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문 목사님의 행위

                         ‘범행작죄불면천벌의(行作罪不免天伐矣)’


 

단군연합의 자유 게시판에 2003년 7월 6일 올려진 통일교인의 <오늘통일교의 축복 결혼식 있는날>의 게시문을 보고 2003년 7월6일은, 문 목사님으로 인하여 하단의 예언과 같은 인생들이 또 탄생하겠구나! 안되었다.
 그런데 격암유록 예언에서 문목사님이 행위는 천벌을 받을 행위라는 사실이 예언되어있어서 소개한다.

또 문 목사님도 격암유록을 인용하여 설교를 하시기 때문에 더욱이 통일교인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하단 격암유록 예언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凶惡無道(흉악무도)한 죄에 대해 논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흉악무도한 죄가 무슨 죄인 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문 목사님이 주선하여 합동결혼을 시키는 일이 가장 큰 죄이다. 이에 대한 근거가 아래의 문장이다.


예언 문장이 길지만 독자님들 잘 읽어보시고 현재 통일교회에서 문 목사님이 하는 처사가 합당한 일인지 판단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虛多犯罪諸惡之中  有罪於身外  身內犯罪極凶之一條也

                      허다범죄제악지중  유죄어신외  신내범죄극흉지일조야


위 예언의 뜻은 “세상에 많은 죄악 가운데 몸 밖에서 짓는 죄와 몸 안에서 짓는 죄가 있는데 몸 안에서 짓는 죄가 범죄 중에서는 최고로 극흉무지한 죄”라는 뜻이다. 그런데 몸 안에서 짓는 죄와 몸 밖에서 짓는 죄는 어떻게 다른가?


몸 밖의 죄라는 것은 도적질, 살인강도등의 죄이지만 몸 안의 죄라는 것은 남녀가 음란죄를 짓는 것을 몸 안의 죄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이르러 진리를 깨달으면 합법적인 결혼관계라 하더라도 남녀 관계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는 자들은 몸 안의 죄가 무엇 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논할 가치가 없다.
하단의 내용은 몸 안의 죄에 대해서 설명한 문장이다.


                   犯內之罪靑春男女 愼之又愼   六六一  七七一  八善男善女愼

                   범내지죄청춘남녀 신지우신  육육 일  칠칠일  팔선남선여신 


위 예언의 내용중 범내지죄(犯內之罪)라 한 것은 몸 안에서 짓는 죄를 범내지죄라 한다. 청춘남녀들에게 몸 안에서 짓는 죄를 삼가고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청춘남녀들에게 조심을 하라고 하였으면 그것이 무슨 죄라고 생각을 하는가? 당연히 청춘남녀가 불장난 하듯 짓는 음란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청춘남녀가 삼가 조심을 해야되는 이유를 세 가지의 숫자로 표현을 한 것이 기이하다. 또 예언의 내용중 신지우신(愼之又愼)은 “조심을 하고 또 조심을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 데 그리도 조심을 하고 또 조심을 하여야 하는지, 삼가야 할 일이 무엇이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다음의 숫자를 해석하여야 한다.


                           六六 一    七七 一   八 善男善女愼

                               육육 일    칠칠일    팔 선남선여신 


위 내용을 해문하기 위해서는 六字와 七字와 八字를 구분하여 사람을 구분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먼저 六六수는 성서에 짐승의 수로 상징되어 있다. 그런데 혹자들은 예수를 개새끼라 치면서 성서를 인용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성서말씀의 전체가 거짓이 아니라 전체 말씀중에 2% 정도는 진리의 말씀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서의 묵시록에도 짐승의 수를 六六六이라 하였고 육(六)의 숫자로 짐승을 표시한 곳도 있다. 짐승은 마귀를 가리킨다. 그런데 또한 성서에서 짐승의 수는 사람의 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육수는 털 없는 악종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 七七 一의 해석이다. 서방에서는 七수를 행운의 숫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七수에 해당이 되는 인간은 서방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성서를 인용한다면 육수는 에서이고 칠수는 야곱의 후손이다. 어떻게 하여 그런 해석이 나왔느냐고 한다면 그 이유는 글자의 뜻에서 찾을 수 있다 .

六六 一 의 六字를 한자대자전에서 찾아보면 여섯 번째 숫자를 표시하고 있고 ‘졸장부육’, ‘못날육’자로 표시가 되어있다. 현재 지구상의 인종 중에서 제일 천대를 받는 인종은 흑인들이다. 그러므로 육수는 흑인을 상징하는 글자가 되는 것이다.


七字의 뜻을 찾아보면 숫자를 표시하기도 하고 열매를 상징하기도 하며 ‘사로잡을 칠’자로도 사용되는 글자이다. 부연하면 사냥을 하는 자들을 표시하는 글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글자의 뜻에 따라서 七자는 서방인을 표시하는 글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부분의 ‘팔 선남선녀 신(八 善男 善女 愼)’의 뜻을 해문 하겠다.

이 문장은 당연히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문장이라 사료된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가장 피가 정결하고 깨끗한 민족은 백의민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의민족의 피의 정결성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자들은 우리나라의 국적은 가졌지만 서방신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백의민족의 피가 정결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이방인을 구세주로 모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백의민족은 모든 일상생활에서도 피가 맑아지는 음식을 찾는다. 그 이유는 피가 곧 생명이고 정결한 피의 귀중성을 아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팔자의 뜻을 한자대자전에서 찾아보면 숫자로 표시를 한 이외에 ‘승리할八’, 또는 ‘이길八’字라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팔 선남선녀는 백의민족을 상징한 문구이며 승리하고 이기는 백성의 뜻으로 팔 선남선녀 신 (八 善男 善女 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뜻은 백의 민족의 선남선녀들중 청춘남녀는 삼가조심하고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조심을 해야 하는가? 선남선녀는 사람을 구분하여 사귀라는 예언이다. 흑인이나 이방인을 구분하여 조심하고 조심을 하여 교재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피가 맑은 백성이 피가 더러운 인종과 교제를 하게 되면 몸 안에서 짓는 음란죄가 형성되므로 피가 직접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아래 예언의 문장에서도 삼가조심을 하라는 내용으로, 남여가 결합이 되면 떨어지지를 못한다는 뜻이다.


                                此言愼行之載  如何間 不離 夫婦

                                차언신행지재  여하간 불리 부부


이 뜻은 “다시 부탁하는데 삼가고 삼가서 처신을 하라는 뜻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夫婦(부부)가 서로 합하여지면 떨어지지 않은 다’는 예언이다


그런데 부부가 하나가 되면 떨어지지 않게 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람인 남자가 짐승의 부인과 함께 동거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예언의 문장을 아래에서 소개한다.


그런데 아래 본문의 예언에는 아리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 내용인즉 사람인 남자를 人男이라하고,  짐승의 부인을 獸婦(수부)라 하였으며  또 사람의 부인을 人婦라 하고  짐승의 남자를 獸男(수남)라고 하였다.


현실에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짐승과 부부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인면수심의 인간이 많다는 것이다. 하단의 예언이 먼저 설명한 人男과 수부(獸婦)가 동거를 하는 내용이다.


                                 人男 獸婦 逢之 願心 同居不棄

                                 인남 수부 봉지 원심 동거불기


이 뜻은 “사람인 남자가 짐승의 부인을 맞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짐승의 부인노릇을 한 여자를 수부(獸婦)라 한 것이다. 본 문장의 예언을 독자들이 이해를 할 수가 있을까? 아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성서의 창세기에는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인류가 최초로 범죄를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본 예언의 문장에서는 남자가 먼저 짐승의 부인과 교미를 하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의혹이 풀리지 않은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獸婦(수부)’라는 용어이다. 수부는 사람인 여자가 짐승의 남편을 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순수한 짐승을 가지고 논한다면 짐승의 암컷이나 짐승의 수컷이라 하면 되는데 여기에서 굳이 수부(獸婦)라는 용어를 사용을 한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장의 내용 중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人男과 짐승의 부인인 獸婦(수부)가 서로 만나기를 원한다는 부분이다. 즉 인남수부 봉지원심 (人男 獸婦 逢之 願心)이라는 문장이 의아스러운 문장이다.


본 문장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사람인 남자와 수부가 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하여 남자인 사람과 짐승의 부인이던 수부(獸婦)가 서로 만나기를 원한단 말인가? 이것은 분명히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연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의 에덴동산에서는 하와가 먼저 범죄를 하였다. 하와가 범죄를 한 상대가 원숭이라면 짐승의 부인인 수부는 하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 사람인 아담과 수부가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함께 있던 하와가 원숭이와 음란죄를 지은 후 수부가 된 하와가 아담을 만나기를 원했다는 줄거리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을 토대로 본다면 하와가 원숭이와 교접을 하여서 처음으로 인면수심의 인간을 생성한 것이다.


인면수심의 인간을 생산한 이유에 대해서는 하단의 예언에 상세히 기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인남과 수부가 만나서 서로 떨어지기를 싫어하였다는 뜻이 해문이 되는 것이다.

상기예언의 인남수부(人男獸婦) 즉 남자사람과 짐승의 부인이 되었던 수부가 동거를 한 것과는 반대로 아래의 문장에서는 수남과 사람의 부인이 동거를 하였다고 하였다.

                       

                                    獸男人婦願之 共居是亦不棄

                                    수남인부원지 공거시역불기


위 예언의 내용은 고고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을 증명 하여주는 예언이다. 그러나 사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예언이다. 위 내용 중, 수남의 정체를 알려면 원숭이를 상상하면 된다. 왜냐하면 짐승의 수컷과 짐승의 암컷이 교미를 하였으면 수남이라는 표현은 필요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어느 사람의 부인이었던 여자(人婦)가 수컷의 짐승과 동거를 하였는데 서로 떨어지기가 싫어서 함께 살았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수남(獸男)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수남이라 하면 짐승의 남편이라는 것인데 반대로 표현하면 여자가 짐승 남편을 두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성서의 창세기론과 연관되어 있는데,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먹었던 선악과라는 것이  원숭이와 연관되어 있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선악과라는 것을 먹고 저주를 받은 인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저주를 받는 인생이라는 것은 원숭이가 진화된 인면수심의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에게 털이 있다는 자체가 짐승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격암유록 송가전에서는 인간을 털 없는 짐승이라 표현한 것이다.


                               雜杼世上當末運에 不毛之獸 丁寧하다

                               잡저세상당말운에 불모지수 정녕


현재는 상기의 문장에 나타나 있는 불모지수 즉 털 없는 짐승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하단의 예언은  짐승과 사람의 부인이 만나서 행복하게 생활한다는 예언이다.


                                   逢田如麻同氣勳柔香風往來

                                   봉전여마동기훈유향풍왕래


그런데 위 예언의 문장에서 흥미가 있는 것은 수남, 즉 사람의 부인이었던 여자와 수컷 짐승이 여자의 남편인 수남과 함께 받을 갈고 길쌈을 하며 사는 생활이 얼마나 즐거운지 향기가 진동하는 훈훈한 기가 왕래한다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성교를 하는 것을 여자가 짐승과 교미하면서 향기가 진동한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남여 결합은 짐승과 같이 남녀가 결합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단의 예언에서는 짐승 인간이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獸人得生  天然之事世不之也 

                                  수인득생  천연지사세부지야


위 예언의 뜻은 “털 없는 짐승 인간이 탄생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일로서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수인득생 (獸人得生)이라는 용어는 격암유록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용어이다. 수인득생은 털 없는 짐승을 지칭한다. 그런데 여기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털 없는 짐승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하나님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털 없는 짐승을 창조 하셨다는 결론이다.


현재 인간들은 하나같이 짐승과 연관이 된 인간들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 자신이 털 없는 짐승인간이라고 인지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짐승인간이면 이었지 자기는 아니라고 부인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이러한 연유로 생성된 것이다. 석가는 해탈을 하라고 설법했고 예수는 중생하라고 설교하였다. 석가나 예수는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기에 제자들에게 짐승의 탈을 벗으라고 하였고 거듭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해탈이나 중생을 한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탕이 짐승을 남편을 둔 여자가 생산을 한 아이는 씨가 짐승의 씨이므로 갱생이나 재생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인간과 짐승인간이 구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래 예언의 문장은 인면수심의 인간들이 하나님을 보는 관점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俗世之人坐井觀天  心覺此言  運行度數不避也

                         속세지인좌정관천  심각차언  운행도수불피야


위내용의 뜻은 “세상 사람들은 천정을 쳐다보고 하늘이라 한다는 것이며 이와 같은 일은 심각한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지의 운행도수가 다되어오므로 그 운행도수를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본 문장에서 운행도수라는 것은 세상이 종말이라는 것이며 재앙을 경고하는 예언이다.

하단의 문장은 신이 나타나면 마귀는 몰락한다는 예언의 문장이다.


                               神出鬼沒 眞來 邪言矣  十三  三十

                               신출귀몰 진래 사언의  십삼  삼십


위 예언의 내용 중 신출귀몰(神出鬼沒)의 뜻은 “신의 존재가 나오면 마귀는 몰락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 이와 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백마공자께서 출현하셔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를 하면서 인간을 마귀라고 증거를 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마귀라고 하면 보이지 않은 악신 정도로만 인식할 뿐 인간이 마귀라는 사실은 꿈에서조차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창세 이후 정감록과 격암유록 또 성서와 한문의 뜻을 근거로 인간을 가리켜 마귀라고 하는 것은, 단군연합에서 처음으로 주장하고 있는 일이다. 또한 사악한 인간마귀들을 추수한다는 것도 단군 연합에 와서나 들어볼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眞來 邪言矣  十三  三十

                                  진래 사언의  십삼  삼십


위 예언의 뜻은 “진인께서 이 땅에 나타나실 때에는 저속한 일에 대해 말씀하시고 나오신다”는 예언이다.

진래사언의(眞來 邪言矣)의 뜻은 저속한 표현이다. 사언의(邪言矣)이라 하면 “간사한 말을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邪(사)자는 간사할 邪(사)자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간음을 할 邪(사)자로도 사용을 하며 옳지 못할 邪(사)자로도 사용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진인께서 이 땅에 나오실 때에는 淫亂罪(음란죄)를 치고 나오시기 때문의 진래사언의(眞來 邪言矣)라 한 것이다. 상단의 문장자체가 淫亂罪(음란죄)를 지은 것을 설명을 하는 문장이다. 또한 단군연합에서도 음란죄는 사합을 받지 못하는 죄라고 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  ‘十三  三十’의 뜻은 유불선 삼대종교를 뜻한다. 十(십)자가 셋이라는 것은 십자를 표시하는 종교가 세 가지라는 뜻이다. 물론 유교는 십자와 연관이 없지만 유교가 음양을 주장하므로 당연히 유교도 십자에 해당된다.

부모가 음양이라는 뜻이다.


또 三十의 뜻은 “삼대종교가 하나의 십자가 된다”는 뜻이며 이는 유불선 삼대종교가 하나로 통합이 되는 것을 뜻한다. 현재 단군연합에서 유불선 삼대 종교를 하나로 통합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와 같은 근거에서 주장을 하는 것이다.


                     行惡視 四善汚行實也  恒心守義   犯行作罪 不免天伐矣   

                     행악시 사선오행실야  항심수의   범행작죄 불면천벌의      


                                             格庵遺錄 哥前(격암유록 가전)


위 예언의 문장은 무섭고 두려운 예언이다. 자기 자신이 선과 악한 일을 행한 것을 자기 스스로 다 보게 된다는 것이다. 즉 因果應報(인과응보)의 뜻이 담긴 문장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我田引水(아전인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뜻이 유불선삼대종교를 통합을 하는데 필요하여 만들어진 문장이라는 것을 밝힌다.


왜냐하면 밭에다가 물을 대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문장은 밭에다가 물을 대라는 문장이다. 현재 사람들은 이러한 것도 모르고 논에다가 물을 댄다는 뜻의 我田引水(아전인수)라 하고 있는 것이다.


논에다가 물을 대는 것은 我畓引水(아답인수)라 하여야 합당한 뜻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자기 논에 물을 댄다는 것을 我田引水(아전인수) 라 하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글과 문장이 잘못되었는데도 내 노라는 한학자들이 현재도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我田引水(아전인수)라 고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은 알기는 많이 아는 한학자들이나 모두 눈을 뜬 장임 노릇을 하였다는 근거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한문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여도 이러한 수준을 가지고서는 정감록이나 격암유록 예언서를 해문하지 못한다. 아전인수라는 문장이 만들어진 것은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서 자기 밭에다가 물을 주는 원리를 알아야 구원을 받는 곳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문장이 생성된 것이다.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문장이 유래된 이유는 구원을 주는 곳을 밭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弓乙田田 道下止가  分明無疑十勝일세  

                            궁을전전 도하지    분명무의십승


위 내용은 격암유록 말중운의 예언이다. 본 문장의 내용 중 십승지는 구원을 주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그 십승지를 궁을전전도하지(弓乙田田道下止)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주는 곳은 음양이 하나가 되는 곳으로서 밭田(전)자 두개가 있는 도하지(道下止)라는 곳이다.


도하지(道下止) 에  대하여서는 누차 설명한대로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인 전도관의 명칭이 파자로 기록된 곳이 격암유록의 도하지이다. 이러한 근거들을 기초로 박태선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는 단군연합에서는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문장을 사용하여도 합당하나, 다른 사람들은 자기 밭에다가 물을 댈 이유가 없기 때문에 我田引水(아전인수)라는 문장이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 근거들을 기초로 단군연합에서는 모든 문장을 我田引水(아전인수)로 해문을 하는 것이다. 이제 말세에 다가올 천벌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위 예언의 뜻과 같이 항상 의로운 삶을 살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된다. 모든 것은 행한 대로 벌을 받게 되므로 악행을 행한 자는 천벌을 면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조들께서는, 현재까지 대를 이어 후손을 두려고 결혼을 시키지만 거기에서 털 없는 짐승인간들이 창조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이 집안의 큰 경사로 대대로 유래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말세를 당하여 그것이 크나큰 범죄임을 단군연합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원죄는 수남과 인부가 최초로 결합을 한 것이 인간이 한 맺힌 지옥을 가게 되는 원죄이며 그다음이 선조들이 후손을 생산하는 남녀결합을 시기는 일이 선조의 죄가 피로서 유전되어서 오는 경로가 유전 죄이며 자기 자신이 태어나서 짓는 죄가 자범죄이다.


그런데 말세에 이른 작금에 시집장가를 가며 음란죄를 지어서 피를 더럽히는 것이 범죄이며 특히 백의민족이 이방인의 피와 결합하는 행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대역죄인 동시에 용서 받을 수 없는 범죄인 것이다.


구원은 피가 정결한자만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기예언에 대해 크게 역행을 하고 있는 곳이 통일교회의 문선명 목사이다. 상기예언의 뜻대로라면 문선명 목사와 통일교회 교인들은 천벌을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바이니 삼가 근신하고 근신하여 깨달음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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