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백마 서검 석가모니 강타 (1부)    

 

                 석가모니에게 불공을 드리는 자들은 전생에 악역을 한 자들

필자는 불교인이 아니다. 불교인이 아닌 입장에서 불교를 논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자가 아닌 필자가 불교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한문과 격암유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아래의 문장은 격암유록 내용 중, 불교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가사총론 내용의 일부분이다.

 

                               儒佛運去儒佛來니    何佛去而何佛來오 

                               유불운거유불래      하불거이하불래 


위 문장에서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유교와 불교의 운명이 언제까지 유지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상기 예언 문장의 구체적인 뜻은 기존의 유교와 불교의 운이 가고 다시 유교와 불교의 시대가 오는데 어떤 불교가 가고 어떤 불교가 오는지를 묻고 있다.

이 예언의 뜻을 숙고해 볼 때에 결국 현재 존재하고 있는 유교와 불교는 그 운명이 다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불교는 제거되어야 된다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불교가 등장해야 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유교와 불교에 대하여 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선 ‘유불운거유불래(儒佛運去儒佛來)니’라고 한 뜻이 기존 유불교의 운은 가고 새로운 유불이 온다는 뜻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새로운 유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존의 유불이 사라져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격암유록은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할 부모국이며 지상천국이 건설될 나라라는 예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격암유록의 예언과 같이 지상천국이 건설될 나라에서는 이방의 종교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럼 기존해 있는 유불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유교의 창시자 공자에 대해 그를 중국인으로 알고 있다. 불교의 교조 석가모니 역시 인도 태생이므로 불교 또한 유교와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방인이라 하면 동방예의지국에서는 野蠻人(야만인)으로 취급하고 있는 종족들이다. 

우선, 印度(인도)에서 탄생한 부처의 종교관은 사후론의 종교관이다. 영생론과 사후론의 의미는 정반대의 의미인 生(생)과 死(사)의 길이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종교관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오직 불타의 오경에 도달하여 불타와 같이 성인이 된다는 것에 목적을 두고 교리를 통해 사후론을 역설하면서 열반과 윤회사상, 해탈을 주장하고 있다.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으로서 異邦人(이방인)의 종교, 그것도 사후론을 주장하는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또 한가지, 필자는 석가모니 육신의 사망 후에 이루어지는 涅槃(열반)에 대한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였다. 종교는 永生(영생)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후론보다는 영생론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조차 결국 잘 죽으러가기 위하여 평생 동안을 수도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본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깨달음에 일생을 바친 불교의 高僧(고승)이나 禪僧(선승)들의 수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불교의 고승이나 불교 학자들이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기껏 사후론을 연구하고 있는 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단군연합에서는 영생론을 주장하고 있다. 

영생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인간들을 사망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참 종교의 사명이라 사료된다.


그런데 그 많은 불교서적에서 영생론에 대한 주장은 찾아볼 수 없고 그것을 대신하여 涅槃(열반)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여기서 이 뜻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그 상세한 것은 알지 못하나, 방가경에서는 涅槃(열반)의 뜻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涅槃 [塄伽經]   涅槃者不死不生之地
                                  열반  방가경    열반자불사불생지지


이 열반의 뜻을 분석하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땅속에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이 현재와 같이 과학이 고도로 발달되어가는 시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이론이라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죽지도 않고 살지도 못하고 있다는 열반은 어떤 경지를 말하는 것일까?

분명히 열반의 실제적인 예식은 사후에 사체를 불에 태우는 방법으로 행해진다. 死體(사체)를 불에 태우면 혼이라는 것은 사라지고 재만 남는다. 

그런데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상태라는 열반의 뜻과 열반의 예식에 대한 실제적인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모순으로 드러나기에 논란이 될 충분한 소지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론과 실제가 판이한 것을 믿으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은 불교에서는 열반의 상태에서 舍利(사리)가 나오는 것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리에 대해서는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다. 

고승이 사망하는 것을 入寂(입적)한다고 한다. 入寂이라는 뜻은 고요한 곳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入寂을 入滅(입멸)이라고도 한다. 入滅(입멸)이라는 뜻은 영원히 멸망하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영원히 멸망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흔적을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체를 불에 태워 재로 만들어서 강가나 산에다가 뿌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말하여 열반의 의식은 인생으로 태어난 것을 저주하는 의식이다


入寂(입적)이나 入滅(입멸)의 의식은 불교에서만 행하는 의식이다. 시체를 불에 태워 거기에서 유리알 같은 결정체가 나오는 것을 舍利(사리)라고 한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그 사리의 상태를 보고 생전의 수도생활에 대한 충실 여부를 구분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평신도의 사리는 중요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 또한 이상한 일이다.

스님들이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평신도들의 供養(공양) 덕분인데, 결국 공양을 한 평신도들의 수도생활에 대한 평가는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평신도들에게 거둬 들인 공양미를 받아먹고 살면서 목탁이나 두드리고 불경을 외운 스님만이 부처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인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평신도가 수도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평신도는 入寂(입적)하여 사리가 나올 처지도 못된다면 평신도가 예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불교에서 도의 결정체라 주장하는 사리에 대해 학문적 근거를 가지고 알아보자.

사리에 대한 고전의 기록에서는 부처의 뼈라 하였다. 

한문으로 부처의 뼈를 佛骨(불골)이라 한다. 佛骨(불골)에 대한 뜻은 한자 대 자전에서 발취한 자료이다.

                                                          

                             佛骨  [法苑珠林]   佛骨卽舍利

                             불골  (법원주림)   불골즉사리


중국 당나라 때 道世(도세)가 편집한 불교의 법원주림이라는 事典에서는 舍利(사리)에 대해, 부처가 멸망한 후에 나온 것이 곧 舍利(사리)라고 하였다. 

아마도 부처가 사망한 후 그 시신을 불에 태워 나온 부처의 그 舍利(사리)를 보고 공양을 하는 듯 하다. 이것이 부처가 멸망한 후 현재까지 자리매김하여온 禮佛(예불)을 하는 예식이다. 그런데 그 사리에 공양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는 무엇이 얻어지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면 불사리(佛舍利)라는 것을 한자 대 자전에서는 무엇이라 기록하였을까?

 

                          佛舍利釋迦의 遺骨   [法苑珠林]  若佛舍利椎打不破

                          불사리석가   유골   (범원주림)  약불사리추타불파


부처의 사리에 대하여 법원주림에서는 ‘만약 부처의 사리를 몽둥이로 파괴하려하여도 그것은 파괴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마도 부처의 사리는 무척 단단한가 보다.

법화경에 기록된 舍利(사리)는 아래와 같다.


                                  舍利 [法華經]   佛滅道後供養舍利

                                  사리 (법화경)   불멸도후공양사리


 상기의 뜻과 같이 사리(舍利)란 부처가 멸망한 후에 사체를 불에 태워 거기서 수정과 비슷한 물체를 찾아내는데 그것을 사리라고 하며, 불교인들은 이 사리를 보존하여 이것을 부처로 간주하여 공양한다. 

한문상의 뜻은 이러한데 부처의 사리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작금에 고승들의 수도 과정에서 열반을 하게 되면 사체를 불에 태워 거기서 사리를 찾아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이러한 舍利(사리)에 대해 한문의 글자를 분석하여 이해한다면, 집 舍(사)자와 이로울 利(리)자로 구성되어 있다. 

집 즉 절에 이익을 주고 있는 것이 사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리의 뜻은 부처가 사망한 후에는 사리를 부처 대신으로 공양한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그 舍利를 향해 절을 하고 예를 갖추면 그 사리가 곡식과 재물을 헌납하여 供養하는 신도들에게 어떤 이로움과 영향을 주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불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교리는 사후론이기 때문이다. 다만 輪廻(윤회)와 解脫(해탈)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사후론을 주장하는 불교의 최대관심사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인들이 부처의 사리를 보고 공양을 드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후의 인생을 담보하는 禮佛(예불)이 된다는 결론이다.

그러면 불교인들은 오직 사후에 윤회생사로 다시 태어날 때의 상황을 염려하여 수도를 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면 여기서 한자대전에서 발췌한 윤회생사에 대해서는 어떤 뜻이 기록되어있는지 알아본다. 


                  輪廻  輪廻生死   [心地觀經] 有情輪廻  生六道 有如車輪無終始

                  윤회  윤회생사   (심지관경) 유정윤회  생육도 유여거륜무종시


輪廻(윤회)는 윤회생사의 약어이다. 심지관경에 의하면 뜻과 마음이 항상 회전하여 살아가는 여섯 가지의 길이 있는데 항상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계속 반복하여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음의 내용은 상기 윤회에 관한 문장에서의 생육도(生六道)의 뜻을 한자 대 자전에서 발취한 것이다.

                           

                參考)  六道 ;  地獄. 餓鬼. 畜生. 修羅. 人間. 天上界  ***六世界
                 참고)  육도 ;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계  ***육세계  


 상기 윤회의 뜻에 포함된 생육도란 地獄(지옥)과 餓鬼(아귀), 畜生(축생)과 修羅(수라)와 人間(인간)과 天上(천상)계라 하였다.

부연하면 생육도(生六道)는 인간이 세상에 출생하여 지옥에 가서 살수도 있고 굶주리는 餓鬼(아귀)도 될 수도 있고 또 육축 중에 짐승으로 다시 나올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괴물로도 변화가 될 수도 있고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이 윤회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앞서도 언급했듯이 불교에서 생전에 佛供(불공)을 드리는 목적은 영생이 그 목적이 아니며, 사망한 후에 자기의 영혼이 어떤 모양으로 다시 태어날지, 윤회생사를 위하여 수도를 한다는 결론이다.


부연하면 죽어서 윤회생사에 의해 다시 태어날 때에 소나 개와 같은 畜生(축생)으로 다시 나오느냐? 아니면 餓鬼(아귀)로 나오느냐? 하는 문제를 의식하여 수도를 한다는 것이다.

아귀는 굶주린 마귀를 뜻한다. 또한 굶주린 餓鬼(아귀)에 대해 불교에서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겠으나 한문의 뜻에 의한 아귀란 굶주리는 인간을 餓鬼(아귀)라 한다. 

결국 불교인들이 불공을 드리는 이유는 사후에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다시 윤회하여 호의호식하며 살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불공을 드리는 것이 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생전에 지극정성으로 부처에게 불공을 드리면 죽어서 다시 인간으로 윤회할 수 있다고 믿는데 윤회생사와 관련하여 기록한 육도의 뜻을 세밀히 관찰하여 볼 때, 그들은 죽어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윤회과정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윤회의 뜻을 기록하고 있는 상기 문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死後論(사후론)을 주장하는 석가모니가 天上界(천상계)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윤회의 뜻과 연관된 생육도에는 분명히 천상계(天上界)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불교인들 입장에서는 천상계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열반에 들어간 부처에게 불공을 드리듯 열반에 대한 각별한 그들의 의식관계나 또는 고승들이 入滅(입멸)한 후에 高僧(고승)의 사체에서 나오는 사리를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천상계도 사후에 이루어지는 세계인 듯하다.

또한 천상계라는 것이 사후론을 주장하는 석가모니에 의해 발표된 사실에 의해서도 천상계란 사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천상계(天上界)라는 뜻을 한자의 뜻으로 해문하면, 천상천하의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천상계이다.

결국 현재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하나님의 존재로 부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연하면 부처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회의 뜻을 분석하다 보면 석가모니가 태어난 인도라는 나라와 백의민족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차이점 중에 하나가 창조주의 존재에 대한 각각의 인식에 있다.

우선, 석가모니가 내세우는 불교의 교리를 통하여 석가모니가 조물주의 존재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조물주에 대한 석가모니의 보다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졌었다면 석가모니는 결코 사후론을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사후론에 대한 주장이 바로 인도의 혈통이 하나님과 연결된 혈통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혈통은 불완전한 짐승과 연관된 혈통이라는 것을 밝혀주는 근거가 된다.

또한 윤회생사에서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불도를 닦는 것을 보더라도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를 비롯한 불도인들이 짐승으로 윤회할 것을 염려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석가모니나 불교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순수한 사람의 혈통은 사망한 후, 윤회과정에서 절대로 짐승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혈통과 짐승의 혈통은 구성 원소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 석가모니는 조물주의 인생 창조과정을 연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罪(죄)에 대한 문제이다. 성서에서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죄가 없으면 사망하지 않는다는 원리와 같은 말씀이다.


기독교에서는 태초에 인간이 사망하게 된 원인을 하와의 범죄로 돌리고 있다. 그 하와가 범죄한 근본죄는 음란죄이다. 그런데 성경상에서 밝혀지지 않은 사실은, 태초에 하와가 음란죄를 지을 때에 하와와 상관되어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인간이 원숭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태초에 하와가 교미를 했던 존재는 원숭이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인면수심의 짐승인간이 먼저 창조된 것이다. 이렇게 원숭이가 사람의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최초의 저주받는 인간이 탄생된 것이다.


조상 아비의 혈통은 원숭이의 피이고 어머니의 혈통은 사람이었던 인면수심 인간의 족속이기에 사후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본바탕이 짐승의 혈통이므로 윤회를 하면 짐승으로 태어난다는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사람은 사후에 다시 윤회를 하게 되더라도 사람의 순수한 혈통은 그 구성 원소 자체가 짐승과는 다르기 때문에 절대로 짐승으로 윤회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불교에서 사후론이나 윤회생사를 주장하는 이유는 상기와 같은 이론으로밖에는 해석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혈통은 짐승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바이다. 이러한 연유로 석가모니가 사후를 두려워하여 열반이나 윤회생사, 또는 해탈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해탈이란 짐승의 탈에서 벗어나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러한 해탈을 주장하던 석가모니가 이와는 전혀 다른 뜻의 윤회생사와 열반을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석가모니 자신이 우왕좌왕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는 심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열반을 주장할 시, 석가모니는 짐승인간이었으므로 자기가 사망하여 원래의 짐승의 존재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형체를 불에 태워 없애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解脫(해탈)을 주장하게 된 것도 혹시 짐승 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해탈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간과 짐승의 피가 다르다는 것을 석가모니는 알아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생을 주장하는 종교에서는 보혈의 피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정결한 피의 주인공인 백의민족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순수한 사람이 등장하였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으로 선조들께서는 백의민족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일러 왔었던 것이다. 

부연하면 동방예의지국이란 호칭에 내포되어 있는 뜻은 사람 같은 사람은 동방예의지국 국민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선지선현들께서는 동방예의지국 국민이외의 타민족을 모두 野蠻人(야만인) 취급을 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경로는 태초에 조물주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먼저 인면수심의 짐승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중에 사람다운 사람을 창조하신 과정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이는 학문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인간에게 선악이 함께 공존하는 이유가 이러한 연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석가모니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선악은 반드시 인간을 통하여 드러나게 되어 있으므로 무형체의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석가모니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부연하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선한 사람이란 사람다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며, 악한 사람이란 인면수심의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면수심의 인간이라는 것은 태초에 하와가 선악과라는 것을 먹고 생산한 저주받은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고 선한 백성이란 백의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필자의 확신은 격암유록의 예언에 근거한 것이다. 격암유록의 예언 가운데 가전에서는 인면수심의 짐승인간과 순수한 사람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을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그 예언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하기의 예언에서 수남(獸男)이라는 뜻은 짐승, 즉 원숭이가 女子 사람의 남편노릇을 했다는 뜻이며, 반대로 人婦라는 뜻은 짐승 원숭이를 남편으로 둔 女子를 人婦라 이른다는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獸男人婦願之共居  是亦不棄逢田如麻

                           수남인부원지공거  시역불기봉전여마


                           同氣勳柔香風往來  獸人得生  天然之事世不之也

                           동기훈유향풍왕래  수인득생  천연지사세부지야

                         
                                                            -哥前(가전)-


상기 가전의 예언을 해문하면, 짐승의 수컷과 사람인 여자가 서로 원하여 동거하게 되었는데 여자가 삼베옷을 만들어서 짐승 남편에게 옷을 해 입히고 사는 생활이 어찌도 즐거운지 여자가 짐승의 품안에서 더운 기운과 향내가 왕래함을 느낀다라는 표현으로 즐거움을 표시하였고, 이와 같이 짐승 남자와 사람인 여자(獸男人婦)가 서로 교접하여 짐승인간을 생산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든 천연지사이므로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는 예언이다. 


                                   참고)    天然之事世不之也

                                            천연지사세부지야


아마도 인도의 석가모니는 상기의 예언내용과 같이 인간이 원숭이를 조상으로 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유로, 잘못하면 다시 짐승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涅槃(열반)을 주장하고 윤회생사와 해탈을 주장한 것이라 사료된다.

그리고 석가모니가 열반을 택하여 시신을 불에 태워 재로 만든 것은 석가 자신이 다시 윤회를 하게 되면 사람으로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근거를 없애버린 것이라 사료된다. 

이렇듯 석가모니는 사후론을 주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불교의 법도 중에 특이한 사항은 개고기 먹는 것을 금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문 뜻의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개가 조상이라는 사실로 인연하여 생긴 법도라 사료된다. 

개가 조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자성어의 일례가 犬猿之間(견원지간)이다. 犬猿之間(견원지간)이라 하면, 개와 원숭이가 앙숙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한문을 깊이 연구한 필자로서는 그 반대로,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해문한다.


이와 같이 사람이 개와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된 근거는 바로 모양 狀(상)자에 내포되어 있는 뜻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의 형상을 가리키거나 모양을 표시하는 모양 狀(상)의 글자가 개 犬(견)자의 글자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그 근거이다. 


보기) 모양 狀(상)자의 구성은 조각 널 판지 爿(장)자와 개 犬(견)자로 합성되어 있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불교인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사람들이 개고기를 잘 먹는 이유는 우리는 개와는 상관없는 민족이라는 것을 선조들께서 간파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전에서는 속세지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俗世之人坐井觀天  心覺此言運行度數不避也 
                             속세지인좌정관천  심각차언운행도수불피야


                                                         -가전(哥前)-


 상기 속세지인(俗世之人)의 뜻을 살펴보면, 속세라는 표현은 불교에서 나온 용어이다. 불교인들이 자기네들은 불도에 입문하였다하여 세상사람들을 속세지인이라 표현하여 이른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을 속세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 문장의 뜻은 하나님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존재들은 방에 앉아서 천정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찾는 존재들이며 이러한 자들에게는 앞으로 심각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들은 앞으로 자기에게 재앙이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재앙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부연하면, 현재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사후론을 주장하는 석가모니에게 예불하는 불교인들은 앞으로 오는 재앙을 피할 수가 없다는 예언이다. 

불교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여 석가모니가 하나님인 줄로만 알고 있는 한심한 자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인들은 짐승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불지옥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 근거가 禮佛(예불)이라는 뜻에 있다. 

 
                                  禮佛  [唐書] 身陷惡逆 獄中禮佛
                                  예불   당서  신함악역 옥중예불


상기 예불의 뜻은 부처를 공양하는 자들은 전생의 악역으로 지옥에 갈 존재들로서 함정에 빠져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자들은 지옥에서도 계속 부처를 받들 자들이라는 뜻이다.

상기 예불의 뜻에서 악역이라는 뜻은 인륜을 저버린 행위를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위 문장의 뜻은 현재 부처를 예불하는 불교인들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인륜을 저버린 행위를 했던 선조들의 후손들이라는 뜻이다.


인륜을 저버린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과 짐승의 수간으로 태어난 인종들이 인륜을 저버린 족속이 된다는 뜻이다.

석가모니는 원숭이의 후손이기 때문에 인륜을 저버린 대역죄인의 후손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지옥을 갈 자들만이 부처에게 예불을 한다는 뜻이다. 부연하면 원숭이의 후손들만이 부처에게 예불을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백의민족의 탄생 과정에 대해 격암유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격암유록 가전 예언에는 성서 창세기의 아담, 하와가 범죄한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人男獸婦逢之願心同居不棄

                                인남수부봉지원심동거불기

                          

                                                             - 가전(哥前)-


위의 뜻을 해문하면 '남자 사람에게 짐승의 부인이 된 여자가 함께 동거하기를 원하므로 사람인 남자가 짐승과 음란죄를 지은 여자를 버리지 못하고 함께 동거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람인 남자'와 '짐승인 여자'라는 표현이 매우 낯설 것이다. 격암유록 예언에서는 사람 남자를 인남(人男), 그리고 짐승의 부인이 된 여자를 수부(獸婦)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근자에 한문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짐승의 부인이 된 수부(獸婦)라는 여자를 표현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상기의 뜻을 부연하면 수부(獸婦)라는 여자의 뜻은 상단에서 원숭이와 교접하고 짐승인간을 생산한 여자를 ‘짐승의 부인’이라 하여 수부(獸婦)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예언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인남(人男)과 수부(獸婦)가 서로 다시 만나서 동거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그 남녀가 예전부터 서로 잘 알고 있었던 사이였다는 것을 암시한 내용이다. 


그런데 여자가 짐승과 먼저 교미를 하여 짐승인간을 만들고 난 이후에 다시 본 남자에게로 돌아와서 서로 동거하기를 원하여 남자가 이것을 받아들여 동거를 하게 된다는 예언이다.

이 예언을 성서상의 아담 하와의 존재, 그리고 선악과의 존재를 전제로 인간 창조의 과정으로 표현한다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행위를 격암유록에서는 짐승의 부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성서상에서 짐승의 부인이 된 하와가 다시 아담에게 나타나 동거하기를 간절히 원하여 아담이 음란죄를 지은 하와를 데리고 산다는 내용이, 바로 남사고 예언에 기록되어 있는 '人男獸婦逢之願心同居不棄(인남수부봉지원심동거불기)'의 뜻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서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창조의 뜻과 격암유록 가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서로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아 태초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죄의 근본 정체는 원숭이로 판명되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꼬인 뱀이 먹으라고 한 선악과는 바로 원숭이 물건을 가리킨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원숭이를 조상으로 둔 석가모니나 서방인들은 짐승의 자손으로서 구원이 없으며, 피가 맑고 깨끗한 백의민족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전체 인생을 다 같은 인간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백의민족과 같이 하나님의 혈통으로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단일민족은 죽은 후에 윤회하여 다시 태어날 때에 짐승이나 다른 것으로 윤회할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석가모니는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혈통은 짐승으로 윤회하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백의민족의 혈통은 하나님의 혈통이므로 신령의 존재인 백의민족과 印度(인도)라는 나라와는 엄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는 짐승을 조상으로 둔 후손이므로 수도를 하여도 영생하는 수도를 연구한 것이 아니고 사망한 후의 일을 염려하는 수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 뜻은 결국 짐승이 사람이 되었을 경우, 사람의 모습으로 살다가 사망할 시에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지 않을 방법을 연구한 것이 고작, 사망을 하면 열반이라는 격식을 통하여 땅 속으로 들어가는 도가 불교에서 최고의 석가의 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사망의 종교인 것이다. 그래도 석가모니는 예수보다는 양심적이며 솔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동방예의지국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은 모조리 원숭이가 조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절대로 구원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면수심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인면수심의 존재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깨달은 분이 석가모니이다. 그리하여 열반과 윤회생사 그리고 해탈을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스님들로 하여금 독신생활을 하게 한 것이다.

스님들에게 독신생활을 시킨 것은 저주받은 짐승인간을 생산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석가모니는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석가모니와 같은 원숭이 후손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인면수심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영생론을 주장하면서 2000년 이상을 속이고 온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보다는 석가모니가 양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짐승의 후손인 인도에서 건너온 석가모니의 시대는 곧 종말을 고한다는 하단의 예언이다. 


                                儒佛運去儒佛來니  何佛去而何佛來오

                                유불운거유불래     하불거이하불래


상단의 예언은 사후론을 주장하는 원숭이의 후손 석가모니가 세운 불교와 공자가 세운 유교는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영생론을 주장하는 새로운 유교와 새로운 불교가 온다는 예언이다.


                 
               先聖預言 明示하라  逆天者는 亡하리라
                                 선성예언 명시      역천자   망  


참고로 위의 예언은 선성인의 예언을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게시하라는 뜻이다. 선성예언이란 현재 세상에 떠도는 여러 가지의 예언을 정확하게 밝혀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게시하라는 예언이다. 만약 상기 예언의 뜻과 같이 예언서를 관찰하고도 게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므로 망한다는 예언이다.

필자는 상기의 예언의 뜻에 따라서 만부득이 발표하는 바이다. 


상기와 같이 단군연합에 게시된 두려운 정감 예언의 뜻을 믿든지 말든지 독자들은 알아서 판단하기 바란다. 필자는 정감의 예언에 기록된 사실을 해문하여 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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