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北쪽에서는 胡亂(호란)이,

                  南쪽에서는 倭亂(왜란)이 재발한다니!  (14부)

                                   

 

구전해오는 우리나라 先人들의 속어 중에 ‘미국은 믿지 말고 소련에게는 속지 말고 일본은 다시 일어나니 조선은 조심하라’는 말이 유래된 사실을 필자는 기억한다.

 

그런데 현재의 정황이 이러한 先人들의 속어대로 실현되어 가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현재 미국이 과거의 우방국인 대만을 제외시키고 정식으로 중공을 나라로 인정한 사실과 현재 미국의 협조로 일본은 재무장을 하여 막강한 무기를 보유한 강국으로 급부상한 사실이 그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소련에게 수백만 불의 차관을 해주고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속고만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노씨 정권에서도 소련의 철도청에게 사기를 당한 사건이 발생하여 재판이 진행되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기한 사실을 하단의 소개하는 오백년 전의 예언문장에서는 서두에서 소개한 속어에서 거론되지 않은 과거의 胡(호)나라인 현재의 중국이 북한에 막강한 피해를 주게 되는 胡患(호환)이 일어난다는 사실과 남쪽에서 반드시 倭亂(왜란)의 變故(변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하단의 문장은 ‘국조단군 配匹(배필)의 정체’의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으로서 配匹(배필)역할의 주인공이 白馬의 홈과 남쪽에서 출현하시는 天牛(천우)하나님의 홈을 공동으로 개설하고 나온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문장이다.

소개하는 하단의 문장 역시 장문인 이유로 두 문장으로 분류하여 마무리 짓는 甲乙歌의 마지막 문장이다.

         보기)    白榜馬角  紅榜牛    坐三立三  玉璽移    去一來一 今佛頭                     백방마각  홍방우    좌삼립삼  옥새이    거일래일 금불두

                  俗離安坐  有像人    德裕喚起  無鬚賊    
                   속리안좌  유상인    덕유환기  무수적  

                  山北應被  古月患    山南必有  人委變            
                   산북응피  고월환    산남필유  인위변  

                  誰知江南  第一人   潛伏山頭   震世間          
                   수지강남  제일인   잠복산두   진세간

                  其竹其竹  去前路    前路前路  松松開        
                   기죽기죽  거전로    전로전로  송송개 

게시한 보기 문장의 전체적인 내용은 '백마공자가 홈을 개설하고 소를 증거하고 나온다'는 내용으로, 백마공자가 天牛(천우)의 역할로 출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글을 써서 게시하고 있는 상황을 소개한 문장으로서!

天牛(천우)의 역할인 하나님께서는 앉아있는 三聖人의 역할이며, 백마공자는 서서 있는 三聖人의 역할로서 天牛(천우) 역할의 하나님으로부터 왕의 玉璽(옥새)를 이어받게 된다는 것인데, 한 사람은 속세를 떠나가고 한 사람은 덕으로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해 돌아오는데 속세를 떠나간 三聖人의 사람은 편안하게 앉아있는 부처의 우두머리 역할이며 서서있는 三聖人의 역할은 수염이 없는 도적과 같이 나오는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산 북쪽에서는 胡患(호환)이 일어나고 또한 산 남쪽에서는 반드시 倭人(왜인)이 變亂(변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러한 때에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잠복하고 있던 江南의 第 一人者가하늘에 오를 사람으로 드러나게 됨으로 인하여 세상이 진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때에 대쪽과 같이 곧고 직선적이며 강직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의 가는 앞날에는 소나무의 생명과 같은 장수의 운이 펼쳐진다는 전체 문장의 간략적인 해문이다.

부연하여 문장을 부분적으로 이기하여 소개하면 우선 다음의 이기한 문장의 뜻과 같이 백마가 홈을 개설하고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보기)  白榜馬角  紅榜牛  坐三立三  玉璽移   去一來一  今佛頭                       백방마각  홍방우  좌삼립삼  옥새이   거일래일  금불두

소개한 다시보기의 문장이 백마가 홈을 개설한 상황을 예언한 것이라 보는 내용으로서 ‘白榜馬角 紅榜牛(백방마각 홍방우)’의 白榜(백방)이라는 문장의 榜(방)자는 ‘방 붙일 榜(방)’ 혹은 ‘게시할 榜(방)’  ‘매질할 榜(방)’ 혹은 ‘뱃사공 榜(방)’자로서 榜文(방문)이나 榜示(방시)라는 문장에 사용된 榜(방)자이다. 

이러한 榜(방)자의 의미로 볼 때 ‘白榜馬角 紅榜牛(백방마각 홍방우)’의 문장에서 白榜(백방)의 문장은 ‘흰 게시판’을 지칭한 의미이며, 馬角(마각)이라 소개하여 말이 뿔을 달고 나온다고 하였으며 붉은 소의 뿔을 달고 나오면서 소까지 揭示(게시)한다는 사실을 紅榜牛(홍방우)라 소개한 것이다.

부연하여 위 白榜馬角(백방마각)의 馬角(마각)의 문장은 ‘뿔을 달고 나온 말’이라는 뜻으로서, 뿔이 달린 말은 실존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감록이나 격암유록 세론시 예언 문장에서는 ‘馬頭牛角(마두우각)’이라 소개하여 '말머리에 소뿔을 달았다'는 뜻을 밝히고 있으므로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위 ‘白榜馬角 紅榜牛(백방마각 홍방우)’의 馬角(마각)의 문장을 필자는 ‘馬頭牛角(마두우각)’과 같은 맥락의 기록이라 보아 ‘말이 소뿔을 달고 나온다’는 뜻으로 해문하는 것이다.

이러한 ‘馬頭牛角(마두우각)’의 문장과 관련하여 격암 초장 문장에서 ‘天牛地馬 眞牛性(천우지마 진우성)’이라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紅榜牛(홍방우) 문장의 ‘소 牛(우)’자의 역할을 天牛(천우) 역할의 하늘소의 역할로 보아 ‘天牛地馬 眞牛性(천우지마 진우성)’의 의미는 天牛(천우)의 역할과 地馬(지마)의 역할이 모두 진짜 소의 성품이라 하여 眞牛性(진우성)이라 소개한 것이며, 이 문장은 眞天性(진천성)과 같은 의미로서 天牛地馬(천우지마)의 역할이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해문에 근거하여 위  ‘白榜馬角 紅榜牛(백방마각 홍방우)’ 문장의 의미는 '백마공자가 백마의 홈 게시판을 개설하고 天牛(천우)의 역할을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나온다'는 뜻으로서, 紅榜牛(홍방우)의 紅(홍)자는 ‘붉을 색’을 뜻하지만 남방을 상징하는 紅(홍)자라는 사실과 女子를 상징하여 ‘臙脂(연지) 紅(홍)’자로도 사용되는 紅(홍)자이므로 필자는 紅榜牛(홍방우)의 소의 역할인 天牛(천우)의 존재는 남방에서 女子 역할의 하나님으로 나오시는 天牛(천우)의 역할이라 보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할 수 있는 것은 남해바다를 건너 들어온 紅榜牛(홍방우) 역할의 주인공과 관련하여 다음의 격암유록 새 四十一章과 그 외의 기타 문장에서는 남해바다를 통하여 들어오는 眞主(진주)의 존재가 들어오는 상황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기)   黃腹再生  三八之北  出於聖人  天受大命  似人不人  柿似眞人

              황복재생  삼팔지북  출어성인  천수대명  사인불인  시사진인 

 

              馬頭牛角  兩火冠木  海島眞人  渡南來之眞主

              마두우각  양화관목  해도진인  도남래지진주  

             
               出南海島中  紫霞仙境  世人不覺矣       
               출남해도중  자하선경  세인불각의

                   

                                         -賽 四十一章(새 사십일장)-

소개한 보기 문장은 미국이 장차 망한다는 내용으로 소개되었던 문장과 그 외의 문장에 인용한바 있는 문장으로서, 이 문장에는 ‘말이 소뿔을 달고 나온다’는 ‘馬角(마각)’의 문장이 서술되어 있으며, 紅榜牛(홍방우)의 소의 역할인 天牛(천우)의 하나님의 신분은 남해바다를 통하여 들어오시는 眞主(진주)의 역할로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오방신장을 인용하여 대한민국의 동서남북과 중앙의 상황을 기록하여 中央(중앙)인 경기지방에서 재생하여 나오는 사람에 대해 기록하였는데, 그는 三八線(삼팔선) 이북에서 출현하시는 聖人(성인) 하나님의 대 使命(사명)을 받고 나오는 사람으로서, 사람 같으나 사람이 아닌 감람나무 가지의 역할로 天命을 받아 재생하여 나온다는 기록이다. 

또한 감람나무 가지의 역할로 나오는 眞人(진인)은 말머리에 소뿔을 달고 나와 두 사람의 역할을 하며 榮光(영광)의 관을 쓰고 남해바다를 건너 들어오신 眞主(진주)를 모시고 남해반도 仙境(선경)에서 재생하여 나오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에 나타나 있는 ‘말머리에 뿔을 달았다’는 馬角(마각)의 문장은 馬頭牛角(마두우각)과 동일한 의미이며 紅榜牛(홍방우)의 문장을 남방의 소를 지칭한 뜻으로 보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남방을 가리키는 (홍)자에 의해서이며, ‘渡南來之眞主(도남래지진주)’의 문장에 의해서도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 것으로서,

위문장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히고 있는 부분은 黃腹再生(황복재생)의 문장으로 黃腹(황복)이라는 문장은 ‘황색의 腹部(복부)’라는 뜻으로 이것은 오방 신장에서 中央의 색깔을 黃(황)색으로 본 것을 의미한 것으로서, 우리나라를 기준한다면 경기지방이 동서남북의 중앙지로서 黃腹再生(황복재생)의 주인공은 경기지방에서 재생하여 나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방신장의 中央인 경기도 지방에서 재생하여 나오는 사람은 三八 이북에서 聖人으로 출현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天命을 받는 운명으로 재생하여 나와, 사람 같으나 사람이 아닌 감람나무 가지의 역할을 하며 眞人(진인)으로 출현하는데, 이 사람이 북한에서 출생하시어 남해바다를 통하여 남쪽으로 眞主(진주)의 존재를 모시는 말머리에 소뿔을 단 주인공으로서, 한반도 紫霞島(자하도) 仙境(선경)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예언문장이다.

이러한 위문장에 근거하여 紅榜牛(홍방우)의 ‘소 牛(우)’자의 天牛(천우) 역할의 하나님으로 출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북쪽에서 탄생하시어 일본을 거쳐 현재 남쪽에서 하나님의 역할로 출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박태선 장로님께서 육적으로는 남자로 오셨지만 여자의 상징인 엄마의 역할로 나오신 상황을 예언한 것이 紅榜牛(홍방우)의 역할이라 보는 필자의 해문이다.

이러한 해문에 이어지는 문장이 하단의 다시 이기한 문장으로서, 紅榜牛(홍방우) 역할의 天牛(천우)의 하나님께서 玉璽(옥새)를 백마의 게시판을 개설하고 나오는 白榜馬角(백방마각)의 역할인 白馬의 존재에게 하사하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다시보기)    坐三立三  玉璽移    去一來一  今佛頭                           좌삼립삼  옥새이    거일래일  금불두

다시 이기한 보기의‘坐三立三(좌삼립삼)’의 문장은 앉아있는 三字의 역할과 서서있는 三字 역할의 주체가 드러나는데, 앉아있는 三字의 역할이 서서있는 三字의 역할에게 玉璽(옥새)를 移讓(이양)해 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 坐三의 역할이 앉아있는 삼인의 역할을 한다는 삼인의 역할은 가는 역할이고, 서서있는 立三의 역할로 나오는 사람은 돌아오는 역할로서, 앉아있는 坐三 역할의 한 사람은 현재 부처의 머리 역할로 앉아있는 佛像(불상)을 의미한 기록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에서 앉아있는 坐三의 역할은 紅榜牛(홍방우)의 소의 역할인 天牛 역할의 化天(화천)하신 하나님을 지칭한 의미로서 격암유록 은비가의 기록을 통해 동방에 彌勒(미륵) 上帝(상제) 역할의 朴道令으로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출현을 예언한 문장과 동일한 의미로 보는 坐三의 문장이다.

또한 立三의 서서있는 三字의 역할은 白榜馬角(백방마각)을 지칭한 것으로 백마공자가 단군연합을 창설하고 백마 게시판을 통하여 彌勒(미륵) 上帝의 역할로 출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는 상황을 예언한 것이 立三의 역할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문의 문장에 이어지는 내용이 玉璽移(옥새이)의 문장으로 이는 앉아있는 坐三의 紅榜牛(홍방우)의 역할이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하나님의 신분으로서 玉璽(옥새)를 서서있는 立三의 주인공인 白榜馬角(백방마각)의 역할로 나오는 백마공자에게 移讓(이양)해 주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문장이다.

또한 玉璽(옥새)를 移讓(이양)해주신 坐三 역할의 紅榜牛(홍방우)의 주인공은 이 세상을 떠나가는 역할이며 玉璽(옥새)를 이어받은 立三 역할의 白榜馬角(백방마각)의 주인공은 이 땅에 돌아오는 역할이라는 사실을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去一來一 今佛頭(거일래일 금불두)’라 소개한 것이다.

부연하여 위 ‘去一來一 今佛頭(거일래일 금불두)’의 기록은 한 사람은 가는 역할이고 한 사람은 오는 역할로 한 사람이 현재 부처의 머리 역할로서, ‘불교의 머리’라는 뜻인 今佛頭(금불두)의 내포된 의미는 앉아있는 坐三 역할의 紅榜牛(홍방우)의 주인공이신 天牛(천우) 역할의 하나님으로 출현하신 박태선 장로님을 지칭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今佛頭(금불두)의 문장을 紅榜牛(홍방우)의 소의 존재를 지칭한 역할이라 주장하는 이유는 이미 소개한 대로 天牛 역할의 하나님의 신분으로서 彌勒(미륵) 上帝로 강림하신 하나님의 역할이 天牛의 소의 역할이기 때문이며,

이어지는 하단의 문장에서도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다시보기)    俗離安坐  有像人   德裕喚起  無鬚賊       
                            속리안좌  유상인   덕유환기  무수적  

                           山北應被  古月患   山南必有  人委變                                산북응피  고월환   산남필유  인위변 

다시보기의 문장에서 앉아있는 坐三역할의 주인공이 불교의 머리 역할로 나오는 今佛頭(금불두)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내용이 ‘俗離安坐 有像人(속리안좌 유상인)’의 문장으로서 ‘속세를 떠난 사람의 形象(형상)이 편안하게 앉아있다’는 이 문장에 근거하여 今佛頭(금불두)의 역할은 紅榜牛(홍방우) 역할의 天牛(천우)의 하나님의 신분이 化天(화천)하신 이후에는 현재 사찰에 앉아있는 부처의 형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개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의 俗離(속리)라는 문장은 지명을 가리키는 뜻으로 보느냐 아니면 속세를 떠났다는 뜻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문이 달라지는 문장으로서, 일차적으로 필자는 俗離(속리)의 문장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의 俗世를 떠난 사람을 지칭한 뜻으로 해문하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俗離(속리)의 문장을 속세를 떠나간 사람이라 해문하는 이유는 ‘俗離(속리)’에 이어서 ‘安坐(안좌)’라 하여 ‘편안하게 앉아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며, 만약 俗離安坐(속리안좌)의 문장을 지명인 俗離山(속리산)을 지칭한 의미로 해문한다면 ‘俗離山(속리산)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나, 이어지는 문장이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라는 有像人(유상인)이라는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것은 전체적인 내용에 위배되므로 필자는 俗離(속리)의 문장을 지명을 지칭한 문장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俗離(속리)의 뜻을 ‘속세를 떠나 편안한 가운데 앉아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며 이어지는 문장이 有像人(유상인)이라 하여 현재 존재하고 있는 形象人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필자는 ‘俗離安坐 有像人(속리안좌 유상인)’의 有像人(유상인)의 문장을 ‘이 세상에 존재하던 사람이 속세를 떠나 편안하게 앉아있는 사람의 形象(형상)’을 가리키는 뜻으로 보아 현재 사찰에 앉아있는 佛像(불상)을 지칭하여 今佛頭(금불두)라 소개한 문장이라 보는 필자의 견해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하는 이유는 이어지는 문장이 ‘德裕喚起 無鬚賊(덕유환기 무수적)’이라는 문장으로서, 德裕(덕유)라는 문장 또한 충청도 남단에 있는 德裕山(덕유산)이라 보느냐 아니면 문장 그대로 덕행을 베푸는 너그러운 사람을 지칭한 뜻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문장으로서, 필자는 이어지는 문장이 喚起(환기)라는 문장으로 ‘사라져 버린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내용이 연결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德裕(덕유)의 문장 역시 지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뜻 그대로 덕행을 행하며 寬容(관용)을 베풀어주는 주인공이 나오는 사실을 기록한 뜻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위문장의 내용이 조상에게 공로를 세우는 충신이 나온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점으로 보아 德裕(덕유)의 문장은 덕행을 행하는 사람이 조상신에게 공로를 세우는 주인공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며, 이어지는 喚起(환기)의 喚(환)자는 ‘부를 喚(환)’ 혹은 ‘새 喚(환)’자로서 喚呼(환호)라 하면 ‘소리쳐 부른다’는 뜻이고 喚想(환상)이라 하면 ‘지나간 일을 상기시킨다’는 뜻으로서 喚起(환기)의 문장은 ‘잊어진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으로 보는 이유로 德裕(덕유)의 문장은 地名을 지칭한 뜻이 아님이 확실히 밝혀지는 것이다.

이러한 喚起(환기)의 기록으로 보아 德裕喚起(덕유환기)의 문장은 덕행을 행하는 너그러운 사람은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수염이 없는 도적과 같이 나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 德裕喚起(덕유환기)의 裕(유)자는 ‘넉넉할 裕(유)’ ‘너그러울 裕(유)’ 혹은 ‘寬容(관용)을 베풀어주는 裕(유)’자이며, 이어지는 無鬚賊(무수적)이라는 문장의 鬚(수)자는 ‘수염 鬚(수)’자로 수염이 없는 도적이라는 의미는 덕행을 실행하며 조상에게 공로를 세우는 주인공은 도적같이 나오는 女子의 역할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서 聖人(성인)의 신분으로서 하나님으로 출현하시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을 모시는 존재가 모두 여자 역할의 엄마로 나오는 사실을 의미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에 이어지는 문장이 하단의 문장으로서 덕행을 실행하며 寬容(관용)을 베풀어주는 주인공이 女子의 역할로서 도적같이 출현하는 시기에 북한지방에서는 오랑캐 胡族(호족)의 患難(환난)에 의하여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며 반대로 산 남쪽에서는 倭奴(왜노)가 變化(변화)되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시보기)     山北應被  古月患    山南必有  人委變                                              산북응피  고월환    산남필유  인위변  

                      誰知江南  第一人    潛伏山頭  震世間   
                       수지강남  제일인    잠복산두  진세간

                      其竹其竹  去前路    前路前路  松松開                          기죽기죽  거전로    전로전로  송송개

다시보기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것은 백의민족의 혈통을 더럽힌 중공 오랑캐인 胡族(호족)의 患難(환난)의 피해를 당하는 곳이 북쪽이며 반대로 남쪽에서는 반드시 倭奴(왜노)가 변화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북쪽과 남쪽에서 胡族(호족)과 倭奴(왜노)가 다시 일어나는 시기에 江南(강남)지역에서는 第一人者의 존재가 나와 있는데 세인들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江南의 第一人者의 역할의 존재가 潛伏(잠복)하고 있다가 드러나는 시기에는 세상이 진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는 ‘그 其(기)’자 역할의 사람이 나오게 되는데, 이 땅을 떠나갔다 다시 돌아온 ‘그 其(기)’자의 주인공의 앞날에는 두 소나무와 같은 장수의 운이 펼쳐지게 된다는 전체적인 기록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에서 중공 오랑캐인 胡族(호족)이 나온다는 뜻을 전하는 부분은 ‘山北應被 古月患(산북응피 고월환)’이라는 문장으로서, 山北應被(산북응피)라는 산북은 북쪽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산을 가리킨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를 경계로 보아 백두산을 가리켜 북쪽에서 胡族(호족)의 災難(재난)을 胡患(호환)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북한이 共産(공산)주의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山北應被(산북응피)라는 문장은 판문점에 있는 도라산을 기점으로 山北과 山南을 지칭하여 북한지방에까지 應當(응당)한 피해가 시작되어진다는 사실과 그 피해는 胡患(호환)이라 하였듯이 중공 오랑캐의 患難(환난)이 북쪽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예언한 문장으로 보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을 해문하는 과정에서 胡(호)자를 언급한 이유는 古月患(고월환)이라는 문장이 胡(호)자를 파자로 서술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남쪽에서 일어나는 變亂(변란)은 倭奴(왜노)에 의해 일어난다는 예언인데, ‘山南必有 人委變(산남필유 인위변)’이라 소개하여 산 남쪽에서는 반드시 變亂(변란))이 생기는데 倭奴(왜노)가 일으키는 變亂(변란)이라 하여 倭(왜)자를 파자로 人委變(인위변)이라 소개한 것으로 亻(인)자와 委(위)자를 합하여 만든 글자는 倭(왜)자가 되어진다는 사실을 人委變(인위변)이라 서술한 것이다. 

이러한 문장의 기록과 같이 현재 한반도는 북쪽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북괴가 압박을 받고 있으며 자연재해로는 黃砂(황사)와 많은 질병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예언한 것이 아닌가 하며, 또한 남쪽에서는 일본이 재무장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변화되는 보수화의 바람을 타고 신사참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예언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하늘이 진동하는 사람이 江南(강남)에서 출현하게 되는데 그 사실을 ‘誰知江南 第一人(수지강남 제일인)’이라 소개하여 ‘江南(강남)에서 나오는 第一人者(제일인자)를 누가 알리요’라 하여 ‘누구 誰(수)’자와 ‘알 知(지)’자를 인용하여 誰知(수지)라 소개한 사실이다.

이렇게 숨어있던 江南(강남)의 第一人者의 주인공이 그 정체를 드러내면서 하늘이 震動(진동)하기 시작하는 일이 인간세상에서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를 ‘潛伏山頭 震世間(잠복산두 진세간)’이라 소개한 것이다.

부연하여 위 潛伏山頭(잠복산두)의 문장은 숨어있었던 사람이 산 頂上(정상)에 오를 사람이라는 기록으로서 潛伏(잠복)이라는 문장은 해문할 필요 없이 남이 모르게 납작하게 엎드려 숨어있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서, 山頭(산두)라는 문장을 연결한 이유는 숨어있었던 주인공이 산 頂上(정상)에 우뚝 서 있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潛伏(잠복)한 사람이 나와서 산 頂上(정상)에 서게 되는 일을 일러 ‘세상이 震動(진동)할 일’이라 하여 震世間(진세간)이라 서술하였는데, 潛伏(잠복)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는 江南(강남)의 第一人者라는 것이며 江南의 第一人者가 나와서 산 頂上(정상)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 되어지면 세상은 震動(진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누구인지 모르는 江南(강남)의 第一人者가 潛伏(잠복)하고 있다가 드러나 頂上(정상)에 서게 되면서부터 세상이 震動(진동)한다는 江南(강남)의 第一人者(제일인자)의 주인공에 대해 필자는 紅榜牛(홍방우)의 역할인 天牛(천우) 하나님의 역할로 출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으로 보고 박태선 장로님께서 化天(화천)하셨다가 다시 백마 게시판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시는 상황을潛伏山頭 震世間(잠복산두 진세간)’이라 소개한 문장이라 보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하는 이유는 화천하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당신만이 구원을 주시는 주인공이시라 발표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소사 신앙촌에서 설교하시면서‘오리를 가면 엿장수의 집이 있는데 엿장수의 집을 지나가서 돌고 돌아 고개를 넘어가서 강을 건너간 사람에게나 그 다음의 말을 할 수가 있지, 강을 건거가지 않고 다시 돌아오거나 서있는 사람에게는 그 다음의 말씀을 해주실 수가 없다’는 설교말씀을 하셨는데 이러한 말씀에 의하여 江南의 第一人者를 紅榜牛(홍방우)의 역할로 나오시는 박태선 장로님이시라 보는 것이다.


  "이 길은 가야하는 길이라. 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그런데 그 다리 건너까지 배웠는데, 이 학생들이 다리를 건너갈 생각을 안해. 내가 그    다리 건너간 다음에 말을 해줄 필요가 없어. 내 가르침은 달라. 그 심령이 따라 올라가    야 되. 그 마음이 따라 올라가야 되게 돼 있어. 그 성결함이 부합돼야 되게 돼 있어.    그 아름다움과 깨끗함이 부합돼 올라가야 돼.

  그럼 이제 다리 건너까지 말했는데 다리를 아무리 건너가래도 안 건너가고 돌아서는 그    사람에게는 다리 지나서 말이 필요 없어. 가는 자에게만 필요해. 그러기에 그 다리를    지나서 5리를 가면 그 엿장사의 집이 있어. 그 집을 지나면 한 50리 돌아 돌아 돌아 가    야될 고개가 있어. 그 고개를 50리를 넘어간 사람에게 그 다음에 강을 배를 타고 건너    가고 그 다음에 길이, 그 다음에 가는 길을 가리켜줄 필요가 있지 다리도 건너가지 안    고 돌아서서 돌아오던지, 다리를 건너가지 아니하고 멍-하고 서 있는 사람에게 그 다음    의 것을 가리켜줄 필요가 없어"

                                          -  81년 -10월 10일 1-1-B -

이러한 문장에 이어지는 다음의 이기한 문장에서는, 대쪽같이 剛直(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는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존재로서 그 자의 앞날에는 두 소나무의 운명과 같이 장수하는 운이 펼쳐진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다시보기)   其竹其竹  去前路   前路前路  松松開                                                  기죽기죽  거전로   전로전로  송송개

소개한 대로 다시보기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것은 ‘그’라는 사람을 지칭하는 ‘그 其(기)’자의 사람이 ‘대나무 竹(죽)’자의 역할로서, 대쪽같이 剛直(강직)한 성격을 소유한 바싹 마른 사람이 나오는데 ‘그’라는 사람이 一人二役의 주인공임을 밝혀, 반복해서 ‘其竹其竹 去前路(기죽기죽 거전로)’라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그 其(기)’자의 역할에 대해 수차 소개한대로 고전 詩經(시경)에서는 ‘彼其之子(피기지자)’라 하여 상대편에서는 ‘아들 子’의 역할로 나오는 존재가 ‘그 其(기)’자의 역할임을 서술하였으며, 또한 ‘夜如何其(야여하기)’라 소개하여 어떻게 하여 밤에 나오는 자가 ‘그 사람 其(기)’자의 역할이냐고 하여 ‘그 其(기)'자의 존재는 밤의 역할로 나오게 되어 있음을 기록하였다.

또한 書經(서경)의 기록에서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을 ‘其旨遠 其辭文(기지원 기사문)’이라 소개하였는데, 이는 그 사람은 뜻이 있어 먼 곳에 가 있다가 때가 이르면 글을 가지고 나와 말을 할 사람임을 밝히고 있는 기록이다.

이러한 其(기)자의 기록에 의하여 ‘其竹其竹 去前路(기죽기죽 거전로)’의 문장은 그 사람은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멀리 떠나가 있었지만 一人二役의 역할로 나올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앞날에 대하여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前路前路 松松開(전로전로 송송개)’라 소개하여 대쪽같이 剛直(강직)한 성격을 소유한 사람의 앞날은 소나무의 운명과 같이 장수의 운이 도래하게 된다는 것을 ‘松松開(송송개)’라 소개한 것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去前路(거전로)의 의미로서, 去(거)자는 ‘갈 去(거)’ ‘영구 去(거)’ ‘버릴 去(거)’ 혹은 ‘망할 去(거)’자로서 여러 가지로 해문할 수 있으는 去前路(거전로)의 문장이나 필자는 사망한 자가 다시 갱생하여 나와 영구히 존재할 수 있는 앞길이라는 뜻으로 해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쪽같이 剛直(강직)한 사람의 역할로 나오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은 한 사람의 역할만을 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其竹其竹(기죽기죽)’이라 소개하였듯이 한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두 가지의 길을 가는 사람 혹은 일인이역의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예언으로 보아야 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역시 앞날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前路前路 松松開(전로전로 송송개)’라 소개하여 두 가지의 길과 두 소나무의 역할로 나오게 되어 있다는 의미는 한 사람의 역할로 나온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필자는 其竹(기죽)의 주인공을 인생의 낙오자로 버림받은 자가 再生(재생)의 길을 찾게 된 자라 보는 것으로 필자가 이와 같이 소개하는 이유는 앞에서 소개한바 있는 내용에서 人皆弓弓去(인개궁궁거)의 문장은 모든 사람은 두 하나님의 역할로 나오시는 하나님을 따라 가야한다는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반대로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라 소개하여 나 역시 두 ‘화살 矢(시)’자의 역할로서, ‘대 竹(죽)’자의 역할로 세상에 돌아온다는 뜻을 밝힌 의미가 一人二役의 역할을 하는 한 사람이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부연하여 위 ‘人皆弓弓去(인개궁궁거)’의 문장은 ‘人皆天天去(인개천천거)’의 문장과 같은 맥락의 기록으로 ‘모든 사람은 두 하나님의 역할로 나오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듯이 모든 人間의 운명은 一人二役의 하나님으로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化天(화천)하시면 따라서 사망하게 되어진다는 사실을 소개한 것이 人皆弓弓去(인개궁궁거)의 문장이다.

반면에 ‘대 竹(죽)’자의 역할로 나오는 사람의 역할에 대해 서술한 것이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문장으로서, ‘나 역시 두 사람 역할의 ‘화살 矢(시)’자의 역할로 나온다’는 사실을 ‘대 竹(죽)’자를 파자로 서술하여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라 소개한 것이다.

부연하여 위의 두 ‘화살 矢(시)’자인 矢矢(시시)의 문장은 ‘대 竹(죽)’자가 형성되어지는 상황으로 이것은 같은 甲乙歌 서두 문장에서 소개한 ‘弓矢弓矢 竹矢來(궁시궁시 죽시래)’와 같은 의미로서, ‘弓矢弓矢(궁시궁시)’의 문장은 弓弓(궁궁)자와 矢矢(시시)자가 陽陰(양음)으로서의 불가분의 관계임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화살이 없으면 활은 무용지물이며 반대로 활이 없으면 화살은 무용지물로 되는 것이 ‘활 弓(궁)’자와 ‘화살 矢(시)’자의 관계이다.

이러한 弓矢弓矢(궁시궁시)의 문장은 弓乙弓乙(궁을궁을)의 문장과 같은 맥락으로 天地天地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으며, 이어서 竹矢來(죽시래)라 소개한 것은 두 ‘화살 矢(시)’자를 나열한 矢矢(시시)의 문장이 ‘대 竹(죽)’자가 되어진 사실을 소개한 문장이다,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라 소개한 기록의 뜻은 하나님께서 일인이역의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다가 이 세상을 떠나신 것과 같이 나 역시 이 땅에서 일인이역의 두 사람의 역할로서, 두 ‘화살 矢(시)’자 역할의 사람으로 온다는 사실을 矢矢來(시시래)라 소개하여 ‘대나무 竹(죽)’자 역할의 사람으로 온 사실을 가리켜 준 문장이다.

참고로 ‘화살 矢(시)’자에 대하여 고전 詩經(시경)의 기록에서는 화살은 直線(직선)으로 날아간다 하여 곧다는 것을 直也(직야)라 소개한 이후에 其直如矢(기직여시)라 소개하여 그것은 곧바로 날아가는 ‘화살 矢(시)’자의 역할이라 소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전 양자법언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聖人(성인)께서 화살과 같이 빠르게 말씀하신다는 뜻으로도 소개한 ‘화살 矢(시)’자의 역할이다.

                보기)   矢口  [揚子法言]   聖人矢口  以成言       
                         시구  (양자법언)   성인시구  이성언

참고로 보기의 矢口(시구)의 문장에서 소개한대로 고전 양자법언 문장의 기록에서는 ‘聖人矢口 以成言(성인시구 이성언)’이라 소개하여 聖人(성인)의 말씀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 여기서 矢口(시구)라는 문장은 ‘입속의 화살’이라는 뜻으로 ‘직선적으로 말씀하신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其竹其竹 去前路(기죽기죽 거전로)’의 의미는 ‘그’라는 사람은 일인이역의 대나무 사람의 역할로 나온다는 뜻이며, 死亡(사망)할 자가 永久(영구)히 존재할 사람으로 變化(변화)될 그 사람의 앞날은 무궁장수한다는 뜻으로 ‘前路前路 松松開(전로전로 송송개)’라 소개한 것이다.

이와 같은 ‘前路前路 松松開(전로전로 송송개)’의 뜻과 같이 두 소나무와 같이 무궁장수를 하게 될 주인공에 대해 격암 말운론 문장에서는 三八木人의 존재가 十五眞主의 역할로서 이긴자의 역할로 하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천자께서 함께 하시는 정씨로 나오는데 정씨의 앞날이 두 소나무의 운명과 같아 장수할 운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 인하여,

‘其竹其竹 去前路(기죽기죽 거전로)’문장에서의 ‘其竹(기죽)’의 대쪽과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나오는 ‘그’라는 사람의 ‘그 其(기)’자의 주인공은 天地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동방에서 출현하는 三八木人의 역할로 나오는 정씨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는 하단의 문장이다.


  
  보기)  三八木人  十五眞主  中略(중략)   乘柿之人  弓乙鄭  前路松松  不遠開            삼팔목인   십오진주              승시지인  궁을정  전로송송  불원개

                                                菴 末運論(격암 말운론)-

 소개한 보기의 문장은 다른 문장에서 소개한 문장으로서, 위 문장을 소개하는 이유는 앞에서 소개한 甲乙歌의 ‘其竹其竹 去前路(기죽기죽 거전로)’의 문장에 이어진 ‘前路前路 松松開(전로전로 송송개)’의 문장과 같은 맥락으로 其竹(기죽)의 ‘그 其(기)’자의 주인공의 앞날이 두 소나무의 운명과 같이 장수를 하게 됨을 예언한 문장으로서!

其竹(기죽)의 ‘그 其(기)’자의 주인공의 정체가 위 게시한 말운론 문장에서는 이긴자 역할의 감람나무 가지의 역할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천자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오는 정씨는 三八木人의 역할인 十五眞主의 주인공으로 나오게 되는 상황이 밝혀지는 문장이라 추가로 소개한 문장이다.

부연하여 위의 게시한 문장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두 소나무의 역할을 하며 장수의 운을 받을 주인공은 乘柿之人 弓乙鄭(승시지인 궁을정)’의 역할로 나온다는 정씨는 乘柿(승시)의 ‘감 柿(시)’자 역할의 사람으로 승격한 사람이라는 사실로서, 여기서 乘(승)자는 ‘乘馬(승마) 乘(승)’ ‘오를 乘(승)’ 혹은 ‘이길 乘(승)’자이며 柿(시)자는 ‘감 柿(시)’자로서 격암유록에서는 橄欖(감람)나무 가지를 뜻하는 柿(시)자로 인용한 글자이다.

이러한 해문으로 볼 때, ‘乘柿之人 弓乙鄭(승시지인 궁을정)’ 의 의미는 ‘乘柿之人 天地鄭(승시지인 천지정)’의 문장과 같은 맥락으로서, 감람나무 가지의 역할로 나오는 사람은 승리자의 역할로서, 天地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정씨로 나오는데, 두 소나무의 역할로 나오는 정씨는 장수할 존재라는 사실을 ‘前路松松 不遠開(전로송송 불원개)’라 소개한 문장이 이미 소개한 甲乙歌의 기록과 동일한 맥락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다시 게시한다.

             다시보기)   其竹其竹  去前路   前路前路  松松開                             기죽기죽  거전로   전로전로  송송개

다시 이기하여 게시한 문장과 같이 ‘其竹其竹(기죽기죽)’문장의 其竹(기죽)의 ‘그 其(기)’자의 주인공인 대쪽과 같이 강직한 존재는 두 소나무의 운명과 같이 장수를 하게 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 其(기)’자의 주인공의 정체는 ‘아들 子’의 역할과 밤의 역할을 하는 ‘쥐 鼠(서)’자의 역할로서,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으로 나오는 서씨의 역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위 추가로 게시한 격암 말운론 문장에서는 두 소나무의 운명과 같이 장수를 하게 되는 주인공은  三八木人의 역할로서 승리자 역할의 감람나무 가지의 역할까지 겸하여 나오는 정씨로서, 정씨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천자께서 함께 하시는 주인공으로서 전무후무한 장수의 운을 타고 나오는 주인공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보기)   乘柿之人  弓乙鄭   前路松松  不遠開          
                         
승시지인  궁을정   전로송송  불원개

소개한 다시보기 문장에서는 ‘乘柿之人 弓乙鄭(승시지인 궁을정)’의 내용이 부가되어 있는 것이 甲乙歌의 ‘其竹其竹 去前路(기죽기죽 거전로)’의 문장과의 차이점으로서, 이어지는 ‘前路松松 不遠開(전로송송 불원개)’의 문장은 말운론의 문장이라는 사실이고 ‘前路前路 松松開(전로전로 송송개)’의 문장은 甲乙歌의 문장이지만 두 문장은 같은 맥락의 문장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게시한 것이다. 

이러한 해문으로써, 其竹其竹(기죽기죽)의 주인공은 정씨의 성씨로 나오며, 三八木人의 역할대로 호랑이띠의 三八年 戊寅生의 백마공자로 나오게 된다는 결론인데, 이러한 사실은 앞 문장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竹馬(죽마)가 二人者의 白馬神將(백마신장)의 직함을 갖고 두 나무 사람의 역할로서 龍蛇(용사) 역할의 하나님을 모시고 나온다는 주인공임이 하단의 게시한 다시보기의 문장에서도 밝혀진다.

        
            
다시보기)    白馬神將  出世時   赤火蛇龍  林出運                           백마신장  출세시   적화사룡  임출운

                         十處十勝  非別地    忽思勝地  竹馬二人                              십처십승  비별지    홀사승지  죽마이인

                                -格菴訣 末運論(격암결 말운론)-

소개한 다시보기의 문장에서 새로이 밝혀지는 것은 竹馬二人(죽마이인)의 문장으로 그 의미는 竹馬(죽마)가 二人者의 역할이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竹馬(죽마)가 두 사람의 역할로 나온다는 뜻으로서, 위문장에서 白馬神將(백마신장)이 두 나무사람의 역할로 출현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竹馬二人(죽마이인)의 문장은 竹馬(죽마)가 일인이역의 역할로 나오는 이인자 역할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竹馬二人(죽마이인)의 문장은 과거에 친했던 친구를 빗대어 말하는 竹馬舊友(죽마구우)나 혹은 竹馬故友(죽마고우)라는 문장의 竹馬(죽마)와 같은 의미로 필자가 竹馬二人(죽마이인)의 문장을 소개하는 이유는 其竹其竹(기죽기죽)의 문장에서 竹(죽)자를 반복하여 ‘其竹其竹(기죽기죽)’이라 소개한 사실을 지적하기 위한 것으로 其竹其竹(기죽기죽)의 문장은 ‘그’라는 사람이 一人二役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소개한 문장으로서!

其竹其竹(기죽기죽)의 역할로 나오는 白馬神將(백마신장)이 竹馬二人(죽마이인)의 주인공으로서 이를 서두에서 소개한 ‘白榜馬角 紅榜牛(백방마각 홍방우)’의 문장에 결부시켜보면 紅榜牛(홍방우)의 天牛(천우) 하나님의 역할로 출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江南의 第一人者의 역할이시고 白榜馬角(백방마각)의 주역으로 其竹其竹(기죽기죽)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竹馬二人(죽마이인)의 역할로 출현하는 白馬神將(백마신장)의 존재는 江北의 二人者로서 白馬 홈을 개설하고 나오는 주인공이라는 필자의 결론이다.

이러한 문장에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서는 其竹其竹(기죽기죽)의 주인공이 세계만방에 드러날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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