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鄭氏(정씨) 黎首(여수) 之民(지민)으로 

                  兩白三豊(양백삼풍) 일럿다네!(25부-1)



소개하는 하단의 문장은 정씨가 동방 백성의 우두머리의 역할로 출현하는데, 兩白(양백)과 三豊(삼풍)의 역할로 드러나는 정씨라는 사실이 소개되어 있는 문장으로서, 이미 앞 문장에서 소개한바있는 격암 弓乙圖歌(궁을도가) 예언문장과 격암 隱秘歌(은비가) 두 예언문장을 소개하는 가운데, ‘三豊兩白(삼풍량백)’역할의 주인공을 소개하였는데, 격암 궁을도가 예언문장에서 三豊(삼풍)의 문장을 서두에, 그리고 兩白(양백)의 문장을 후면에 서술하여 ‘三豊兩白(삼풍량백)’이라 소개한 문장이다.

그런데 三豊兩白(삼풍량백)’의 문장과는 반대로 격암 은비가 문장에서는 兩白(양백)의 문장을 서두에, 그리고 三豊(삼풍)의 문장을 후면에 소개하여 兩白三豊(양백삼풍)이라 소개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두 예언 문장의 기록 중에서 兩白(양백)의 역할에 대해서는 앞 문장에서 해문하여 소개하였으나, 三豊(삼풍)의 문장은 상세히 해문하지 않은 이유로 三豊(삼풍)을 상세히 해문하기 위하여 두 예언 문장을 다시 참고하는 의미에서 다시 이기하여 게시하는 하단의 다시보기의 기록이다.        

       
 
     다시보기)  白鼠中心  前後三을  心覺者가 누구런고  三豊兩白지마소

                백서중심  전후삼    심각자             삼풍량백

                                        -格菴 弓乙圖歌(격암 궁을도가)-

소개한 바와 같이 다시 이기한 보기의 ‘白鼠中心 前後三(백서중심 전후삼)’문장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깨닫는 자가 누구인가 하여 ‘心覺者(심각자)가 누구냐’고 물은 후에 三豊兩白(삼풍량백)’의 문장을 찾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 문장은 易(역)으로 본다면 三豊兩白(삼풍량백)’문장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자는 ‘白鼠中心 前後三(백서중심 전후삼)’의 문장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으로서, 필자는 위에서 白鼠(백서)의 문장을 庚子(경자)의 문장으로 보고 소개하였으므로 여기서의 ‘白鼠中心 前後三(백서중심 전후삼)’의 ‘白鼠中心(백서중심)’의 문장은 ‘庚子中心(경자중심)’ 문장의 의미와 같은 맥락이라 해문한 문장이다.

또한 이러한 ‘庚子中心(경자중심)’ 문장의 前後三(전후삼)의 문장을 연결하여 ‘庚子中心 前後三(경자중심 전후삼)’ 문장의 庚子(경자)의 년도를 필자는 四··一九 學生義擧(학생의거)가 일어난 서기 1960년 庚子(경자)년도를 가리킨 것으로 소개한 사실로서, 서기 1960년도를 前後(전후)로 삼년씩을 加減(가감)하면 전면으로는 서기 1957년도가 되어진다는 사실과 후면으로는 서기 1963년도가 되어지는 문장이라 소개한 바 있는데, 서기 1957년도는 丁酉(정유)년도로 박태선 장로님께서 경기도 부천시 소사 범박리 지역에 신앙촌을 건설하신 시기로 소개한 년도이다.

또한 서기 1960년 庚子(경자)년도 후로 三年을 加(가)하면 서기 1963년도 癸卯(계묘)년도가 되어지는 년도라고 전장에서 해문한 문장으로서, 서기 1962년 壬寅(임인)년도에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경기도 남양주군 덕소에 제이 신앙촌을 착공하기 시작하신 년도로서 백마공자로 드러나서 단군연합을 창설하고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는 서씨가 서기 1963년 癸卯(계묘) 년도에 박태선 장로님의 부름을 받아 덕소 신앙촌에 들어가서 근무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시기의 년도를 가리킨 의미로 해문하여 전장에서 소개한 문장이다.

이러한 문장에 서술되어 있는 三豊兩白(삼풍량백)’의 문장은 상세히 해문하지 못한 이유로 위문장을 다시 이기하여 재차 소개한 것이다.

또한 三豊兩白(삼풍량백)’의 문장과 같은 맥락의 기록인 하단의 게시한 다시보기의 문장에서는 순서를 바꾸어 三豊(삼풍)의 문장을 後(후)로 하고 兩白(양백)의 문장을 前(전)에 서술하여 兩白三豊(양백삼풍)이라 소개하여 兩白三豊(양백삼풍)의 존재가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에서 거주한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다시보기)   兩白三豊  有人處  非山非野  何處地   
                           량백삼풍  유인처  비산비야  하처지 

                                    -格菴 隱秘歌(격암 은비가)-

게시한 다시보기의 문장을 다시 이기하여 게시한 이유는 게시한 문장에서 兩白三豊(양백삼풍) 역할의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 이미 소개한대로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이라는 사실까지만 소개한 이후에 이러한 곳이 어느 곳이냐고 물은 문장으로 연결되어지는 문장에서는 三神山(삼신산)이 존재하는 주소지로서, 서기 1957년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신앙촌을 건설하신 부지인 경기도 시흥군 蘇萊(소래) 白石(백석) 桂樹里(계수리) 지역과 경기도 부천시 素沙(소사) 範朴里(범박리) 지역이 兩白三豊(양백삼풍) 역할의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사실까지 앞에서 소개한 사실이다.

이와 같이 三豊兩白(삼풍량백)’ 혹은 兩白三豊(양백삼풍)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박태선 장로님께서 건설하신 신앙촌에서 거주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으나, 兩白三豊(양백삼풍)의 문장에서 兩白(양백)의 문장은 앞 궁을도가 예언문장을 소개할 시에 先後天의 白이 통합되어진 상태를 兩白(양백)이라 한다는 사실까지 소개하면서 陸地(육지) 사람의 白이 출현하는 상황을  兩白人(양백인)이라 한다고까지 소개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兩白(양백)의 역할은 하늘 소의 역할인 天牛(천우)도 白(백)의 역할이며 땅의 말의 역할인 地馬(지마)도 白(백)의 역할로서, 兩白(양백)의 역할은 天牛(천우)와 地馬(지마)도 兩白(양백)의 역할이라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三豊(삼풍)의 문장은 상세히 해문하지 못하였으며, 三豊(삼풍)의 의미를 알려거든 三神山(삼신산)을 먼저 찾으라는 문장까지 소개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기록에 의하여 밝혀지는 사실은 三豊(삼풍)의 역할을 해문할 수 있는 주인공은 三神山(삼신산)을 먼저 찾은 주인공만이 三豊(삼풍) 문장의 의미를 알 수가 있다는 사실로서, 三神山(삼신산)을 필자가 격암 은비가 예언문장의 기록을 근거하여 박태선 장로님께서 서기 1957년도에 신앙촌을 건설하신 부지인 경기도 부천시 素沙(소사) 範朴里(범박리)와 경기도 시흥군 蘇萊(소래) 白石(백석) 桂樹里(계수리)의 지역 경계선에 위치한 老姑山(노고산)이 三神山(삼신산)이라는 사실까지 소개한 사실이다.

이와 같이 三神山(삼신산)이 박태선 장로님께서 건설하신 신앙촌의 부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로서, 三豊(삼풍)의 의미를 해문할 수 있는 주인공은 현재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는 백마공자의 역할로 드러난 서씨라는 결론이며, 백마공자로 드러난 서씨가 소사 신앙촌 출신이라는 사실이므로 백마공자로 드러나는 서씨만이 三豊(삼풍)의 의미를 해문할 수 있는 주인공이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백마공자의 입장에서 三豊(삼풍)의 의미를 해문하기 시작하는데, 우선 三豊(삼풍)에 대해서는 鄭鑑錄(정감록) 徵秘錄(징비록)에서부터 유래되어진 三豊(삼풍)과 兩白(양백)의 문장으로 太白山(태백산)을 통하여 드러나는 三豊(삼풍)과 兩白(양백)의 역할이라는 사실로서, 凶年(흉년)이 드는 饑饉(기근) 시에는 白衣民族(백의민족)을 만나야 살 수 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 三豊兩白(삼풍양백)의 역할이라는 기록으로서, 상세한 사실은 하단에서 별도로 소개를 한다.

이러한 三豊(삼풍)의 문장이 鄭鑑錄(정감록)에서부터 유래되어 온 예언문장이라는 사실로서, 격암 초장에 서술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三豊(삼풍)의 문장을 근거로 三豊(삼풍)의 역할을 소개한다.

                 보기)   三豊三豊三豊   非山非野  是三豊   
                         
삼풍삼풍 하삼풍   비산비야  시삼풍 

                         世人不知  火雨露  無穀大豊  是三豊  
                         
세인부지  화우로  무곡대풍  시삼풍

                                          -格菴 初章(격암 초장)-

게시한 보기의 문장에서는 三豊(삼풍)에 대하여 어떠한 것이 三豊(삼풍)인가를 반복하여 물었으며, 三豊(삼풍)은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에서 올바른 三豊(삼풍)이 존재한다는 문장이다.

이러한 三豊(삼풍)의 역할 중에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三豊(삼풍)이 하는 역할로는 불과 비와 이슬의 역할이 三豊(삼풍)의 역할이라 소개한 이후에 곡식이 없이도 대풍이 드는 현시점에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부연하면 위 문장에서 소개한 三豊(삼풍)의 역할은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에서 존재하는 올바른 三豊(삼풍)의 역할을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三豊(삼풍)이라 하여(화우로) 三豊(삼풍)이라 소개한 사실은 결론적으로 불과 비와 이슬 세 가지의 역할이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결론으로서, 이러한 불과 비와 이슬의 三豊(삼풍)의 곡식은 세상의 곡식이 아니라는 사실과 곡식이 없이도 大豊(대풍)이 드는 三豊(삼풍)의 역할이 이 시점에 三豊(삼풍)이라 하여 是三豊(시삼풍)이라 소개한 사실이다.

이러한 是三豊(시삼풍)의 문장이 필자가 ‘올바른 三豊(삼풍)’이라는 뜻으로 소개한 문장으로서, 是(시)자는 ‘올바를 是(시)’ ‘곧을 是(시)’ 혹은 此也(차야)라 소개하여 ‘이 시점에’ 혹은 상대를 지칭하는 是(시)자의 역할로서, 是三豊(시삼풍)의 의미는 본 문장을 해석하는 사람의 意向(의향)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올바른 三豊(삼풍)의 역할을 한다는 是三豊(시삼풍) 문장의 연결문장이 다음과 같이 이기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불과 비와 이슬이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문장이다.

                다시보기)   世人不知  火  無穀大豊  是三豊                              세인부지  화우로  무곡대풍  시삼풍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에서 三豊(삼풍)의 역할이 밝혀지는데,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雨露(화우로)라 소개하여 불과 비와 이슬의 역할을 세인들이 모른다고 기록한 사실로서, (화우로) 三豊(삼풍)의 역할이 곡식이 없이도 대풍년이 드는 雨露(화우로)라는 것이며  올바른 三豊(삼풍)의 역할이라 하여 是三豊(시삼풍)이라 소개한 사실이다. 

부연하면(화우로)를 三豊(삼풍)이라 한다면 (화우로) 문장의 의미를 기독교 찬송내용에 비유한다면 ‘물가지고 혹 씻든지 불가지고 사르든지 내안과 밖 다 닦으사 내속에 죄 멸하소서’라는 내용의 의미와 상통된다는 사실로서, 성서에서는 예수가 三豊(삼풍)의 역할로서 불과 비, 이슬의 역할인 (화우로)의 역할이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三豊(삼풍)에 대하여 격암 三豊歌(삼풍가)의 문장에서도 (화우로인)이 三豊(삼풍)이라 소개하여 (우)자(로)자가 도장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로서 火印(화인) 雨印 (우인) 露印(로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三豊(삼풍)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소개한 곳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는 三豊論(삼풍론)의 문장으로서, 다른 문장에서 해문하여 소개한 내용으로 장문인 이유로 두 문장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문장이다.

             보기)  穀種求於  三豊也니  三豊論을 또들으시오 
                     곡종구어  삼풍야    삼풍론                               

                    先天河圖  後天洛書  中天海印  理氣三豊 
                    
선천하도  후천락서  중천해인  리기삼풍

                    三天極樂  傳한法이   兩白弓乙  十勝理로 
                     삼천극락  전  법     량백궁을  십승리

                    少男中男  兩白中에   人白長男  出世하니 
                     
소남중남  량백중     인백장남  출세           

                    三曰化이  三豊으로  乾金甲子  成道로다                                              삼왈화    삼풍      건금갑자  성도

                    天地兩白  우리 先生   人道三豊  化했나니  中略(중략)  
                     천지양백       선생   인도삼풍  화

                                     -格菴 三豊論(격암 삼풍론)-

보기 三豊(삼풍)에 관한 전체적인 기록의 의미는 三豊(삼풍)의 역할은 善(선)한 穀食(곡식) 種子(종자)를 요구하여 먹는 것이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전제하에 三豊論(삼풍론)에 대하여 다시 설명한다는 사실을 소개한 이후에 三豊(삼풍)의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三豊(삼풍)의 구성은 河圖(하도)와 洛書(락서) 그리고 海印(해인)의 역할이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先天의 역할은 河圖(하도)가 한다는 것이며 後天의 역할은 洛書(락서)가 그리고 中天(중천)의 역할은 海印(해인)의 역할이라는 문장으로서, 이러한 세 가지의 역할이 하나로 합하여진 상태로 드러나는 상황을 三豊(삼풍)의 氣運(기운)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先天과 後天 中天이 합하여진 三豊(삼풍)의 역할은 三天極樂(삼천극락)을 지칭하는 문장으로서, 先天과 後天의 역할을 兩白(양백)의 역할이라 한다는 것이며, 또한 兩白(양백)이 변화되어지는 상황을 十勝(십승)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天地가 兩白(양백)의 역할과 十勝(십승)의 역할로서, 先天의 河圖(하도)와 後天의 洛書(락서) 그리고 中天 海印(해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소개하여 三男에 비유하여 거꾸로 少男부터 시작하여 中男 그리고 長男의 순서로 少男의 역할이 先天 역할의 白(백)자의 역할이며 中男의 역할이 後天 白(백)자의 역할로서, 少男. 中男 先後天의 두 형제가 兩白(양백)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또한 長男의 역할은 사람의 白(백)의 역할로서, 이러한 사실은 세 가지가 변화되어진 三豊(삼풍)의 원리라는 것이며, 三豊(삼풍)의 역할로 나오는 아들의 역할이 서방을 통하여 들어오는 甲子(갑자)의 역할로 하나님의 뜻을 成就(성취)하는 長男의 역할이라는 예언이다.

또한 長男의 역할은 先後天(선후천)의 兩白(양백)이 통합되어진 先生의 역할로서, 사람이 가는 人道(인도)의 길을 引導(인도)하는 先生이 다시 變化(변화)되어 三豊(삼풍)의 역할로 드러난다는 전체문장의 의미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의 핵심은 三豊(삼풍)의 역할에 대하여 소개한 것으로 서두에 ‘穀種求於 三豊也(곡종구어 삼풍야)’라 소개한 ‘穀種求於(곡종구어)’의 의미가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결론으로서, 穀(곡)자는 ‘곡식 穀(곡)’자 이외에 ‘착할 穀(곡)’자로 소개되어 있는 穀(곡)자이며, ‘기를 穀(곡)’ 혹은 ‘살아날 穀(곡)’자라 고전 여러 문장에서 각기 소개한 穀(곡)자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穀(곡)자의 기록에 의하여 필자는 ‘穀種求於(곡종구어)’의 문장을 ‘선한 穀食(곡식) 種(종)자 역할의 주인공이 바라는 것이 三豊(삼풍)이다’라는 뜻으로 직역하는 것으로, 사람으로서 선한 穀食(곡식) 역할의 주인공이 드러나는 것을 三豊(삼풍)이라 한다는 뜻으로 서두에 서술되어 있었던 ‘穀種求於(곡종구어)’의 문장을 해문하는 것이다.

이러한 善(선)한 곡식 三豊(삼풍)의 역할을 다시 상세히 소개하기 위하여 三豊論(삼풍론)의 역할을 소개한다는 식으로 서두에 ‘穀種求於 三豊也(곡종구어 삼풍야)’라 소개한 의미는 三豊(삼풍)의 역할에 대하여 다른 문장에서 이미 擧論(거론)한바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 문장이다.

이러한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은 天地人의 역할을 先天과 後天 그리고 中天으로 구분하여 先天은 河圖(하도)의 역할로 後天을 洛書(락서)의 역할로, 그리고 사람의 역할로 나오는 역할은 中天이라 지칭하고 海印(해인)의 역할이라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것은 河圖(하도) 洛書(락서) 海印(해인)을 三豊(삼풍)이라 한다는 결론이다.

또한 先後天과 中天의 역할을 형제로 비유하여 三男의 역할로 소개하면서 순서를 거꾸로 少男부터 시작하여 中男과 그리고 長男의 역할로서 少男中男(소남중남)이 兩白(양백)의 역할이라 하여 先天의 역할은 少男(소남)의 역할이며 後天의 역할은 中男(중남)이 각기 白(백)자의 역할이라는 문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사람 白(백)의 역할을 人白이라 하여 長男(장남)이 출세하여 三男이 天地人 三兄弟의 三白의 형체를 갖춘 것이다.

이러한 역할의 先天과 後天의 역할을 하는 少男과 中男이 하나로 합하여진 상태로서 兩白(양백)에 비유하였으며 兩白(양백)의 역은 天地의 역할로 少男과 中男이 합하여진 상태로서, 天地의 兩白(양백)과 사람이 白의 역할로 나온다 하여 人白이라 소개한 사실은 白衣民族의 역할로 나오는 長男과 少男 中男이 하나로 합하여진 상태를 三豊(삼풍)의 역할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少男과 中男의 역할이 天地兩白(천지양백)의 역할로서, 人白의 역할로 나오는 長男의 역할을 합하여 三豊(삼풍)이라 지칭하는 문장에서 三豊(삼풍)의 역은 天地人의 역할이 하나로 합하진 상태가 三豊(삼풍)의 역으로서, 三豊(삼풍)의 역으로 나오는 長男의 존재는 서방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로서 甲子(갑자)의 신분으로 나와서 뜻을 성취하는 成道(성도) 역할의 사람의 人白의 역할인 白衣民族(백의민족)의 역할로 드러나는 長男(장남)이 中天의 역할로서 海印(해인) 역할의 長男(장남)이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예언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에서 밝혀지는 것은 三男(삼남)을 소개하는데 순서가 뒤바꿔 소개한 사실이 밝혀지는 문장으로서, 長男부터 시작하여야 정상인데, 세 번째 순서인 막내를 少男이라 지칭하여 少男(소남)부터 시작하여 中男과 그리고 長男의 순서와 같이 易(역)으로 서술하여 少男과 中男의 역할이 兩白(양백)의 역할로서, 이러한  兩白(양백)의 역할이 天地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문장으로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兩白(양백)의 역할을 天地로 서술한 것이다.

           다시보기)   三天極樂  傳한法이   兩白弓乙  十勝理라           
                        삼천극락  전  법     량백궁을  십승리

                       少男中男  兩白中에   人白長男  出世하니                          소남중남  량백중     인백장남  출세

다시보기의 문장은 읽기만 하여도 알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나 실상은 깊은 뜻을 서술한 내용으로서, 三天極樂(삼천극락) 문장의 역할은 先後天과 그리고 中天을 三天이라 소개한 것이며, 先後天의 역할은 少男과 中男의 역할이며 中天의 역할은 長男의 역할로서, 이러한 三兄弟가 하나가 되어 형성되어진 것을 三天極樂(삼천극락)이라 한다는 사실을 전하여준다는 문장으로서, 三天極樂(삼천극락)이 형성되어지는 과정을 소개한 문장이 ‘兩白弓乙 十勝理(량백궁을 십승리)’라 소개한 것이다.

부연하여 ‘兩白弓乙 十勝理(량백궁을 십승리)’ 문장의 兩白弓乙(양백궁을)의 문장은 兩白天地(양백천지)의 문장과 같은 내용으로서, 弓乙(궁을)의 문장은 天地를 弓乙(궁을)이라 한다는 사실을 수차 소개한 문장이다.

이러한 兩白(량백)의 역할은 天地의 역할로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十勝理(십승리)라 소개한 이유로 十勝理(십승리)라는 문장은 ‘十勝(십승)의 이치’나 ‘十勝(십승)의 이유’라는 뜻이 되어지는 문장으로 十勝理(십승리)의 구성은 兩白弓乙(양백궁을)의 문장이 十勝理(십승리) 역할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암시한 문장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十勝理(십승리)의 문장을 필자는 이미 앞 문장에서 소개한대로 兩白弓乙(양백궁을)의 문장은 兩白天地(양백천지) 혹은 天地兩白 문장의 역할로서, 天地는 先天과 後天의 역할을 天地라 지칭하는 이유로 先天의 역할이건 後天의 역할이건 각기 ‘하나 一’字의 하나님의 역할로서 天地 역할의 두 하나님의 一字의 역할을 통합하여 한 형상으로 만드는 방법은 一字를 縱橫(종횡)으로 하여 十字로 만드는 방법이 天地의 두 하나님의 역할이 한 곳으로 통합되어지는 상태인 十勝理(십승리)의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十勝理(십승리)의 역할은 先後天 역할의 사람이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 문장으로서, 다음의 이기한 문장과 같이 기록한 것이다.

              다시보기)   少男中男  兩白中에  人白長男  出世하니                             소남중남  량백중    인백장남  출세

다시보기의 문장에서 중요한 문장은‘少男中男 兩白中(소남중남 량백중)’이라는 문장으로서, 兩白中(양백중) 문장의 의미는 天地中(천지중)과 같은 맥락의 문장이므로 ‘少男中男 兩白中(소남중남 량백중)’의 뜻은 ‘少男中男이 天地(천지)의 역할’이라는 의미이며, 天地의 中央의 지점을 兩白中(량백중)이라 지칭한 것이므로 ‘少男中男의 中間(중간)’이라는 사실을 가리킨 뜻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少男中男’을 가리켜 天地의 역할로서 天地中央을 표시하는 兩白中(량백중), 혹은 天地中이라 소개하여 兩白(양백)의 사이나 天地의 사이라 가리킨 근거는 연결문장에서‘人白長男 出世하니’라 소개한 문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人白의 역할을 白衣民族의 역할로 본다면 長男의 존재가 天地 中央 혹은 兩白(양백)의 中間(중간) 지점에서 白衣民族으로 출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므로 長男이 中天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밝힌 문장이 되는 것이다.

부연하여 ‘少男中男 兩白中(소남중남 량백중)’의 문장과 ‘人白長男 出世하니’의 상황을 天地人의 문장에 비유한다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가리키는 문장이 天地人의 문장으로서, 天地人의 문장을 先天 後天 中天에로 비유한다면 中天의 문장은 人天의 역할이 中天의 문장이 되어지는 이유로 先後 天地의 의미는 하늘과 땅이 처음과 끝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며 ‘사람이 中間(중간)에서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이 兩白中(양백중) 혹은 天地中이라 지칭한 것이라 보는 필자의 해문이다.

이와 같은 ‘少男中男 兩白中(소남중남 량백중)’의 문장에 연결되는 문장이 사람 白의 역할에 대해 소개한 ‘人白長男 出世하니’라는 문장으로서, 兩白中(양백중)이나 혹은 天地 가운데서 드러나는 존재는 사람 白의 역할로서, 이러한 사람 白의 역할인 長男이 先天의 白(백)의 역할인 少男과 後天(후천)의 白(백)의 역할인 中男 사이에서 中間 하늘의 역할인 中天으로 세상에 출현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少男과 中男과 그리고 長男을 天地人의 역할로서 세 하늘에 비유한다면 先天 後天 人天의 역할로서 하늘의 역할인 三兄弟가 통합되어 한 사람의 역할로 드러나는 상황을 위 三豊論(삼풍론) 예언 문장에서는 長男이 흰옷을 입은 白衣民族의 역할로서 人天인 中天의 역할로 드러나는 상황을 소개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위에서 先天은 河圖(하도)의 역할이고 後天은 洛書(락서)의 역할이고 中天은 海印(해인)의 역할이라 구분지어 三男에게 배정하여 先天의 역할로 나오는 少男의 역할은  막내의 역할로서 다른 문장에서는 儒敎의 역할이 先天의 역할이라 소개한 문장을 근거한다면 先天 河圖(하도)의 역할로 나오는 少男의 역할은 河圖(하도)의 圖(도)자를 ‘그림 圖(도)’자나 ‘설계 圖(도)’자로 본다면 先天 白의 역할인 少男은 설계나 계획을 하는 역할이라는 결론이다.

또한 後天의 역할인 中男의 역할이 다른 문장에서는 佛敎의 역할로서 洛書(락서)의 역할로 나오는데, 이러한 中男의 역은 洛書(락서)의 뜻대로 ‘글 書(서)’자의 역할로서 글을 전하는 역할이라 보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長男은 天地 사이인 中間 지점에 하늘의 역할로서 사람 白의 白衣民族의 역할인 中天의 역할로 생존하여 존재하면서 海印(해인)을 가지고서 나와서 救援(구원)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지칭한 예언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단의 연결문장에서 밝혀지는 사실로서, 하단에 이기한 다시보기 문장에서 天地人의 역할을 하는 少男  中男  長男인 三男이 합하여진 상태를 三豊(삼풍)이라 지칭한다는 예언이다.

            다시보기)   三曰化이 三豊으로   乾金甲子  成道로다                           삼왈화   삼풍       건금갑자  성도

                        天地兩白 우리先生   人道三豊  化했나니   
                         천지양백     선생   인도삼풍  화

소개하는 다시보기의 전체문장의 의미는 서두에서 간략하게 소개한바와 같이 少男  中男  長男이 각기 先天 後天 中天 혹은 天白(천백) 地白(지백) 人白의 역할로 통합되어 드러나는 상황을 三豊(삼풍)이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三豊(삼풍)의 역할은 다시 서방을 통하여 드러나는 처음의 하나님의 아들 역할인 甲子의 존재가 곧 三豊(삼풍)의 역할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 역할인 甲子의 존재는 天地의 兩白(양백)이 통합되어진 상태의 白衣民族의 先生님의 역할로서, 사람의 길을 인도하는 三豊(삼풍)의 역할로 變化(변화)되어지신 先生님이 長男의 신분으로 드러나신다는 예언문장이다.

부연하면 三曰化(삼왈화)이 三豊(삼풍)이라는 문장에서 三曰化(삼왈화) 문장의 의미는 天地人 혹은 少男中男 長男이 先天과 後天 그리고 中天 역할의 變化(변화)과정을 거쳐 나오는 상황을 三曰化(삼왈화)라 소개한 것이며, 이러한 역할을 三豊(삼풍)이라 한다는 사실을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三豊(삼풍)의 역할이 다시‘乾金甲子 成道(건금갑자 성도)로다’라 소개된 사실로서, ‘乾金甲子 成道(건금갑자 성도)로다’ 문장의 의미는 서방을 통하여 들어오는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로서, 甲子의 역할로 나와서 뜻을 成就(성취)한다는 사실을 成道(성도)라 알려준 것이다.

이러한 乾金甲子(건금갑자)의 문장을 필자가 서방을 통하여 들어오는 하나님의 아들 역할인 甲子(갑자)의 역이라 소개한 이유는 乾金(건금) 문장의 乾(건)자는 하늘을 지칭하는 글자라는 사실과 또는 ‘바싹 마른 乾(건)’자이며 金자는 오행이나 오방신장에서 서방을 지칭하는 金자로 보기 때문에 乾金甲子(건금갑자) 문장의 뜻은 서방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출현하는 처음 아들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甲子라 서술한 것이다.

이러한 甲子의 역할은 六甲의 天干地支(천간지지)의 地支(지지)에 속한 처음 시작을 하는 ‘아들 子’字의 역할로, 쥐띠를 상징하는 ‘쥐 鼠(서)’자의 역할을 병행하면서 나오는 子字 역할의 甲子의 존재로서, ‘六十甲子’ 문장에 처음 출현하는 甲子의 주인공이 서방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로 출현하여 뜻하는 바를 成就(성취)하는 甲子(갑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乾金甲子 成道(건금갑자 성도)’의 문장에서 드러나는 甲子가 서방을 통하여 들어와서 하나님 아들의 신분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다는 그 甲子의 존재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은 서방의 예수가 서방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동방의 六十甲子 문장에서의 甲子의 존재가 서방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해문으로써, ‘乾金甲子 成道(건금갑자 성도)’의 문장에서 成道(성도)의 의미는 ‘가는 길에서 원하는 뜻을 성취한다’는 뜻으로서, 서두 문장이 서방을 통하여 들어오는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乾金甲子(건금갑자)의 문장인 이유로 成道(성도) 문장의 의미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도를 成就(성취)하는 甲子의 역할이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서방을 통하여 들어오는 하나님의 아들 甲子의 역할에 대해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天地兩白(천지량백) 역할의 우리 先生임’이라 소개한 이후에 ‘人道三豊(인도삼풍) 化(화)했나니’라 소개하였으므로 이 뜻은 ‘사람이 가는 길이 三豊(삼풍)으로 變化(변화)되어버렸다’는 기록으로 天地兩白(천지양백)이 통합되어진 상태의 先生님께서 三豊(삼풍)의 역할로서 人道의 길을 가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의미한 문장이다.

이러한 三豊(삼풍) 역할의 先生임은 天地의 兩白(양백)이 통합되어 變化(변화)되어진 先生님이라는 결론으로서, 三豊(삼풍) 역할의 先生(선생)님께서는 天地人이 통합되어진 三位一體의 주인공으로 나오시는 先生(선생)님이시라는 결론이다.

이와 같이 天地 兩白(양백)이 통합되어진 三豊(삼풍) 역할의 선생님께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穀食(곡식)이 없이도 大豊年(대풍년)이 드는 豊年豊字(풍년풍자)의 역할로 드러나는 三豊(삼풍)의 역할로서, 동방에서 百姓(백성)의 머리 역할로서의 鄭氏로 드러나는 兩白三豊(량백삼풍)이라 전하여졌다는 하단의 보기 문장이다.   

             보기)   無穀大豊  豊年豊字   甘露如雨  三豊이라  
                      무곡대풍  풍년풍자   감로여우  삼풍 

                     三旬九食  三豊穀을   弓乙之中 찾아보세 
                      구순구식  삼풍곡     궁을지중

                     第一豊에  八人登天   惡化爲善  一穀이요   
                      제일풍    팔인등천   악화위선  일곡

                     第二豊에  非雲眞雨   心靈變化  二穀이요            
                      제이풍    비운진우   심령변화  이곡  

                     第三豊에  有露眞露   脫劫重生  三穀이라  
                      제삼풍    유로진로   탈겁중생  삼곡

                     三豊三穀  世無穀之   十勝中에  出現하니      
                      삼풍삼곡  세무곡지   십승중    출현

                     鄭氏黎首  之民으로   兩白三豊 일럿다네                         정씨여수  지민       량백삼풍

                                         -格菴 三豊論(격암 삼풍론)-

게시한 보기의 문장은 소개한대로 앞문장과 연결된 문장으로서, 天地 兩白(양백)의 역할이 통합되어진 상태로 드러나는 三豊(삼풍) 역할의 先生(선생)님의 존재가 위문장에서는 또다시 三豊(삼풍)의 역할은 동방 백성의 首長(수장)으로 정씨가 출현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전체문장의 의미는 三豊(삼풍)의 형성과정과 三豊(삼풍)이 어떠한 역할인지를 소개한 문장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한 위 전체문장의 의미는 三豊(삼풍)은 곡식이 없는 가운데도 대풍년이 드는 ‘豊年(풍년) 豊(풍)’자 역할의 단 이슬과 같은 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三十日에 아홉 번을 먹어도 시장기가 없는 三豊(삼풍)의 곡식으로 이러한 三豊(삼풍)의 곡식은 天地 사이의 中央에서 찾아보라는 것이다.

또한 三豊(삼풍)의 곡식은 세 가지의 역할을 하는 곡식으로서, 처음의 三豊(삼풍)의 곡식은 불의 역할을 하는 곡식으로서, 惡(악)을 善(선)으로 變化(변화)시키는 역할이 三豊(삼풍)의 처음의 곡식이라는 것이며, 두 번째 三豊(삼풍)의 곡식은 구름이 없는 가운데 내리는 진짜 비로 心靈(심령)을 변화시키는 곡식이라는 것이며, 세 번째 三豊(삼풍)의 곡식은 현재 존재하는 이슬이 진짜 이슬의 곡식으로 인간을 解脫(해탈)시켜서 거듭나게 하는 三豊(삼풍)의 곡식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三豊(삼풍)의 곡식은 十勝(십승) 가운데서 출현하는데, 동방에서 백성의 首長(수장)으로서 정씨가 兩白(량백)이 통합되어진 상태의 三豊(삼풍)의 역할로 출현한다는 전체예언의 문장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을 부분적으로 이기하여 상세히 해문하면 우선 다음과 같이 곡식이 없어도 豊年(풍년)이 들어 있는 상태의 三豊(삼풍)의 역할이라는 다시 이기한 문장이다.

            다시보기)  無穀大豊  豊年豊字   甘露如雨  三豊이라                           무곡대풍  풍년풍자   감로여우  삼풍  

                       三旬九食  三豊穀을   弓乙之中 찾아보세                          구순구식  삼풍곡     궁을지중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 곡식이 없이 豊年(풍년)이 들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로 그야말로 예언서에서나 볼 수 있는 문장으로서, ‘無穀大豊 豊年豊字 (무곡대풍 풍년풍자)’의 문장에서 곡식이 없이도 豊年(풍년)이 들었는데 ‘풍년 豊(풍)’자에서 단 이슬과 같은 비가 내리는 것이 三豊(삼풍)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풍년 豊(풍)’자에 무슨 의미가 기록되어 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문장이라 보는 필자의 견해이다.

이러한 ‘풍년 豐(풍)’자의 기록에 의하면, 豊(풍)자는 큰 콩을 가리키는 豊(풍)자라는 사실과 ‘많을 豐(풍)’자의 기록에서는 ‘없던 죄가 생겨났다’는 뜻을 담은 豐(풍)자이며, ‘후할 豐(풍)’자라 하여 너그러운 사람을 가리킨 豐(풍)자, 또는 ‘번성할 豊(풍)’자로 ‘풍년 豊(풍)’자라는 사실과 ‘卦(괘)이름 豊(풍)’자의 역할이기도 한 豐(풍)자라는 사실로서, 犯罪(범죄)를 많이 한 것도 ‘풍년 豊(풍)’자의 역할이며, 반대로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豊(풍)자의 역할이라는 사실로서, 무엇이든지 많이 쌓여 있는 것이 豊(풍)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풍년 豊(풍)’자의 파자의 형태는 ‘콩 豆(두)’자 혹은 ‘祭器(제기) 그릇 豆(두)’에다 ‘곡조 曲(곡)’자 혹은 ‘굽을 曲(곡)’자를 연결한 상태로서, 豊(풍)자는 略字(약자)로 쓰이는 글자이며 본래의 ‘풍년 豐(풍)’자는 ‘콩 豆(두)’자 위에다 山(산)자에 ‘저울 圭(규)’의 두 글자를 연결한 豐(풍)자가 본래의 豐(풍)자의 형태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豐(풍)자로도 인용하고 略字(약자)의 豊(풍)자로도 인용하는 豊(풍)자의 기록에서 사람 역할의 豐(풍)자의 역할이 단 이슬을 가리키는 甘露(감로)의 역할과 甘露(감로)와 같은 역할의 비라 하여 如雨(여우)라 소개한 사실로서, 이러한 甘露(감로)와 如雨(여우)가 ‘풍년 豐(풍)’자 역할의 사람에 의해 형성되어진다는 사실로서, 豐(풍)자 역할의 사람이 나오는 것을 三豊(삼풍)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甘露如雨(감로여우)’의 이슬 은혜의 비를 내리는 역사를 하신 분은 이미 소개한대로 박태선 장로님으로서, 박태선 장로님께서 서기 1954년도부터 종교역사를 시작하시면서 이슬의 은혜를 내리시기 시작하신 이유로 백만 신도가 한강 백사장이나 남산광장에 운집하였으며, 이슬의 은혜가 내리는 장면이 사진에 찍힌 사실은 박태선 장로님을 추종하던 당시의 기독교 목사들이 다 체험을 한 사실이다.

이러한 ‘甘露如雨(감로여우)’의 역할인 三豊(삼풍)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다음과 같은 三豊(삼풍) 곡식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으로서, 天地의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는 다시 이기한 문장이다.

                다시보기)  三旬九食  三豊穀을   弓乙之中 찾아보세                              구순구식  삼풍곡     궁을지중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사실은 三十日에 아홉 번이나 혹은 三十日에 하나님의 음식을 한 번 먹는 것이 三豊(삼풍)의 곡식이라는 사실이며, 이러한 三豊(삼풍)의 곡식은 天地 사이에서 찾아보라는 것이다.

부연하면 위문장에서 볼 수 있는 三旬九食(삼순구식)의 문장은 격암유록 여러 문장에 서술되어 있는 문장으로서, 이미 다른 문장에서 해문하여 소개한 내용으로 三旬九食(삼순구식)의 문장에서 三旬(삼순)은 三十日을 가리키는 문장으로 旬(순)자는 ‘十日 旬(순)’자로 旬朔(순삭)이라 하면 초하루에서 十日을 가리키는 문장이고 六旬(육순)이라 하면 六十日을 가리키는 문장으로 고전 周禮(주례)의 기록에서는 旬(순)자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十日을 가리킨 것이다.

                   보기)  三旬  [周禮]  國中一旬  郊二旬  野三旬                            삼순  (주례)  국중일순  교이순  야삼순

보기 고전 周禮(주례)의 기록에서는 三旬(삼순)에 대하여 三十을 가리키는 문장이라 기록한 사실로서, 十日은 나라 중앙에서 그리고 二十日은 郊外(교외)에서 보낸 것을 모두 들판에서 보낸 것으로 보아 野三旬(야삼순)이라 소개하여 三十日을 野人(야인)의 생활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三旬(삼순)의 문장으로 보아 아마도 周禮(주례) 시대에 王(왕)이 民度(민도)를 살핀 모양이다. 이러한 사실의 三旬(삼순)의 旬(순)자는 ‘十日 旬(순)’자라는 사실이 자연적으로 밝혀지는 문장이다.

이러한 三旬(삼순)의 旬(순)자가 十日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사실이 자연적으로 밝혀졌으므로 三旬九食(삼순구식) 문장의 의미는 三十日에 아홉 번을 먹는다는 뜻이 되어지는데, 九食(구식)의 문장을 어떻게 해문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지는 三旬九食(삼순구식)의 문장이라는 사실이다.

부연하면 三旬九食(삼순구식) 문장의 九食(구식)의 九(구)자는 단순히 숫자의 의미만을 부여한 九字가 아니라는 사실로서, 九霄(구소)라 하면 밤하늘을 가리키는 문장으로 九天(구천)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사실로서, 九字를 고전에서 살펴보면 여러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九字라는 사실이 다음과 같이 밝혀지는 것이다.

        보기)  九  (數多也) [列子 天瑞] 一變而爲七  七變而爲九  九變者究也                 구  (수다야) (열자 천서) 일변이위칠  칠변이위구  구변자구야

                            [素問] 天地之至數  始於一  終於九焉 
                             (소문) 천지지지수  시어일  종어구언             
       

보기 九字에 대하여 고전 列子(렬자)의 기록에서는 많은 숫자를 가리킨다는 사실로서, 數多也(수다야)라 소개한 이후에 一字가 變化(변화)되어진 형태는 七字의 역할이며 七字가 變化(변화)되어진 형태는 九字라는 사실로서, 마지막으로 九字가 다시 變化(변화)되어지는 형태는 硏究(연구)를 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究(구)자 역할의 九자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의 九字의 構成(구성)은 一字가 變化(변화)되어 七字로, 또다시 七字가 變形(변형)하여 九字로, 또다시 九字가 變形(변형)한 것은 연구할 究(구)자로 變形(변형)한 九字의 역할이라는 사실로서, 九字의 역할은 학문을 硏究(연구)하는 자가 九字의 역할로 드러난다는 결론이다.

또한 九字에 대하여 고전 素問(소문)의 기록에서는 하늘과 땅의 역할을 시작하는 數字(수자)로서, 시작은 一字로 출발하여 끝나는 시점은 九字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다음과 같이 다시 이기한 문장의 기록이다.

              다시보기)   九  [素問]  天地之至數  始於一  終於九焉                             구  (소문)  천지지지수  시어일  종어구언

소개한 바와 같이 다시 이기한 보기의 기록과 같이 九字에 대하여 고전 素問(소문)이라는 문장에서 소개한 내용으로서, 一字는 하늘을 의미하는 一字이며, 시작한다는 의미의 一字의 역할이라는 사실이고, 九字는 땅의 역할을 상징한 數字(수자)로서, 끝마치는 數字(수자) 역할의 九字라 소개한 문장이다.

부연하면 九字에 대한 설명을 ‘天地之至數(천지지지수)’라 소개하여 하늘과 땅의 역할이 이르는 곳에서는 數字(수자)로 표기를 한다는 사실을 ‘天地之至數(천지지지수)’라 소개하여 天地가 도달한 곳에서는 數字(수자)의 역할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가리킨 ‘天地之至數(천지지지수)’ 문장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장에 이어서 ‘始於一 終於九焉(시어일 종어구언)’이라 소개하여 시작은 하늘의 역할인 一字가 한다는 사실을 ‘始於一(시어일)’이라 소개한 것이며, 끝을 마치는 역할은 땅의 역할인 九字가 끝마무리를 한다 하여 ‘終於九焉(종어구언)’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이러한 九字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一字의 역할로 시작하셨으므로 하나님을 상징하는 역할의 수는 一字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끝마치는 땅의 역할은 九字가 한다는 결론으로 九字의 역할은 학문을 연구하는 究(구)자라는 사실이 九字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이러한 九字의 역할이 十字의 기록에서는 하늘 역할의 九字라는 사실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기)   十  [易繫辭]  天九地十                                  십  (역계사)  천구지십

보기 十字의 기록은 고전 역계사(易繫辭)의 기록으로서 하늘은 九字의 역할이며, 땅은 十字의 역할이라 소개한 사실로서, 十字에서는 九字가 하늘의 역할이라는 사실로서, 九天이라 하면 이 땅에 하늘의 역할이 九天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十字의 기록이다.

이러한 九字의 역할이 十字의 기록에서는 九天의 역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으로서, 이러한 땅의 역할의 九字가 이 땅에서는 하늘 역할의 九天의 존재로서, 박태선 장로님께서도 설교말씀 중에서 ‘九天에서 만나자’고 하시면서 작별의 인사를 하신 사실이다.

이러한 十字의 기록에 의하여 九字는 九天의 하늘의 역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이유로서 본 문장으로 回歸(회귀)하여 ‘三旬九食(삼순구식)’의 문장을 다시 해문한다면, 三十日에 하늘의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로 해문이 가능한 문장이라는 결론이다.

이러한 사실을 참고하면서 ‘三旬九食(삼순구식)’의 문장에 연결되는 문장이 ‘三豊穀(삼풍곡)’이라는 문장으로서, 三豊(삼풍)의 穀食(곡식)은 三十日에 아홉 번을 먹어도 허기가 지지 않는 三豊(삼풍) 穀食(곡식)이라는 사실이다.

부연하여 필자가 ‘三旬九食(삼순구식) 三豊穀(삼풍곡)’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三十日에 아홉 번을 먹어도 시장기가 나지 않는 ‘三豊穀(삼풍곡)’이라 소개한 이유는 격암 三豊歌삼풍가) 문장에서 ‘三旬九食 不飢生(삼순구식 불기생)’이라 소개하여 三十日에 아홉 번을 먹어도 시장기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간다는 문장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三十日에 아홉 번을 먹어도 시장기가 나지 않는 三豊(삼풍)의 穀食(곡식)을 구하기 위해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弓乙之中(궁을지중)’에서 찾아보라 소개한 사실로서, ‘弓乙之中(궁을지중)’의 문장은 ‘天地之中(천지지중)’의 문장과 같은 맥락의 기록으로서, 하늘과 땅 사이 혹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天子께서 계신 中間(중간) 지점에서 찾아보라는 문장으로서, 필자는 단군연합에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天子이시라 증거하는 상황을 天地에 비유한다면 ‘弓乙之中(궁을지중)’ 혹은 ‘天地之中(천지지중)’문장의 天地사이의 中間은 단군연합이 되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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