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금산사 벽화의 수수께끼 (1부)

 

금산사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 소재하고 있는 절로써 강일순 상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사찰이다. 이 곳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사찰의 사방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소와 목동이 그려져 있는 벽화를 기억할 것이다.

 특히 불교인들은 이 벽화에 숨겨진 의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런데 벽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 불교인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450여 년 전에 남사고 선생에 의해서 쓰여진 예언서 격암유록을 통하여 이 땅에 미륵상제께서 강림하셨다가 화천하신 일이 기록되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격암유록에 예언된 내용대로 49년 전에 이 땅에 미륵상제께서 강림하셨다가 1990년도에 화천하신 사실의 전후를 알고 나서 금산사 벽화를 관람한다면 이 벽화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금산사 벽화에 대한 설명을 하기 이전에 미륵상제로 강림하셨다가 화천하신 상제에 대해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격암유록의 은비가편을 보면 ‘상제강림동반도 미륵상제박도령(上帝降臨東半島 彌勒上帝朴道令)’이라고 예언되어 있는데, 이 뜻은 하나님께서 박씨 성을 가지시고 한국 땅으로 강림하시게 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미륵상제로 강림하신 분은 전도관과 신앙촌을 건설하신 박태선 장로님이시라는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이 은비가에는 앞으로 불교에 좋은 소식이 온다는 예언까지 남겨져 있다.


               儒佛運去儒佛來니 何佛去而何佛來요 尙佛來運運數좋다 三聖合運一人出

               유불운거유불래   하불거이하불래   상불래운운수     삼성합운일인출


 불교인이라면 이 정도의 내용은 다 이해하리라 사료되나 참고적으로 해문을 한다면,   

 유교와 불교의 운이 갔다가 다시 오게 되어 있는데 떠나가신 부처님은 언제 오시는지의 질문에,‘상불래운운수(尙佛來運運數)좋다, 삼성합운일인출(三聖合運一人出)’이라 하였다.

만인의 존경을 받는 부처로 오시는 분은 유불선 삼대종교를 통합하시고 한 분의 성인으로 오시게 되어있는 좋은 운수라는 예언이다.

 위 예언과 같이 바뀌기 전의 금산사 벽화의 내용도 불교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의 벽화라는 사실을 알리는 바이다.

 

 그럼 격암유록과 뜻글인 한문의 문장을 토대로 벽화를 차근히 감상해 보자.  

 벽화의 첫 장의 배경인 한가로운 들판에 어느 목동이 고삐를 들쳐 메고 등장한다. 이 후 소가 나타나 그 소와 목동이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과 어느 시기가 지나 서로 화목한 상태로 지내다가 소는 흰소(白牛)로 변하고 목동도 백발이 되어 서로 헤어지는 내용이 벽화의 줄거리이다. 사실 이 벽화가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는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벽화에 담긴 수수께끼를 푸는 방법이 격암유록의 가사총론편에 기록되어 있어 흥미롭다.


         入山修道念佛님네   彌勒世尊苦待치만   釋迦之運去不來로 한번가고 아니오니 

         입산수도념불       미륵세존고대       석가지운거불래 


         三千之運釋迦豫言   當末下生彌勒佛을   萬疊山中仙人들아  山中滋味閒寂하나

         삼천지운석가예언   당말하생미륵불     만첩산중선인      산중자미한적     


         魑魅魍魎虎狼盜賊   是亦弓不在山일세   斗牛在野勝地處엔 彌勒佛이出現컨만 

         이매망량호랑도적   시역궁불재산       두우재야승지처   미륵불  출현

        

         儒佛仙이腐敗하여   아는君子그누구냐   削髮爲僧侍主님네 世音菩薩게누군고 

         유불선  부패           군자           삭발위승시주     세음보살

  

         侍主菩薩不覺하고  彌勒佛을제알손가    阿彌陀佛佛道人들   八萬經卷工夫하여   

         시주보살불각      미륵불              아미타불불도인     팔만경권공부


         極樂간다말은참좋으나  가는길이希微하고  西學入道天堂人들 天堂말은참좋으나

         극락                          희미      서학입도천당인   천당


         九萬長天멀고머니   一平生엔다못가고    咏歌時調儒士들은    三綱五倫正人道나

         구만장천           일평생              영가시조유사        삼강오륜정인도 


         倨謾放恣猜忌嫉妬    陰邪情欲啻일너라   人道儒와地道佛이   日落之運맡은고로  

         거만방자시기질투    음사정욕시         인도유  지도불     일락지운  


         洛書夜運昏衢中에   彷徨霧中失路로서    儒佛仙而各分派로    相勝相利말하지만

         락서야운혼구중     방황무중실로        유불선이각분파      상승상리   


         天堂인지極樂인지   彼此一般 다못하고   平生修道十年工夫    南無阿彌陀佛일세 

         천당    극락       피차일반            평생수도십년공부    남무아미타불  


                                                                 

 위 예언은 언뜻 보기에 그 내용이 간단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실상은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문장이다.

 

 장문의 위 문장은 유불선 삼대 종교를 함께 지적하여 경고한 예언의 문장이다.

 첫 번째는 불교에 대한 경고이다. 산 속에서 목탁이나 두드리고 선인인양 행세하고 있는 중들에게 석가께서는‘삼천지운석가예언(三千之運釋迦豫言) 당말하생미륵불(當末下生彌勒佛)’즉“삼천년 동안 존재하시면서 예언을 하신 내용인데 말세에 이 땅에 생미륵이 나오게 된다”고 경고하셨다.

 

'만첩산중선인(萬疊山中仙人)들아 산중자미한적(山中滋味閒寂)하나’즉 겹겹이 쌓인 깊은 산속 한적한 곳에 들어앉아서 목탁이나 두드리고 염불을 하며 편안히 선인 노릇하면서 세상에 나타나실 생미륵을 기다리겠지만 한 번 왔다가 간, 석가의 운은 불교로 다시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며 산속에 앉아서 부처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다리고 있는 미륵불은 말세를 당한 이 시점에서 미천한 사람 중에서 나오게 된다는 뜻이다.


 산 속의 중들이 거하고 있는 곳은 이매망량호랑도적(魑魅魍魎虎狼盜賊)들이 들끓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이매망량(魑魅魍魎)’의 뜻은 도깨비 귀신들로서 인면수심의 인간들을 말하는 것이다.

 산속에 앉아 목탁이나 두드리고 염불을 하며 선인 노릇을 하고 있는 중들은 모두 호랑이와 이리 같은 무서운 도적 놈들이라는 것이며 그들이 거하고 있는 산속 절에는 구원을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서에는, 구원을 주는 곳에 이미 미륵불이 출현하여 계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斗牛在野勝地處엔   彌勒佛이出現컨만   儒佛仙이腐敗하야   아는君子그누구냐?

        두우재야승지처     미륵불  출현       유불선  부패           군자


 두우재야승지처(斗牛在野勝地處)에는 이미 미륵불이 출현하여 계시지만 유불선이 모두 부패하여 두우재야(斗牛在野)를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한문의 뜻으로 두우는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칭하는 것이다.

‘두우(斗牛)’의 두(斗)자는 북두성을 약자로 기록한 것이고 우(牛)자는 견우성(牽牛星)을 약자로 표시한 것이다.

 격암유록 예언으로 보아 북두성은 예언의 주인공으로 미륵상제(彌勒上帝)이신 박태선 장로님을 상징하고 있으며, 견우성(牽牛星)은 부활하여 오신 국조 단군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백마(白馬)를 상징하고 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논한바 있지만 더욱 상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말세에 이씨망 정씨흥 (백행웅 저)]과 백마 홈페이지

(www,paikmagongja.org/)에서 <학문적근거>중에 ‘한반도로 강림하신 조물주’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에서 박태선 장로님과 북두성을 연관시키는 이유는 상제강림동반도 미륵상제박도령(上帝降臨東半島 彌勒上帝朴道令)이라고 예언되어 있듯이 불교의 생미륵(白馬)의 하나님으로 강림하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이북에서 탄생하시어 이남의 동방 땅 모퉁이로부터 나오셨기 때문이다.


 또 상제께서 바다 모퉁이로 강림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를 고서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는 해우의 뜻에서 찾을 수 있다.


                             海隅 ; [書經] 上帝光天之下 至于海隅

                             해우    서경  상제광천지하 지우해우


 위의 글이 전하는 뜻은 해우, 즉 바다 모퉁이로 빛의 하나님께서 강림하셨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예언은 기독교의 성서 이사야 41장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이미 수차례 설명한 바 있다.

 또 두우성(斗牛星)에 대해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실 초창기에 당신의 별인 새벽별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으시다.

 

 이와 같이 두우(斗牛), 즉 북두성과 견우성 두별의 주인공이 계신 곳으로 이미 생미륵불이 출현하여 계시거늘, 유교, 불교, 선교의 교인들이 부패하여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가사총론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두우(斗牛)의 우자가 견우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견우성에 대하여 부연설명을 하면, 견우의 실체는 소를 모는 목동이 아니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는 백마이다.

 그 이유는 이미 단군 홈페이지의 [오작교 완성! 견우, 직녀]편에서도 설명한 바 있지만‘견우성’의 단어에서 견(牽)자와 우(牛)자를 분리하여 분석해보면 결국 견우성은 공중에 떠있는 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존재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견(牽)자는 여러 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글자이다. '학자 견','이끌어줄 견','잡아당길 견', '별 견', '희생을 할 견', '연결할 견' 등등 여러 가지의 뜻이 담긴 글자이다. 또한 소는 육축 중에서는 제일 정결한 짐승으로 여겨져 우리 고유의 풍속에서 산제를 드릴 때에는 소를 제물로 삼았으므로 이는 소의 정결성을 상징한 것이다.

 

 우(牛)자 또한 '소 우', '별 우'자로 사용하며 우리의 선조들이 소를 조상의 신으로 여기는 풍습이 있었으니, 꿈에 소를 보면 조상을 만나본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소는 희생제물로 바쳐질 만큼 정결하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또 격암유록의 은비가편에 소를 하늘로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 있다.‘천우지마 세부지(天牛地馬世不知)’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뜻을 해문하면 하늘은 소로, 땅은 말로 표시된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라도 김제의 금산사 벽화에 소와 목동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 참으로 이채롭다. 그 벽화에서 소와 목동을 연결하면 그것은 견우(牽牛)이다.

 그런데 스님들은 그 벽화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또 그 그림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견우에 대해 논하다보니 오작교에 얽힌 견우와 직녀의 유명한 전설이 새로워진다. 또 이 전설에 감동되었던 세인들은 이 전설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도 하는 것이다.


 위에서 나열한 가사총론의 뜻과 견우의 뜻을 상기하면서 다시 견우의 의미와 연관이 있는 전라도 김제의 금산사에 있었던 그 벽화의 주체인 소와 목동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사찰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부처님이나 보살, 사대천왕 등의 그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금산사 벽화에는 소와 목동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사찰은 신성한 성역으로 그런 곳의 벽화에 목동과 소가 그려져 있는 점은 연구해볼만한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금산사를 비롯한 불교계에서 목동과 소가 그려진 벽화에 담긴 의미를 해탈하지 못한 속세인들에게 조그마한 교훈으로만 해석해 왔으나 작금에 와서는 벽화의 진정한 의미와 그림에 존재하고 있는 소와 목동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그 중 목동은 견우이고 견우는 곧 생미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금산사 벽화는 견우성이 틀림없다.

 

(금산사 벽화 별지에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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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금산사의 벽화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의 그림은 목동이 소를 붙들기 위하여 고삐를 둘러 메고 들판으로 나가는 장면이다. 

 두 번째 그림은 들판을 얼마쯤 지나가자니 목동이 고삐가 없는 황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는 엉덩이 뒤 쪽이 조금 흰색으로 변화되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림은 목동이 소를 찾고 있던 참에 길에서 만난 소를 향해 고삐를 던진다. 이윽고 목동은 고삐를 던져 소를 얽어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얽어 매인 소는 반항을 하며 끌려오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장면이 네 번째 그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목동의 고삐에 얽어 매이게 된 소가 전보다 엉덩이의 더 많은 부분이 흰색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다음 장면으로 목동이 소를 얽어맨 고삐를 나무에 매는 순간부터는 소의 엉덩이 삼분의 일이 흰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목동은 소의 고삐를 풀어서 소잔등에다가 고삐를 얹어놓고 팔짱을 끼고 간다. 그런데도 소는 혼자 얌전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의 엉덩이 부분이 삼분의 이가 흰색으로 변해 있다.

 그 후 목동은 소잔등 위에 올라타고서 피리를 불면서 가는데 이미 소는 목 부분만 남겨두고 흰색으로 변화가 된 것이다.

 목동은 소잔등에서 내려와 소의 고삐를 소잔등 위에 올려놓은 채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졸고 있는 사이에 소의 몸이 완전히 하얗게 변한 채 소는 달아나 버린 것이다.

 목동은 소를 찾기 위하여 소나무 밑에서 개천 건너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미 목동의 머리에도 흰색의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후 목동은 머리가 완전히 하얀 백발로 변화되었고 백발이 된 목동이 지팡이를 짚고 괴나리봇짐을 지고서 길을 떠나는데 둥근 원형을 향하여 가는 그림이 마지막 장면이다.

 여기서 원형이 의미하는 것은 아라비아 숫자에서 9다음에는 10인데 10은 곧‘0’을 뜻하며 한문 상으로는 십(十)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전라도 김제 금산사에 있는 벽화의 전경이다.          


 이제 이 벽화의 내면에 숨겨진 의미를 분석해보자.

 청소년 시절의 목동이 소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 후 목동이 백발노구가 되는 동안에 소도 역시 흰 소로 변화가 되어 서로 헤어져 각자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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