다. 

 죄를 한 번 범할 때마다 끝없는 배율로 커져서 지금의 원죄는 워낙 큰 죄가 되었다. 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체 내에 없는 데가 없이 스며져있다. 
 
 인간의 조상이 지은 원죄의 원인은 선악과이다. 그런데 이 선악과라는 그것은 뱀이 만들어서 아담 해와에게 먹였으므로 원죄의 형체는 결국 뱀이다. 그것이 나오면 산더미같이 커져서 우주를 꽉 채운다. 

  이 선악과를 아담 해와가 먹으면 자기들도 죽고, 하나님도 불 구렁텅이에 들어가게 되어있으니 하나님이 그 뱀의 마귀에게 대항하여 맞서 겨눌 수 있는 정도였다면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입에다 넣으려고 할 때 손에 쥔 선악과를 쳐서 야단을 치며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도 죽고, 나 또한 불 구렁텅이에 들어간다. 

 그러니 먹지 말아라!"하고 사력을 다해서 방해하였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마귀와 하나님 사이에는 힘의 차이가 한도 없이 컸던 것이다. 
 
 그 처음의 싸움은 힘의 다툼이 아니고 지혜의 다툼이었고, 두뇌의 다툼이었다.

        ● 지혜는 뱀같이 하라.
 
 태초에 왕 마귀는 하나님보다 지혜가 높았다. 영생하게 되어있는 맑은 피를 지닌 인생을 과일로써 죽게 만들었다는 그것이 지혜가 앞섰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오늘 증거하기 위하여 성경에 예수가 설교하는 입을 통하여 표시한 것이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 (마태복음10;17)'라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지혜보다 마귀의 지혜가 높았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하나님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뱀이 이긴 것을 표시한 것이다.

  태초에 "이건 선악과다. 이것을 먹으면 죽어. 하나님이 만든 인간이 내 것이 되어진다." 이렇듯 마귀가 도도할 수 있었던 것은 마귀의 지혜가 하나님보다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꾀가 있고 지혜가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빼앗아서 계속 범죄 하면서 아둔해 질대로 아둔해졌다.
 
 하나님이 성령을 생산하도록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담 해와의 범죄로 인하여 마귀인 인간이 생산되면서부터 그 마귀의 숫자대로 힘이 늘어나가고 그것이 왕마귀에게 전체 집중이 된다.

 그 마귀는 마귀대로 힘의 합계와 더러움이 왕마귀에게 전체 뭉쳐지므로 지혜롭던 것이 무지하게 되어지고 그 두뇌는 퇴보되고 지금은 아둔해진 것이다. 내가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유식하다는 바울을 통하여 왕 마귀가 '만 왕의 왕은 예수다!'라고 써놓은 것을 [디모데]에서는 '만 왕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라고 기록하게 한 것이다.

  태초에 인간이 죄를 짓기 전의 마귀는 영리해서 내가 머리를 틀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으면 질수록 마귀는 무지해졌으므로 그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마귀의 힘은 늘었다. 이것을 묵시록에 암시해놓은 것이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라고 기록하게 한 것이다. 
 
'우주의 권세를 잡았다.'는 것은 전체 권세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여기 땅은 비참한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 죄의 형체는 마귀이다
 
 죄를 진 까닭에 인간이 죽게 되었는데 내가 맑아지기 위해서는 '죄의 형체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발견하기까지는 표현할 수 없이 어려웠다. 
 
 신(神)이 되기 전에, 이 머리로 계속 연구하여 알아낸 것이 '죄의 형체는 인체 속에 있는 마귀다'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 최대의 발견이다.

 하나님이 성신을 생산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마귀에게 뺏긴 다음에는 마귀가 쏟아지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천상천하의 그 어떠한 지혜로운 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풀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마귀라고 하는 것을 알게된 층은 내가 육신의 죄를 벗기 전에도 두뇌의 층은 마귀보다 앞섰다는 것이다. 
 
 영생이라는 층을 올라가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그토록 세진 마귀의 형체를 바라볼 수 있는 영 안이 떴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다.

  죄의 형체 중 원죄의 형체는 뱀이다. 뱀이 선악과를 만들어서 아담 해와를 꾀어서 먹게 한 그것이 몸 속에 들어가서 뱀이 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경 조직의 신경 세포 속에까지 끝없이 들어가서 스며 있지 않는 곳이 없이 전체 분포되어 있다.

  음란마귀의 수가 최고라고 했지만 원죄의 수는 끝도 한도 없다. 이것을 죽여야 하는데 그것을 죽일 방법이 없다. 그토록 세진 것을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는가?


    ●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구조는 더러운 구조이다. 

  여자 한 사람, 남자 한 사람 속에 어느정도 양의 마귀가 있는지를 누가 알겠는가? 
 한 여자를 상대할 때에 음란 마귀의 그 생긴 모양대로 마귀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끝없는 수가 배출되는데 그것이 또 자꾸 짜개져 나와서 힘이 세지는 것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현재의 인간의 조상이 '만 대(萬 代)'라고 하면 그 만 대를 거쳐오는 동안 한 대에 많은 수를 상대해 음란죄를 범했어도, 아니 알기 쉽게 한 명을 상대했다고 가정하여, 한 번 상대할 때에 음란 마귀가 하나씩 들어갔다고 해도 만 대라고 하면 만(萬) 마리가 핏줄을 타고 들어간 것이다. 
 
 그럼 부모가 둘이므로 음란마귀 2만 마리가 한 사람 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 사람 속의 음란 마귀는 끝도 한도 없다. 그러니 그 수(數)라는 것은 끝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계속 피로 연결되어 조상 만대의 죄가 현실의 인간에게 유전이 되어 내려왔으니 한 사람 속에 있는 음란 마귀의 종류는 세상 컴퓨터를 전체 동원시켜도 가려낼 수가 없다는 것이 그 계산이다.
 
 그럼 한 사람 속에 한 번 교환과 두 번 교환의 그 헤 일 수 없는 마귀의 힘이 하늘의 숫자로 끝없는 배율의 수가 나오는데 6천년 재고와 전 세계에서 15억 쌍이 주야로 짓는 죄의 그 수는 끝이 없다.
 
 그것을 빈대 죽이듯 빈대약을 뿌려 죽이는 것처럼 마귀가 죽는 것이 아니다. 피가 맑아지려면 그 종류부터 전부 가려내야 한다. 

  나무도 접을 붙이면 중간치의 열매가 나온다. 병마도, 음란마귀도 그 사람 피 속에 있는 이것이 접촉이 되면 중간치의 마귀가 또 나온다.

 이것을 샅샅이 캐서 그 마귀 하나 하나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멸해야 한다는 것을 캐는 그것은 신에 가까운 깊은 공부를 하는 때에도 알 길이 없는 문제이다.
 
 마귀 수(數)도 끝이 없는데 나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나오는 속에 전체 들어가서 쓰러지면서 생각 동시에 그 숫자를 전체 포착을 하고 또, 음란마귀의 종류, 갖은 마귀의 종류를 생각 동시에 포착하면서 힘이 각기 다른 역학상 힘의 토탈을 측량해서 생각 동시에 내가 무슨 무기를 써야 된다는 것까지 계산해서 입이 몇 번만, 혀끝이 '달락달락'하는 것으로도 마귀가 박살 되는 것이다.


     ● 예수를 증거하며 나올 수밖에 없는 감람나무
 
 태초의 죄를 구분짓는다면 원죄는 해와가 선악과를 먹은 죄(罪)이고, 해와가 다시 아담과 교제한 죄가 자범죄, 아담 해와가 아이를 생산해 그 아이에게 내려온 죄가 유전죄이다.
 
 원죄 다음으로 큰 죄가 유전죄이다. 그러나 조상만대로부터 흘러 내려온 죄가 유전죄라는 그 이름조차 몰랐던 것이 예수이다.
 그러나 나는 무식한 예수의 세력이 너무도 커졌으므로 예수를 타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원죄 때문에 죽게된 것을 알고 그 다음 죄의 구분을 안 것이 유전죄와 자범죄이다. 
 
 원죄라는 극히 경미한 무한한 죄를, 색을 염색하는 과정과 비유를 해본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태초의 조건은 아주 맑은 투명된 물이라 하는 것으로 비유할 때 원죄를 지은 정도면 물의 천 분의 일에 해당되는 염료를 물에 넣어서 연한 회색 정도로 물든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지는데 그것이 원죄의 정도이다. 
 
 그러면 자유율법 중에 남자가 여인을 생각하는데 조금 음란한 생각을 잠깐 가졌다는 것은 원죄와 같은 맑은 물에 천 분의 일의 염료를 탄 것에 100%의 염료를 넣어 새까맣게 변한 상태와 같게 된다. 
 
 그러므로 음란죄를 직접 지은 것은 잠깐 생각으로 범한 죄인 100%가 더러워진 것에 몇 억만 배를 비할 수 없는 죄라는 것이 되어진다. 
 
 모든 죄는 몸밖에 있으므로 사함 받을 수 있지만 음란죄는 몸 안에 있으므로 사함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피가 직접 더러워지므로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천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분량의 염료가 섞여진 것처럼 연한 회색 정도로 죄가 물든 원죄조차로도 100% 죽게 되었다. 그런데 원죄를 지은 그 때는 죽고, 지금은 죽지 않는가?
 
 지금껏 죽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생각만으로 조금만 지어도 천 배는 더러워지는데 헤일 수 없는 그 죄를 짓고 직접 음란죄, 도적질, 수만 가지 죄를 짓고 "주여! 저의 죄를 사해주소서!"하면 죄가 사해지는가? 당치도 않은 말이다. 

 이제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라든가 '예수 14만 4천 왕 중의 왕'이라는 만 왕의 왕이 예수라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 감람나무가  세계를  지배한다. 
 
 감람나무라는 것이 나타나야 된다. 마지막 인생 전체를 구하는 구세주는 예수가 아니라 감람나무이다. 

  원죄를 해결 지을 수 있는 존재는 감람나무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게 되면 예수라는 인간에게 모든 권세가 오게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셋째 문을 연 자에게 오게 되어있다. 
 
 창세 이후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이기고 넘은 이긴자에게 하나님의 권세가 전부 오게 되어있다.  
 
 감람나무 자유로 모든 것을 설계하게 되어있다. 종말의 키를 가진 자요, 종말 된 세계를 다스리는 감람나무의 권세(權勢)이다. 그에게 4대 강국을 통해 전쟁의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는 권세가 분명히 쥐어져 있다. 
 
 '바람아! 불지마라. 이긴자가 인을 다 칠 때까지는 멈춰라!'하는 명을 하는 자가 바로 나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똥구데기같은 감람나무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당한 것은 감람나무이다. 그러므로 장한 중에 장한 것이다. 
  
                            -하나님이신 박태선 장로님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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