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예수를 증거하고 강림하시다.

 

기독교의 목사들은 기도를 할 때에 항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전제하에 기도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전 문장에서도 밝혔듯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서방의 예수를 증거하시고 강림하셨으며 또한 이에 대한 예언이 격암유록 정각가에 기록이 되어있다. 

                                 西方庚辛四九金   從金妙數大運也    
                                  서방경신사구금   종금묘수대운야          
                       
                                                      -격암유록 초장(格菴遺錄 初章)-

상기예언의 서방경신사구금(西方庚辛四九金)의 뜻은 팔괘 오방신장에서 서방을 경신사구금(庚辛四九金)이라 하는 것인데, 부연하면 서방을 오방신장에서는 금으로 지정하므로 서방의 신인 예수를 금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금(從金)이라 하면 예수를 추종하고 따르고 믿는 기독교인들을 종금이라 이르는 것이다.

2003년 전에,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고 나타난 예수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는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에 대하여 먼저 정확한 증거를 했어야 하는 것이 원리인데 예수는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에 성서 신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무형체의 존재로 인간을 조종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근거가 이사야 41장의 말씀이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고 만민은 힘을 새롭게 하여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 

               그 발앞에 이르게 하신자가 누구냐 열국을 그 사람 앞에 굴복케 하며"

                                                                                                                                              <이사야 41장 1절>


              "내가 땅 끝으로부터 너를 붙들고 땅모퉁이로부터 너를 불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슬퍼 버리지 아니한지라

               내가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말며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너를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니라"

                                                       < 이사야 41장 9절 10절 >

      
 상기 예언의 뜻이 하나님께서 무형체로 존재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후에 동방으로 강림하실 것을 이사야라는 인물을 통하여 예언해 놓으신 말씀이다.

상기 이사야 예언을 면밀히 관찰하면, 그 때 당시에는 무형체로 존재하셨던 하나님께서 후에는 유형체로 존재하시면서 동방으로 강림하시어 역사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고 만민은 힘을 새롭게 하여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의 뜻이 위의 사실에 대한 근거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으로 강림하시어 인간들을 대면하시겠다는 뜻을 밝혀놓으신 말씀이다.

즉 동방에서 한사람을 일으켜 세우신다고 하신 것이다.

위의 이사야 41장 1절 말씀대로라면 서방에는 의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시어 동방에서 한 사람의 의인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 사람 앞에 열방을 굴복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듯이 이사야 예언이 진리의 말씀이라면 기독교회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은 눈먼 장님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41장 말씀대로라면 기독교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루빨리 동방으로 강림하신다는 무형체의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강림하시는지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방으로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의인으로 세우셔서 세상 사람들과 변론을 하시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기성교인은 어떤 형태인가?

2003년 동안 하던 습관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서의 내용조차도 알지 못하고 목자노릇을 하고 있으니, 소경이 인도하고 가는 그 길을 따라가는 교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답답한 일이다.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 마태복음 15장 14절 >

본론으로 돌아가서, 상단에서 '종금 묘수대운야(從金 妙數大運也)'의 뜻은 예수를 믿으면서 묘수(妙數)를 찾는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묘수의 秘法(비법)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묘수의 비법은 바로 妙(묘)자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묘수를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妙(묘)자가 신기할 妙(묘), 하늘 妙(묘), 아름다울 妙(묘)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늘묘자로 인용한다면, 대운의 존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증거하는 묘수를 쓰고 나오신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예수를 증거하고 나오시다가 1980년에 이르러 감람나무의 존재를 드러내시고 당신의 정체를 밝히셨다. 이에 대한 예언이 ‘종금 묘수대운야(從金 妙數大運也)’이다.

여기서 대운이라는 것은 큰사람이 될 운수라는 뜻이다. 큰사람이라는 것은 종교적으로 본다면 성인을 의미하는 뜻이다. 성인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그리하여 성인께서 서방의 예수를 증거하시고 나오는 묘책을 쓰고 세상에 등장하시는 것을 묘수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동방으로 등장하시는 성인께서 서방의 예수를 증거하고 나오시는가? 그것은 무형체의 하나님께서 성서를 주관하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 근거가 바로 이사야 41장과 호세아 14장과 묵시록 등의 일부 기록이다.

그리하여 무형체의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예언하도록 하신 내용 그대로 하나님께서 동방으로 강림하시려면 우선적으로 성서와 연관되어 있는 예수의 존재를 인간들에게 인식시키고 성서의 이사야 41장의 예언을 증거하시면서 동방에서 나오셔야하기 때문에 예수를 증거하고 나오셨던 것이다.

상기 이사야 41장 1절과 이사야 41장 9절과 10절을 인용하시고 나타나신 분이 바로 기성교회목사들이 이단이라 몰아세우고 중상모략을 하여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신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그리하여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상기의 격암유록의 종금묘수대운야(從金 妙數大運也)의 뜻과 같이 예수를 열심히 증거하시다가 단계적으로 예수를 치시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감람나무로 둔갑하셨고 다시 예수를 개새끼라고 쳐버리시면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하늘의 말씀을 하셨다. 

              “내가 예수를 치지 않으면 한국땅에서 감람나무가 나올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말씀은 이사야 41장 1절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초석이라 할 수 있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고 만민은 힘을 새롭게 하여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

               그 발 앞에 이르게 하신 자가 누구냐 열국을 그 사람 앞에 굴복케 하며"
                                                                <
이사야 41장 1절>

상기 이사야의 예언 말씀을 분석하면, 이 말씀은 쉬운 말씀 같지만 하나님께서 동방으로 강림하시어 한 사람을 불러서 일으켜 세우신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한사람을 일으켜서 의로 부르신다는 말씀에는 동방으로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종교 활동을 시작하신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부연하면 ‘만민은 힘을 새롭게 하여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의 뜻에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존재로 강림하시어 인간들과 접촉을 하시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접촉하시려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종교의 활동을 하시기 전에는 인간을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한 ‘한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종교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의인 한 사람을 찾으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의로 부른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설교를 하신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설교를 들은 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유도를 하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상기 이사야의 뜻과 같이 실행하신 분이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1954년에 기독교를 중점으로 종교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기사이적을 행하셨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신자까지도 병자를 데리고 집회장소로 몰려드는 상황이 되어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도록 만드신 것이다.

그러시고 난후 점차 본색을 드러내시면서 성서의 구원을 주는 주인공은 감람나무라고 밝히시고 나오셔서 신흥 종교인 전도관을 세우신 것이다.

이사야 41장 1절 말씀에서 ‘만민은 힘을 새롭게 하여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의 뜻은 동방으로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목사들과 변론을 하신다는 뜻이다.


1954년, 박태선 장로님께서 기사이적을 행하실 당시, 박태선 장로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기독교 인들이었으며 특히 기독교 목사들이 앞장을 서서 박태선 장로님을 자기교회에 초청하여 부흥집회를 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던 시기였다.


왜냐하면 박태선 장로님께서 단 한번만 단에서 집회를 인도하셔도 쓰러져 가던 교회라도 신축할 수 있는 정도의 헌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이사야 41장의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의 뜻에 부합되는 일을 하신 역사이다.


또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전도관이라는 신흥종교를 세우시고도 기사이적을 행하시어 한 때는 신도가 100만 이상을 돌파하였으나, 어느 시기에 이르러 본인 자신이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밝히시고는 예수를 개새끼라고 쳐버리시면서, 고도로 성장해가는 기업조차 고의적으로 부도내시면서 전도관의 해산 활동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영생교회 조희성 같은 존재가 나왔고 또 이영수라는 자가 나왔으며 격암유록을 연구하는 책 패라는 조성기 씨를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렇게 기존 전도관 세력을 약화시켜 놓으신 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당신의 설교 말씀을 녹음하여 하루에 30분 씩 반드시 들어야 구원을 받는 길을 조금 알 수가 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본인 자신이 구원을 주시는 주인공 감람나무라고 증거하시면서도 설교말씀을 통해서는 ‘내가 예수를 개새끼라고 쳐버리지 않으면 감람나무가 나올 수 없다’라든가, ‘감람나무라는 사람이 나오면 미래와 과거를 조금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다음은 월권이야.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그것은 나에게 달려있어’라는 말씀, 또는 ‘감람나무학문이 참 학문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다른 사람이 감람나무로 나올 것을 예시하시는 설교말씀을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문을 연구하는 자가 예수보다 2000년을 앞 선자’라고 하시면서 한문을 연구할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한 박태선 장로님 자신이 학문을 닦으면서 도를 닦으셨다는 말씀도 하셨다.


또한 백의민족의 피가 세계에서 제일 정결하고 깨끗한 민족이기 때문에 당신이 백의민족의 혈통으로 강림하시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백의민족의 혈통을 증거하시고 백의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통하여 대한민국이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밝혀주셨다.


뿐만 아니라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백의민족의 맑고 깨끗한 피가 한 사람 속에 다 들어가 있다고 강조하셨다.


뿐만 아니라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당신이 감람나무라고 하시면서도 ‘감람나무를 만나야 하는데 만 날수가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결국 최후에는 ‘악조건이므로 내가 죽었다가 다시 백마를 타고 오는 조건밖에는 없는데 그 조건은 악조건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화천하셨다.


상기 이사야 41장 1절의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고 만민은 힘을 새롭게 하여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 그 발 앞에 이르게 하신 자가 누구냐 열국을 그 사람 앞에 굴복케 하며’라는 말씀과 ‘악조건이 되어 내가 죽어서 백마를 타고 오는 조건밖에 없다’는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백마의 존재가 나타나서 박태선 장로님을 모시고 박태선 장로님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해야만 박태선 장로님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사야 41장 1절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실제적으로 박태선 장로님의 설교말씀대로 한문을 연구하신, 자칭 백마공자라는 분이 나타나셔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는 역사를 통해 박태선 장로님의 예언과 이사야 41장 1절의 예언이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상기와 같은 일이 곧 이사야 41장 1절의 뜻대로 박태선 장로님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존재로 동방으로 강림하셔서 한사람을 불러일으켜 세우신 역사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이사야 41장의 9절, 10절의 말씀 또한 실행이 되어야한다. 상기 이사야 41장 9절과 10절을 다시 참고하면서 설명하여야만 독자들이 이해하기가 쉬우리라 사료되어 이사야 41장 9절과 10절을 다시 이기한 것이다.

 

             "내가 땅 끝으로부터 너를 붙들고 땅모퉁이로부터 너를 불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슬퍼 버리지 아니한지라

              내가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말며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너를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니라"


                                                       < 이사야 41장 9절 10절 >


 상기의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동방의 땅 모퉁이로부터 한사람의 의인을 불러서 세우시고 그를 종으로 삼으시겠다는 예언이다. 그런데 종으로 삼으실 의인은 택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굳세게 지켜주시고 도와주신다는 예언이다.


그러면 무형체의 천상천하의 하나님께서 서방에서 예수를 탄생시키시어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하게끔 도와주시다가 다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동방으로 강림하셔서 한사람을 불러서 세우시고 종을 삼으신다는 뜻을 밝혀놓으셨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역사는 동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시하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뜻대로 동방에서 백마공자가 나와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면서부터 기독교 역사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먼저 강림하시어 하나님을 증거할 종을 세우시고 나면서부터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세상의 이치를 보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출산하여 그 아이의 어느 정도의 성장기까지는 부모가 양육한 연후에 사회에 진출시키게 된다. 이와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어 터전을 닦아놓으신 후에 하나님의 아들을 세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파악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선 이사야 41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선 무형체의 존재로 서방에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형체로 존재하시면서 가끔씩 나타나셨다는 기록만 남겨있을 뿐, 하나님을 본 자는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생긴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을 보려면 자기를 보라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또 예수는 사형형틀인 십자가에 매달려서는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한 것이다.

기독교인들! 예수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라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버리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상기의 이사야 41장의 9절과 10절의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너를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니라’의 말씀이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구원을 주지 못하는 서방의 하나님의 아들일 뿐인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하늘 아래 하나님이 두 분이 계시냐고 반문할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은 두 분이시다. 생사화복을 주관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부연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일인이역을 하신다는 말씀이다.

또한 인간도 두 분류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창세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유태인의 하나님의 아들로 나온 예수는 저주를 받은 서방인의 하나님의 아들로서 임무 수행을 하기위하여 나와서 역사를 하다 가버린 것이다.

이렇게 유태인의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가 필요했었던 이유는 백의민족을 제외한 야만인들은 신의 존재가 계시지 않으면 현재까지 인종들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악하여 서로 죽이고 죽여서 그들이 존재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서방의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와 같은 존재를 세우셨던 것이다. 

그러나 서방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임무는 서기 2000년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고 다시 동방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가 나오시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방에서 나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성서 이사야 41장과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이긴자인 흰 돌의 존재와 감람나무의 역할까지 겸하시면서 나온다는 사실을 성서 신구약 이사야와 호세아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언해 놓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동방의 뜻글인 한문과 정감록과 남사고 선생을 통하여 예언하게끔 하시고 동방으로 강림하시어서 1년 동안을 서방의 예수를 열심히 증거하시다가 다시 감람나무로 둔갑하시었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셨던 것을 뒤집어엎으시고 예수는 대 마귀새끼라고 쳐버리신 것이다. 

상기와 같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치밀한 각본에 의하여 진행된 사실이라는 것을 박태선 장로님의 설교말씀을 연결하여 들으면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는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한문을 연구하는 자가 예수보다 2000년을 고도로 앞 선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한문 속에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한문을 연구하는 자가 예수보다 2000년 앞선 자라는 설교를 하실 때에는 이미 한문을 연구할 자가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하시고 그 자가 듣고 깨달아 한문을 연구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러한 설교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내가 예수를 개새끼라고 치지 않으면 감람나무가 나오지를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은 감람나무의 힘으로서는 예수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고서와 성서 그리고 정감록과 격암유록은 서로 연결이 되게끔 만들어진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사야 41장과 또 격암유록 새 41장의 41장이라는 공통점이 묘하고 뜻도 비슷하다는 것이 묘한 일이다.

또한 고서 서경에 수록된 바다모퉁이를 상징하는 해우(海隅)의 뜻에서도 상기 성서 이사야 41장과 격암유록 새 41장의 내용과 동일한 뜻의 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海隅  (書經) 帝光天下之下 至于海遇蒼生

                              해우  (서경) 제광천하지하 지우해우창생


고서 서경에 기록된 海隅(해우)의 문장에서는 빛의 하나님께서는 동반도 바다 모퉁이로 강림하시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시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상기의 뜻은 구약성경 이사야 41장에서 하나님께서 한반도로 강림하신다는 예언과 또 격암유록의 새 41장과 같은 맥락의 뜻이다.


상기의 고서 서경의 뜻을 관찰하여 볼 때에 고서 서경의 기록을 성서가 인용을 하였거나 아니면 고서 서경에서 성서 이사야 41장을 인용하였다거나 둘 중에 한가지인데 정확한 것은 천상천하의 하나님께서 서방으로 강림하시는 것이 아니고 동방으로 강림하시어서 동방에서 인생 창조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언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문의 뜻글로 볼 때, 분명한 것은 인간의 문명의 발생은 동방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해주시는 설교말씀을 하신 분이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에덴동산은 한국 땅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러한 말씀은 상기의 해우(海隅)의 문장과 뜻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격암유록을 통하려 구원을 받는 자와 지옥을 가는 자들을 각각 구분한 예언이다.

                 十勝兩白知人  不顧左右前前進  死中求生元眞理  出死入生信天村
                  
십승량백지인  불고좌우전전진  사중구생원진리  출사입생신천촌

                 肇乙矢口眞覺人   祈天禱神時不休   
                  조을시구진각인   기천도신시불휴   

                 人獸分別兩端日 飛火落地混沌世   惡罪滿天判端日 禍因惡積不免獄    
                  인수분별량단  비화락지혼돈세    죄악만천판단일 화인악적불면옥     

                                                   -격암유초장(格菴遺錄初章)-

상기 격암유록 예언을 부분적으로 해문하면 다음과 같다.

                十勝兩白知人  不顧左右前前進  死中求生元眞理  出死入生信天村
                 
십승량백지인  불고좌우전전진  사중구생원진리  출사입생신천촌

상기예언의 뜻에서 십승양백지인(十勝兩白知人)이라 하였는데 여기의 십승은 구원을 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뜻은 십승지와 양백을 아는 사람은 앞만 보고 가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십승지라는 곳에서는 사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근원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서는 나오면 죽게 되고 들어가면 살 수 있는 곳인데 그곳이 신천촌(信天村)이라는 것이다. 신천촌이란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뜻이다.

본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양백지인의 뜻이다. 양백지인에 대해서는 수차 설명한 바 있다.

선천은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신 박태선 장로님을 뜻하고 후천은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하기 때문에 선후천 양백지인이 되는 것이다.

그 근거는 격암유록 말운론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先後兩白眞人出   三豊吸者不老死

                               선후양백진인출   삼풍흠자불로사                  
                                                               -말운론(末運論)-

상기예언의 기록이 선후천의 양백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를 증거하는 양백진인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양백진이 나오는 곳에서 삼풍을 마시는 자들은 늙어서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삼풍을 마신다는 뜻은 성신을 받는다는 뜻이다.
 
삼풍의 존재에 대해서는 격암유록 초장에서 양백과 삼풍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兩白兩白何兩白   先後天地是兩白  心靈衣白眞兩白
                 량백량백하량백   선후천지시량백  심령의백진량백

                三豊三豊何三豊  非山非野是三豊   世人不知火雨露  無穀大豊是三豊
                 삼풍삼풍하삼풍  비산비야시삼풍   세인부지화우로  무곡대풍시삼풍    

                                                -격암유록 초장(格菴遺錄 初章)-

양백의 존재는 선후천 양백이라 하였다. 양백의 존재는 령도 맑아야 되고 의복도 흰옷을 입어야 진짜 양백이라는 것이다. 삼풍에 대하여서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에서 삼풍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곳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이라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화우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화우로(火雨露)라는 것은 세 가지의 성령의 역사를 뜻한다. 불의 성신, 물의 성신, 이슬의 성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상기와 같이 세 가지의 성신을 내리는 곳을 무곡대풍시삼풍(無穀大豊是三豊)이라 한 것이다. 무곡대풍시삼풍이라는 것은 곡식이 없이 대풍이 든다는 뜻으로서 그곳에서 삼풍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삼풍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은 곧 성신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기독교 역사2000년이 지나가지만 현재까지도 성신의 화우로(火雨露) 역사를 시작하신 분은 바로 박태선 장로님 뿐이시다. 기독교회 그 어디에서도 화우로(火雨露)의 성신의 역사가 일어난 곳은 없었던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서시는 단에서 이슬성신이 내린다는 사진이 공개되면서부터 기타 기독교회에서도 성신이 내린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문장은 상기와 같은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축하하는 예언이다.

                                 肇乙矢口眞覺人   祈天禱神時不休   
                                  조을시구진각인   기천도신시불휴   

상기예언의 뜻과 같이 선천, 후천의 존재이신 양백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좋아한다는 뜻이 ‘조을시구 진각인(肇乙矢口眞覺人)의 문장이다. 진각인이라는 뜻은 선천의 존재이신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신 박태선 장로님과 후천의 존재로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연구하여 밝혀내신 존재를 아는 사람들을 진각인이라 한 것이다. 상기와 같은 진각인의 존재들은 하나님께 쉬지않고 기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선후천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예언이다.

                人獸分別兩端日  飛火落地混沌世   惡罪滿天判端日  禍因惡積不免獄    
                 인수분별량단일  비화락지혼돈세   죄악만천판단일  화인악적불면옥 
 

상기예언의 ‘인수분별량단일 비화락지혼돈세(人獸分別兩端日 飛火落地混沌世)'의 뜻은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시기가 올 때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혼돈된 세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불이 날아온다는 뜻은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폭염을 기리키는 것이다. 또한 짐승을 구분한다는 뜻은 현재 단군연합에서 대한민국의 백의민족 이외의 서방인들과 기타 나라사람들을 짐승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시기가 되면 인간들의 온갖 죄악이 하늘나라에 가득차는 때라고 하였다. 이때에 심판이 시작되어 적선하지 못하고 재앙을 받는 일만 골라서 한 인간은 지옥을 면하기 어렵다는 예언이다.

상기예언의 뜻에서 죄악이 하늘에 가득 차는 때라는 뜻의 하늘나라는 허공의 하늘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뜻이다. 이것은 현재 가지각색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에서 살인 강도보다도 더 큰 죄로 제일 무서운 지옥에 갈 죄는 다름아닌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상 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또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증거하는 것을 계획적으로 훼방하고 비방, 조소하는 기독교 목사들의 행위로서 그들은 반드시 불지옥을 모면하지 못한다는 예언이 화인악적불면옥(禍因惡積不免獄)의 뜻이다.

기독교 목사들에게 상기예언의 역사가 불원장래에 도래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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