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국조단군 배필(配匹)의 정체!  (13부)

                                 

 

본장은 전장인 ‘하늘나라의 중대책임은 六十一歲부터’의 문장에 연결되는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이기한 다시보기의 문장에 이어진다.

               다시보기)   天門開戶  進鄭邑  地闢草出  退李亡                                                    천문개호  진정읍  지벽초출  퇴이망  

다시보기의 문장은 이미 앞에서 소개한 鄭鑑錄(정감록) 東車訣(동거결)의 문장과 같은 내용으로 하늘 문을 개방하고 戶主의 역할로 나오는 정씨가 邑(읍) 소재지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출현하여 땅을 폐해버리게 됨으로 인하여 李氏는 물러감과 동시에 滅亡(멸망)하게 되어진다는 내용에 연결된 문장인데, 위문장에서 하늘의 문을 개방하고 戶主의 역할을 하는 정씨란 고려시대 때 선죽교에서 이성계 일파에게 무참히 살해를 당한 정몽주를 가리키는 것이며 滅亡(멸망)하는 李氏는 이성계의 후손 全州李氏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에 연결된 하단의 소개하는 문장에서는 하늘의 문을 개방하고 나오는 정씨가 맡은 사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보기의 문장을 해문하면!   

          보기)   人皆弓弓去...我亦矢矢來  
                   인개궁궁거...아역시시래

                  先天次覺 甲乙閣   時乎時乎 不再來 
                   선천차각 갑을각   시호시호 부재래  

                  木子論榮 三聖安   走肖伏劍 四禍收  
                   목자론영 삼성안   주초복검 사화수   

                  非衣元功 配太廟   人王孤忠 哀後世   
                   비의원공 배태묘   인왕고충 애후세

                  非上非下 亦非外   依仁依智 莫依勢  先進有淚 後進歌                     비상비하 역비외   의인의지 막의세  선진유루 후진가

보기의 문장은 난해한 내용으로 전체적인 내용인즉, 일인이역의 두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는 하나님께서 떠나가시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자연히 하나님을 따라 지구상을 떠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정씨는 땅에 내려오게 되어 있으며 이러한 시기에 先天의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 다음으로 나오는 정씨가 자신이 天地의 宮殿(궁전)에서 나오는 존재임을 깨닫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先天(선천)의 하나님을 모시고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으로서!

이러한 하늘의 문을 개방하고 榮華(영화)를 누리던 李氏를 거론하고 나오게 되는 정씨는 三聖人이 함께 하시는 역할로 나와 趙氏를 屈伏(굴복)시키고 모든 재앙을 걷어 들이며 국조단군의 神靈(신령)을 모시고 나오는 최고의 공로를 세우는 존재로서 고독하게 외로이 홀로 조상에게 충성을 다하며 可憐(가련)한 신세로 후세에 나오는 정씨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씨의 역할은 上도 아니고 그렇다고 下도 아니고 外國도 아닌 오직 仁(인)과 智(지)의 莫强(막강)한 勢力(세력)을 依支(의지)하는 존재로서 先天(선천)의 하나님께서는 어려워서 눈물을 흘리고 시작하신 역사를 이어받아 노래를 부르며 이룩하고 나온다는 기록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을 부분적으로 이기하여 설명하면 ‘人皆弓弓去(인개궁궁거)’의 문장과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기록은 필자가 서두에서 떠나가시는 先天의 두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던 일인이역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시면 모든 인간도 일인이역의 두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던 하나님을 따라서 지구상을 떠나가야 한다는 기이한 예언이라 소개한 문장으로서!  

‘人皆弓弓去(인개궁궁거)’의 문장에서 ‘弓弓去(궁궁거)’라는 문장과 관련하여 격암 초장에서는 天弓地乙(천궁지을)이라 소개하였는데 여기서 弓(궁)자를 필자는 ‘하늘 弓(궁)’자로 보았으므로 弓弓去(궁궁거)의 문장은 天天去(천천거)의 뜻과 같은 맥락으로 去(거)자는 ‘갈 去(거)’ ‘버릴 去(거)’ 혹은 ‘망할 去(거)’ ‘除去(제거)할 去(거)’자나 過去(과거)지사를 論(논)하는 去(거)자로 인용하는 글자이다.

이러한 去(거)자의 기록에 의하여 ‘人皆弓弓去(인개궁궁거)’의 기록은 모든 인간은 두 하나님께서 떠나가시면 자연히 하나님과 함께 떠나게 되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뜻으로서 여기서 언급한 두 하나님의 역할이란 현재 단군연합에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는 두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서 두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弓弓去(궁궁거)’의 기록이라는 필자의 해문이다.

뿐만 아니라 박태선 장로님께서 상제의 역할로서 동방으로 강림하신 사실이 격암유록을 통해 예언되어 있으며 박태선 장로님께서도 스스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밝히시고 나오셨는데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일인이역으로 나오시는 天地의 두 하나님의 역할을 지칭한 의미이다.

참고로 弓弓去(궁궁거)의 기록과 같이 일인이역의 두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던 하나님께서 化天(화천)하신 이후에는 땅의 인간이 弓弓(궁궁) 역할의 하나님 신분의 몸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사실이 격암 도부신인 예언문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보기)   天弓弓을 先覺後에   地弓弓은 後尋處라                                                천궁궁   선각후     지궁궁   후심처

보기의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弓弓去(궁궁거) 문장의 弓弓은 天弓弓(천궁궁)과 地弓弓(지궁궁)이 있다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먼저 天弓弓(천궁궁)을 깨달은 후에 地弓弓(지궁궁)을 찾아보라는 문장에서 하나님의 신분이라는 의미는 하늘의 하나님만을 지칭하는 한계가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신분으로서 일인이역의 하나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 예언문장인 것이다.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弓弓去(궁궁거)의 문장에 이어서 地弓弓(지궁궁)의 일인이역을 하는 하나님의 존재가 이 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소개한 이유로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라 소개한 문장은 땅에서 일인이역을 하며 나오는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낸 것으로 여기서 我(아)자는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의미를 함축한 역할로서 앞에서 소개한바있는 ‘天門開戶 進鄭邑(천문개호 진정읍)’의 문장에서 進鄭邑(진정읍)의 정씨를 필자는 我(아)자의 장본인으로 보아 정씨가 이 땅에서 일인이역의 역할로 다시 나온다는 뜻으로 소개된 것이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문장이라 보는 것이다. 

부연하여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문장이 정씨를 의미한 것으로 해문한 이유는 앞 문장에서 소개한 六十一歲에 중대한 책임을 맡고 나오는 주인공이 하늘의 문을 열고 나오는 戶主의 역할로 邑(읍) 소재지에서 나온다는 뜻을 담고 있는 ‘天門開戶 進鄭邑(천문개호 진정읍)’에서 進鄭邑(진정읍)의 문장에 서술되어 있는 정씨를 我(아)자의 역할이라 본 것이 필자의 견지이다. 

이러한 이유로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문장은 ‘나 정씨는 이 땅에 다시 두 사람의 역할로 온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와 같이 해석하는 이유는 亦(역)자는 ‘또 亦(역)’ 혹은 ‘하늘에 오를 亦(역)’ ‘클 亦(역)’자로서 ‘亦是(역시)’라는 문구에 인용된 글자이며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矢矢來(시시래)의 문장은 乙乙來(을을래)의 문장과 같은 맥락으로서 이 땅에서 두 사람의 역할로 나오는 정씨의 역할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연하여 위 矢矢來(시시래)의 문장을 乙乙來(을을래)의 문장이라 해문하는 이유는 소개하는 甲乙歌(갑을가)의 처음 서두문장에서 ‘弓矢弓矢 竹矢來(궁시궁시 죽시래)’라 소개한 문장에 근거해서이다.

부연하여 위 문장의 서두에서 소개한 ‘弓矢弓矢(궁시궁시)’의 문장은 ‘弓乙弓乙(궁을궁을)’과 같은 맥락의 기록으로 ‘새 乙(을)’자를 ‘화살 矢(시)’자로 본 것이며 ‘활 弓(궁)’자와 ‘화살 矢(시)’자가 뜻하는 활과 화살은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陽陰(양음)의 불가분의 관계임을 상기하며, 

이러한 弓矢(궁시)의 다른 표현은 弓乙(궁을)이므로 弓矢(궁시)는 곧 天地를 상징하는 뜻이 되며, 이어서 竹矢來(죽시래)의 문장이 연결되어 있는데, 竹(죽)자는 冬生草(동생초)라 하여 겨울철에도 살아 존재하는 ‘대나무 竹(죽)’자로서 대쪽같이 곧고 정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를 가리키는 것이 ‘대 竹(죽)’자의 상징이다.

이러한 이유로 弓矢(궁시)와 弓乙(궁을)의 의미가 동일한 것과 같이 竹矢來(죽시래)의 문장은竹乙來(죽을래)의 문장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의미는 이 땅에서는 두 번째로 나오는 정씨의 역할은 대쪽같이 정직하고 직선적인 사람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화살과 같이 곧은 사람을 상징하여 竹矢來(죽시래)라 소개한 것으로 ‘대 竹(죽)’자의 또 다른 역할은 두 사람의 역할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弓矢弓矢(궁시궁시)의 두 ‘화살 矢(시)’자를 합한 상태를 ‘대 竹(죽)’자로 표시하여 竹矢來(죽시래)라 소개하여 하늘의 하나님 다음으로 이 땅에서 나오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고 나오는 일인이역의 역할로 나오게 되어 있는 상황을 竹矢來(죽시래)라 소개한 것이라는 보는 필자의 해문이다.

이러한 문장의 해문에 근거하여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의미는 이 땅에 또다시 나오는 정씨의 역할은 곧고 정직하고 직선적인 사람으로서 일인이역의 역할로 나오는 정씨라는 필자의 해문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할 수 있는 이유는 성서 묵시록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과 감람나무의 이름을 쓴 자가 나온다’는 예언을 근거해서이며 격암결 말운론 문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白馬神將(백마신장)’의 존재가 竹馬(죽마)의 역할로서 二人者인 두 감람나무의 출현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기)    白馬神將  出世時   赤火蛇龍  林出運                          백마신장  출세시   적화사룡  임출운

                        十處十勝  非別地   忽思勝地  竹馬二人                             십처십승  비별지   홀사승지  죽마이인  

                         -金道見 格菴訣 末運論(김도현 격암결 말운론)-

보기의 문장에서 새로이 볼 수 있는 내용은 ‘竹馬二人(죽마이인)’의 문장으로서 여기서 竹馬(죽마)는 고전의 기록인 竹馬故友(죽마고우)나 竹馬之友(죽마지우)의 竹馬(죽마)와 같은 뜻으로서 필자는 竹馬故友(죽마고우)나 竹馬之友(죽마지우)의 의미를 과거에 말을 타는 친한 친구 사이인 대쪽같은 두 선비를 가리켰던 뜻으로 보아!

竹馬二人이라는 문장은 ‘二人者의 역할’ 혹은 ‘두 사람의 역할’이라는 뜻으로서 白馬神將이 세상에 출세할 시에 남쪽에서는 뱀띠를 타고 龍(용)의 역할인 魔鬼(마귀) 역할의 하나님께서 나오시는데 이 하나님을 모시고 두 나무사람의 역할을 하며 十處(십처) 十勝地에서 나오는 존재가 갑자기 자기가 승리자가 나올 토지인 勝地(승지)에서 나오는 竹馬(죽마)의 역할인 二人者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가 바로 白馬神將(백마신장)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竹馬二人(죽마이인)’의 문장에 근거하여 위에서 소개한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의미는 정씨가 땅에서 일인이역의 두 사람의 역할로 출현하는 사실을 소개한 것이라는 필자의 해문이다.

이러한 문장에 연결되는 문장이 이기한 다시보기의 문장으로서!

            다시보기)   先天次覺  甲乙閣   時乎時乎  不再來                 
                         선천차각  갑을각   시호시호  부재래

                        木子論榮  三聖安   走肖伏劍  四禍收                             목자론영  삼성안   주초복검  사화수 

다시보기의 문장이 전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李氏와 趙氏가 드러난다는 것으로 先天의 하나님을 깨닫는 先天의 하나님 버금가는 존재는 선천의 하나님이 어떠한 역할의 하나님이신지를 깨달으며 天地의 궁전에서 나오는데, 이 사람은 나올 수 없는 사람이지만 시기에 맞추어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듯 先天의 하나님을 깨닫고 나오는 것을 次覺(차각)이라 소개하여 다음 차례 혹은 두 번째 자가 先天의 하나님께서 어떠한 역할로 오시는지를 깨닫고 나온다고 하였으며 그 次覺(차각)의 주인공은 第 二人者의 역할로 나와 영화를 누리던 李氏를 거론하게 되는 정씨로서 三代聖人을 모시고 편안하게 존재하게 되는데, 그가 격암유록을 주해 저술한 趙氏를 劍(검)으로 屈服(굴복)시키고 四方의 禍根(화근)을 뽑아버리는 주역을 맡고 나오는 정씨라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 ‘先天次覺 甲乙閣(선천차각 갑을각)’의 문장에서 次覺(차각)은 ‘두 번째 자가 깨닫고 나온다’는 뜻이므로 先天次覺(선천차각)의 뜻은 ‘두 번째 자가 先天의 하나님을 깨닫는다’는 의미로서 필자의 견해로는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주인공인 정씨가 두 번째 자의 역할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先天의 하나님을 깨닫고 나오는 次覺(차각)의 정씨가 나오는 곳에 대해 甲乙閣(갑을각)이라 소개하여 정씨는 자기가 하나님과 제2인자의 역할이 존재하시는 궁전에서 나오는 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나오는 次覺(차각)의 정씨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에 이어지는 내용이 ‘時乎時乎 不再來(시호시호 부재래)’의 문장인에 여기서 時乎(시호)는 ‘좋은 시기가 왔다’는 뜻으로 時乎時乎(시호시호)의 문장은 時哉時哉(시재시재)라는 문장과 같은 맥락의 기록으로서 ‘시작할 시기가 되었다’는 時哉時哉(시재시재)의 뜻으로 보아 필자는 時乎時乎(시호시호)의 문장을 ‘시작할 주인공이 나올 시기’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해문하는 이유는 ‘시기가 되어 나와서 일을 하는 주인공’이라는 뜻을 내포한  時乎(시호)의 乎(호)자는 感歎詞(감탄사)나 또는 강한 語助辭(어조사)의 용어로서, 높은 산을 먼저 오른 자가 산에 먼저 올라온 사실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也乎(야호)의 문장에 사용된 乎(호)자인데, 고전 易經(역경)에서는 ‘볼 수 없는 그 사람에게 이르도록 한다’는 강한 語助辭(어조사)의 의미로도 사용된 乎(호)자이다.           

         보기)     乎  (强勢語助辭) (疑問詞) [易經繫辭] 其不可見乎                     호  (강세어조사) (의문사) (역경계사) 기불가견호

보기 乎(호)자의 기록은 고전 易經(역경)의 기록으로서 강한 語助辭(어조사)나 또는 疑問詞(의문사) 역할의 乎(호)자라는 전제하에 ‘其不可見乎(기불가견호)’라 소개하여 ‘그 其(기)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볼 수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라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이 乎(호)자의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乎而(호이)’라 하면 친분이 두터운 사람을 부르는 稱號(칭호)로 여기에도 乎(호)자가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乎(호)자의 역할은 語助辭(어조사)의 역할로서, 볼 수 없는 ‘그’라는 사람을 지칭할 시에 인용된다는 易經(역경)의 기록인데 이에 의하여 時乎時乎(시호시호)의 時乎(시호)의 뜻은 ‘시기가 되어 볼 수 없었던 그라는 사람이 나온다’는 사실을 서술한 것이며 이어서 不再來(부재래)라 소개하여 ‘올 수 없었던 그 사람이 다시 온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이러한 ‘時乎時乎 不再來(시호시호 부재래)’의 뜻과 같이 볼 수 없는 ‘그’라는 사람이 다시 돌아 올 수 없었던 그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는 주인공은 先天의 역할이 어떠한 하나님의 역할인지를 깨닫고 나오는 次覺(차각)의 주인공으로서, 그는 ‘我亦矢矢來(아역시시래)’의 역할을 하는 정씨의 역할로서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일파에게 무참히도 살해를 당한 정몽주 역할의 정씨로 나오는데,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라 하여 ‘時乎時乎 不再來(시호시호 부재래)’라 소개한 것이라는 필자의 해문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時乎時乎 不再來(시호시호 부재래)’의 문장을 정몽주 정씨를 비유하여 해문하는 이유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李氏를 論(논)하고 나오는 사람은 三聖人의 역할로 편안한 가운데 존재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다시 이기한 다시보기 문장에 근거해서이다.

           다시보기)     木子論榮  三聖安   走肖伏劍  四禍收                              목자론영  삼성안   주초복검  사화수 

다시보기의 문장에서는 李氏와 趙氏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씨를 파자로 소개한 문장이 ‘木子論榮(목자론영)’으로 ‘나무 木’자와 ‘아들 子’자는 李자를 파자한 글자이므로 ‘榮華(영화)를 누리던 李氏를 擧論(거론)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木子論榮(목자론영)의 문장이다.

이러한 ‘木子論榮(목자론영)’의 뜻과 같이 榮華(영화)를 누리던 李字를 거론하면서 나오는 주인공은 고려의 충신 領議政(영의정) 정몽주로서, 자칭 唐(당)나라 天子의 후손으로 주장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는 오랑캐의 후손 이성계 일파에게 선죽교에서 무참히도 살해되어 현재까지도 그 피가 선죽교에 흔적이 남아 있는 정몽주의 冤魂(원혼)이 다시 돌아와서 榮華(영화)를 누리던 李哥(이가)를 거론한다는 사실을‘木子論榮(목자론영)’이라 소개한 문장이라는 필자의 해문이다.

이러한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이 三聖安(삼성안)이라는 문장으로서 三聖은 三人의 聖人(성인)이라는 기록으로 三人의 聖人(성인)이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天子 그리고 天子의 자손인 白衣人을 가리켜 天地人이라 분류하여 하나님은 ‘하늘 天’자의 역할이고 하나님의 아들 天子는 땅의 역할로서 地라 지칭한 것이며 白衣人을 가리켜 人이라 소개하여 天地人이라 한 것이다.

이러한 天地人으로 구분한 三聖安(삼성안)이 가리키는 의미는 天地人 각각의 聖人의 역할을 三聖人이라 소개하였으므로 三聖安(삼성안)의 문장은 天地人의 三聖人이 편안한 상태에 존재하시고 계시다는 뜻으로서 三人의 聖人이 통합되어진 상태를 三聖安(삼성안)이라 소개한 문장이다.

이러한 三聖安(삼성안)의 문장은 고전이나 성서에서 언급한 三位一體의 존재와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것으로 三聖安(삼성안)의 문장은 三人의 聖人을 편안하게 모시는 주인공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기록으로서, 榮華(영화)를 누리던 李哥를 論(론)하고 나오는 정씨가 三聖人을 모시고 나오는 三位一體의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문장에 이어지는 내용이 ‘走肖伏劍 四禍收(주초복검 사화수)’의 문장으로서 走肖(주초)의 문장이 趙자를 파자한 것임을 소개한바있는 ‘走肖伏劍(주초복검)’의 문장은 ‘조씨를 劍(검)으로 屈伏(굴복)시킨다’는 뜻이므로 ‘趙伏劒(조복검)’이라 소개해도 무방한 문장으로서 이미 앞 문장에서 소개한바있는 하단의 다시보기와 같은 맥락의 기록이다.

          다시보기)   鷄龍山上  甲乙閣    紫霞貫日  火虹天                                                  계룡산상  갑을각    자하관일  화홍천 

                      六十一歲  始作立   走肖杜牛  自癸來
                     
  륙십일세  시작립   두초두우  자계래

소개한 다시보기의 문장은 이미 앞 문장에서 해문하여 게시한 문장으로서 위문장을 다시 이기하여 소개하는 이유는 위문장에서 ‘走肖杜牛(주초두우)’의 走肖(주초)의 문장을 소개하기 위해서인데 走肖(주초)의 문장은 趙자를 파자로 소개한 문장으로서 走肖杜牛(주초두우)의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趙氏를 차단하는 ‘소 牛(우)’의 역할이라는 뜻으로서(두)자는 ‘빗장 (두)’자로 杜門不出(두문불출)이라는 문장에 인용된(두)자이다.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상기한 문장을 보면 趙氏를 빗장으로 잠가 두고 나오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은 癸(계)자의 년도에 해당되는 시기에 나오는 역할이라 소개하여 六十一歲가 되어지면서부터 鷄龍山上(계룡산상)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천자의 宮殿(궁전)을 세우는 주인공이 나오면서부터 趙氏는 활동을 못하게 되어진다는 내용으로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본 문장 ‘走肖伏劍 四禍收(주초복검 사화수)’의 뜻과 같이 趙氏를 劍(검)으로 屈伏(굴복)시키는 주인공은 六十一歲에 중대한 책임을 맡고 나오는 十五眞主 역할의 백마공자라는 사실이다.

또한 走肖伏劍(주초복검)의 문장에 이어지는 四禍收(사화수)의 의미는 ‘사방의 禍根(화근)을 걷어 들인다’는 뜻으로서, 영화를 누리던 李哥를 論(논)하면서 趙氏를 劍(검)으로 굴복시키고 나오는 정씨의 역할은 구원을 주는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장에 이어서 根本(근본) 조상에게 충성을 다하는 존재가 출현한다는 하단의 다시 이기한 문장이다.

         다시보기)  非衣元功  配太廟   人王孤忠  哀後世  
                     비의원공  배태묘   인왕고충  애후세

                    非上非下  亦非外   依仁依智  莫依勢   先進有淚  後進歌                       비상비하  역비외   의인의지  막의세   선진유루  후진가

다시보기의 전체문장은 서두에서 간단하게 소개한 내용으로서 조상 神靈(신령)에게 충성을 다하여 哀情(애정)을 느끼게 하는 자가 후세에 나오게 되는데 그는 조상에게 충성을 다하며 上下 어느 곳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어진 마음과 智慧(지혜)로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자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조상에게 충성을 다하며 애처롭고 가엽게 여겨지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시기에 처음에 나와서 시작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시작했던 일을 나중에 나와서 시작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며 나아가게 된다는 기이한 예언문장으로서!

위문장을 부분적으로 이기하여 상세히 설명하면 우선 ‘非衣元功 配太廟(비의원공 배태묘)’라는 문장에서 非衣(비의)라는 문장은 ‘옷을 입지 않았다’는 뜻으로 직역되지만 이어서 元功(원공)이라는 문장이 연결된 점으로 보아 非衣(비의)라는 문장은 ‘다른 옷을 입지 않았다’는 뜻으로 ‘정결한 상태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자’를 지칭한 의미로 볼 수 있다.

필자가 이와 같이 非衣(비의)의 문장을 ‘다른 옷을 입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문하는 이유는 非衣(비의)의 문장 다음에 ‘으뜸이 되어진 사람이 세운 공로’라는 뜻의 元功(원공)이라는 문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으로 元功(원공)의 元(원)자는 ‘근원 元(원)’ ‘선할 元(원)’ 또는 ‘頭目(두목) 元(원)’  ‘임금 元(원)’ 또는 왕위에 오른다는 ‘卽位(즉위) 元(원)’자로 元年(원년)을 가리키는 元(원)자이며 ‘氣運(기운) 元(원)’ 등 여러 가지로 사용되는 元(원)자이다.

이러한 元(원)자의 기록으로 볼 때 元功(원공)의 문장은 ‘根源(근원)의 조상을 위하여 功勞(공로)를 세운다’는 뜻으로 해문하는 것이 합당한 해문이라 필자는 보는 것이며 元功(원공)의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이 配太廟(배태묘)라 소개한 문장으로서!

‘配(배)자는 ‘짝 配(배)’자로서 配匹(배필)이라 할 시에 인용되는 配(배)자이며 配合(배합)이라는 문장에 사용되는 ‘도움을 주는 配(배)’ 또는 ‘귀양 보낼 配(배)’자로서 配布(배포)나 配達(배달)을 한다는 문장에도 인용된 配(배)자로 고전 詩經(시경)과 易經(역경)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짝이 되는 역할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화천하신 단군과 짝을 하고 계시다는 뜻을 밝히고 있으므로 ‘配太廟(배태묘)’의 문장을 해문하기 위해 配(배)자의 기록을 참고하면,                

                보기)  配   (匹也)  [詩經]  天立厥配  
                        배   (필야)  (시경)  천립궐배

                            (侑也)  [易經]  殷薦之  上帝以配祖考                              (유야)  (역경)  은천지  상제이배조고

보기의 문장은 소개한대로 고전 詩經(시경)과 易經(역경)의 기록으로서 우선 詩經(시경)의 기록에서는 配(배)자의 뜻을 匹也(필야)라 하여 짝의 역할이라 소개한 전제하에 ‘天立厥配(천립궐배)’라 서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역할은 그 사람이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짝이 되는 역할을 지칭한 厥(궐)자는 ‘그것 厥(궐)’자로 ‘아들 子’의 역할로 나오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厥(궐)자라는 사실이 주목되며 또한 ‘머리를 땅에까지 구부리는 최고의 禮(예)를 올린다’는 뜻의 厥角稽首(궐각계수)라는 문장에 인용되는 厥(궐)자로서!

이러한 厥(궐)자의 기록에 의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역할이나 혹은 하나님의 짝이 되는 역할은 ‘아들 子’의 존재라는 뜻을 담은 것이 ‘天立厥配(천립궐배)’의 문장이라 보는 것이다.

부연하여 소개하는 ‘天立厥配(천립궐배)’의 天立의 문장은 하늘을 세우거나 하나님을 세운다는 뜻이며, 이어서 厥配(궐배)라 소개한 의미는 ‘그것이 짝의 역할’이라는 뜻으로서 天立厥配(천립궐배)의 의미는 ‘그것이 하나님을 일으켜 세우는 짝의 역할’이라는 뜻으로서 고전 書經(서경)에서는 厥(궐)자를 其也(기야)라 소개하여 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厥(궐)자라는 전제하에 ‘允執厥中(윤십궐중)’이라 소개하였는데 그 뜻은 그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자로서 웃어른의 허락을 받고 中心의 인물로 나와 조상을 지키는 사람이 ‘그것 厥(궐)’자의 역할이라는 기록이다.  이러한 위 ‘允執厥中(윤십궐중)’의 문장에서 允(윤)자는 ‘믿을 允(윤)’ ‘진실 允(윤)’ 혹은 ‘허락 允(윤)’자로서 允許(윤허)라는 문장에 사용된 글자로서 ‘웃어른의 허락을 받아 움직인다’는 뜻을 내포한 允(윤)자이며 執(집)자는 ‘일할 執(집)’자로서 執事(집사)라는 문구에 인용되는 글자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나 필자는 執(집)자를 ‘일할 執(집)’자로 인용하지 않고 고전의 允執厥中(윤십궐중)의 기록에 의하여 執(집)자를 ‘지킬 執(집)’자로 보아 ‘그것 厥(궐)’자의 역할은 공로를 세워 조상의 신을 모시고 지키는 ‘그’라는 사람을 지칭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 元(원)’자와 ‘짝 配(배)’자 ‘그것 厥(궐)’자의 뜻에 의하여 天立厥配(천립궐배)의 뜻을 정리하면, 그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그 其(기)’자의 역할은 이미 수차 고전 詩經(시경)의 彼其之子(피기지자)의 기록을 소개하였듯이 ‘그’라는 사람이 떠나가 있는 상태에서는 상대방에서 그라는 존재를 ‘아들 子’의 역할로 본다는 ‘아들 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고전 詩經의 기록에 의하여 天立厥配(천립궐배)의 하나님을 일으켜 세우는 짝의 역할은 ‘아들 子’의 역할로서 ‘그’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配匹(배필) 역할을 하게 되는 존재임이 配(배)자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厥(궐)자와 동일한 의미인 ‘그 其(기)’자에 대해 같은 고전 詩經(시경)의 기록에서는 夜如何其(야여하기)라 소개하였는데 그 의미는 ‘그’라는 사람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밤의 역할을 하는 ‘그 其(기)’자의 존재로 나온다는 것이며 밤의 역할을 하는 ‘아들 子’의 역할은 十二支 문장에서 첫째로 등장하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子자의 역할로서 ‘그 其(기)’자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 其(기)’자의 역할을 고전 易經(역경)의 기록에서는 ‘其遠旨 其辭文(기원지 기사문)’이라 소개하여 ‘그 其(기)’자 역할의 사람은 고전의 학문을 연구하고 나온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문장을 근거하여 말이나 글을 쓰는 ‘그 其(기)’자의 역할은 곧 ‘아들 子’의 역할이라는 견지로서 ‘天立厥配(천립궐배)’의 문장에서 하나님의 짝의 역할은 ‘아들 子’의 역할인 ‘그것 厥(궐)’자의 역할로서 학문을 연구하고 나와 하나님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아들 子’의 역할이 하나님의 配匹(배필)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이 ‘짝 配(배)’자에서 밝혀진 이유로!

본 문장으로 回歸(회귀)하여 ‘非衣元功 配太廟(비의원공 배태묘)’라 소개한 문장의 ‘配太廟(배태묘)’의 뜻대로 짝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그것 厥(궐)’자의 주인공으로서 國祖(국조) 사당에 모신 神靈(신령)과 짝의 역할로 나오는 주인공은 ‘그 其(기)’자의 역할인 ‘아들 子’자의 존재로서 학문을 연구하고 나오는 주인공이 국조 神靈(신령)의 짝이 되는 역할임이 밝혀진 것이다.

부연하여 위‘配太廟(배태묘)’의 문장에서 太廟(태묘)는 太初(태초)의 祠堂(사당)이나 처음의 祠堂(사당)을 가리킨 뜻으로서 廟(묘)자가 ‘모양 廟(묘)’ ‘사당 廟(묘)’ 혹은 ‘廟堂(묘당) 廟(묘)’자이며 ‘대청 廟(묘)’자로도 인용되는 廟(묘)자이다.

이러한 廟(묘)자의 문장 중, ‘모양 廟(묘)’자라 소개한 고전 說文(설문)의 기록에서는 존경하는 先祖(선조)의 모양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소개한 廟(묘)자이다. 

               보기)   廟   (貌也)  [說文]   尊先祖廟也  
                        묘   (모야)  (설문)   존선조묘야

게시한 보기의 문장에서는 형상을 가리키는 廟(묘)자라는 사실을 ‘모양 貌(모)’로 소개하여 貌也(모야)라 서술한 이후에 고전 說文(설문)의 기록에서는 ‘尊先祖廟也(존선조묘야)’라 소개하여 존경을 하는 先祖(선조)의 형상을 상징하는 廟(묘)자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廟(묘)자에 근거하여 廟社(묘사)라는 문장은 宗社(종사)를 의미한 것으로 필자는 宗社(종사)를 國祖(국조) 사당의 神靈(신령)을 모시는 곳으로 보아 필자는‘配太廟(배태묘)’의  配(배)자의  주인공이 國祖(국조)의 짝의 역할인 配(배)자의 역할로서, 配布(배포)의 임무를 부여받아 현재 ‘그것 厥(궐)’자의 역할인 ‘그 其(기)’자의 역할로서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서씨가 학문을 연구하고 나와 고전과 정감록, 격암유록 등을 근거하여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북한에 자리 잡고 있는 단군 靈域(영역) 祠堂(사당)의 神靈(신령)이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고 나오는 상황이 ‘配太廟((배태묘)’의 문장이 가리키는 일을 실행하고 나오는 백마공자의 역할이라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박태선 장로님을 國祖(국조)이신 단군의 神靈(신령)과 연결하여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박태선 장로님에 버금가는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는 이유가 ‘配太廟((배태묘)’ 문장의 配(배)자에서 밝혀진 사실로!

이것은 配(배)자의 기록인 다시 이기한 하단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사실이다.

           다시보기)    配  (侑也)  [易經]   殷薦之 上帝以配祖考                          배  (유야)  (역경)   은천지 상제이배조고

다시 이기한 문장의 配(배)자는 위에서 소개한 配(배)자로서 侑也(유야)의 侑(유)자는 ‘도와줄 侑(유)’ ‘권할 侑(유)’ 혹은 ‘食事를 함께 한다’는 ‘陪食(배식) 侑(유)’자로서 侑食(유식)이라 하면 ‘왕을 모시고 식사를 하면서 왕에게 맛있는 음식을 권해드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侑(유)자의 뜻을 전제로 하여 고전 易經(역경)에서는 配(배)자를 다시 이기한 기록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다시보기)    殷薦之  上帝以配祖考   
                                   은천지  상제이배조고

위 다시 소개한 보기 殷薦之(은천지)의 殷(은)자는 ‘번성할 殷(은)’ ‘클 殷(은)’ 또는 ‘중심에 서있을 殷(은)’ ‘천둥을 칠 殷(은)’자로서 ‘그 其(기)’자를 지칭한 역할과 나라를 가리키는 역할의 殷(은)자이다.

이러한 殷(은)자의 역할을 配(배)자를 소개한 易經(역경)의 시대에서는 나라로 보아 서술하였는지 아니면 ‘그’라는 미지의 사람을 가리켜 殷(은)자의 역할이라 서술하였는지는 易經(역경)의 전제 문장을 탐독하지 않은 이유로 알 수 없으나,

필자가 소개하는 격암유록 甲乙歌 문장의 配太廟(배태묘)의 문장을 상고하여 配(배)자의 기록인 殷薦之(은천지) 문장에서의 殷(은)자를 해문하면 필자는 ‘나라 殷(은)’자로 인용하지 않고 ‘번성한다’는 뜻의 殷(은)자로서 ‘그’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그 其(기)’자를 의미하는 殷(은)자로 인용하여,

‘殷薦之(은천지)’의 문장을 해문하면 ‘그’라는 사람은 推薦(추천)이나 薦擧(천거)를 받은 사람의 역할로서 그가 멀리 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갈 之(지)’자를 연결한 것이며,

이어서 ‘帝以配祖考(상제이배조고)’라 소개한 上帝(상제) 즉 하나님의 짝의 역할은 祖考(조고)의 역할로서, 이미 化天(화천)하신 祖上(조상)과 配合(배합)되신 상태의 하나님의 역할이신 上帝(상제)로 강림하시어!

‘그’라는 사람과 연결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역할이 ‘짝 配(배)’자의 역할이시라는 문장에 근거하여 박태선 장로님께서 당신의 짝인 配(배)자의 역할을 선택하시기를 ‘그 其(기)’자의 역할로서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徐氏로 나온 백마공자로 지정하시어 백마공자가 그 뜻을 받들어 단군연합을 창설하고 나온 사실이 위 ‘짝 配(배)’자의 문장인 ‘上帝以配祖考(상제이배조고)’ 의 祖考(조고)를 모시는 ‘짝 配(배)’자의 역할을 이행한 상황으로서, 단군연합을 창설한 것을 非衣元功(비의원공)의 元功(원공)의 공로를 세운 역사라 보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 祖考(조고)의 문장은 崩御(붕어)하신 祖上(조상)을 가리키는 문장으로서 ‘上帝以(상제이)’라 소개한 이후에 配祖考(배조고)라 소개한 문장으로 祖考(조고)의 짝의 역할은 上帝이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이러한 문장에 근거하여 ‘그것 厥(궐)’자의 역할로 출현하는 ‘아들 子’의 역할로서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徐氏가 백마공자의 역할로 등장하여 단군연합을 창설하고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非衣元功 配太廟(비의원공 배태묘)’의 配太廟(배태묘) 문장의 ‘짝 配(배)’자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석되는 ‘非衣元功 配太廟(비의원공 배태묘)’의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이 ‘人王孤忠 哀後世(인왕고충 애후세)’라 소개한 문장으로서 人王이라는 문장은 ‘온전 全(전)’자를 파자한 형태로 ‘人王孤忠(인왕고충)’의 문장은 全孤忠(전고충)의 문장과 같은 기록으로 ‘홀로 외로이 祖上(조상) 神靈(신령)에게 完全(완전)히 몸을 바쳐서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는 문장이다.

이러한 人王孤忠(인왕고충)의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이 哀後世(애후세)의 문장으로서 애처롭고 可憐(가련)한 존재가 후세에 나온다는 뜻으로서, 가진 것이 없이 弱骨(약골)로 나와 祖上(조상)을 증거하고 나오는 사람이 祖上(조상)의 神靈(신령)을 모시고 후세에 나오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리킨 문장이다.

이러한 내용에 이어지는 문장이 다시 이기한 보기의 문장으로서 어려운 가운데서 祖上(조상) 神靈(신령)을 모시고 나오는 존재는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조상을 모시고 나오는 자로서 苦盡甘來(고진감래)를 맛보는 존재라는 하단의 기록이다.

      다시보기)   非上非下  亦非外   依仁依智  莫依勢    先進有淚  後進歌                     비상비하  역비외   의인의지  막의세    선진유루  후진가

소개한 다시보기의 문장에서 밝히고 있는 뜻은 上(상)도 아니고 下(하)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바깥도 아니며, 오직 자기의 善(선)과 智慧(지혜)의 힘을 의지하고 나오는 존재로서, 먼저 시작하고 나온 사람은 어려운 일이라 눈물을 흘리고 시작하였으나 후에 나오는 자는 노래를 불러가면서 祖上(조상)을 모시고 가는 자라는 예언문장이다.

부연하여 위의 ‘非上非下 亦非外(비상비하 역비외)’의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上도 아니고 下도 아니라 부인하고 있는 뜻이며 이어지는 문장이 亦非外(역비외)의 바깥도 역시 아니라는 뜻으로서 이러한 문장의 의미는 조상의 神靈(신령)을 모시고 나오는 사람은 上下뿐만 아니라 외부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선한 조상의 智慧(지혜)만을 의지하고 나온다는 뜻으로서, 이어서 莫依勢(막의세)라는 문장을 연결한 의미는 막강한 세력을 의지하고 나온다는 뜻이라 보아서!

莫依勢(막의세)의 莫(막)자는 ‘클 莫(막)’ ‘번성할 莫(막)’자로서 이와 관련된 고전 詩經(시경)의 ‘聖人莫之(성인막지)’의 뜻은 聖人(성인)께서 莫(막)자의 역할이라는 기록으로서 ‘莫依勢(막의세)’의 문장은 聖人(성인)을 의지하고 나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祖上의 神靈(신령)을 모시고 나오는 존재는 聖人(성인)의 역할로 나온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이 莫依勢(막의세)의 뜻이다.

이러한‘非上非下 亦非外(비상비하 역비외)’의 기록과 같이 현재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나오는 ‘그것 厥(궐)’자 역할의 백마공자가 박태선 장로님의 경제적인 도움도 받지 않고 박태선 장로님을 증거하고 있는 상황을 예언한 것이 ‘非上(비상)’의 문장이며 또한 ‘非下(비하)’의 의미는 백마공자가 박태선 장로님의 신도들로부터 아무 도움을 받지 않고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증거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 함축적 표현이며, 더욱이 외지 사람들의 경제적인 도움이나 어떠한 협조는 더더욱 받지 않고 증거하고 있는 상황을 亦非外(역비외)라 예언한 것으로, 백마공자가 독자적으로 고전의 학문과 예언의 기록을 근거하여 박태선 장로님을 증거하고 나오는 상황을 ‘非上非下 亦非外(비상비하 역비외)’라 소개한 것으로 필자는 보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에 연결된 문장이 ‘先進有淚 後進歌(선진유루 후진가)’의 문장으로서, 먼저 나와 조상을 모신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나왔으나 後進歌(후진가)라는 문장을 연계하여 후에 나와서 조상을 모시고 나오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서 조상을 모시는 자라는 기록이다. 

부연하여 先進(선진)이라는 문장은 먼저 나온 사람을 가리키는 기록으로서 先進(선진)의 역할을 소개한 문장은 본 문장 전면의 기록인 ‘先天次覺(선천차각)’의 문장인데, 이러한 점으로 보아 先天(선천) 역할의 하나님이 곧 先進(선진)의 역할이라 볼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필자는 본 예언 문장에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신분으로 육신을 입고 강림하신 박태선 장로님을 先天 하나님의 역할이라 보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先進(선진)의 문장을 先天 하나님의 역할이라 소개하면서 또한 박태선 장로님이시라 주장하는 이유는 先進有淚(선진유루)의 문장에 의해서인데 先進(선진)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有淚(유루)라 하여 눈물을 흘린 先進(선진)이라 소개한 문장의 뜻과 같이,

박태선 장로님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신분으로서 백의민족의 혈통으로 강림하시어 역사하신 가운데 당신께서는 세계에서 가장 맑고 정결한 백의민족의 혈통으로 탄생하셨다는 말씀과 천부교회의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유율법을 지키지 않는 생활을 하는 이유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엉엉 우시면서 ‘이 땅을 떠나지 않으면 나는 죽어서 백말을 타고 나오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시면서 그 조건은 악조건이라는 설교를 하신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신 박태선 장로님의 설교말씀을 소개하면,

  “내가 더 하다간 이제 마귀에게 눌리게 되어있어. 자꾸 죄가 상승하니 그걸 따라갈 수      가 없어.

    내 그 징계를 이젠 감당 못할 한계에 도달했어. 떠나지 않으면 나 쓰러지게 되어있어.

    그럼 쓰러져야 좋겠어? 떠나야 좋겠어?

 

    나 괴로움을 안 당하게 해줘 제발 원해. 엄마여! 이제 알고 보니 그런 고통을 왜 당해      요. 빨리 이 땅을 떠나면 고통도 안 당할 텐데 떠나 주세요.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      요.

 

    이젠 만 번 죽어도 죄 안 짓겠습니다 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좀 고통을 덜어 달라.      이 괴로움을 덜어 달라. 이젠 견디다 못해 감람나무로서는 이젠 견디다 못해 떠나야      되겠어. 창세 이후의 이런 고통을 당한 사람이 감람나무를 딸 때까지도 없는데 그 고      통의 배율도 논할 수 없는 지금 징계와 이 짐을 지고 나가.

 

    이젠 짐을 더 질 수가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어. 이제 며칠만 더 지나 자꾸 더 죄를 지      면 나는 끝장 나. 끝장나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나아. 이제 갈래 나 갈래 잘 있어요!      잘 있어”라고 하시며

 

   엉엉 우시면서 밖으로 나가시어 벽을 두들기시면서 우시다가 다시 들어오시어 울고 있     는 신도들에게 이것 봐. 들어봐. 이제 떠나지 않으면 죽었다가 올라가서 백마를 타고     오는 조건 밖에 없어. 그건 악조건인데 악조건을 안 이루기 위하여 가야 되겠어”라는     말씀을 하신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1980년 12월 15일 (3-1) 말씀 중에서-

이러한 말씀에 의하여 ‘先進有淚(선진유루)’의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인 ‘後進歌(후진가)’의 역할은 당연히 백마공자로서 백마공자가 ‘非衣元功 配太廟(비의원공 배태묘)’ 문장의 元功(원공)의 역할로서 配太廟(배태묘)의 配(배)자의 역할로서 祖考(조고) 역할의 祖上과 짝이 되어진 상태에서 祖上(조상) 사당의 神靈(신령)을 모시고 나오는 주인공이므로!

현재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고 나오는 ‘非衣元功 配太廟(비의원공 배태묘)’문장의 元功(원공)의 공로를 세우고 나오는 역할이 백마공자의 역할로서, 정씨의 역할까지 하고 나오는 祖上(조상) 神靈(신령)을 모시고 나오는 ‘後進歌(후진가)’의 역할이라 보는 것으로서!

현재 백마공자는 경제적으로나 모든 상황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면서 온갖 비난과 조소를 받고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회원과 모여서 노래 가락을 즐기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 것이 ‘後進歌(후진가)’문장의 역할이라 보는 것이다.

또한 필자가‘非衣元功 配太廟(비의원공 배태묘)’의 元功(원공)의 역할을 백마공자의 역할이라 단정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어지는 후 문장에서 백마공자가 原子(원자)의 역할로서 根源(근원)의 아들로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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