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混沌(혼돈)된 천지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해 나온 그 사람 (1부-3)
 

     


 


전장의 ‘飛火落地 混沌世(비화락지 혼돈세)’의 문장에서의 混沌(혼돈)된 상태를 상세히 구분하기 위하여 추가로 混沌(혼돈)의 문장을 설명하려 한다. 우선 한자대자전의 기록에서 混沌(혼돈)이 되어 있는 상태를 어떻게 서술하였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한자를 소개한다.

 

한자 고전의 기록에서는 보기와 같이 두 가지의 물체가 섞여 있는 것이 아직 갈라지지 않은 상태에 있는데 그것은 계란의 속과 같은 모양을 비유한 것이라 하였다.

 

        보기) 混沌  [雲笈七籤]  昔二儀未分之時   (中略)   如鷄子狀 名曰混沌

              혼돈  (운급칠첨)  석이의미분지시   (중략)   여계자상 명왈혼돈

 

                    [神異經]  崑崙有惡獸 名曰混沌

                    (신이경)  곤윤유악수 명왈혼돈

 

소개하는 보기의 문장과 같이 混沌(혼돈)되어 있는 것은 예전부터 두 가지가 서로 의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직 갈라지지 않은 상태에 있는 계란의 속과 같은 모양을 混沌(혼돈)이라 칭한다는 고전 雲笈七籤(운급칠첨)의 기록이다.

 

위문장 如鷄子狀(여계자상)의 鷄子(계자)는 계란을 지칭하는 문장으로 흰자위에 노른자위가 자리 잡고 있는 계란 속을 混沌(혼돈)된 상태로 본 것이다.

 

混沌(혼돈)된 상태를 표현한 또 다른 고전 神異經(신이경)의 기록에서는 崑崙(곤륜)에 존재하던 邪惡(사악)한 짐승의 모양이 混沌(혼돈)되어있는 모양이라 하였다.

 

위문장에서 崑崙(곤륜)의 문장은 崑崙山(곤륜산)의 略字(략자)로서 아름다운 玉(옥)이 존재하며 西王母(서왕모)가 살고 있었다는 靈山(영산)을 崑崙(곤륜)이라 한다는 기록이다.

 

이 混沌(혼돈)의 문장에서 밝혀지는 것은 계란같이 흰자위와 노른자위가 공존하고 있으면서 아직 갈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를 混沌(혼돈)이라 한다는 것이며 또한 崑崙山(곤륜산)에서 살던 사악한 짐승인 惡獸(악수)의 존재가 混沌(혼돈)되어 있는 모양이라는 고전 神異經(신이경)의 기록이다.

 

이와 같이 混沌(혼돈)되어 있는 상태를 계란에 비유한 混沌(혼돈)의 문장과 또한 神異經(신이경)의 기록에서의 崑崙山(곤륜산)에 존재하는 사악한 짐승인 惡獸(악수)가 混沌(혼돈)되어 있는 상태라는 두 가지의 문장을 소개한 것이다.

 

두 가지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西王母(서왕모)가 사는 崑崙山(곤륜산)에 존재하는 惡獸(악수)의 사악한 짐승의 역할을 필자는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인간으로 본다.

 

부연하여 靈山(영산)은 神靈(신령)이 존재하는 山을 지칭한 것인데 西王母(서왕모)가 존재하던 崑崙山(곤륜산)이 靈山(영산)이라면 靈山(영산)에 惡獸(악수)가 존재했다는 것이 의아한 일이나 이것을 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에덴동산에 마귀의 역할을 했던 뱀의 존재가 함께 거하고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면 이와 같은 맥락의 일로서 靈山(영산)인 崑崙山(곤륜산)에 있던 사악한 짐승의 역할인 惡獸(악수)의 존재는 현실에서 인면수심의 역할을 하는 强姦(강간)과 殺人强盜(살인강도)를 일삼는 자를 惡獸(악수)라 보는 것이다. 

 

또한 崑崙(곤륜)의 문장에서는 ‘아들 子’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수행하여 죽지 않는 불사인으로 존재한다는 기록이다.

 

                     보기)   崑崙  [黃庭經] 子欲不死 修崑崙

                             곤륜  (황정경) 자욕불사 수곤륜

 

보기의 기록과 같이 崑崙(곤륜)에 대하여 고전 黃庭經(황정경)에서는 子欲不死(자욕불사)라 소개하여 아들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의욕이 강한 존재로서 사망을 하지 않는 자라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修崑崙(수곤륜)이라는 문장을 연결하여 죽지않기를 바라는 ‘아들 子’의 존재는 崑崙(곤륜)에서 학문을 수행한다는 黃庭經(황정경)의 기록이다. 

 

위문장에서 子欲不死(자욕불사)의 子欲(자욕)의 문장은 意慾(의욕)이 많은 子息(자식) 혹은 慾心(욕심)이 많은 자식 혹은 아들이라는 뜻으로서 崑崙山(곤륜산)에서 학문을 수련하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子欲(자욕)의 欲(욕)자는 慾(욕)자와 같은 의미로서 欲(욕)자의 기록에서는 ‘사랑 欲(욕)’ ‘인자할 欲(욕)’ ‘꼭 필요할 欲(욕)’의 뜻이 부가되어있다. 

 

이러한 子欲(자욕)의 ‘아들 子’의 역할을 하는 존재를 속세의 가정에서는 子息(자식)이라 부른다. 그런데 子息이라는 문장에서는 ‘그 사람’이 子息의 역할을 하며 큰 학문을 연구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다음 보기의 고전 北史(북사)의 기록이다.

 

                         보기) 子息 [北史] 其子息  皆詣大學

                               자식 (북사) 기자식  개예대학

 

보기의 기록과 같이 子息의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其(기)’자를 子息이라 지칭하여 其子息(기자식)이라 기록한 점이다. 또한 그 자를 子息(자식)이라 한다고 하면서 皆詣大學(개예대학)이라는 문장을 연결하여 모든 학문을 열심히 연구하여 큰 것을 알고 나오는 아들의 역할로서 그 자가 나온다는 北史(북사)의 기록이다.

위문장에서 詣(예)자는 ‘배울 詣(예)’ ‘뜻을 이룰 詣(예)’자이다. 또한 大學이라는 문장은 大學校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배워서 아는 자라는 뜻으로 필자는 대학의 뜻을 해문하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기록에 근거하여 崑崙山(곤륜산)에서 존재하는 아들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그 其(기)자의 존재로서 崑崙山(곤륜산)에서 수도하여 죽지 않는 영생을 하는 자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崑崙(곤륜)산에서는 사악한 人面獸心(인면수심)의 惡獸(악수)의 존재와 의욕이 많은 '아들子'의 역할로 나오는 子息의 존재가 수신제가를 하는 아들의 존재로도 곤륜산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위문장에서 西王母(서왕모)의 존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東方朔(동방삭)이라는 사람이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장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소개한다.  

소개하는 내용은 한자사전에 기록된 내용으로서 東方朔(동방삭)은 한나라 武帝(무제) 때의 사람으로 字(자)는 曼倩(만천), 벼슬은 金馬 門侍中(금마 문시중)에 이르고 제학과 변설로 이름난 사람이며 속설에 의하면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죽지 않고 장수하여 三千甲子 東方朔(삼천갑자 동방삭)이라 하였다.  또한 西王母(서왕모)는 中國 崑崙山(중국 곤륜산)에 살았다는 옛 仙人으로 성은 楊(양) 혹은 侯(후) 이름은 回(회) 즉 성명이 楊侯回(양후회)라는 기록이다. 그런데 周(주)의 穆王(목왕)이 西征(서정) 즉 서쪽을 정벌하여 西王母(서왕모)를 瑤池(요지) 위에서 만나 王母(왕모)의 仙桃(선도) 즉 신선이 먹는 복숭아 세 개를 얻었으며 또한 漢(한)의 武帝(무제)가 長壽(장수)를 원하여 그를 가상히 여겨서 仙桃(선도) 일곱 개를 주었다는 사람이 西王母(서왕모)이다.

           
             
    보기)  西王母  [列子 周穆王]  遂賓于  列子  觴于瑤沈之上                         서왕모  (렬자 주왕모)  수빈우  렬자  상우요침지상

 

보기의 기록과 같이 西王母(서왕모)에 대하여 列子(열자) 周穆王(주목왕)의 기록에서는 손님의 자격으로 온 西王母(서왕모)를 따라서 西王母(서왕모)의 아름다운 瑤池(요지)에서 술에 만취가 되었다고 하였다.  

위문장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遂賓于(수빈우)의 문장으로서 손님으로 西王母(서왕모)를 따라가는 賓(빈)자의 존재이다. 遂賓于(수빈우)의 遂(수)자는 '따를 遂(수)' '통달할 遂(수)' '뜻을 이룰 遂(수)' '원인 遂(수)' '마칠 遂(수)'자이다. 또한 遂賓于(수빈우)의 문장에서 賓于(빈우)의 존재는 손님을 따라간다는 뜻이므로 손님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본 결과 '손님 賓(빈)'자를 통해 손님으로 와서 인도하는 존재가 호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보기)  賓  (客也) [易經] 利用賓于王                      
                         빈  (객야) (역경) 이용빈우왕

                     
                             (寅賓導也) (賓服懷德) [新書] 四海賓者 盛德之至                                (인빈도야) (빈복회덕) (신서) 사해빈자 성덕지지

 

보기 '손님 賓(빈)'자에 대한 고전 易經(역경)의 기록에서 소개하기를 利用(이용)을 하는데 손님으로 가는 왕을 이용한다는 기이한 내용이다. 위 易經(역경)의 전후의 문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일을 하는데 손님으로 가는 賓王(빈왕)의 존재를 利用(이용)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치상황에 비유한다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가는 상황을 비유하여 賓(빈)자를 引用(인용)한 것이라 본다. 또한 賓(빈)자의 역할을 新書(신서)의 기록에서는 寅賓導也(인빈도야)라 하는 문장을 서두에서 소개하여 호랑이가 손님의 역할을 하면서 인도하는 역할로 온다는 기록을 전제로 하여 손님에게는 넓은 덕을 베풀어 주며 누구나 구복하는 존재로서 세계의 손님으로 와서 많은 덕을 베풀어 주는 존재라고 소개하는 '손님 賓(빈)'자의 기록이다.

 

 위 賓(빈)자의 문장에서 '세계'를 의미하는 문장은 四海賓者(사해빈자)의 四海(사해)를 세계로 필자는 본 것이다. 상기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손님의 자격으로서 西王母(서왕모)를 찾아가서 술을 먹은 존재는 호랑이의 역할로서 호랑이띠를 지참한 사람의 존재가 崑崙山(곤륜산)의 西王母(서왕모)가 있는 곳에서 술을 먹은 손님의 존재라는 결론이다.

필자가 위문장을 소개하면서 西王母(서왕모)가 있는 곳에서 술을 먹는 존재를 호랑이라 단정한 이유는 위 西王母(서왕모)의 문장에서 觴于瑤沈之上(상우요침지상)의 觴(상)자는 ‘잔 觴(상)’ ‘술 마실 觴(상)’자이며 瑤沈(요침)의 瑤(요)자는 ‘아름다운 옥 瑤(요)’자이며 ‘못 이름 瑤(요)’자로서 瑤池(요지)의 瑤(요)자이다.

 

또한 瑤池(요지)의 문장에서는 周(주)의 穆王(목왕)이 西王母(서왕모)와 만났다는 崑崙山(곤륜산)에 있는 연못의 이름이 瑤池(요지)라는 기록이다. 또한 복숭아에 대해서는 西王母(서왕모)가 사는 仙境(선경)에서 나며 千年에 한 번 그 열매가 맺는 것이 복숭아라 소개한 것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호랑이띠의 寅(인)자의 역할이 손님의 역할을 한다는 寅賓(인빈)의 문장에서는 다음보기의 문장과 같이 尊敬(존경)을 받는 존재로서 引導(인도)의 임무를 맡은 존재가 호랑이의 존재라는 기이한 뜻이 밝혀졌다.  

               
               
   보기)   寅賓  [書. 堯典傳] 傳寅. 敬.  賓. 導也                           인빈  (서. 요전전) 전인. 경.  빈. 도야

 

보기 書經(서경)의 기록에서는 호랑이로 나오는 손님에 대하여 그 역할을 소개하였는데 傳寅(전인)이라 하여 전하는 역할을 호랑이이며, 공경을 받는 호랑이의 역할과 손님의 역할이며 인도하는 역할로도 나오는 존재가 '호랑이 寅(인)'자의 역할이다.

 상기와 같은 여러 가지의 기록으로 보아 崑崙山(곤륜산)으로 西王母(서왕모)를 찾아가서 술을 얻어 먹은 손님의 역할을 한 賓(빈)의 존재는 호랑이띠를 지참하고 나오는 ‘아들 子’의 子息의 역할로서 ‘그 其(기)’ 사람으로 나오는 三八 戊寅生(삼팔 무인생) 鼠生員(서생원) 서씨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문장이라고 我田引水格(아전인수격)으로 해문해도 아무 하자가 없는 문장이라 필자는 본다.

 

필자가 이와 같이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위의 西王母(서왕모)의 기록에서의 遂賓于(수빈우)의 于(우)자의 기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아들의 역할을 하는 ‘그 其(기)’ 사람의 역할은 서씨가 한다는 뜻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소개하는 于(우)자에 대해서는 여러 고전의 문장에서 각기 달리 주장하였다. 물론 여러 문장에서 각기 달리 서술한 것이 한자의 기록이다.

 

                보기)  于  (往也)  [詩經 邶風燕燕] 之子于歸 遠子將之

                       우  (왕야)  (시경 패풍연연) 지자우귀 원자장지

 

                           (於也 乎也) [詩經大禹貌] 祗承于帝

                           (어야 호야) (시경대우모) 지승우제

 

                           (自足貌) [莊子 應帝王] 其臥徐 其覺于于

                           (자족모) (장자 응제왕) 기와서 기각우우

 

소개한대로 보기의 于(우)자는 여러 고전에 서술되어 있는 글자이나 徐(서)자와 관련된 于(우)자의 역할만을 추려서 소개한 것이다.

 

우선 于(우)자의 역할을 ‘가는 존재’라 지칭하여 往也(왕야)라 소개하고 詩經(시경)의 기록에서는 '之子于歸 遠子將之(지자우귀 원자장지)'이라는 문장을 연결하여, 가는 ‘아들 子’의 역할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于歸(우귀)라 한다는 기록이다.

 

또한 于(우)자의 역할을 遠子將之(원자장지)라 연결하여 멀리 가 있는 아들의 존재가 將次(장차) 드러날 존재라는 기록이다.

 

부연하여 于(우)자의 역할은 멀리 떠나가 있다가 장래에 다시 돌아올 ‘아들 子’의 역할을 之子于歸(지자우귀)라 하여 멀리 떠나갔던 아들의 존재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면서 遠子將之(원자장지)라는 문장을 연결하여 멀리 떠나간 '아들 子'의 존재는 장차 드러날 아들의 역할을 하는 사실을 서술한 詩經(시경)의 于(우)자의 기록이다.

 

또한 같은 詩經(시경)의 기록에서 于(우)자를 지칭하기를 乎也(호야)라 하여 ‘누구를 부른다’는 뜻을 전제로 하여 祗承于帝(지승우제)라는 문장을 연결하여 상제를 공경하는 일을 승계하여 나오는 것을 于(우)자의 역할로 본 것이다.

 

위문장에서 祗(지)자는 ‘공경할 祗(지)’자로서 왕의 명을 받드는 일을 하는 祗(지)자이다. 이러한 이유로 于(우)자의 역할은 ‘아들 子’의 역할로서 하나님을 모시는 후계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于(우)자의 역할은 自足貌(자족모)라 지칭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모양을 于(우)자라 하고 莊子(장자)의 기록에서는 ‘其臥徐 其覺于于(기와서 기각우우)’라 서술하여 그 사람의 역할은 누워 있는 서씨이며 서씨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其覺于于(기각우우)라 하여 그 사람의 정체를 깨달은 존재로서 于于(우우)라 하여 갔다가 돌아오는 존재라는 기록이다.

 

또한 위 莊子(장자)의 徐(서)자의 기록에 연결되어 있는 于(우)자에서도 역시 于(우)자는 ‘아들 子’의 역할로서 멀리 떠나 있던 아들의 존재가 다시 돌아온다는 뜻을 밝히고 있으므로 徐(서)자는 아들의 역할을 겸하는 ‘그’라는 사람이 서씨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混沌(혼돈)에 관한 여러 문장을 통해 밝혀지는 것은 계란을 상징하여 흰 자위와 노란 자위가 현재까지 갈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가 混沌(혼돈)상태라는 것이며 또한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사악한 짐승의 역할을 하는 惡獸(악수)의 존재가 갈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崑崙山(곤륜산)에 거한다는 사실과, 손님의 자격으로 곤륜산으로 西王母(서왕모)를 찾아가서 술을 얻어 마신 호랑이의 역할을 하는 ‘손님 賓(빈)’자의 역할을 하는 鼠生員(서생원) 서씨도 ‘그 其(기)’사람의 역할로 있었다는 기록까지 소개한 것이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의 기록을 통하여 混沌(혼돈)되어 있는 상태를 대충 알아 보았으나 混沌(혼돈)의 상태를 더욱 정확하게 알기 위하여 混沌(혼돈)의 混(혼)자와 沌(돈)자를 한자 사전에서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보기)  混  (混沌氣未分)  [道德經] 有物混成 先天地生

                        혼  (혼돈기미분)  (도덕경) 유물혼성 선천지생

 

                           (西戎名混夷) (濁也)

                           (서융명혼이) (탁야)

 

混(혼)자의 뜻을 混沌氣未分(혼돈기미분)이라 기록하였다. 이는 한 곳에 섞여있는 물체가 아직 갈라지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써 이와 관련하여 道德經(도덕경)에서는 有物混成(유물혼성)이라 하여 선천시대부터 한 군데 혼합되어 있던 물체가 현재까지 존재하여 이 땅에 생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부연하면 混沌(혼돈)의 뜻은 아직 분리되지 않은 물체가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뜻으로써 이에 대해 道德經(도덕경)에서는 두 가지의 물체가 섞여 있는 물체는 先天時代(선천시대)부터 있었던 물건으로써 地生(지생)이라 지칭하여 땅에 생존하고 있는 물건이라는 뜻을 밝혔다.

 

부연하면 有物混成(유물혼성)의 뜻은 '원래 있던 물체는 여러 가지의 물체가 섞여져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체가 先天시대부터 지상에 생존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태초에서부터 두 가지 이상의 물체가 섞여져서 만들어진 물체가 지구상에서 생존하고 있었다는 의미는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인간이 태초부터 생존해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섞일 混(혼)’자를 西戎名混夷(서융명혼이)이라 하였다. 이것은 서방의 오랑캐들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인간들이라는 뜻이다.

 

또한 混沌(혼돈)되어 있는 元氣(원기)의 물체는 미래에 판가름 난다는 뜻의 ‘섞일 沌(돈)’자를 고전 太玄經(태현경)기록에서는 다음 보기와 같이 기록하였다.

 

             보기)   沌   (混沌元氣未判)  [太玄經] 混沌無端  莫見其根

                     돈   (혼돈원기미판) (태현경) 혼돈무단  막견기근

 

                           (不開通貌) [莊子] 中央之帝爲  混沌

                           (불개통모) (장자) 중앙지제위  혼돈

 

보기와 같이 沌(돈)자를 고전 太玄經(태현경)과 莊子(장자)에 각각 기록하였는데 우선 고전 太玄經(태현경)의 기록을 보면, 混沌元氣未判(혼돈원기미판)이라 하여 元氣(원기)의 물체는 두 가지 이상의 물체가 합쳐져 만들어진 물건으로써 무엇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混沌(혼돈)된 물체인지를 밝혀내는 시기가 미래에 온다는 사실을 태현경(太玄經)에서는 ‘混沌無端 莫見其根(혼돈무단 막견기근)’이라 기록한 것이다.

 

이는 混沌(혼돈)되어있는 물건은 바로 설 수 없으며 莫見其根(막견기근)이라 기술하여 혼돈된 물체가 왜 올바로 설 수 없는지를 볼 수 있는 존재는 근본의 존재이며 ‘그 其(기)’자의 존재만이 보고 밝혀 낼 수 있다고 하였다.

 

부연하면 混沌無端(혼돈무단)의 기록은 혼합된 존재들은 도저히 올바로 설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뜻이다. 無端(무단)의 端(단)자는 ‘바를 端(단)’ ‘머리 端(단)’ ‘실마리 端(단)’ 또한 ‘끝 端(단)’자이다.

이러한 端(단)자의 기록을 참고하여 混沌無端(혼돈무단)의 뜻을, 말세에 혼합된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인종들은 올바로 설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莫見其根(막견기근)의 莫見(막견)은 대인의 존재로써 막강한 힘이 있는 사람이 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막강한 사람으로써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를 其根(기근)이라 지칭하여 ‘그 其(기)’ 사람의 존재가 根本(근본)으로 나오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으며 混沌(혼돈)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 其(기)’자의 존재가 형체를 구분하여 분리시키는 존재로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沌(돈)자에 관한 기록인 ‘混沌無端 莫見其根(혼돈무단 막견기근)’의 莫見其根(막견기근)의 뜻은 막강한 존재가 사물을 분간하는 존재로 나오는데 ‘그 其(기)’자의 존재가 根本(근본)의 역할로 나온다는 기록이다.

 

‘그 其(기)’자는 수차 설명한 글자로써 ‘아들 子’의 역할과 밤에 활동하는 ‘쥐 鼠(서)’자의 자정의 역할을 하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지닌 서씨의 성씨로 나오는 존재를 지칭한 것이며, 하나로 통합하는 ‘하나 一’字에 관한 고전 孟子(맹자)에서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이 ‘先聖後聖 其揆一也(선성후성 기규일야)’의 문장의 주인공으로서 先聖後聖人(선성후성인)의 역할을 겸하고 나오는 존재라고 기록되어있는 그 사람을 지칭하는 其(기)자이다.

 

‘그 其(기)’자는 수차 설명한 글자로써 ‘아들 子’의 역할과 밤에 활동하는 ‘쥐 鼠(서)’자의 자정의 역할을 하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지닌 서씨의 성으로 나오는 존재를 지칭한 것이며, 하나로 통합하는 ‘하나 一’字에 관한 고전 孟子(맹자)에서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이 ‘先聖後聖 其揆一也(선성후성 기규일야)’의 존재로써 先聖後聖人(선성후성인)의 역할을 겸하고 나오는 존재라고 기록하였다.

 

위와 같은 기록에 근거하여 ‘그 其(기)’자의 주인공 鼠生員(서생원) 서씨의 존재인 백마공자가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또한 고전 莊子(장자)의 기록에서는 沌(돈)자를 ‘아직 갈라져있지 않은 형체’라고 설명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中央之帝爲 混沌(중앙지제위 혼돈)’이라 기록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중앙에 존재하시면서 만드신 것은 混合(혼합)된 덩어리라는 뜻이다. 

 

위문장에서 中央之帝爲(중앙지제위)의 中央(중앙)의 뜻을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中央(중앙)도 그 내포된 의미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中央之 帝爲(중앙지 제위)'라 지칭하여 中央(중앙)에서 하나님이나 왕의 존재가 일을 했던 사실을 지칭한 부분이 帝爲(제위)이다.

帝(제)자는 上帝天也(상제천야)라는 고전의 기록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지칭한 글자이며 ‘임금 帝(제)’자이기도 하다.

 

이 ‘하나님 帝(제)’자를 근거로 하여 中央之帝爲(중앙지제위)의 뜻을 해문하면, 하나님께서 중앙에 존재하시면서 하신 일은 混合(혼합)된 물체를 만드는 일이었다는 沌(돈)자의 기록이다. 여기에서 中央(중앙)은 지구의 중앙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인간 창조와 관련된 뜻으로써 남녀 身體(신체) 부위의 中央(중앙)을 지칭한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인생창조의 역사는 남녀의 결합으로 창조가 되어지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혼합된 沌(돈)자의 기록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께서 混合(혼합)된 沌(돈)자의 물체를 만드신 장본이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沌(돈)자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混成(혼성)의 뜻을 적은 老子(노자)에서는 混合(혼합)된 物體(물체가 존재하기 시작한 시기를 先天(선천)시대로 기록하였다.

 

                       보기)  混成  [老子] 有物混成  先天地生

                              혼성  (노자) 유물혼성  선천지생

 

보기의 문장과 같이 고전 老子(노자)의 기록에서는 有物混成(유물혼성)이라 지칭하여, 가지고 있는 물건을 혼합하여 만든 物體(물체)를 가지고 뜻을 이룬다는 뜻으로써 先天(선천)의 하나님 시대부터 지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라는 것이 生成(생성)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先天地生(선천지생)이다. 先天(선천)의 뜻은 ‘먼저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地生(지생)이라 하면 먼저 하나님께서 지상에 존재하는 생물을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상기와 같이 混沌(혼돈)의 뜻과 混(혼)자, 沌(돈)자의 기록 그리고 混成(혼성)의 기록을 통하여 상기 예언문장에서 이기한 다시보기의 내용을 부연하면,

 

                   다시보기)  人獸分別 兩端日  飛火落地 混沌世

                              인수분별 량단일  비화락지 혼돈세

 

다시보기의 문장의 기록과 같이 사람과 짐승을 분류하여 양쪽으로 갈라 세워 놓는 시기가 되면서부터 하늘에서 불이 날아와서 지상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세상을 混沌世(혼돈세)라 지칭한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짐승이 한 덩어리가 되어 혼합하여 살고 있는 세상을 混沌世(혼돈세)라 지칭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록의 뜻을 근거로 하여 지상에 불이 날아와서 떨어지는 이유는 사람과 짐승이 혼성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유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眞人(진인)의 존재가 출현한다는 예언이다.

 

위와 같은 예언의 문장은 앞 混沌(혼돈)의 문장에서 소개한바 있는 다음의 다시 보기 문장과 같이 惡獸(악수)의 존재가 混沌(혼돈)되어 있는 상태를 지칭한 예언문장이라 필자는 보는 것이다.

 

                 다시보기)   混沌 [神異經]  崑崙有惡獸  名曰混沌

                             혼돈 (신이경)  곤윤유악수  명왈혼돈

 

다시보기의 기록과 같이 混沌(혼돈)에 대해 기록한 神異經(신이경)의 기록에서는 이미 소개한바와 같이 崑崙(곤륜)에서부터 악한 짐승의 존재가 혼돈된 상태로 있었다는 기록을 필자는 惡獸(악수)의 역할을 사악한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위 예언문장의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량단일)의 문장에서 人獸(인수)의 존재 즉 사람과 짐승이 한 덩이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기록이 人獸分別(인수분별)의 문장이기 때문에 필자는 人獸分別(인수분별)의 문장을 惡獸(악수)의 존재라 보는 것이다.

 

또한 상기문장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량단일)’에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시기를 兩端日(량단일)이라 한 것이며  兩端(양단)의 보기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보기)  兩端 [中庸] 執其兩端  

                            양단 (중용) 집기양단

 

                            本末 [論語] 我叩其  兩端而竭焉  

                            본말 (논어) 아고기  양단이갈언

 

보기 兩端(양단)을 고전 中庸(중용)과 論語(논어)에서는 각기 기록하였는데 ‘그 其(기)’자의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내용을 적은 中庸(중용)의 기록을 소개하면 執其兩端(집기양단)이다.

 

 

위문장 中庸(중용)의 기록에서 兩端(양단)을 갈라서 판가름하고 나올 존재를 지칭하여 執其(집기)라 기록하여 ‘그 其(기)’사람의 존재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개하는 執其(집기)의 執(집)자는 '잡을 執(집)' 혹은 '지킬 執(집)' 또는 '보호할 執(집)' '모실 執(집)'자로서 '그 其(기)'사람의 존재가 지키는 역할과 모시는 역할을 한다는 뜻을 담은 執(집)자이다.

참고로 執(집)자의 잡는다는 표현의 뜻은 벌을 주는 몽둥이를 잡는다는 '잡을 執(집)자이다.

 

또한 兩端(양단)에 대해 論語(논어)의 기록에서는 本末(본말)이라는 뜻을 전제로 하여 ‘我叩其 兩端而竭焉(아고기 양단이갈언)’이라 서술한 것이다. 

부연하면 論語(논어)의 기록 역시 兩端(양단)의 기록을 本末(본말)이라 지칭하여 근본의 존재가 말세에 나온다는 뜻으로 我叩其(아고기)라 기록하여 ‘나는 두드리면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其(기)'자의 존재가 되어 兩端(양단)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나와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兩端(양단)의 역할을 하는 자가  ‘그 其(기)’자의 존재임을 밝히는 論語(논어)의 기록이다.

 

위문장에 我叩其(아고기)의 叩(고)자는 두드리는 역할을 하는 叩(고)자라 지칭한 叩(고)자로서 문을 열어주기를 바라며 밖에서 노력을 하는 ‘두드릴 叩(고)’자이다. 

 

또한 ‘兩端而 竭焉(양단이 갈언)’의 而(이)자의 역할은 ‘語助辭(어조사) 而(이)’자로서 학문을 연구하여 상하를 연결해주는 역할이라 이미 소개한 而(이)자이다. 또한 竭焉(갈언)의 竭(갈)자의 ‘노력을 다할 竭(갈)’자의 역할이다.

 

이러한 위문장에 기록된 叩(고)자와 而(이)자 그리고 竭(갈)자의 기록에 근거하여 ‘我叩其 兩端而竭焉(아고기 양단이갈언)’이라 서술한 기록의 뜻은 ‘나라는 존재로 출발하여 원하고 두드리면서 기다리다가 다시 그 其(기)자의 존재가 되어 한문을 연구하는 노력을 한 존재로서 兩端(양단)의 문장을 주관하는 존재로 나오는 그 其(기)자의 존재’라는 기록이다.

 

또한 위의 兩端(양단)의 뜻이 실린 論語(논어)의 本末(본말)의 뜻은 根本(근본)의 존재가 맨 마지막에 나온다는 뜻으로서 大學(대학)에서는 本末(본말)에 대하여 ‘物有本末(물유본말) 事有終始(사유종시)’라 기록하였다.

 

위문장 本末(본말)의 기록은 ‘시작과 끝’이라는 뜻으로서 물건은 根本(근본)의 존재가 만들기 시작하여 마지막에 다시 근본의 존재가 나와서 만든 물건을 걷어가고 끝을 맺는다는 뜻으로 필자는 本末(본말)의 기록을 해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하여 事有終始(사유종시)라 지칭하여 일을 시작하면서 끝을 맺고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록하여 本末(본말)의 답변을 대신한 大學(대학)에 기록된 本末(본말)의 뜻이다.

 

상기와 같은 兩端(양단)의 기록을 근거하여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량단일)’의 뜻은 根本(근본)의 존재이신 조물주께서 사람과 짐승을 혼합시켜 만들어놓은 주인공이므로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여 짐승인간을 추수하기 위해 다시 오셨다는 뜻으로 해문하는 것이 합당한 해문이라 필자는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根本(근본)의 존재가 추수하기 위해 올 때에는 ‘그 其(기)’자의 존재를 통하여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시는데 이 때부터 불이 날아서 육지에 떨어지며 이런 때가 사람과 짐승이 혼합되어 살고 있는 混沌(혼돈)된 세상이라는 뜻을 전하고 있는 문장이 ‘飛火落地 混沌世(비화락지 혼돈세)’이다.

 

상기와 같은 기록에 근거하여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여 秋收(추수)하는 역할의 주인공을 兩端日(양단일)이라 하였으므로 兩端(양단)은 갈라서 양쪽으로 분류하는 책무를 맡은 존재를 지칭하는 뜻이므로 鼠生員(서생원) 서씨가 兩端(양단)의 책무를 맡은 역할을 하는 주인공으로 밝혀지는 예언문장이다.

 

그러므로 首鼠兩端(수서양단)이라는 문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首鼠兩端(수서양단)의 우두머리로 나오는 首鼠(수서)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鼠生員(서생원) 서씨로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짐과 같이 서생원 서씨가 사악한 인면수심의 인간을 분류하여 추수하는 사람으로 나온 것이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량단일)’의 역할이라 필자는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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