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聖書(성서)를 불태워 버리는 天運(천운)의 주인공은? (30부-1)



       
       그 사람을 만나서 天下를 統一하시는 박태선 장로님!

전장에서 소개한바와 같이 靈魂革命(영혼혁명)을 일으키시어 靈魂(영혼)을 再建(재건)하시는 박씨가 우주에 가득한 橄欖(감람)나무의 신분으로서 天地人 三處(삼처)에 존재하시는 三處(삼처박) 역할의 하나님으로 드러나신다는, 그 박씨의 장본인이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당신께서 예수를 개새끼라 쳐버리지 않으시면 橄欖(감람)나무가 나올 수 없다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하신 사실이다.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소개!

  하나님과 마귀와 약정기일이 있어. 감람나무가 만일 나타나도 요전 예수는 개새끼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나타나질 못하게 돼있었다. 감람나무는 공자정도보다 높이 올라갔다.    내 이론을 발표할 사람이 없다.   

                                      - 1981년 2월 21일 (2-1-A)-

위와 같은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대로 서기 1980년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예수를 개새끼라고 쳐버리신 이후, 서기 1987년도부터 橄欖(감람)나무 가지 역할의 서씨가 나타나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있는 현 상황이다.

이러한 사실에 해당되는 내용이 실려 있는, 전장에서 소개한 격암 갑을가 예언문장에서는 橄欖(감람)나무로 출현하시는 三處(삼처박)씨 이외에 또 한 사람의 박씨가 감람나무 가지(시)자 역할의 하나님의 아들 天子의 신분으로서 鷄龍(계룡) 역할의 박씨로 출현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전장에서 소개한바 있는 하단의 다시 이기한 甲乙歌(갑을가) 예언 문장에 서술되어 있는 次出(차출박)의 신분과 동일한 존재가 격암 세론시 예언문장을 통해 小石枝(소석지박)의 역할로 드러난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를 소개하기 위하여 전장에서 소개한 하단의 문장을 다시 참고하는 의미에서 이기하여 게시하는 것이다.         

         
  다시보기)   森林出世  天數   三處運  誰可知
                       삼림출세  천수박   삼처박운  수가지

                       從者生  次出   天子乃嘉  鷄龍                           시종자생  차출박   천자내가  계룡박  

                                      -格菴 甲乙歌(격암 갑을가)-

소개한대로 위 甲乙歌(갑을가) 예언문장을 다시 이기하여 소개하는 이유는 위 문장 ‘森林出世 天數(삼림출세 천수박)’ 의 森林(삼림)의 문장이 橄欖(감람)나무의 역할로 드러나는 森羅萬象(삼라만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신분으로 드러나시는 운명의 박씨인 天數(천수박)의 하나님의 신분과 ‘從者生 次出(시종자생 차출박)’ 문장의 次出(차출박)의 신분이 하단에서 소개하는 세론시 예언문장에서는 두 신분의 주인공이 기독교 성서를 불태우는 주인공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위 甲乙歌(갑을가) 예언문장을 다시 이기하여 참고삼아 게시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단의 게시한 문장은 장문인 이유로 여러 문장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보기 첫 번째 예언문장이다.

 보기) 西學大熾  天運也  天道者生  無道者死  量者誰  聽者誰  世人何知  智者能知矣         서학대치  천운야  천도자생  무도자사  량자수  청자수  세인하지  지자능지의

       積德之人  活人如此  自生正道  不願積穀  嗟我後生  不忘血遺   
        적덕지인  활인여차  자생정도  불원적곡  차아후생  불망혈유   

       智黙天運  朝暮變化  中略(중략) 
        지묵천운  조모변화  

       世有其人  公察萬物  其姓爲誰  不知也      
       세유기인  공찰만물   기성위수  부지야


  게시한 보기의 문장은 한문을 아시는 분이시면 해문이 필요 없이 읽기만 해도 무슨 의미의 글을 소개하였는지 感知(감지)할 수 있는 문장으로 전체적인 의미는 서방의 큰 학문을 불태워버리는 일을 하는 자는 天運(천운)으로 태어난 자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길을 가면서 살아나는 자라는 것이다.

 

반면에 하늘로 가는 길을 가지 않는 자는 사망을 할 자라는 사실과 西學(서학)을 불태우는 天運(천운)의 역할을 누가 예상하거나 들을 수가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며, 이러한 西學(서학)을 불태우는 자는 智慧(지혜)와 能力(능력)을 겸비한 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西學(서학)을 불태워버리는 天運(천운)의 주인공은 積善(적선)을 한 사람으로서, 西學(서학)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가 주장했던 ‘부활’을 할 수 있는 역할의 사람으로 현시점에서 드러나서 正道(정도)를 가면서 스스로 살아나는 자이며, 穀食(곡식)을 貯藏(저장)하지 않는 가엾은 祖上(조상)의 後生(후생)으로 나와 혈통을 잊지 않는 지혜롭고 말이 없는 天運(천운)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으로서 朝夕(조석)으로 變化(변화)를 일으키는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西學(서학)을 불태우는 주인공은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그 사람을 가리키는 其人(기인)이라는 사람이 그 주인공이라는 사실과 그 사람은 만물을 公正(공정)히 살펴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그 사람의 성씨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전체문장의 의미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을 부분적으로 이기하여 소개하면 서방의 글인 西學(서학)을 불태워버리는 주인공이 天運(천운)으로 나온다는 ‘西學大熾 天運也(서학대치 천운야)’ 문장의 西學(서학)은 기독교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불태워버린다'는 뜻이 담긴 문장은 大熾(대치)의 문장으로 熾(치)자는 ‘불 활활 붙을 熾(치)’ 또는 ‘불 땔 熾(치)’자로 大熾(대치)의 문장은 ‘큰 것을 불태운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상황의 문장에 의하여 ‘西學大熾 天運也(서학대치 천운야)’ 문장의 의미는 '서방 기독교의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워 버리는 자는 天運(천운)으로 드러나는 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天運(천운)의 주인공을 소개하는데, 이어지는 연결의 문장에서는 ‘天道者生(천도자생)’이라 소개하여 하늘의 길을 가는 자는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서,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워 버리는 天運(천운)의 주인공은 하나님의 길을 가면서 살아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길인 天道(천도)를 가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길로 가는 자는 사망할 자라 하여 無道者死(무도자사)라 소개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문장에 이어서 ‘量者誰 聽者誰(양자수 청자수)’라 소개하여 ‘天運(천운)으로 드러나서 기독교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워 버리는 일을 누가 예측할 수 있었으며 누가 들은 자가 있었을까?’라고 하면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世人何知 智者能知矣(세인하지 지자능지의)’라 하여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智慧(지혜)로운 자만이 能力(능력)이 있어서 西學(서학)을 불태워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라고 소개하였다.

  

이와 같이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주인공인 天運(천운)의 역할에 대하여 智慧(지혜)가 있고 能力(능력)이 있어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우고 드러나는 주인공을 가리켜  ‘積德之人 活人如此(적덕지인 활인여차)’라고 소개하여 積善(적선)을 한 사람으로서, 부활하여 현 세상에 드러나 나올 사람으로 예수와 같은 역할의 사람이라 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新舊約聖書(신구약성서)를 불태우는 天運(천운) 역할의 주인공을 또 소개하였는데 ‘自生正道 不願積穀(자생정도 불원적곡)’이라 하여 正道(정도)를 가면서 스스로 살아남는 존재로서, 穀食(곡식)을 저장하거나 재물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소개한 것이다.

 

이와 같이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워버리는 天運(천운)을 받은 역할의 주인공에 대한 소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연결 문장에서 ‘嗟我後生 不忘血遺(차아후생 불망혈유)’라 소개하여 애처롭고 가엾은 나의 後生(후생)은 由來(유래)되어 온 血統(혈통)을 잊지 않는 주인공이라는 것이며, 이어지는 연결 문장에서는 ‘智黙天運 朝暮變化(지묵천운 조모변화)’라 소개하여 天運(천운)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은 沈黙(침묵)으로 일관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朝夕(조석)으로 變化(변화)를 일으키는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의 문장은 ‘嗟我後生 不忘血遺(차아후생 불망혈유)’이라 소개한 문장으로서, 애처롭거나 가엾은 나의 後生(후생)이라는 문장에서 나의 역할의 존재와 後生(후생)의 주인공을 구분하여야 한다는 사실로서, 嗟我(차아) 문장의 嗟(차)자는 ‘슬플 嗟(차)’ ‘탄식 嗟(차)’ ‘애석할 嗟(차)’자이며 ‘순간 嗟(차)’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또한 我(아)자의 주인공은 가엾은 後生(후생)을 둔 주인공으로서, ‘遺傳(유전)되어 온 血脈(혈맥)을 잊지 않는다’는不忘血遺(불망혈유)’ 문장의 의미로 보아 遺傳(유전)되어온 血統(혈통)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의 혈통이라는 사실로서, 여기에서 나를 가리키는 嗟我(차아) 문장의 我(아)자의 역할은 자동적으로 西學(서학)을 불태우고 드러나는 사람의 祖上(조상)이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祖上(조상)의 역할을 我(아)자라 소개한 我(아)자의 기록에서 가리키는 주인공은 자기 자신은 다음과 같이 '누군가를 구하여 주는 역할'이라고 고전 詩經(시경)을 통해 소개한 我(아)자의 존재이다.

 

              보기)   我  (自謂己身) [詩經]  知我者  謂我何求

                      아  (자위기신) (시경)  지아자  위아하구

 

보기 我(아)자의 기록에서 자기의 육신을 가리키는 我(아)자라는 전제하에 고전 詩經(시경)의 기록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자만이 어떠한 사람을 구하여 주는 역할의 我(아)자라는 사실로서, 자기 자신의 신분을 안다는, 자기를 가리키는 존재는 다른 사람을 구하여주는 我(아)자의 역할이라는 사실로서, 여기에서 다른 사람을 救援(구원)하여주는 我(아)자의 역할은 하나님이시나 아니면 하나님 아들의 신분이신 天子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구하여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위 문장의 我(아)자의 역할은 하나님이시나 하나님의 아들 天子의 신분을 가리킨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가엾은 나의 後生(후생)이라는 ‘嗟我後生(차아후생)’ 문장의 我(아)자의 신분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하강하신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신분이신 박태선 장로님이시거나 아니면 격암유록 말운론의 국조단군께서 다시 부활하여 오시는 문장에 근거한다면 我(아)자의 신분은 白衣民族의 조상이신 단군을 가리키는 我자라 보는 필자의 해문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嗟我後生(차아후생)’의 문장에 연결된 문장인 ‘不忘血遺(불망혈유)’ 문장의 血遺(혈유)는 白衣民族(백의민족) 祖上(조상)의 血遺(혈유)를 지칭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嗟我後生(차아후생)’ 문장의 我(아)자의 존재는 白衣民族의 祖上(조상)이라는 결론이다.

 

이와 같은 不忘血遺(불망혈유)’의 문장에 연결된 문장이 ‘智黙天運 朝暮變化(지묵천운 조모변화)’의 문장으로서, 天運(천운)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은 말이 없고 智慧(지혜)가 있는 사람으로서, 朝夕(조석)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檀君(단군)의 後生(후생)으로 드러나는 天運(천운)을 받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西學(서학)인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天運(천운)의 주인공은 단군의 後生(후생)으로서, 血脈(혈맥)을 잊지 않고 드러나는 주인공에 대해 이어지는 문장에서 소개하였는데, 만물을 公正(공정)하게 觀察(관찰)하는 주인공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이라 부르는 그 사람이라는 다음과 같이 다시 이기한 문장이다.

 

           다시보기)   世有其人  公察萬物  其姓爲誰  不知也

                       세유기인  공찰만물  기성위수  부지야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주인공은 基督敎(기독교)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天運(천운)의 주인공으로서 遺傳(유전)되어 온 血脈(혈맥)을 잊지 않는 檀君(단군)의 後生(후생)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을 소개하기를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그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其人(기인)이라는 사실과 만물을 公正(공정)히 살피는 주인공으로서, 그 사람의 성씨는 일을 하는 그 사람 이외에는 알지 못하는 성씨라 기록한 것이다.

 

부연하면 위문장에서는 분명히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天運(천운)의 주인공을 소개하였는데, ‘世有其人 公察萬物(세유기인 공찰만물)’이라 하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其人(기인)이라 소개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公察萬物(공찰만물)이라 소개하여 그 사람은 개인적으로 만물을 살펴보는 주인공이 아니라 公義(공의)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公的(공적)으로 만물을 살펴보는 임무를 맡은 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그 사람이 만물을 관찰한다는 ‘世有其人 公察萬物(세유기인 공찰만물)’의 문장에 연결된 문장에서는 ‘일을 하는 그 사람의 성씨를 모른다’ 하여 ‘其姓爲誰 不知也(기성위수 부지야)’라 소개한 문장으로, 일을 하는 ‘그’라는 사람의 성씨를 모른다고 언급하였는데, 여기에서 일이라는 것은 西學(서학)을 불태워 버리는 일이며 그 일을 하는 사람을 ‘其姓爲誰(기성위수)’라 소개한 사실로서, 西學(서학)인 新舊約(신구약)의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일을 하는 그 사람의 성씨를 모른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西學(서학)인 基督敎(기독교) 新舊約(신구약)의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주인공을 찾아야 하는데, 基督敎(기독교)가 100년 전에 대한민국에 상륙한 이후 이 땅에서 종교역사가 시작되면서 최초로 西學(서학)인 新舊約(신구약)의 聖書(성서)를 실제로 불태워 버리신 주인공은 증산도의 姜一淳(강일순) 上帝(상제)님으로, 姜一淳(강일순) 상제께서는 제자들에서 기독교인 耶蘇敎(야소교) 聖書(성서)를 구해오라 하시고 그것을 불태워 버린 사실이 大巡典經(대순전경)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다음은 서기 1980년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예수를 개새끼라 쳐버리시면서 聖書(성서)는 98%가 가짜라 하시고 성서는 볼 필요도 없다고 하시면서 불태워 버리라 하신 사실로서, 이러한 상황이 550여 년 전에 예언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소개!

 

  "성경이 요전 그 어떻다 하면서 불태워버려야 한다. 하는 걸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오늘 들으면 그게 아닌 것을 말하는데, 예수를 그대로 때릴 대로 때릴 건 때려 놓은     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필요 없는 것 같이 말했지만 오늘 와서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은 가장     이 책이 귀한 책, 가장 생명력 있는 책, 가장 가치가 있는 책, 가장 온 세상이 인정하     는 책, 영원불변의 귀한 게 담긴 세상에 이와 같이 많이 팔린 책이 없는 책인 것을 휘     까닥 말하니 ‘아, 엄마 이랬다 저랬다 하는구나’ 할 거에요" 

                                             
                                                  -81년 4월4일 3-1-A-

 

이러한 사실의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과 西學(서학)을 불태워버리는 일을 하는 그라는 사람의 성씨를 모른다는 ‘其姓爲誰 不知也(기성위수 부지야)’ 문장의 주인공의 성씨를 격암유록에 국한하여 그 성씨를 소개한다면 서기 1980년도에 예수를 개새끼라 쳐버리시고 聖書(성서)를 불태워 버리라고 하셨다가 聖書(성서)의 2%는 당신께서 삽입하신 말씀이므로 聖書(성서)는 귀한 말씀이라고 번복하신 박태선 장로님으로서, 西學(서학)인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주인공이 朝夕(조석)으로 變化(변화)를 한다는 朝暮變化(조모변화) 문장의 역할까지 박태선 장로님께서 하신 사실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西學(서학)인 聖書(성서)를 불태우는 일을 시작한 그라는 사람의 성씨를 모른다는 ‘其姓爲誰(기성위수)’ 문장의 성씨는 박씨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장에 연결된 문장이 하단의 보기 문장으로서, 또 한 사람의 그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半白(반백)의 역할이며 두 사람의 역할로서 龍蛇(용사)의 도움으로 출현하여 天下를 統一(통일)시키는 주인공이라는 예언문장으로서, 두 번째의 문장이다.

 

    보기)  橫二爲柱  左右雙三  勿恨其數  勿上追衣  又爲其誰  如短如長  種德半白

           횡이위주  좌우쌍삼  물한기수  물상추의  우위기수  여단여장  종덕반백


            久粧弓揣磨  大小白之石  大小白何爲  河洛之數

           구장궁췌마  대소백지석  대소백하위  하락지수

           白字彎山  工字之出  兩山之間  十字無瑕  出於兩白  人種求兩白於             백자만산  공자지출  량산지간  십자무하  출어량백  인종구량백어

           
            白木雙絲門  月寸土  白木靈木  雙絲人

           백목쌍사문  월촌토  백목령목  쌍사인  

           姓負合之 弓弓人 辰巳之生 統一天下
         
   성부합지 궁궁인 진사지생 통일천하

                                       
                                          -格菴 世論視(격암 세론시)-

 

소개한대로 위 게시한 문장은 西學(서학)을 불태운다는 문장과 연결되어지는 두 번째 문장으로서,  전체문장의 의미는 西學(서학)을 불태우고 드러나는 사람을 가리킨 其人(기인)과 또 한 사람의 그라는 사람이 출현한다는 내용으로서, 서두에서 其人(기인)의 성씨가 박씨라는 사실까지 소개하였는데, 위문장에서는 그 사람으로 드러나는 其(기)자의 주인공은 基督敎(기독교)를 부정하고 기독교에 恨(한)이 맺혀있는 운명으로서, 정성을 다하여 모셔야 할, 하나님의 옷을 따라서 입고 또 다시 나오는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이와 같이 또 드러나는 ‘그’라는 사람은 같은 역할의 ‘그 其(기)’자 역할의 사람인데, 한 사람은 키가 작고 한 사람은 키가 큰사람으로서, 種子(종자)氏의 직분으로 은덕을 베풀어 온 존재로서, 半白(반백)의 역할로서 白衣民族(백의민족) 혈통의 반쪽의 역할을 하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그 사람을 가리키는 其(기)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 半白(반백)의 역할은 大小白의 ‘돌 石(석)’자의 역할로서, 大白과 小白을 가리키는데 大小白의 역할은 하늘과 땅 天地의 역할로서 영구히 하나님을 모시고 자기 자신을 硏磨(연마)하며 상대의 사람도 修練(수련)시키면서 상대를 관찰하는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두 흰 돌의 역할인 두 白의 大小白은 하늘과 땅의 역할인 天地 운명의 두 白字의 역할로서, 山에서 드러나서 白山의 역할로 工夫를 하고 나오는 두 白字의 역할은 太白山과 小白山 사이에서 흠이 없는 十字의 역할로 드러나는 兩白(양백) 역할의 그 사람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兩白(양백)의 역할은 인간의 種子(종자)를 구하여 주는 역할로서, 두 姓氏가 통합되어진 상태의 兩白(양백)은 하나님을 상징한 辰巳聖君(진사성군)을 통하여 드러나서 天下를 統一(통일)하는 그 사람을 가리키는 其字(기자) 역할의 주인공이라는 위 전체문장의 의미이다.

 

부연하면 위문장에서는 그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其(기)자의 주인공이 其人(기인) 외에 또 한 사람이 드러나는데, 흰옷을 입고 드러나는 그라는 주인공을 소개한 문장으로서, 이미 전면에서 소개한바있는 ‘其姓爲誰(기성위수)’ 문장의 성씨 이외의 또 한 사람의 성씨가 ‘그 其(기)’자의 주인공의 성씨로 드러난다는 문장으로서, ‘其姓爲誰(기성위수)’ 문장의 성씨를 필자가 박씨라 소개한 이유로 또다시 드러나는 그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其(기)자의 성씨는 자연적으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天子이시라 증거하고 드러나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서씨 역할의 백마공자라는 결론이다.

 

뿐만 아니라 그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其(기)자의 역할로 드러나는 박씨나 또 한 사람의 ‘그 其(기)’자 역할의 서씨나 모두 白衣民族의 血統(혈통)으로서, 半白(반백)의 두 주인공이 천하를 통일하는 주체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소개한 문장에 연결되어지는 예언문장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여 위문장을 부분적으로 다시 이기하여 상세히 소개하면, 또 한 사람의 그 사람을 가리키는 상황의 문장으로서 다음과 같이 다시 이기한 문장이다.

 

  다시보기)  橫二爲柱  左右雙三  勿恨其數  勿上追衣  又爲其誰  如短如長  種德半白

             횡이위주  좌우쌍삼  물한기수  물상추의  우위기수  여단여장  종덕반백

 

             久粧弓揣磨  大小白之石  大小白何爲  河洛之數

             구장궁췌마  대소백지석  대소백하위  하락지수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이 또 한 사람의 그라는 사람이 드러나는 상황을 소개한 문장으로서, 基督敎(기독교)를 不定(부정)하거나 非難(비난)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사실을 의미한 ‘不定(부정)할 非(비)’자를 파자로 소개한 문장이 ‘橫二爲柱 左右雙三(횡이위주 좌우쌍삼)’의 문장으로서, 橫二爲柱(횡이위주)라는 문장은 가로 누워있는 二자를 세워서 기둥으로, 그리고 세운 二자 左右(좌우)에 三자를 연결하라는 뜻으로 ‘橫二爲柱 左右雙三(횡이위주 좌우쌍삼)’이라 소개한 문장은 ‘아닐 非(비)’자 혹은 ‘어길 非(비)’자가 형성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非(비)자가 형성되어진다면 이어지는 연결 문장인 勿恨其數(물한기수) 문장의 의미는 非勿恨其數비물한기수)의 문장이 되어지므로 서두에서 西學(서학)을 불태워 버리라는 문장을 소개한 이유로 非勿恨其數(비물한기수) 문장의 의미는 基督敎(기독교)에 한이 맺혀있는 ‘그’라는 사람의 운명은 基督敎(기독교)를 不定(부정)하고 非難(비난)하는 운명이라는 기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非勿恨其數(비물한기수) 문장의 勿(물)자는 ‘의욕적으로 일을 할 勿(물)’ 혹은 ‘사용할 勿(물)’ 자로서 州里(주리)라는 지역에서 旗(기)를 부착하고 드러나는 의미의 勿(물)자라 하여 ‘州里建旗(주리건기)’라 소개한 勿(물)자이며, ‘그’라는 사람이 정성을 다하는 주인공으로 서술되어 있는 勿(물)자로서, 勿論(물론)이라 하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이 정확하다’는 표현에 인용하는 勿(물)자이며 ‘禁言(금언) 勿(물)’자로서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역할의 勿(물)자이다.

 

이러한 勿(물)자로 인하여 非勿恨其數(비물한기수) 문장의 의미는 그 사람의 運命(운명)은 西學(서학)의 주인공 예수에게 恨(한)이 맺혀있는 運命(운명)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는 그 사람이 입는 옷을 소개하기를 ‘勿上追衣(물상추의)’이라 소개하여 정성을 다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옷을 따라서 입는 자라는 사실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복을 따라서 입는 주인공이 드러나는 상황을 ‘又爲其誰(우위기수)’라 소개하여 또 나와서 일을 하는 그 사람은 누구냐고 물은 사실이다.

 

부연하면 ‘勿上追衣(물상추의)’ 문장의 의미는 당연히 ‘옷을 따라서 입는다’는 문장이며, 위문장의 上(상)자를 필자는 ‘하늘 上(상)’자나 조상을 가리키는 上(상)자로 보아 ‘勿上追衣(물상추의)’ 문장의 의미를 하나님의 의복이나 白衣民族의 조상이신 檀君(단군)의 의복을 입는다는 뜻으로 흰옷을 입는 白衣民族을 가리키는 문장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勿上追衣(물상추의)’ 문장의 追(추)자는 ‘따를 追(추)’자로 追擊(추격)이나 ‘追越(추월)을 한다’는 문장에 인용하는 追(추)자이다.

 

이러한 ‘勿上追衣(물상추의)’의 문장에 연결된 문장이 又爲其誰(우위기수)라 소개한 문장으로서, 또다시 일을 하러 나오는 그 사람이 누구냐는 其誰(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주인공 역시 필자가 앞에서 소개한바있는 其姓爲誰(기성위수) 문장의 성씨를 박태선 장로님이시라 소개한 사실에 근거하여 또다시 나오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주인공은 당연히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드러나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성씨인 徐氏라는 사실로서, 其(기)자 자체에서도 밤의 역할을 하는 其(기)자라 소개하여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徐氏를 가리키는 其(기)자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이어지는 연결 문장에서는 ‘如短如長 種德半白(여단여장 종덕반백)’이라 소개하여 같은 ‘그 其(기)’자의 주인공이 두 사람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短命(단명)한다는 사실이고 또 한 사람은 長壽(장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한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이며 같은 한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이라 하여 ‘如短如長(여단여장)’이라 소개하여 같은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드러나는 상황을 소개한 이후에 種德半白(종덕반백)이라 하여 種子(종자) 氏(씨)의 역할로서 덕을 베푸는 두 사람이 모두 흰옷을 입은 白(백)의 역할로 드러나는 주인공들이라 소개한 것이다.

 

부연하면 ‘如短如長(여단여장)’이라는 문장의 如(여)자는 ‘같을 如(여)’자로서, 같은 사람이 드러나는데, 한 사람은 短命(단명)하고 한 사람은 長壽(장수)를 할 사람이거나 또 한 사람은 적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큰 사람이라는 사실로서, 어린 아이와 어른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해문할 수 있는 문장이 ‘如短如長(여단여장)’이라는 문장으로 소개하는 본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에 따라서 해문이 달라지는 ‘如短如長(여단여장)’의 문장이다.

 

이러한 ‘如短如長(여단여장)’에 이어지는 문장이 種德半白(종덕반백)이라 소개한 문장으로서, 두 其(기)자의 주인공은 種族(종족)에게 德行(덕행)을 행한 존재들로서 각기 半白(반백)의 역할로 드러나는 그 사람을 가리키는 두 其(기)자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의 種德(종덕)의 種(종)자는 種子(종자)를 심거나 파종을 한다는 뜻의 種(종)자로서, 種族(종족)이나 여러 가지의 종류를 가리키는 種(종)자이며,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種(종)자이다.

 

이러한 種(종)자로 인하여 種德(종덕) 문장의 의미는 種子(종자)를 파종하는 덕을 베푼 역할이라는 사실로서, 이러한 種子(종자)를 심거나 파종을 하는 역할의 주인공이 드러나는 상황을 半白(반백)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半白(반백)이 가리키는 의미는 머리카락이 반쯤 하얗게 쉰 것을 가리키는 半白(반백)이 아니라, 서두에서 ‘가엾은 나의 후생이 血統(혈통)을 잊어버리지 않은 주인공으로 드러난다’고 소개한 ‘嗟我後生 不忘血遺(차아후생 불망혈유)’의 기록에 의하여 白衣民族(백의민족)의 血統(혈통)이 半(반)만 섞여 있는 주인공들을 의미한 半白(반백)의 문장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해문으로써, ‘如短如長 種德半白(여단여장 종덕반백)’의 두 주인공의 역할을 각각 한 사람은 短命(단명)한 운명으로, 또 한 사람은 長壽(장수)를 할 운명으로 如短如長(여단여장)의 문장을 해문한다면 성서를 불태워버리라고 지시하시고 드러나시는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短命(단명)한 운명이시라는 사실로서, 박태선 장로님께서도 白衣民族의 血統(혈통)으로 드러나시는 半白(반백)의 역할이시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사실은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신분으로 드러나시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이 세상에서 제일 맑고 정결한 피는 白衣民族의 血統(혈통)인 이유로 당신께서도 白衣民族의 혈통으로 誕生(탄생) 하셨다는 말씀을 하신 사실과 白衣民族을 救援(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을 떠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하신 사실이다.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소개

 

 "한국이 백의민족인고로 깨끗한 민족이야.

  요렇게 혈통이 맑은 역사를 가진 민족은 없어.

  아무리 목이 말라 쓰러져도 우물에서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하면 벌을 받게 돼있는 나라    야. 그런고로 그런 민족의 혈통으로 오늘 감람나무 났어. 날만한 나라의 역사를 가진    나라야? 아니야?

  백의민족 아름다운 역사를 가진 혈통의 나라야."


                                         - 1980년 12월 15일 (3-2-B) -

 

이와 같이 白衣民族(백의민족)에 대해 언급하신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과 ‘如短如長 種德半白(여단여장 종덕반백)’ 문장에서의 如長(여장)의 역할인 長壽(장수)를 하는 주인공을 찾아보면, 또다시 드러나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주인공의 역할로 드러나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서씨가 西學(서학)의 新舊約(신구약) 聖書(성서)를 불태워 버리는 역할을 하면서 長壽(장수)할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결론이며 그가 如長(여장)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할 수 있는 근거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주인공의 역할은 수차 소개한대로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서씨가 ‘그 其(기)’자의 역할로서 ‘상대편에서는 아들의 역할로 드러난다’ 하여 고전 詩經(시경)에서는 ‘그 其(기)’자를 彼其之子(피기지자)라 소개한 사실과 같은 詩經(시경)의 기록에서 ‘밤의 역할을 한다’ 하여 夜如何其(야여하기)라 소개한 ‘어떻게 하여 그 사람이 밤의 역할인가’하는 문장에서의 밤을 상징한 역할은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徐氏를 가리키는 ‘쥐 鼠(서)’자가 밤과 연류된 것으로 보고 해문한 이유로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역할은 徐氏라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또다시 드러나는 그 사람이 누구냐는 其(기)자의 주인공을 고전 易經(역경)의 기록에서는 ‘그 其(기)’자의 역할은 고전 學文(학문)을 연구하고 글을 가지고 나오는 그 사람이라 하여 ‘其旨遠 其辭文(기지원 기사문)’이라 소개한 그 사람은 먼 곳의 뜻의 의미를 아는 자로서, 그 사람은 글을 근거하여 말을 하는 존재라는 ‘그 其(기)’자의 기록에 의하여 또다시 나오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역할은 학문을 연구하고 학문을 근거하여 말을 하는 존재로 드러나는 其(기)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학문을 가지고 드러나는 其(기)자의 역할은 聖書(성서)를 불태워버리라 하시면서 드러나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말씀하신‘漢文(한문)을 연구하는 자 예수보다도 2000년을 고도로 앞 선 자’라는 말씀을 접하고 한문을 연구하여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드러나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徐氏가 ‘그 其(기)’자의 기록과 같은 역할로 드러난 점으로 보아 ‘또다시 그 사람 역할의 일을 한다’는 문장인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주인공은 徐氏라는 결론으로, 長壽(장수)를 한다는 如長(여장) 문장의 長壽(장수)를 할 주인공도 백마공자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할 수 있는 상황은 長壽(장수)할 존재로서 半白(반백)의 역할로 또 다시 드러나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주인공이 이어지는 연결의 문장에서는 永久(영구)히 長壽(장수)할 존재로 드러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다시보기의 문장에 근거해서이다.

 

         다시보기)   久粧弓揣磨  大小白之石  大小白何爲  河洛之數

                     구장궁췌마  대소백지석  대소백하위  하락지수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半白(반백)의 역할로 드러나는 두 其(기)자의 주인공을 소개한 문장으로서, 其人(기인) 역할의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고 드러나는 성씨인지 모른다는 其姓爲誰(기성위수) 문장의 其(기)자 역할의 성씨를 필자가 西學(서학)인 新舊約(신구약)의 聖書(성서)를 불태워버리라는 설교를 하신 박태선 장로님이시라 소개한 사실로서, 

 

또다시 드러나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其(기)자의 주인공을 필자가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고 예수를 개새끼라 쳐버리는 백마공자의 역할을 또 다시 드러나는 其(기)자의 주인공이라 보는 이유로 두 其(기)자의 주인공이 각기 半白(반백)의 역할로 드러나는데, 두 其(기)자의 주인공이 太白山과 小白山의 역할로서 天地의 운명으로 드러나는 두 주인공 중에서 또다시 드러나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주인공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람을 鍊磨(연마)시켜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永久(영구)히 존재할 주인공이라는 예언문장이다.

 

부연하면 위 ‘久粧弓揣磨(구장궁췌마)’의 문장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글자는 弓(궁)자이므로 弓(궁)자를 ‘하늘 弓(궁)’자로 보아 ‘久粧弓揣磨(구장궁췌마)’ 문장의 의미는 하나님을 모시고 인간을 鍊磨(연마)시켜 깨끗하게 단장시키는 역할이라는 문장으로서, 粧(장)자는 ‘化粧(화장)을 시켜서 아름답게 丹粧(단장)시킬 粧(장)’자이며 揣(췌)자는 ‘測量(측량)을 하거나 시험할 揣(췌)’자로 ‘예측하여 깨달을 揣(췌)’자로서 고전 孟子(맹자)의 기록에서는 헤아리거나 미리 예측하는 주인공 揣(췌)자라 다음과 같이 소개한 揣(췌)자이다.

 

              보기)   揣 (量也) [孟子]  不揣其本  而齊其末

                      췌 (량야) (맹자)  불췌기본  이제기말

 

보기의 揣(췌)자는 고전 孟子(맹자)의 기록으로서, 예측을 한다거나 測量(측량)을 한다는 글자라는 사실을 量也(량야)라 소개한 이후에 두 역할의 其(기)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문장으로서, 不揣其本(불췌기본)이라 소개하여 근본 역할의 其(기)자의 주인공은 예측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이었으나 나중에 드러나는 其(기)자의 주인공은 학문을 익힌 존재로서 修身齊家(수신제가)를 한 존재가 마지막의 其(기)자의 역할로서,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예측하는 주인공의 역할인 其(기)자의 주인공을 지칭한 역할의 揣(췌)자로서, 揣磨(췌마)라 하면 자기 자신이 修練(수련)을 하거나 상대를 修練(수련)시키거나 硏磨(연마)를 시켜준다는 문장으로서 揣知(췌지)라 하면 ‘미리 예측하여 깨닫는다’는 뜻을 내포한 揣(췌)자이다.

  

이러한 揣(췌)자의 기록에 의하여 ‘久粧弓揣磨(구장궁췌마)’ 문장의 의미는 하나님을 모시고 드러나는 그 사람의 주인공은 스스로 修身(수신)하고 상대도 鍊磨(연마)시켜주는 역할의 주인공으로서, 永久(영구)히 존재할 존재라는 문장으로서, 磨(마)자는 ‘숫돌 磨(마)’자로 ‘칼을 갈 磨(마)’자이며 ‘다스릴 磨(마)’자로서 磨滅(마멸)이라 하면 갈아서 멸하여 버린다는 뜻이며, 磨究(마구)라 하면 갈고 닦고 연구를 한다는 문장으로서 미리 준비한다는 뜻의 ‘마련(磨鍊) 磨(마)’자이다.

 

이러한 揣(췌)자와 磨(마)자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永久(영구)히 아름답게 化粧(화장)을 시키는 법을 硏磨(연마)시키는 주인공이라는 문장이 ‘久粧弓揣磨(구장궁췌마)’의 문장으로서, 연결문장이 다음과 같이 다시 이기한 문장으로서, 太白山과 小白山의 돌의 역할로 드러나는 역할의 주인공이 天地의 運命(운명)의 존재로 드러나는 주인공이라는 하단의 다시보기 문장이다.

 

              다시보기)   大小白之石  大小白何爲  河洛之數

                          대소백지석  대소백하위  하락지수

 

이미 소개한대로 하나님을 모시면서 영구히 존재할 주인공이 자기도 修練(수련)하고 상대도 硏磨(연마)시키며 드러나는 상황을 소개하였는데, 大小白之石(대소백지석) 문장의 의미는 太白山과 小白山을 가리킨 문장으로서, 太白山과 小白山 역할의 주인공이 통합되어진 상태의 돌 역할의 주인공이 드러난다 하여 '大小白之石(대소백지석)'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太白山과 小白山 역할의 주인공이 흰 돌의 역할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상세히 소개하기를, '大小白何爲(대소백하위)'라 하여 太白山과 小白山의 역할이 어떠한 역할의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으며, 연결 문장에서 天地 역할의 運命(운명)이라는 사실을 河洛之數(하락지수)라 소개하였는데, 河洛之數(하락지수) 문장의 의미는 天地之數의 문장과 같은 맥락의 기록으로서, 太白山과 小白山이 하늘과 땅 즉 天地 역할의 운명으로 드러나는 사실을 소개한 문장으로서, 大小白之石(대소백지석)의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太白山의 역할은 하늘을 상징한 역할로서 檀君(단군)을 가리키는 太白山이며 小白山의 역할은 땅의 역할의 운명으로서 국조단군을 모시는 땅의 존재가 흰 돌의 역할로서 天地가 통합되어진 상태의 운명이라 하여  河洛之數(하락지수)라 소개한 문장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西學(서학)의 주인공인 예수에게 한이 맺혀있는 그라는 사람의 운명으로 또다시 드러난다는 ‘又爲其誰(우위기수)’ 문장의 그라는 사람의 주인공은 白衣民族의 祖上(조상)을 모시고 半白(반백)의 역할로 세상에 드러난다는 문장이다.

 

이러한 문장에 연결된 문장이 다음과 같이 이기한 문장으로서, 두 사람의 其(기)자의 주인공이 半白(반백)의 역할로서 한 사람의 其(기)자의 주인공이 출현하는데, 공부를 하는 그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其(기)자의 주인공이 흠이 없는 十字의 역할과 나무사람의 역할로 드러나는 두 白(백)의 주인공은 각기 ‘실 絲(사)’자의 역할로서 사람을 구하여주는 兩白(양백)이 통합되어진 성씨로서 두 하나님의 신분이 함께 하시는 신분으로 辰巳聖君(진사성군)의 역할에 의하여 살아서 드러나는 존재가 天下를 統一(통일)하는 주인공으로 드러난다는 하단의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이다.

   다시보기)  白字彎山  工字之出  兩山之間  十字無瑕  出於兩白  人種求兩白於                백자만산  공자지출  량산지간  십자무하  출어량백  인종구량백어

              白木雙絲門  月寸土  白木靈木  雙絲人
               백목쌍사문  월촌토  백목령목  쌍사인  

              姓負合之  弓弓人  辰巳之生  統一天下  
              
성부합지  궁궁인  진사지생  통일천하

이미 소개한 다시보기의 문장은 전면문장에서 소개한 ‘大小白何爲 河洛之數(대소백하위 하락지수)’ 문장의 연장선장의 문장이라는 사실을 전제하에 위 문장의 의미를 살펴보면, 大小白(대소백)의 의미인 太白山과 小白山의 兩山(양산)의 두 白字의 역할은 각기 山자의 역할이라는 사실과 두 山(산)자의 역할은 ‘공부 工(공)’자의 역할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 白字의 역할이 兩山(량산)의 역할로 드러나는데, 兩山(량산) 사이에서 흠과 티가 없는 十字의 역할로 드러난다는 사실과 이러한 흠과 티가 없는 十字의 역할이 곧 兩白(량백)의 신분으로서 인간의 種子(종자)를 구하여주는 兩白(량백)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兩白(량백)의 임무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白字의 주인공인 兩白(량백)의 존재는 東西(동서) 역할의 白字의 역할로 드러나는데, 두 ‘실 絲(사)’자 역할의 門(문)의 역할이 白字(백자)의 역할이라는 사실과 또 하나의 白字 역시 東西(동서) 역할의 白字(백자)의 신분으로서, 靈(령)의 나무사람의 역할로서 역시 두 사람 역할의 雙絲(쌍사) 역할의 신분으로 드러나는 白字(백자)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兩山(양산)과 兩白(량백)의 역할로서, 雙絲(쌍사) 역할의 ‘실 絲(사)’자의 신분으로서의 門(문)의 역할과 靈木(령목)의 신분으로서, 東西(동서) 역할의 두 白字(백자)의 성씨가 통합되어진 상태로 드러나는 상황은 두 하나님의 신분이 함께 하시는 상황인 弓弓人(궁궁인) 역할의 사람이 뱀띠로 출현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天下를 統一(통일)하고 드러나는 상황이라는 전체문장의 해문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을 부분적으로 이기하여 상세히 소개하면 ‘白字彎山 工字之出(자만산 공자지출)’ 이라 소개한 ‘白字彎山(백자만산)’문장의 彎(만)자는 ‘끌어당길 彎(만)’ 혹은 ‘굽을 彎(만)’ 또는 ‘굴곡 彎(만)’자로서, ‘당길 彎(만)’자로 인용하여 ‘白字彎山(백자만산)’의 문장을 해문하면, 白字에 山字를 끌어다 붙인다는 뜻이 되므로 ‘白字彎山(백자만산)’의 문장은 곧 白山의 문장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白字彎山(백자만산)’의 문장을 白山(백산)이 되어지는 뜻으로 해문을 한다면 이어지는 연결의 문장이 ‘工字之出(공자지출)’이라는 문장이므로 白山 역할의 주인공은 工夫를 하는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白字彎山(백자만산)’의 문장을 山字를 끌어다 붙인 白山이라 해문할 수 있는 이유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兩山之間 十字無瑕(량산지간 십자무하)’라 소개하였기 때문으로, 여기에서 兩山(량산)의 의미는 전면 문장에서 ‘大小白何爲 河洛之數(대소백하위 하락지수)’라 소개한 내용의 ‘大小白何爲(대소백하위)’의 문장에 의하여 太白山과 小白山을 가리키는 두 山자의 역할이라는 사실로서, 兩山(량산)은 곧 두 白山을 가리킨 역할이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大小白의 兩山(량산)의 두 白山의 山자는 흠이 없는 十字의 역할로 드러나는 兩山(량산)의 역할이라는 사실은로서, 두 白山의 山자는 十字의 형상이 되어지는 두 山자라는 사실이며, 두 山자를 겹치면 ‘날 出(출)’자가 되어지며, 두 山자를 등을 돌려 背山(배산)시키면 十字의 형태라 필자는 보는 것이다.

 

이러한 두 兩山(량산)의 역할이 또 다시 두 白의 역할인 兩白(량백)의 역할로 드러나는 상황을 ‘出於兩白 人種求兩白於(출어량백 인종구량백어)’라 소개한 사실로서, 두 사람의 其(기)자의 주인공이 각기 白衣(백의)의 역할로 드러나는 상황을 兩白(량백)이라 소개한 이후에 인간의 種子(종자)를 구하여주는 兩白(량백)이라 하여 ‘人種求兩白於(인종구량백어)’라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兩白(양백)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상황과 같이 실을 토하여 내는 역할의 白(백)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다시 이기한 문장의 두 白(백)의 존재가 실을 만들어내는 역할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다시보기)   白木雙絲門  月寸土  白木靈木  雙絲人

                          백목쌍사문  월촌토  백목령목  쌍사인

 

소개한대로 다시 이기한 문장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東西(동서) 역할의 두 白字(백자)의 주인공이  출현을 하는데, 서쪽에서 드러나는 일인이역의 白字(백자)의 신분은 雙絲(쌍사)의 역할인 실의 역할로서의 門(문)의 역할로 출현하는 白字(백자)의 역할이라는 사실과 또 한 사람의 白字(백자)의 역할은 동쪽에서 출현하는 일인이역의 白字(백자)의 역할로서의 靈(령)의 역할로 오는 나무사람의 신분으로서, 서쪽의 역할과 같이 雙絲(쌍사) 신분의 王(왕)의 신분으로 출현하는 白字(백자)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 ‘白木雙絲門(백목쌍사문)’ 문장의 白木(백목)은 흰 나무를 가리키는 문장이나 서두문장에서 西學(서학)을 불태우는 주인공이 드러나는 문장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白木(백목)의 문장은 五行(오행)을 인용하여 해문하면, 白字(백자)는 서방을, 木(목)자는 동방을 가리키는 글자이기 때문에 白木(백목)은 서방의 白字와 동방의 木字가 통합되어진 사람을 지칭하여 白木(백목)이라 소개한 문장이다.

 

이와 같이 서방의 白字의 역할이 동방의 ‘나무 木’字의 주인공과 통합되어진 상태로 활동하는 상황을 白木(백목)이라 소개한 이후에 연계하여 雙絲門(쌍사문)이라 소개한 사실은 서·동방의 두 白字(백자)의 주인공이 모두 입으로 실을 뽑아내는 역할의 주인공임을 나타내어 누에가 입으로 뽑아내는 ‘가는 실 糸(사)’자 두 자를 연결한 雙絲(쌍사)를 소개하여 동·서방의 두 주인공 역할의 사람은 입으로 실을 뽑아내는 역할의 존재임을 밝힌 것이다.

 

부연하면 雙絲(쌍사) 문장의 ‘실 絲(사)’자는 두 실이 겹쳐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 絲(사)자로서, 누에가 입으로 가는 실을 뽑아 자기의 집을 짓는 고치를 만드는 ‘실 糸(사)’자 두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雙絲(쌍사)라 소개한 사실로서, 絲(사)자 역시 ‘가는 실 絲(사)’자로, 누에가 입으로 실을 토하여내는 것을 의미한 絲(사)자라 소개하여 고전 禮記(예기)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 ‘실 絲(사)’자이다.

 

               보기)  絲  (蠶絲吐 細條之稱) [禮記] 王言如絲

                      사  (잠사토 세조지칭) (예기) 왕언여사

 

보기 絲(사)자의 기록은 고전 禮記(예기)의 기록으로, 누에가 입으로 실을 토하여내서 자기 집 고치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이후에 禮記(예기)는 누에가 입으로 가는 실을 뽑아내는 상황을 王(왕)의 말씀에 비유하여 王言如絲(왕언여사)라 소개하여 王(왕)의 말씀은 가는 흰 실과 같이 신하나 백성에게 전하여진다는 사실을 ‘실 絲(사)’자로 표현한 것으로서, 蠶絲(잠사)는 누에의 실을 가리키는 문장으로 蠶(잠)자는 ‘누에 蠶(잠)’자이다.

 

뿐만 아니라 王(왕)의 말씀을 실에다 비유한 絲綸(사륜)의 기록에서도 王(왕)의 말씀은 실의 역할로 전하여지는데, 그라는 사람을 통하여 전하여진다는 사실이다.

 

                보기)   絲綸 [禮記緇衣]  王言如絲  其出如綸

                        사륜 (예기치의)  왕언여사  기출여륜

 

보기 絲綸(사륜) 문장의 기록에서도 가는 실로 얽매여있는 상태는 王(왕)의 말씀과 같은 실의 역할이라는 사실과 이러한 王(왕)의 말씀은 가는 실의 역할이며 그 사람 역시 같은 王(왕)의 실과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는 문장으로서, 王(왕)의 역할을 대행할 존재는 그라는 사람인 其(기)자의 주인공이 ‘실 絲(사)’자의 신분으로서 王(왕)의 말씀을 신하나 백성에게 전하는 역할이라는 문장으로 綸(륜)자는 ‘얽어맬 綸(륜)’자로 綸言(륜언)이라 하면 王(왕)이 신하에게 지시하시는 말씀이라는 문장으로서 綸(륜)자에서도 위와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絲(사)자의 기록에 의하여 雙絲(쌍사) 문장의 의미는 일인이역의 두 사람 역할의 주인공이 드러난다는 문장으로서, 東西(동서) 역할의 두 주인공이 모두 雙絲(쌍사) 역할의 ‘실 絲(사)’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부연하여 雙絲(쌍사)의 ‘실 絲(사)’자의 기록에서 王(왕)의 말씀을 지칭한 ‘실 絲(사)’자의 역할이라 하여 王言如絲(왕언여사)라 소개하여 王(왕)의 말씀을 지칭한 ‘실 絲(사)’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며, 이러한 ‘실 絲(사)’자의 王(왕)의 말씀이 전하여진다는 絲綸(사륜)의 문장에서는 왕의 말씀이 ‘실 絲(사)’자와 같은 역할이라는 뜻인 王言如絲(왕언여사)의 문장에 연결하여 其出如綸(기출여륜)이라 소개하여 그 사람 역시 ‘실 絲(사)’자의 역할로서 왕과 같은 말을 하는 ‘실 絲(사)’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雙絲(쌍사) 문장의 ‘실 絲(사)’자의 기록에서 王(왕)이 ‘실 絲(사)’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유로 본 문장으로 회귀하여 ‘白木雙絲門(백목쌍사문)’ 문장의 의미는 서쪽의 일인이역의 주인공은 門(문)의 역할이라 하여 雙絲門(쌍사문)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서쪽에서 드러나는 일인이역의 雙絲(쌍사)의 ‘실 絲(사)’자의 주인공은 王(왕)의 신분으로서, 서방의 문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라는 사실로서, 예수와 같은 역할의 王(왕)의 신분이 ‘실 絲(사)’자의 역할로 출현한다 하여 연결의 문장에서는 月寸土(월촌토)라 소개한 사실로서!

 

月寸土(월촌토)의 문장은 ‘같은 (날)’자를 파자로 소개한 문장이며, ‘같은 (날)’자 이외에 ‘갈피 (날)’ 혹은 ‘담장 (날)’자로 인용하는 글자로서, 略(날략)이라 하면 ‘간략하게 추려서 소개한다’는 뜻으로  月寸土(월촌토)의 문장은 ‘날 (날)’자를 파자로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같은 (날)’자를 파자로 기록한 月寸土(월촌토)의 문장을 인용한 ‘白木雙絲門 月寸土(백목쌍사문 월촌토)’ 문장의 의미는 서방의 예수가 자기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할의 주인공이라 밝힌 사실과 같이 구원의 門(문)의 역할이라는 사실과 또한 예수가 입으로 기운을 내불면서 聖神(성신)을 받으라고 한 성서 기록의 의미와 같이 입에서 실과 같은 생명력의 기운을 토하여내는 역할을 하는 문지기 역할의 王(왕)이 출현한다 하여 雙絲門(쌍사문)이라 소개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白木(백목)의 역할인 예수의 역할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 ‘白木雙絲門(백목쌍사문)’ 문장 역할의 실제 주인공은 예수의 역할로 드러나시는 국조단군의 역할을 대행하는 백마공자의 역할이 門(문)의 역할이라는 결론으로서, 이는 고전 禮記(예기)의 기록인 其出如綸(기출여륜)의 문장에 근거한 사실이다.

 

이러한 門(문)의 역할로서 서방에서 예수와 같은 역할인 白木(백목)의 역할로 드러나는 雙絲(쌍사)의 문장에 연결된 문장에서는 같은 白木(백목)의 역할이 출현하는 상황을 소개하였는데, ‘白木靈木 雙絲人(백목령목 쌍사인)’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靈木雙絲人(영목쌍사인)이라 소개하였듯이 동방에서 드러나는 白木(백목)의 역할은 靈(령)의 역할의 사람으로서, 일인이역의 ‘실 絲(사)’자 역할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白木의 역할은 같으나 두 사람의 역할인 雙絲人(쌍사인)과 앞 문장의 雙絲門(쌍사문)의 주인공은 구분되어지는 상황으로, 白木의 역할인 雙絲人(쌍사인)의 존재는 神靈(신령)이 함께하는 靈木(영목)의 나무사람의 역할이라는 사실이 구분되어지는 상황으로서, 靈木(영목)의 역할로서 雙絲人(쌍사인)의 역할로 드러나시는 주인공은 彌勒(미륵) 上帝(상제)의 신분으로서, 동방으로 드러나시는 박태선 장로님의 역할이라 보는 필자의 해문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하는 이유는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종교역사의 출발을 서방의 白木의 역할인 예수를 구세주라 증거하시면서 출현하시다가 서기 1980년도에 예수를 개새끼라 쳐버리신 장본이심과 동시에 당신자신이 구약성서 이사야 41장의 내용인 동방의 땅 끝 땅 모퉁이에서 드러나시는 동방의 義人이라 밝히시고 출현하신 사실이 위 靈木(영목)의 문장에 해당되는 상황임과 동시에 당신자신께서는 靈(령)의 신분으로서 인류 전체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靈(령)의 존재라는 사실로 靈母任(영모임)이시라 밝히신 사실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연결된 문장인 다음과 같이 다시 이기한 문장에서는 西東 혹은 東西의 두 白木(백목)의 주인공이 통합되어진 상태의 성씨로 출현하는 주인공으로서, 두 하나님의 신분을 모시고 天下를 統一(통일)하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다시보기)   姓負合之  弓弓人  辰巳之生  統一天下                                 성부합지  궁궁인  진사지생  통일천하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에서 두 사람의 其(기)자의 존재와 東·西 역할의 일인이역인 두 白木(백목)의 두 주인공의 성씨가 통합되어진 상태의 사람이 출현하는데, 두 하나님의 신분을 모시고 드러나는 존재는 辰巳聖君(진사성군)의 도움으로 살아서 드러나는 존재가 天下를 統一(통일)시키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부연하면 위 姓負合之(성부합지) 문장의 의미는 성씨를 짊어지고 드러나는 주인공이 있다는 사실을 姓負合之(성부합지)라 소개한 사실로서, 負(부)자는 ‘짊어질 負(부)’ 혹은 ‘負擔(부담) 負(부)’자로서 負債(부채)를 가리키는 문장의 負(부)자이다.

이러한 ‘짊어질 負(부)’자에 의하여 姓負合之(성부합지) 문장의 성씨를 짊어지고 나온다는 의미를 두 사람의 성씨가 통합된 상황으로 본 것이며, 짊어지고 나오는 주인공을 弓弓人(궁궁인)이라 소개하여 두 하나님의 신분을 짊어지고 혹은 모시고 드러나는 주인공을 ‘辰巳之生(진사지생)’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辰巳之生(진사지생)’ 문장의 의미는 辰巳(진사) 역할의 주인공을 모시고 혹은 증거하고 스스로 살아나는 자를 지칭한 문장이다.

이러한 辰巳(진사)의 문장은 龍蛇(용사)의 문장과 같은 맥락의 기록으로서, 격암 승운론 문장과 송가전 예언문장에서는 辰巳聖君(진사성군)의 역할이 박태선 장로님의 역할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유로 辰巳之生(진사지생) 문장의 의미는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드러나는 주인공이 살아날 사람이라는 사실과 천하를 통일할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문장으로서 현재 단군연합을 창설하고 辰巳聖君(진사성군) 역할의 丁巳(정사)년 뱀띠로 드러나시는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고 드러나는 상황이 弓弓人(궁궁인)의 역할로서, 천하를 통일하는 주인공은 백마공자라는 사실로서, 박씨의 성씨를 업고 드러나는 사실을 姓負合之(성부합지)라 소개한 문장 역할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다음 장에서는 천하를 통일시키는 주인공의 성씨가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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