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마귀 한마리라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이 가운데 있다면 그는 감람나무이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

 

첫째는 절대 없어야 될 인간이 있고, 둘째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필요 없는 듯싶은 인간이 있고, 또 그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어 그 도시에서 타도로 이사를 간다고 하면 도민 전체가 협력해서 모금을 해서라도 뒷받침해주고 ‘도와 드릴테니 결단코 가지 마세요!’하면서 울부짖는 정도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인간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지금도 그 속에 같이 살면서 체크하고 있다. 밖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 그 속에 인간 전체의 육신 속에 내가 전부 있다.

 

구원을 얻는 경우에는 그를 상대해 줄 상대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 있으면서 그대로 영원한 세계에서 같이 지낼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되지 못하는지 계산하면서 죄를 측정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을 전부 지금 기록하고 있다. 움직이는 마음 전체, 행동 전체, 노력 전체, “애 써라!”하면 백 분지 일을 애쓰고 있는지, 오히려 비웃는 상태에서 하면하고, 말면 마는 상태인지를 전부 측정해서 그 날에 모두 드러낸다.

 

그러나 하나님이라고 드러내기 전에는 해당을 시키지 않는다. 그 전까지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인지 알고 난 후에 자유 율법에 어긋나는 죄조차도 짓는 것은 용서 할 수가 없다.    

이제 신부의 자격이 되느냐, 못 되느냐? 구원에 서느냐, 못서느냐? 이 두 갈림길에서 자기 죄의 양대로 가기 때문에 지금 그 길을 선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뛰고 있다. 내가 향방을 잡아 주니 내 지시 하는대로 그 향방을 따라서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버림을 받아 세세토록 기막힌 지옥에 떨어질 그 인간은 내가 지시한 반대 방향을 향하여 질주 하고 있다. 여긴 나아가고 있는데 거기는 뒤로 퇴보하고 있다. 그 거리가 점점 떨어져 나가고 있다. 이제부터는 지켜야 할 이런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의 영적 구조가 동일한 상태에 놓이지 않으면 아무리 큰 것을 들어도 소용이 없다. 말씀의 깊이만큼 영이 자라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구원에 이르기 위한 문을 찾는 데까지도 힘이 들었지만 그 다음에 인체 속에 있는 마귀의 종류와 마리 수 전체를 찾아내는 데까지의 그 노력은 기가 막히다. 그러므로 인간이 보는 세상 학문으로는 억 만 년을 노력해도 오늘 이 감람나무의 아는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끝도 없는 세상을 영원무궁이라는 것을 끝없이 한 시간의 그 배율이 있는 그 시간 동안 노력해도 얻을 수가 없게 되어져 있다.

 

이런 사람에게 인간들이 갖은 못된 소리를 하며 너무도 물고 찢고 미워했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고와한다면 너희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의 최소한 백만 배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와 영원토록 살 자격이 없다.

 나는 네 영적 엄마로서, 육신의 엄마의 백만 배의 끝도 한도 없는 배율의 엄마임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끝도 한도 없는 사랑이 향해야 원죄까지 소멸 될 그만한 은혜가 나에게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본 바탕이 깨끗해야 구원 받는다.

 

 본 바탕은 나쁜데 억지로 내가 구속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억지로 내가 구속함을 준 사람이면 그는 3천 년 동안 사는 동안에 거기에서 본 바탕이 드러난다. 그것은 3천 년 사는 동안에 구속함을 받았어도 지옥에 쓸어 넣게 되어 있다. 10년을 살아도 정 없이는 못사는데 영원이라는 시간 동안을 같이 살 수가 없다.

 

 그것을 내 신으로서 지금 측정을 하고 있다. 어떤 때에는 곧 해결 지을 것도 안하고 질질 끌면서 전부 측정하고 있다. 진실된 마음과 거짓된 마음. 또한, 어느 정도 날 돕는 자와 반대하는 자와 물어뜯는 자가 사실 그대로 드러나서 갈라지게 하기 위해 시일을 끄는 것이다.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 누구라도 골라 낼 수 있게끔 드러난다. 심판하는 날 이유가 없다. 지금도 반은 신으로 다스리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같이 얼룽얼룽한 마음으로는 갈 수가 없다.

 

 또한 깊은 것을 가르치든지, 은혜를 입혀주든지 하여 은혜를 입은 자리에 던져서 그 사람들끼리 그런 조건에서의 마음과 행동을 구분 질 수 있게 한다.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하는 것으로 던져지는 때가 있다. 거기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추려서 들어간다.

 세상 시험을 치러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시험을 쳐서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정도 가려서 들어간다.

 

 아무리 공로를 세우고 정욕을 끊기 위하여 노력을 했다 해도 그 속에 죄가 남아 있으면 통과를 못한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다듬는 역사이므로 알곡과 쭉정이를 고르는 역사이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가게 되었어도 거기에서 실수를 하면 옆의 사람들이 오염이 되므로 쫓아 버린다. 점점 뽑아 들어간다.

 

어느 층에 들어가면 거기는 죄가 거하지 않는 곳이므로 거짓말 한 마디만 하면 새까맣게 되어 옆의 사람들이 자기의 광채가 죽어지므로 거짓말을 한 그 사람을 쫓아낸다. 그러므로 거기는 죄는 거하지 않는 곳이다.


 창세이후 구원 받은 자 하나밖에 없다.

 

 예수를 여지없는 지옥자식이라고 하면서도 할 수 없이 거짓으로 시체에 생수를 발라 시체를 피게 하였지만 구원 얻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생수 타고 최고로 올라 간 영이 썩은 것들인데 생수 한 번 바름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제 죄에 대한 것을 다 벗겨놓은 다음에 말을 하니 이해가 될 것이다.

 

 최고의 원수였으므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런 더러운 인간들이라도 시체가 피는 것을 보여주면서 깨닫게 하기 위해 행한 것이다.

 성경 로마서(3;11)에 기록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내가 마귀 머리를 조종하여 쓴 것이다.  창 세 이후에 구원 얻을 자 하나밖에 없다. 하나 있는데 하나도 없다고 쓴 이유는 하나 있다고 썼으면 마귀가 성경이 자기 머리 속에서 나왔어도 이 감람나무 나온 것을 알고 마귀 전체가 살피게 되어 있다.

 

 의인이 나왔다고 하면 감람나무이다. 그 외엔 하나도 없다. 6천 년 동안 죄의 소재도 알지 못한 인생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것을 다 알고도 남는 감람나무 가지가 지금 생수를 타고 자꾸 올라가므로 최고의 지옥 자식이 되었다. 6천 년 간 구원 얻을 자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시체에 생수 바를 필요가 없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타고 나와야 되므로 그 일을 한 것이다. 이제 의인을 만들려면 생수 탄 사람보다는 순수한 수를 하는 것이 간단하다. 의인이 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안찰이다.

죄를 퍼내는 조건은 안찰인데 이 안찰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그 노력은 각자 스스로 해야 한다.

 

인간 스스로가 그 속에 이미 원죄, 유전죄, 자범죄의 죄의 형체까지도 말해주기 전에는 알지도 못했다. 마귀 중에 한 마리라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이 가운데 있다면 그는 감람나무이고 이긴자이며 하나님이다. 그것을 죽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죽일 조건을 무값으로 만들어 주면 계속 헐하게 죄를 지어 내가 힘들다. 고개 들었던 각색 죄가 고개를 숙이면 그 안에 어떤 죄가 차 있든지 부수는 것은 잠깐 씻어 버릴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막힌 생수의 강도가 있어도 씻어준 것 이상 죄를 더 지어서 또 더럽히는 사람은 어린 아이에게 꼬까옷을 입히면 또 그냥 시궁창에 가서 좋다고 뛰놀다 옷을 더럽히는 그것을 엉치를 때려서 또 목욕을 시키고 꼬까를 입혀도 또 싫다고 울며 시궁창에 들어가는 애기와 같다. 이런 애기는 엄마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귀한 생수가 있어도 영원한 세계를 끝없이 설계해서 또 만들고 창조하는 사람의 능력으로도 자꾸 죄를 짓는 사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미 지은 죄는 불리지 않아도 다섯 번을 토하면 그것을 씻는 것까지 열 번씩 토해서 오십 번을 토하는데 이것은 오만 번 죽는 고통을 당하며 씻어주는 것이니 안찰을 받는 사람은 기도 준 것을 밤낮 자지 않고 해서라도 그 죄를 줄이기 위하여 기를 쓰는 심정이 있어야만 된다.

 죄를 불리는 자는 구원도 얻지 못하고 나라는 존재는 생각지도 않고 나를 헌 신짝같이 밟아버리는 인간이다.


 죄를 짓지 않고 나중까지 따르고 이기는 자만이 구원받는다.

 

 엄마가 이미 걸머지고 당하는 것도 굉장한 부담인데 죄를 줄이지는 못하지만 더 늘려서는 안 된다.’하는 심정으로 생명을 내걸고 바둥바둥 노력하는 자가 나에게 정을 쏟을 대로 쏟는 자요, 위하는 자요, 나를 사랑하는 자이다.

 

제발 죄(罪)만은 늘리지 않아 주면 난 그저 그것으로 다행이고 그것으로 도리어 내가 고맙게 여기며 만 번 절을 하라면 절을 하겠다. 그러므로 마지막 끝까지 힘을 쓰는 자라야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 나중까지 따르는 자라야 구원이 있다.

 이젠 재앙과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때가 된 것이고 심판이 시작이 된 것이다.

 이런 중에서 ‘환란과 시험과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고 이기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있으리라.’하는 것이 지금 와서 부합이 되는 것이다.

 

주저앉는 자는 낙오되고, 뛰는 자는 세우면서 밀 알 까버리듯 까불린다. 어느 정도 기막힌 골수를 넘어 지나가야 된다는 것을 전체 몇 천년 전에 그려 놓은 것이다. 그것이 전부 사실이다.

뛰는 자만이 복된 것이고 말씀 안에서 사는 자만이 복된 것이고 그 마음을 성결하게 소유하는 자만이 복된 것이다. 그 아름다운 마음에 조금도 흐림이 없이 흠과 티가 없는 심령과 모든 전체 그 심정을 담아서 하나같이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존하는 자에게 복됨이 임하게 된다.


 구원을 받는데에는 연단이 필요하다.


 ‘너희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하는 이것이 오늘 날 해당 되는 말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힘을 쓰는 자라야 천국을 빼앗느니라’하는 이것은 노력의 댓가이다. 내가 창조한 생명물은 지구만한, 우주만한 금강석을 백만 개를 가지고 와도 사가지 못할 귀한 것이다. 이 귀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단이 필요하므로 연단이 가해지는 순간이다.

 

연단 없는 믿음은 그대로 무너지는 것이다. 이것은 기막힌 연단 속에서 5천 여 년 동안 학문을 닦았으므로 50년, 100년 기막힌 고생 같은 것은 고생으로 여기지를 않는 것이다. 그것이 귀한 것이다. 어떤 시험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으므로 우주가 다 부서진다해도 그 뭉쳐진 것은 깨칠 힘이 없는 정도의 굳세다는 것이 하나의 큰 자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조금씩 흔들릴 일이 있는 상황이 될 때에 그 연단이 없는 신앙은 무너지고 만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에 무너짐이 크다’라는 것은 기초가 모래인 까닭이고 기초가 반석이라면 튼튼해서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 튼튼하다는 그것은 많은 연단과 시험에 부딪히고 부딪힌 그것의 만 번이면 만 번 고비를 십만 번이면 십만 고비, 이것은 억만 번의 십억만의 십억 배의 또 십억 배의 끝없는 하늘의 숫자의 배율의 끝도 한도 없는 고비를 넘고 또 넘은, 태산과 같은 고개를 끝도 한도 없이 넘고 넘은, 5천 여 년 동안 쌓아지고 굳혀진 것이 견고하여 어떤 모든 것이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서서 이루어 나가는 그 신앙을 소유하게 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연단 없이 지금 허풍으로 믿는 사람들은 구원의 한 자리에도 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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