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 하늘과 새 땅 (1부)

 
 사회 통념상
, 유불선 삼대종교는 서로 융화되기 어려운 이질적이고 독립된 세계들이다. 그러나 이들 삼대 종교에도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러한 공통적인 의식안에서 약간의 논리상의 차이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 중의 하나가 종교의 주체에 관한 것이다. 이에 관하여 유교에서는 일찌기 하나님의 존재를 부모로 비유하였다. 즉 인간의 조상이 하나님이라는 교리를 세운 것이다.

반면에 불교에서는 부처를 하나님의 존재로 인식하였고 기독교에서는 무형의 존재를 하나님이라 주장하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있다. 이것이 삼대종교의 주체에 대한 의식의 차이점이다.

 

이러한 주체에 관한 문제 외에 삼대 종교가 각각의 개별성과 더불어, 함께 하고 있는 공통점의 하나가 모두 천국과 지옥을 논한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는 천국이 아니면 지옥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고 있고 유교의 줄기인 정감록과 격암유록에서는 천당지옥(天堂地獄) 양자간 택일하라고 경고한다.

 

불경에서는 아비규환지옥(阿鼻叫喚地獄)을 논하였다. 그런데 불경의 아비규환지옥은 고통의 참상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어떠한 이유로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는 적혀있지 않다.

유불선 삼대종교의 시조은 천국과 지옥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을 하지 못하고 막연히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만 표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설파로 창조주의 피조물일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에서 그들의 궁핍한 두뇌로는 역불급이었다.

 

올바른 종교 지도자라면 천국과 지옥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그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종교(宗敎)라는 것은 뿌리 종, 가르칠 교의 글자 그대로 그 나라의 뿌리를 가르쳐주는 것이 종교이다. 宗(종)자는 '근본 宗' '존경받을 宗' 또 '본받을 宗'자이다.

홈 내용의 <한문 속의 진리>의 문장들 중에서 ‘구종교와 신종교’ 편에서 종(倧)자를 설명한 바 있으니 참고 바란다.

 

세계의 모든 나라는 각기 나라마다 그 나라 민족의 조상의 뿌리가 있다. 이것이 종족의 뿌리이다.

그 각각의 나라마다 나라의 근본 조상이 어떠한 분인지를 후손에게 가르쳐주어 신봉하도록 하는 것이 종교의 올바른 개념이다.

 

근본을 받들어 모시지 않고 무시하는 배은망덕한 자들을 형벌 받게끔 만들어진 것이 지옥이며 그 구속력으로 율법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예수라는 위인은 의인이라 하였지만 그의 근본뿌리가 정결한 지 매우 의심스럽다. 성서의 기록대로 에수의 피가 보혈이 되려면 그의 조상부터 맑고 의로운 피의 소유자여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동정녀 마라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의 존재는 의심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조상들이 어떤 존재인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공중에서 떨어진 동정녀가 아니라 여느 인간과 똑같이 부모가 성교를 하여 태어난 여자이다. 그런데 성서상에서 마리아가 깨끗하고 정결한 존재로 부각된 것은 단지 마리아가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예외없이 원죄와 유전죄가 있으므로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라 피가 깨끗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리아의 피가 정결했다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입증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성서는 그것을 입증하지 못하였다. 마리아가 단순히 처녀라는 이유로 그녀를 깨끗한 피의 소유자로 인정한 자체가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인간에게 원죄와 유전죄가 거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마리아는 그녀의 부모의 피가 정결한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신분이다.

 

박태선 장로님의 설교말씀에 의하면 예수가 동정녀마리아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에 예수는 원죄, 유전죄, 자범죄를 이어받은 마리아의 피를 먹고 자라고 있었을 뿐,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배를 뚫고서 호수를 연결하여 예수에게 원기를 넣어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는 더러운 원죄, 유전죄, 자범죄를 이어받은 마리아의 더러운 피를 먹고 자란 죄덩어리라고 하셨다.

 

원죄, 유전죄, 자범죄가 인간의 몸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도 박태선 장로님께서 처음으로 인간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예수는 원죄와 유전죄, 자범죄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자이다.

 

원래 인간이 구성되는 과정은 남자의 미세한 정자 한 마리가 남자의 양경을 통하여 여자의 음경에 삽입되면 여자의 자궁에서 여자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 인생이 만들어지게 되는 첫 과정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뱃속에서 자라나온 인간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따르고 좋아하며 친숙한 것이다.

그 원인은 아이들이 어머니의 피를 99.9% 먹고 자란 까닭이다.

 

이러한 근거로 아무리 무형의 하나님께서 남녀교접이 아닌 성령의 작용으로 동정녀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를 잉태하게 하였다하더라도,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원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며, 마리아의 조상들이 대대로 지은 유전죄와 자범죄가 누적된 피를 받은 죄 덩어리인 마리아의 뱃속에서 자라난 예수는 저주받은 피를 받아먹고 자란 관계로 예수는 몸 전체 뼈 속까지 죄로 뭉쳐져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는 보혈이 아니라 저주를 받은 피이므로 예수는 결코 구원을 주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종교의 목적은 이처럼 근본을 깨우쳐 주는 것이 그것이다.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은 피의 정결성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회에서도 피의 귀중성을 강조한 찬송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은 사람됨을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다 허락 하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부연설명>

위 찬송가의 가사대로 예수의 피가 보혈이었다면 예수가 사형 형틀에서 강도들과 같이 죽임을 당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혈의 피에서는 능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도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권세도 보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지옥자식인 것이다.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신기한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어린 고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인간에게 제일 주요한 요건은 조상이 의인이냐 아니냐이다. 즉 조상에게 물려받은 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상이 의인이라면 그 조상의 피가 깨끗하고 맑은 피의 소유자이므로 그 후손도 의로운 백성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피가 더러운 잡종 인간의 후손에게는 더러운 피가 유전되므로 근본이 없는 종족이 되니, 의로운 자의 후손과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기거하는 곳도 구분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국과 지옥을 구분하여 창조를 하신 것이다. 부연하면 의로운 피의 인종과 더러운 피의 인종을 구분하여 창조를 하셨다는 뜻이다.

현재 지옥을 창조하시고 계신 과정이다. 이것이 1차 지옥이며 동시에 천국을 창조하시는 과정이다.

유불선 삼대종교 주인공들은 이와 같은 사실도 밝혀내지 못하고 해탈을 하라느니 중생을 하라느니 천국을 간다느니 지옥을 간다느니 하면서 2000년~ 2500년 동안을 지탱하고 온 것이다.

 

<지옥도 모르는 예수>에서 논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2차 불지옥에 보내시기 위하여 1차 지옥인 지구(地球)를 창조하신 것이다.

정감록이나 격암유록등은 지옥이 먼저 조성되어야 천국이 생긴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내용의 예언들이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성서의 지옥화를 그린 찬송을 다시 소개하면.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쉴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고향 하늘나라”


< 부연설명 >

이 찬송의 뜻은 현재 인생들의 일상사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속세의 인간들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각기 나름대로의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아무리 부유한 자라 하더라도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모면할 방법이 없다.

 

현재 부유한자나 권력자는 하루하루가 좋은 세상인줄알고 살아가고 있으나 결국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인생들인 것이다. 이것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것이 종교지도자이다.

그러므로 위 찬송가는, 인간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고향이 지구 덩어리가 아니고 하늘나라라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 현재의 지옥생활을 한탄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기를 갈구하는 심정을 담고 있다.

결국은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여 쫓겨난 후 그의 후손들이 부르는 애절한 뜻의 찬송인 것이다. 


             “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부연설명>

위 찬송가의 가사가 담고 있는 뜻은 천국의 가는 길이 험하지만 그 험한 길을 가야만 하는 이유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길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에서 이와 같이 천국에 가는 길이 험하다고 느끼면서 가는 목사나 교인은 한명도 없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받으려면 구원의 길을 먼저 찾아야한다. 또한 천국을 가려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라는 자가 구원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현재까지 기독교인들이 2000년 이상을 길을 못 찾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라는 찬송도 생겨난 것이다. 이 찬송은 바로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된다 할 것이다.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 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칭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고 나타나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지옥을 창조하신 것도 당신이요, 지옥을 보내는 존재도 당신이시라고 당당하게 설교하셨다.

이러한 설교말씀은 인간의 존재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두려운 말씀이다. 

이러한 이유와 같이 지옥이 먼저 창조가 되었으므로 그 다음은 천국이 창조되어야하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이미 창조를 완료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그 근거는 바로 정감록과 격암유록 및 성서의 기록에 있다.

우선, 성서 다니엘의 기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다니엘 2장 31절-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다니엘예언의 부연설명>

여기서 왕 앞에 서있는 신상은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왕 앞에 서있는 신상을 부서뜨리는 뜨인 들은 묵시록의 흰 돌의 주인공을 말하는 것으로서 흰 돌의 존재는 동방에서 나온 백마가 횐 돌이다.

백마가 나와서 기독교를 국교로 신봉하고 있는 미국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치는 것은 곧 미국의 상징이며 자존심인 자유의 여신상을 쳐부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동정녀 마리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예언의 신상이 왕 앞에 서 있다는 예언은 현재 미국의 대통령 부시가 철저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즉 자유의 여신상이 철저한 기독교 신자인 부시인 왕 앞에 서있는 현재의 상황을 예언한 것이다.


-다니엘 2장 39절-

셋째로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 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 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 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다니엘예언 부연설명>


다니엘 예언의 2장 39절의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미국을 가리킨 것이라 하시면서 여러 인종이 합쳐서 살고 있는 합중국인 것을 상징한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 나라 미국이 현재는 강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약하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국민이 단일민족이 아닌 관계로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미국이 창세 이후 최고의 강대국으로서 이라크를 부서뜨리고 또 다른 나라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현실이 다니엘 예언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횐 돌에게 무참히 무너진다는 예언이다. 그리고 미국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 다니엘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또 한나라를 세우신다고 예언하신 것이다.

-다니엘 2장 44절-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다니엘예언 부연설명>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부시와 미국의 국민과 전 세계의 신학자와 목사라는 자들은 2500여 년 전의 다니엘 예언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아무리 무지한 신학자와 목사라는 자들이라도 현재 미국이 하는 처사와 다니엘 예언을 비교 검토하여 보라. 구약시대의 예언이 이제야 실현되고 있음을 실감할 것이다.

 

동방에서 갑자기 흰 돌의 존재가 나타나서 다니엘서를 인용하면서 강대국 미국을 여지없이 쳐버리고 있는 것이 단순히 미친놈이 하는 짓으로 생각하는가?

이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예정대로 미국이 무너지고 나면 동방의 대한민국에서 세계를 영원히 지배할, 한 나라가 세워지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니 명심하기 바란다.

이와 같이 또 한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예언되었다.


-이사야 41장 1절-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고 만민은 힘을 새롭게 하여 가까이 나아와

말하고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

그 발 앞에 이르게 하신 자가 누구냐 열국을 그 사람 앞에 굴복케 하며


<부연설명>

이사야 41장 1절의 예언은 분명히 한국 땅에서 의인이 나온다는 사실을 암시한 예언이다.

동방에서 한사람을 일으켜 세우게 되는 그 동방은 한국을 가리킨 것이고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고 하신 말씀의 그 섬들이란 일본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한 사람의 의인이 동방의 대한민국 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28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것인데 이사야 예언의 뜻대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백마공자가 나와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강대국 미국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41장 9절 10절-

내가 땅 끝으로부터 너를 붙들고 땅 모퉁이로부터 너를 불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슬퍼 버리지 아니한지라

내가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말며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너를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부연설명>

이사야 41장 10절의 예언은 이사야 41장 1절의 예언과 비슷한 내용의 예언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을 정확하게 증거하기위하여 한국의 지형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이한 점이다.

무형체의 하나님께서 동방의 땅 끝 땅 모퉁이에 의인을 세우신 이유는 때가 되면 유형체로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기 위함이다.


위와 같은 상황을 세부적으로 예언한 것이 아래 디모데전서 6장 15절의 말씀이다.


-디모데전서 6장 15절-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를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찬송할 이시오

홀로 하나만 되시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사람이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부연설명>

디모데전서 6장 15절의 말씀을 분석하면, 2000년 전에 무형체의 하나님께서는 디모데를 통하여 인간들과 약정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약이 이르면 그를 보이신다’는 말씀은 말세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라는 존재를 세상 인간들에게 보여주신다는 예언이다.

위의 디모데전서의 예언이 이루어지려면 마땅히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나타나셔서 그라는 존재를 보여주시는 상황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시는지 그것이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하나님께서는 찬송을 하시고 나타나신다는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역까지 분명히 선을 그으셨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선을 그으신 부분은 하나님은 찬송할 이시요, 홀로 하나만 되시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는 것까지 선을 그으신 점이다.

디모데전서의 말씀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육신으로 이 땅에 강림하시어 교인들 앞에 나타나셔서 직접 찬송을 부르셔야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형체로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그'라는 존재를 드러내시는 상황이 전개되어야만 디모데전서의 예언이 합당한 예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기독교회에서 이러한 성서구절에 대해 깊이 생각이라도 해본 신학자나 목사가 있었다면 예수가 구세주라는 거짓말로 교인들을 농락하는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했을 것이다.

 

성경이 100% 진서라면 디모데전서 말씀대로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어 '그'라는 존재를 보여 주시게 되어있는데 구태여 예수가 왜 필요한가?

디모데전서 예언말씀은 단적으로 표현하여 예수는 구원과 상관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또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사람이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라고 예언하였다.

디모데전서에 등장하는 '그'라는 존재는 예수의 가치를 능가하는 구원을 주는 주인공으로서 '그'라는 주인공은 빛에 거하는 자로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사람이 보지를 못하였고 볼 수도 없는 자로서 그에게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린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그'라는 존재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라는 존재 앞에 가까이 갈 수 없고 빛에 거한다고 한 사실로서 '그'라는 존재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 사람은 볼 수도 없는 자라는 사실이다. 예수라는 자가 얼마나 유명한지 영화까지 제작되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신자라도 예수를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라는 존재는 예수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고서 후한서에서는 말세의 암주(闇主) 즉 숨어있는 주가 나온다고 서술한 문장이 있어서 이를 소개한다.


                           末世 ; [後漢書] 末世闇主 誅賞各緣其私

                           말세   (후한서) 말세암주 주상각연기사


고서 후한서의 기록을 참고하면 말세가 되면 숨어있는 주가 나온다고 하였는데 숨어있는 주가 상도 주고 벌도 주는데 각자 행한 대로 공정하게 다스린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암주라는 것은 숨어서 일을 한다는 것인데 자기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형벌을 준다는 뜻이다.

 

디모데전서의 일부 기록인 ‘오직 죽지 아니함이 그에게만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사람이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의 예언은 말세의 뜻과 동일한 의미이다.


위와 같이 디모데의 성서구절을 신학자나 목사들이 신약성서에서 삭제하여 버리지 않았다면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와 목사라는 자들은 신구약성서를 수 십 번 자기 입맛대로 뜯어고치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성서를 보려면 옛날 관주 성서를 보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나 목사들이 아무리 자기 편한대로 성서를 뜯어고쳐도 구원은 그라는 자가 나와서 주는 것이지 예수가 구원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를 아무리 믿어보아야 구원이라는 것은 없으므로 결국 불지옥에 들어갈 짓만 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인들인 것이다.

'그'라는 자는 기약이 차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어 그라는 존재를 드러내시기 전에는 그라는 존재를 알지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디모데전서의 예언과 같이 현재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고 밝히시고 나오셨고 또 하나님은 찬송 하시리오의 뜻과 같이 교인들 앞에서 찬송을 즐겨 부르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찬송하시리요’라는 성서의 예언과 같이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집회시간의 3분의 1의 시간동안 찬송을 부르셨다. 그리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그라는 존재를 밝히셨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설교말씀을 통하여 악조건이 되면 본인 자신이 죽었다가 백마를 타고 오는 조건 밖에는 없다고 하시며 백마가 나올 것을 예언하시어 그라는 존재를 드러내셨을 뿐만 아니라 본인 자신이 감람나무라고 나타나셨으면서도 또 감람나무가 나온다는 것을 예언하셨던 것이다.

박태선 장로님의 이러한 움직이심이 디모데전서 예언의 내용과 똑같다는 사실이 두려울 뿐이다.

 

위와 같은 근거로서 다니엘 2장 44절의 예언과 같이 강대국 미국이 무너지고 나면 또한 나라가 생기게 되는데 그 나라가 바로 동방의 해 돋는 곳, 땅 끝 땅 모퉁이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새 하나님과 새로 나오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그라는 백마공자가 세우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맹인들인 신학박사라는 자들과 목사들이 성서를 뜯어고쳐가면서 박태선 장로님을 이단이라고 중상모략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하나님의 신분으로서‘그’라는 존재를 밝히시는 설교말씀을 소개한다.

 

“그 기막힌 속에서 온 백성이 짓밟는 속에서 조롱과 모욕과 천대를 받으면서 가지라고 따르는 사람까지 물고 찢고 짓밟고 고통에 빠져 발을 뺄 수 없는 상태까지 짓밟는 이 속에서도 지금 당하다가 이제 최후의 책임을 지고 이 일이, 버리지 못할 정도까지 되면 그것으로 이제 피하지도 붙잡지도 못할 것으로 나도 여기서 일을 할 수 없게끔 되어지므로 그것으로 나는 떠난다. 

내가 죽었다가 백마를 타고 오는 조건밖에 없는데 그것은 악조건이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마귀는 끝장이다”

                                              <1980년 12월 15일 박태선 장로님 말씀>


“성경 묵시록(14;1~5)에 ‘이마에 두 이름을 쓴 감람나무의 이름과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쓴 자가 14만 4천을 구속하여주고 그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더라’하는 구세주는 예수가 아니라 감람나무이다. "감람나무는 자기 이름을 쓰고 하나님의 이름을 썼더라" 하는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감람나무는 하늘의 하나님을 증거하게 되어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이라고 하는 신비한 말씀들이 많은데 그것은 아주 얕은 신비에 속한 말씀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찾아라!’하는 글이다. 이것만 찾으면 되게 되어있다. 그러니 좌우간 소경으로라도 바른 골수를 찾아오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감람나무의 이름을 쓴 두 이름을 쓴 자를 찾아야 되는데 우린 대추나무를 믿소. 그런데 감람나무가 어디 있는지 그 사람이 주인공이요. 그 사람을 찾아봅시다’라고 하면서 두 이름을 쓴 자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그런데 우리가 감람나무를 믿었으면 좋았을 텐데 길을 잘못 들어 대추나무를 믿소!’라고 하면 그 쪽에서 황소같이 씩~ 웃는다.

감람나무를 찾으면 되는데 감람나무를 찾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1981년 7월 4일 박태선 장로님 말씀>


       “이 가운데 마귀 한 마리라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이 가운데 있다면

         그는 감람나무이다. 이긴자라 이거야 마귀 한 마리를 죽일 수가 없어”

                                               <1982년 3월 1일 박태선 장로님 말씀>


       “감람나무 다음 가는 자리는 귀해.

         하나님과 감람나무와 고 다음 사람까지는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그건 감람나무에게 권한이 있는고로 그 끝없는 수의 수가 불어난 속에서

         변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셋째 번 사람에게 줘.

         감람나무가 부여한다 말야!”

                                             <1980년 12월 15일 박태선 장로님 말씀>


“감람나무가 나오면 성서보다 앞선 글이라도 필요가 없다.

‘감람나무’라는 것, 한 구절을 명확하게 기록한 것이 호세아에 몇 구절밖에 없다. 그것이 성경에서 최고 깊이 들어갔다는 말씀이다. 세상 학자들이 연구한 것 중에도 그것보다는 상당히 깊이 들어간 것이 있다.

 

"그러나 감람나무가 난 다음에는 성경보다 앞선 것까지도 필요 없는 것이다.

감람나무라는 사람이 나와서 학문이 조금 높아지면 미래를 보고 과거를 조금 보게된다. 깊이 들어가면 그렇게 되어있다. 감람나무라는 사람이 나오면 그를 통하여 영생을 얻는다는 것까지는 찾았다. 그러나 그 다음 되어지는 것은 월권이다. 그 다음은 나에게 국한되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계획하든 저렇게 계획하든 내가 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1980년 12월 15일 박태선 장로님 말씀>



본 설교말씀은 단군홈의 [백마공자]편과 [성서의 주인공 감람나무]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성서의 ‘그’라는 자와 연관이 되는 중요한 내용이므로 다시 소개를 한 것이며 여기에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당신이 감람나무라고 밝히시고 나오셨으면서도 감람나무라는 사람을 만나라고 권고하신 말씀이 그라는 존재를 드러내신 근거이다. 설교말씀을 상세히 읽어보면 ‘그’라는 존재를 알 수가 있는 내용의 말씀이다.


 
               先聖預言 明示하라  逆天者는 亡하리라
                 선성예언 명시      역천자   망
 


참고로 위의 예언은 선성인의 예언을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게시하라는 뜻이다. 선성예언이란 현재 세상에 떠도는 여러 가지의 예언을 정확하게 밝혀내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게시하라는 예언이다. 만약 상기 예언의 뜻과 같이 예언서를 관찰하고도 게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므로 망한다는 예언이다.

필자는 상기의 예언의 뜻에 따라서 만부득이 발표하는 바이다. 


상기와 같이 단군연합에 게시된 두려운 정감 예언의 뜻을 믿든지 말든지 독자들은 알아서 판단하기 바란다. 필자는 정감의 예언에 기록된 사실을 해문하여 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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