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하나님께서 심으신 곡식은

                원숭이를 진화시킨 추수할 곡식이다 (1부-2)


 

격암유록을 보면 들에서 소울음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인생추수를 하여 심판하는 시기가 온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문장을 접하게 된다.

 

                   보기)   牛性在野 牛鳴聲  人生秋收 審判日

                           우성재야 우명성  인생추수 심판일

 

필자는 상기와 같은 人生秋收(인생추수)하는 심판이 시작된다는 두려운 예언이 왜 등장해야 하는가 하는 의아심에 고전과 격암유록과 성서를 관찰하면서 사람을 짐승으로 취급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일례가 다음의 성서 요한 계시록이다.

 

“ 저가 권세(權勢)를 받아 그 짐승에 우상(偶像)에게 생기(生氣)를 주어 그 짐승에 偶像(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에 偶像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드라

  저가 모든 者 곧 작은 자나 큰 者나 부자(富者)나 곤궁(困窮)한 자나 자유(自由)한 자나 종들도 그 오    른 손이나 이마에 표(標)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標)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賣買)를 못하게 하니 이 표(標)는 곧 짐승의 이름이니 그 이름의 수(數)라

 

       ‘지혜(智慧)가 여기 있으니 총명(聰明)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數)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六百六十六)이니라 ’

                            
                                   - 관주(貫珠) 계시록 13 장 15 절-

 

소개하는 성서말씀에서 ‘저가’라는 표현은 마귀를 가리킨 것이며, ‘마귀가 권세를 잡으면서부터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生氣)를 주어 그 짐승의 偶像(우상)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偶像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는 성서의 말씀은 짐승들의 세계에서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예언한 내용으로서 이러한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는 사람을 智慧(지혜)있는 사람이라 했으며 聰明(총명)한 자라 했다.

 

그리고 이 성서 말씀과 꼭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이와 흡사한 내용으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차원을 넘어 인생을 추수한다는 격암유록 예언을 접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추수하실 때에 어떠한 인간이 추수대상이 되는지, 또 조물주께서 인생을 추수하여 사용할 목적이 무엇인지 그 비밀이 밝혀져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성서의 말씀대로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는 것임을 필자는 直感(직감)하게 되었으므로, 이와 직결된 과제인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짐승의 띠라는 것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急先務(급선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성과정에 관한 연구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서에는 태초의 에덴동산에 하나님과 아담, 하와 그리고 마귀의 역할인 뱀이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하와가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라는 것을 먹은 것이 原罪(원죄)가 되어 저주받은 인생이 현재까지 죄악에 빠져 있는 것이며, 이렇게 죄에 빠진 인생을 구원주기 위하여 등장한 인물이 자칭 하나님의 아들로 등장한 예수이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역할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의아한 점이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양육할 책임도 있을 텐데 “에덴동산에서 다른 과일은 먹어도 선악과는 따 먹지 말라”는 말씀 한마디만 남기고 뱀의 존재가 하와를 유혹하고 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상황을 다 지켜보고 계시면서도 방관하신 것이다.

 

분명히 성서의 조물주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에서 최초로 하나님의 형상과 똑같은 인간 아담, 하와를 창조하시어 영원무궁토록 존재토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존재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손수 창조하신 한 쌍의 남녀를 보호하지 못하고 마귀의 역할로 나온 뱀에게 내주셨다 하니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성서의 98%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밝히시면서 ‘한문을 연구하는 자가 예수 2.000년을 고도로 앞선 자’라는 말씀을 하셨으며, 이 말씀을 접한 필자는 한문 속에는 예수도 모르는 사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한문을 연구한 결과 사악한 인면수심의 저주받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에덴동산에 있던 뱀의 마귀의 존재가 아니라 조물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善(선)과 惡(악)을 구분하고 또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기 이전에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사람과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인생이 생성되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급선무라 思料(사료)되어 다음과 같은 인종을 파종한다는 격암유록 내용을 소개한다.

 

      淚水血遣 播種下   爲義嘲笑  陪養下  祈天禱神  秋收下  火雨露印 三豊이라

      루수혈견 파종하   위의조소  배양하  기천도신  추수하  화우로인 삼풍 

 

      一年之農 腐穀인가  一日三食 飢餓死요  十年之農 生穀인가  三旬九食 不飢生을

      일년지농 부곡      일일삼식 기아사    십년지농 생곡      삼순구식 불기생

                                                          
                                      -格菴遺錄 三豊歌(격암유록 삼풍가)-

 

소개한 내용과 같이 격암유록 삼풍가(三豊歌)에는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혈통을 파견하여 종자를 심어놓으셨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파종하여 심은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나와서 추수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서부터 불과 물과 이슬의 인을 합친 삼풍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땅의 농사꾼들이 1년 동안 농사를 지어 거두는 곡식은 썩어지는 것으로서 하루에 세끼를 먹다가 없으면 굶어 죽게 되는 곡식이나 반면에 삼풍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출현하면서부터 나오는 곡식은 십년동안 생성되어 살아나는 곡식으로서 삼십일 동안에 아홉 번을 먹어도 시장기를 느끼지 못하는 곡식이라는 기이한 예언이다.

 

위문장에서 播種下(파종하)의 뜻은 종자를 파종하는데 ‘아래 下(하)’자를 인용한 것이다. 이것을 감안하면 上下가 구분되어 있는 문장으로 ‘淚水血遣(루수혈견) 播種下(파종하)’의 淚水血遣(루수혈견)의 뜻은 눈물을 흘리면서 血肉(혈육)을 보낸다는 뜻으로 ‘보내는 장소’를 지칭하여 播種下(파종하)라 하였다. 이것은 위에서 아래로 보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내용으로 혈육을 보내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보내는 곳은 하늘 아래 육지로 보내어 종자를 심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부연하면 ‘淚水血遣 播種下(루수혈견 파종하)’의 문장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기록한 내용이다. 淚水血遣(루수혈견)의 淚(루)는 ‘눈물 淚(루)’자이므로 淚水(루수)의 뜻은 눈물이  비 오듯 흐른다는 뜻으로서 血遣(혈견)이라는 문장을 연결한 이유로 혈육을 파견시키는데 비 쏟아지듯 눈물을 흘리면서 혈통을 하늘아래 天下(천하)로 파견하여 종자를 심어서 번식시키셨다는 뜻이다.

 

血遣(혈견)이란 혈육을 파견시킨다는 기록으로서 遣(견)자는‘보낼 遣(견)’ ‘쫓아버릴 遣(견)’자이다. 또한 종자를 옮겨 심는 것을 播種(파종)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면서 혈육을 보내 종자를 번식시켰다는 播種下(파종하)의 뜻은 세상에서 부모가 딸을 낳아 곱게 길러서 시집을 보내 상대방 집안의 종자를 받아 파종시켜주는 역할을 하게끔 하는 것이나 동일한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血統(혈통)을 파견하여 파종하는 상황을 ‘爲義嘲笑 陪養下(위의조소 배양하)’라 한 것이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기이한 점은 爲義嘲笑(위의조소)의 뜻이다. 爲義(위의)라는 뜻은 의로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을 뜻하며 이를 嘲笑(조소)라 하였으니 의로운 일이 嘲笑(조소)받는 일이라는 뜻이며, 이러한 嘲笑(조소)받는 의로운 일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혈통을 파견시키는 이유는 陪養下(배양하)라 지칭하여 밑에서 상대방의 종자를 생산하기 위함이라는 예언이다.

 

위문장 상대방의 종자를 양산하기 위하여 혈통을 파견하였다는 내용에서 陪養下(배양하)의 陪(배)자는 ‘버금 陪(배)’자로서, 그 내포된 뜻은 사람과 비슷한 것을 지칭한 것이다. 쉬운 예로 陪審員(배심원)이라 하면 재판을 하는 주심의 양쪽 옆에 앉아서 주심을 도와주는 판사를 지칭한다.

 

이러한 이유로 함께 식사하는 것을 陪食(배식)이라 이른다. 또한 陪(배)자는 ‘따를 陪(배)’ ‘도울 陪(배)’ ‘모실 陪(배)’자로서 주인을 도와 일하는 역할의 ‘陪(배)’자이다. 그리하여 위문장에서 陪養下(배앙하)의 뜻은 상대방의 종자를 길러내는 일을 陪養下(배양하)라 하여 상대방의 종자를 파종시키기 위하여 여자가 하늘 아래로 내려왔다는 뜻이 된다.

 

부연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 아래로 혈통을 파견하여 종자를 심기 시작한 이유는 ‘밑에 있는 것을 추수한다’는 상기한 秋收下(추수하)라는 기록으로 보아 혈통을 파견하여 상대방의 씨받이 역할을 하여 생산한 과정은 농사꾼이 토지에 종자를 파종하여 추수하는 방법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혈통인 딸을 육지에 파견시켜서 상대방의 종자를 심어 추수해 가시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혈육인 딸을 희생시키신 사실이 글의 뜻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기 陪養下(배양하)의 기록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글자는 陪(배)자이다. 만약 육지에다 곡식을 심어 경작하는 일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培養(배양)이라 지칭하여 흙과 연관된 培(배)자를 인용하여 培養(배양)이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陪養下(배앙하)의 陪(배)자는 ‘버금가는 사람 陪(배)’ ‘모실 陪(배)’ 또는 ‘순종 陪(배)’ ‘배심원 陪(배)’자로 ‘옆에서 보조 역할 하는 일을 할 陪(배)’자이며 반대로 육지에 종자를 파종하여 곡식을 심을 때 인용하는 문구는 培養(배양)으로써 培(배)자는 ‘흙 북돋을 培(배)’ ‘불룩할 培(배)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육지에 곡식을 심어 번식시키는 일을 표현할 때에는 培養(배양)이라 해야 한다는 사실을 필자는 지적하는 것이다.

 

부연하면 위 예언문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혈통을 파견시켜 종자를 파종시키기 시작하는 것을 陪養下(배양하)라 지칭하여 ‘아래 下(하)’자를 인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같은 모양의 인종을 하늘아래에서 육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혈통을 육지로 파견시킨다는 뜻으로 필자는 보는 것이다.

 

또한 ‘爲義嘲笑 陪養下(위의조소 배양하)’라 지칭하여 夫婦(부부)가 결합하여 아이를 생산하는 일은 의로운 일이라는 기록이다. 그런데 ‘嘲笑 陪養下(조소 배양하)’라 지칭하여 육지에서는 嘲笑(조소)받는 일도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부연하면 爲義嘲笑(위의조소)라는 뜻은 정상적으로 부부가 결합하여 아이를 생산하는 일은 의로운 일이나 嘲笑(조소)받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嘲笑(조소)받는 일이 될 수도 있는 이유를 陪養下(배양하)의 기록에서 찾는다면 하늘로부터 파견된 혈통이 하늘아래 내려와서 종자를 파종하는 과정에서 嘲笑(조소)받을 일은 남녀가 불륜을 하는 방법으로 일을 하여 종자를 파종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여 하늘나라에서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의로운 일이나 하늘아래에서 종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부부생활을 한 자체가 嘲笑(조소)받을 일이며, 이렇게 嘲笑(조소)받을 만한 일을 통하여 종자를 파종했다는 기록이다. 부연하여 육지에서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嘲笑(조소)의 대상이 아니나, 불륜의 관계라면 嘲笑(조소)에 해당하는 일로서 종자를 파종하여 저주받는 씨앗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위 예언문장을 두 가지로 분류하여 해문하는 이유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하신 "여자의 구조는 저주받은 악인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성신을 생산하는 구조였는데 뱀인 마귀에게 하와를 뺏겨서 저주받은 인간마귀가 여자 자궁에서 나온다"는 설교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부부간에 그 생활하면 아들 딸 낳고 잘 살라는 건줄 알아요. 이거 멍텅구리들이야. 마    귀를 때리는 무기가 나오게 돼 있어. 거기에서 어린 애기를 낳는 게 아니고 마귀를 때    리는 무기가 나오니 마귀를 꺽어서 집어 넣을려는 거 아니야? 인간을 만든 속에 그게    그대로 마귀를 때려눕히는 성신이 그대로 생산되게 돼있었어. 어린애 낳는 게 아니야.

  그걸 알고 이제 너 패전했으니 나 그거 빼앗겠다. 그거야 빼앗아 봐라 못 빼앗는다. 그    럼 빼앗으면 어떻게 하겠냐. 그거야. 먼저 패전했으니 마귀 불구렁텅이 들어가게끔 하    면 들어가겠다. 빼앗지 못한 경우에는 가겠다 하는 조약을 쓴거야. 신의 조약은 글씨로    쓰는 게 아니야. 영으로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마귀가 쏟아져 나오는 거야. 그거 어린    아이 낳으라는 그거 아니야”

                                                     - 1981년 1월 3일 (2-1) -

 

또한 다음에 연결되는 문장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등장하여 인생을 추수한다는 위에서 이기한 보기의 기록 때문이다.

 

                 다시보기)  祈天禱神  秋收下  火雨露印 三豊이라  

                            기천도신  추수하  화우로인  삼풍

 

다시보기의 기록은 앞문장과 바로 연결된 내용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혈통을 파견하여 상대방의 종자를 길러내기 위하여 종자를 파종한 다음에 일어나는 상황으로 ‘祈天禱神 秋收下(기천도신 추수하)’라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신의 존재가 인간을 추수하기 위하여 지구에 와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존재가 지구로 오면서 지참한 것은 ‘火 雨 露印 三豊(화 우 로인 삼풍)’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상대방의 종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파견된 혈통의 존재가 지구에 내려와 상대편의 종자를 생산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의 존재가 그 종자들을 추수하기 위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祈禱(기도)하면서 秋收(추수)하기 위해 온 존재를 지칭하여 ‘火 雨 露印 三豊(화 우 로인 삼풍)’이라 지칭한 것이다.

 

참고로 三豊(삼풍)에 대해서는 하단에서 별도로 상세히 소개한다. 단 天地人을 통합한 것을 三豊(삼풍)이라 소개한다.

 

다음에 연결되는 예언문장에서는 땅에서 腐敗(부패)하는 곡식과 영생의 곡식을 생산한다는 내용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문장은 위에서 이기한 문장이다.

 

 다시보기)一年之農 腐穀인가  一日三食 飢餓死요  十年之農 生穀인가  三旬九食 不飢生을

          일년지농 부곡      일일삼식 기아사    십년지농 생곡      삼순구식 불기생

 

위 다시보기 문장의 뜻은 인간들이 일년 동안 농사를 지은 곡식은 썩어가는 곡식이며 하루 세 끼를 먹는 곡식으로 종국에 가서는 곡식이 없어 굶어죽는 일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십년동안 농사를 지어 얻은 곡식은 생명력이 있는 곡식으로 삼십일 동안에 아홉 번만 먹어도 배고픈 줄을 모르는 곡식이라는 기록이다.

 

위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一年之農 腐穀(부곡)인가?’의 곡식과 ‘十年之農 生穀(생곡)인가?’의 내용이다. 위 두 문장 중에서 ‘一年之農 腐穀(부곡)인가?’의 뜻은 현재 농사꾼들이 짓는 농사를 지칭한 것으로 그 뜻이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나 十年之農 生穀(생곡)인가? 의 문장은 난해하다.

 

도대체 ‘十年之農 生穀(생곡)’의 農事(농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본 문장 서두에서의 ‘눈물을 흘리면서 파종한다’는 뜻의 ‘淚水血遣 播種下(루수혈견 파종하)’의 내용으로 비추어 보아 여자를 시집보내서 상대방의 종자를 생산하게 하는 일이 바로 ‘十年之農 生穀(생곡)’을 陪養(배양)한 일이라고 필자는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十年之農(십년지농)의 뜻과 같이 지구상에서 육지에다 곡식을 심어 十年동안을 기르는 곡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十年之農 生穀(십년지농 생곡)’의 뜻은 눈물을 흘리면서 혈통을 파견하여 하늘아래에서 種子(종자)를 播種(파종)하기 시작하는 일로서 이것은 嘲笑(조소)받을 만한 불륜관계에 방법으로 일을 하여 陸地(육지)에서 인종을 생산하여 성장시키는 과정을 비추어 ‘十年之農 生穀(십년지농 생곡)인가?’ 라는 의문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祈禱(기도)하는 神(신)의 존재가 인생을 秋收(추수)하기 위하여 불의 火印(화인), 물의 雨印(우인), 이슬의 露印(로인)을 가지고 三豊(삼풍)의 존재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필자가 ‘十年之農의 生穀(생곡)인가’를 해문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예수를 개새끼라 치신 것을 공중거리 할 일이라 하시고 “내가 지금 또 하는 말은 하늘의 공중거리 할 일로 이것은 내가 연구한 감람나무에게나 필요하다”는 다음과 같은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이다.

 

  '예수를 개새끼라고 한 것이 공중걸이 할 정도라고 하면,  앞으로의 말씀은 하늘에 공중     걸이를 할 정도의 말씀이다.  사실 그것은 내가, 연구한 사람에게나 필요하다.  감람     나무에게나 필요하다. 그 외엔 필요하지 않다'

                                                    -1981년 10월 10일-

 

상기한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과 위의 혈통을 파견하여 파종한 인종을 또다시 秋收(추수)한다는 예언내용으로 보아 ‘十年之農 生穀(십년지농 생곡)인가?’라 한 것은 살아 있는 곡식을 지칭한 기록으로서 조물주 하나님께서 惡業(악업)으로서 인면수심의 인생을 창조하신 이유는 말세 어느 때, 어느 곳에선가 곡식이나 종으로 부리기 위하여 창조하신 사실을 암시한 두려운 예언이며, 두려운 말씀이다.

 

또한 ‘三旬九食 不飢生(삼순구식 불기생)’이라 한 문장을 볼 수 있다. 三旬九食(삼순구식)의 뜻은 三旬(삼순)의 旬(순)자가 ‘十日 旬(순)’자이기 때문에 ‘三十日에 아홉 번만 먹는다’는 뜻으로 三十日 동안에 아홉 번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은 곡식이 ‘十年之農 生穀(십년지농생곡)’이 아니겠냐 하는 뜻으로 해문해야 정상이나,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위문장 三旬(삼순)의 旬(순)자에 대하여 고전 書經(서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보기)   旬   (十日)   [書經]   期 三百有   六 - 有六日  

                     순   (십일)   (서경)   기 삼백유   육 - 유육일

 

보기 기록과 같이 旬(순)자는 ‘十日 旬(순)’이라고도 하며 또한 書經(서경)에서는 때가 되었다는 뜻으로 期(기)라 하였고, 三百有 六旬有 六日(삼백유 육순유 육일)의 366일은 一年을 지칭한 내용이다. 현재 一年을 三百六十五日이라 하는데 위 旬(순)자의 기록에서는 일년을 三百六十六日로 한 것이 차이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旬(순)자의 기록을 ‘十日 旬(순)’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書經(서경)의 ‘期 三百有 六旬有 六日(기 삼백유 육순육일)’의 기록대로 三旬(삼순)은 三十日이 아니라 三年을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필자의 견해이다.

 

그 이유는 期(기)자는 ‘기약 期(기)’ ‘돐 期(기)’ ‘반드시 期(기)’ ‘믿을 期(기)’ 등 여러 가지의 뜻이 담긴 글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旬(순)자와 期(기)자의 기록에 근거하여 본 예언문장 ‘三旬九食 不飢生(삼순구식 불기생)’은 三十日동안에 아홉 번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삼년동안에 아홉 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문해도 되지 않나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필자가 주장하는 이유는 三旬九食(삼순구식)의 九字를 數(수)의 九로 해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九’字로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위 예언문장에서 ‘一年之農 腐穀(부곡)인가’라 하여 썩는 곡식이라는 것은 농민들이 짓는 농사의 곡식을 지칭한 문장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十年之農 生穀(십년지농 생곡)인가?’의 뜻은 十年동안 지은 농사는 썩지 않는 살아있는 곡식이라 한 점으로 보아 육지에 심어 거두는 곡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三旬九食(삼순구식)의 九자는 다음 보기의 고전 列子(열자)에서는 九를 '연구하는 존재가 아홉 번째로 나온다'는 뜻으로 설명하였다.

 

         보기)  九  (數多也)  [列子]  一變而爲七  七變而爲九  變者究也

                구  (수다야)  (열자)  일변이위칠   칠변이위구  변자구야 

 

                              [素問]  天地之至數  始於一  終於九焉

                              (소문)  천지지지수  시어일  종어구언

 

위문장 고전 列子(렬자)의 기록은 九자는‘하나 一’字가 변화되는 과정을 소개한 내용으로서 ‘하나 一’字가 七字로 변화되며, 七字가 다시 變化(변화)되어 九字가 되고, 다시 九자가 變化(변화)되어 ‘硏究(연구)하는 사람의 究(구)’자의 존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九字의 역할은 ‘하나 一’字가 七字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시 七字는 九字로 변화되며 九字가 다시 변화되는 시점에서는 硏究(연구)하는 사람이 나오는 究(구)자로 변화된다는 뜻을 기록한 九字이다.

이러한 이유로 九字는 ‘하나 一’字로부터 변형된 九字라는 것으로서 九字의 역할은 근본의 역할을 하는 九字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 一’字의 역할은 근본이 되는 一字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전 素問(소문)의 기록에서는 九자를 ‘天地之至數 始於一(천지지지수 시어일)’이라 지칭하여 하늘의 존재가 땅에 도착하여 시작하는 수가 ‘하나 一’字이며 또한 終於九焉(종어구언)이라 지칭하여, 땅에서 끝을 마치는 숫자인 九자의 존재가 나오면서부터 종말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九字에 관한 고전 列子(렬자)의 기록으로 본다면 一字로 시작하여 七자로 變化(변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九字의 역할은 학문을 硏究(연구)하는 究(구)자의 역할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고전 素問(소문)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구에 도착하시어 시작하는 숫자는 一로 시작하여 끝마치는 숫자는 九字라는 사실을 암시하여 종말을 마무리하는 九字의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九자에 대한 고전의 기록으로 본다면 九자는 사람에 속한 九자로서 학문을 연구하고 나오는 역할이며 종말을 마치러 나온 究(구)자의 역할인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九字에 대하여 ‘열 十’字의 기록에서는 다음 보기와 같이 九字를 하늘로 지칭하였다.

 

                      보기)   十   [易繫辭]   天九地十

                              십   (역계사)    천구지십 

 

고전 易繫辭(역계사)에서는 天九地十(천구지십)이라 하여, 九字는 하늘의 역할이며 十字는 땅의 역할을 하는 글자로 설명하였다. 상기와 같은 九字의 기록을 참고하여 위 예언문장인 다시 보기의 기록을 해문 한다면 완전히 다른 각도의 해문이 나온다.

 

              다시보기)   十年之農  生穀인가   三旬九食  不飢生을

                           십년지농  생곡      삼순구식  불기생

 

다시보기에 나타나 있는 九字를 ‘하나 一’의 존재가 변천과정을 거쳐서 나온, 학문을 연구하며 하늘의 역할을 하는 究(구)자의 존재로 보고 ‘十年之農 生穀(생곡)인가? 三旬九食 不飢生(삼순구식 불기생)’을 뜻글인 한문에 근거하여 해문하면, 十年동안 지은 농사는 생명의 양식으로써 삼년동안 하늘의 곡식을 먹으면 배고품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문해도 무방한 기록이라 본다.

 

왜냐하면 三旬九食(삼순구식)을 직역하면 三旬(삼순)을 三十日로 보아 ‘삼십일 동안에 아홉 번을 먹는 곡식’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 해문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러므로 三旬(삼순)을 三年으로 지칭하고 九食(구식)을 하늘의 양식이라 지칭하여 삼년동안 하늘의 약식을 먹는데 시장한 것을 모른다는 뜻으로 해문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하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왜냐하면 十字에 대해 고전 易繫辭(역계사)에서는 天九地十(천구지십)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九자는 하늘을 지칭한 것으로서 ‘三旬九食(삼순구식) 不飢生(불기생)’의 九食(구식)은 삼년동안에 아홉 번을 먹는 곡식이 아니라 삼년동안 하늘곡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필자는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뜻으로 해문한다면 ‘十年之農 生穀인가’의 뜻은 사람을 생산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필자의 견해이다.

필자가 상기와 같이 주장하는 이유는 본 예언 내용에 人生을 秋收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며 秋收를 당하는 人間은 선한 인간이 아니라 邪惡(사악)한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인간을 추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면수심의 인간을 추수하게 되면 사망할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올 자가 있는데 근원의 진리를 가지고 나와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때가 오면 이 세상이 혼돈된 세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하늘에서 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는 다음의 예언이다. 소개하는 예언문장은 격암유록 초장 예언이다.

 

소개하는 문장은 두 문장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문장이다.

                 

                 보기)   死中求生 元眞理  出死入生 信天村

                         사중구생 원진리  출사입생 신천촌

 

                         造次不離 架上臺  坦坦大路 永不變 

                         조차불리 가상대  탄탄대로 영불변 

 

                         有形無形 兩大中  道通天地 無形外  

                         유형무형 량대중  도통천지 무형외

 

소개하는 보기의 문장과 같이 사망할 사람 중에서 영생할 사람이 나오는데, 하나님을 믿는 촌마을에서 근본의 진리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信天村(신천촌)에서 나가면 사망하고 들어오면 살아날 수 있다’는 信天村(신천촌)을 만드신 분을 떠나지 않고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는 역할을 하여 영원불변하는 탄탄대로를 가는 자가 나와서 무형체 하나님께서 유형체로 나오신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도를 통달하여 하나님의 형체는 한 분 밖에 또다시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는 기록이다. 

 

위와 같이 위 예언문장을 대충 설명하였다. ‘死中求生 元眞理(사중구생 원진리)’의 문장에서 死中求生(사중구생)의 문장은 재설명이 필요 없이 인간은 어느 누구나 태어나면서부서 살러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하루하루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어려서는 공부하고 장년이 되어서는 결혼이라는 것을 하여 재차 사망할 인생을 생산하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死中(사중)이라 하여 죽는 가운데 있는 인생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死中求生(사중구생)이라는 문장의 뜻은 사망할 인간 가운데서 살아남을 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求生(구생)이라 지칭한 것이다. 사망할 인간 가운데서 살아나올 수 있는 자가 하는 일을 지칭하여 元眞理(원질리)라 하여 근본의 진리를 가지고 나오는 존재임을 명시한 것이다.

 

위문장에서 元眞理(원진리)의 元(원)자는 ‘근원 元(원)’ 또는 ‘으뜸 元(원)’ ‘善人(선인) 元(원)’ ‘임금 元(원)’ ‘원기 元(원)’자로서 元眞理(원진리)의 뜻은 우선 하나님의 진리라는 뜻이며, 그 다음으로는 元年(원년)이라 하면 세상 왕께서 처음으로 卽位(즉위)하신 년도를 지칭한 뜻으로서, 국조단군께서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시고 왕위에 卽位(즉위)하신 년도를 元年(원년)이라 한 것이며, 우리나라가 일년 중 최고의 명절인 雪(설)날을 다른 표현으로 元旦(원단)이라 하여 정월 초하루를 설날로 기념하는 이유가 元年(원년)의 주인공이신 국조단군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元眞理(원진리)라 하면 국조단군을 모시고 나오는 것이 그 뜻이다.

 

위와 같은 元眞理(원진리)의 뜻에 근거하여 사망할 사람 가운데서 영생할 자로 살아 나오는 자는 천상천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천자를 모시고 나오는 존재임을 밝히는 예언이라 필자는 해문하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천상천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천자로 두 하나님의 존재가 元眞理(원진리)에 해당하시는 분이시라 해문하는 이유는 원래 근본의 존재는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가 元眞理(원진리)의 역할이시며 두 번째로는 육지에서 인간의 根本(근본)으로서 나라를 세우신 존재는 元年(원년)의 주인공이 근본의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망할 자 가운데서 살아 나오는 자가 하나님을 모시는 信天村(신천촌)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며 하나님을 믿는 信天村(신천촌)에서 나오는 자는 사망할 것이며, 들어가는 자는 살아남는다는 ‘出死入生 信天村(출사입생 신천촌)’의 信天村(신천촌)이 어디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信天村(신천촌)의 뜻은 하나님을 믿는 촌이라는 뜻으로서 공교롭게도 1957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경기도 부천시 소사읍 범박리에 信仰村(신앙촌)을 건설하신 상황과 같은 맥락의 뜻이 信天村(신천촌)의 뜻이므로 사망할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오는 근본의 진리를 가지고 나오는 자는 信仰村(신앙촌)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기록이라는 필자의 해문이다.

 

이러한 기록에 근거하여 다음에 연결되어지는 문장에서는 사망할 존재였지만 사망을 이기고 살아 나오는 자의 앞날을 소개하고 있다. 이 문장은 해문하기 위하여 이기한 문장이다.

 

              다시보기)   造次不離 架上臺  坦坦大路 永不變 

                          조차불리 가상대  탄탄대로 영불변 

 

                          有形無形 兩大中  道通天地 無形外  

                          유형무형 량대중  도통천지 무형외

 

다시보기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사망할 자가 살아 나와 하는 일’에 대해서이며,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주인을 모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造次不離 架上臺(조차불리 가상대)이라 소개한 것이다. 造次(조차)라는 문장은 만들기 시작할 차례라는 뜻으로서 다음 사람이 나와서 하는 일을 지칭한 기록으로서 사망할 사람 가운데서 살아 나오는 자가 하는 일로서 그 자가 이루기 시작하는 일은 근본을 떠나지 아니하고 근본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일로서 영원히 변함없는 탄탄대로(坦坦大路)를 가는 자라는 기록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에서 架上臺(가상대)라는 기록에서 架(가)자는 ‘일으켜 세울 架(가)’ ‘사다리 架(가)’ ‘말뚝 架(가)’자로서 上臺(상대)라는 뜻은 神靈(신령)을 모시는 廟堂(묘당)이나 높은 관청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필자는 架上臺(가상대)에 대하여 하나님의 신령을 모시는 뜻이라 해문하여 사망할 인간 가운데서 살아 나오는 자는 학문을 연구하고 글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라 해문하는 것이다.

 

필자가 위문장에서 ‘글을 만들어 하나님을 증거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문장은 造次不離(조차불리)의 造次(조차)의 문장이라 본다. 그 이유는 造(조)자는 ‘만들 造(조)’ ‘시작 造(조)’ ‘올 造(조)’ ‘나타날 造(조)’ ‘때 造(조)’자로서 때는 여름을 지칭하는 造(조)자이다.

 

그런데 造次(조차)의 뜻은 ‘갑자기 나타나는 존재가 어떤 일을 반드시 시행한다’는 뜻으로서 이 뜻에 근거하여 필자는 造次不離(조차불리)의 조차의 뜻을 ‘학문을 연구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라 해문한 것이다.

 

                    보기)  造  (-次急遽) [論語] 造次 必於是

                           조  (-차급거) (논어) 조차 필어시

 

소개하는 보기의 造(조)자의 뜻을 ‘급히 드러나는 존재’라는 전제 하에 論語(논어)에서는 ‘造次 必於是(조차 필어시)’라 하여 ‘시작하는 존재는 반드시 올바른 일을 하는 존재’라고 서술하였으므로 이 기록을 근거하여 필자는 위 문장 造次(조차)의 기록을 ‘글을 지어서 하나님을 모시는 역할’의 뜻으로 해문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망할 인간 가운데서 살아 나오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학문을 연구하여 하나님을 증거하고 나오는 사람은 탄탄대로를 가는 자로서 영원히 변화되지 않는 지조가 굳은 사람이라는 것이며, 이 사람이 나오면서부터 무형체의 하나님의 존재를 유형체의 하나님으로 드러내는 역사를 펼치게 됨으로 인하여 천지의 도가 통달되고 다른 형체는 필요 없어진다는 사실을 다음 이기한 기록과 같이 서술한 것이다.

 

                 다시보기)   有形無形 兩大中  道通天地 無形外  

                             유형무형 량대중  도통천지 무형외

 

소개하는 다시보기의 기록과 같이 유형체와 무형체의 두 형체 중에서 천지의 도를 통달하는 사람은 무유형체의 하나님의 존재를 모시는 존재이므로 무형체의 하나님의 존재는 제외시켰다는 뜻을 無形外(무형외)라 지칭하여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형체와 무형체의 두 하나님 중에서 무형체의 하나님은 제외시키고 유형체의 하나님을 모시는 존재를 도통천지라 지칭함과 같이 두 하나님의 역할을 분간할 자로 나온 존재는 자기 자신이 眞人(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로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하여 하단의 문장과 같이 ‘조을시구 진각인(肇乙矢口 眞覺人)’이라 소개한 것이다.

 

소개하는 하단의 문장은 앞문장과 연결되는 문장이다.

 

       보기) 肇乙矢口  眞覺人  祈天禱神   時不休  惡罪滿天  判端日    中略(중략)

             조을시구  진각인  기천도신   시불휴  악죄만천  판단일

 

              禍因惡積   不免獄    人獸分別   兩端日   飛火落地  混沌世

              화인악적   불면옥    인수분별   량단일   비화락지  혼돈세

 

              西方庚辛   四九金    從金妙數  大運也

              서방경신   사구금    종금묘수  대운야

 

                                            -格菴 初章(격암 초장)-

 

소개한 보기 내용은 사망할 자 가운데서 살아 나오는 자가 할 일이 무엇이며, 사망할 자 가운데서 살아 나오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문장으로서, 이 문장은 읽을 수만 있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써, 현 세상을 지칭하여 사악한 죄악이 하늘에 가득 차있는 세상임을 판단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존재가 자기 자신이 眞人(진인)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여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肇乙矢口(조을시구) 眞覺人(진각인)’이라 지칭한 예언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의 뜻은 사망할 인간 중에서 살아 나오는 존재가 자기 스스로 진인임을 깨닫고 또한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깨달은 존재가 영생할 자라는 사실이다.

 

또한 자기 자신이 眞人(진인)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眞人(진인)의 존재가 하는 일은 하늘에 가득한 죄악을 판단하는 일로써 因果應報(인과응보)의 이치와 같이 점점 사악해지는 인간의 뿌리가 재앙으로  연유된 족속이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악을 축적하는 것이며 이 자들은 지옥을 면하기가 어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眞人(진인)의 존재가 하는 일은 사람과 짐승인간을 구분하는 것인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늘에서 땅으로 불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세상이 혼란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眞人(진인)의 존재가 나타나는 방법은 서방의 예수를 타고 나오는 것이 최고의 좋은 妙數(묘수)로 오는 眞人(진인)이라는 예언이다.

 

상기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眞人(진인)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존재가 ‘祈天禱神 時不休(기천도신 시불휴)’라 지칭하여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은 앞 문장에서의 혈통을 파견하여 종자를 심어 파종한다는 기록에서 ‘祈天禱神 秋收下(기천도신 추수하)’라 하여 하나님께 기도한 존재가 秋收(추수)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왔다는 기록과 일맥상통하는 뜻이다.  

 

또한 다음의 이기한 다시보기문장이 중요한 내용이다.

 

         다시보기)  禍因惡積 不免獄  人獸分別 兩端日  飛火落地 混沌世

                    화인악적 불면옥  인수분별 량단일  비화락지  돈세

 

다시보기의 기록에서‘禍因惡積 不免獄(화인악적 불면옥)’이라 하였다. 禍因(화인)이라는 뜻은 ‘재앙의 원인으로’ 라는 뜻으로, 禍根(화근)에서 생성된 인간은 악을 축적하는 일을 하는 존재로써 지옥을 면할 길이 없는 존재라는 것이며 또한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량단일)’이라 기록하여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眞人(진인)이 나와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부연하여 위문장의 ‘禍因惡積 不免獄(화인악적 불면옥)’의 禍因惡積(화인악적)은 태초의 하나님께서 惡業(악업)으로 사악한 인생을 창조하신 이유를 밝히고 있는 내용으로서 禍因惡積(화인악적)이라는 뜻은 재앙을 받은 사악한 인간들이 악을 축적하는 인간들이라는 뜻으로서, 惡業(악업)으로 생성되어진 악이 가득한 사악한 인간 남녀가 결합하여 생산한 아이에게는 더 많은 악이 축적되어 더욱 사악한 아이를 생산하게 되므로 인면수심 인간들의 성행위로 생산되어지는 아이를 禍因惡積(화인악적)이라 서술한 것이며, 이러한 자들은 지옥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밝힌 예언이 ‘禍因惡積 不免獄(화인악적 불면옥)’이다.  

이러한 이유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현재 남녀의 성행위로 얻어지는 아이를 마귀새끼들이라 지칭하시면서 여자의 자궁에서 마귀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이 사는 세상과 짐승이 사는 세상을 분류하는 일을 하는 眞人(진인)이 등장하면서부터 불이 날아와 육지에 떨어지는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세상이 혼란해지기 시작한다는 예언기록이다.

 

위문장에서‘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량단일)’은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여 사람과 짐승의 정체를 밝혀내어 세우는 때라는 뜻이다.

 

상기와 같은 사실은  현재 사람과 짐승이 분별하기 어렵게 뒤범벅으로 혼합되어 살고 있는 인간 세상에서 사람과 짐승을 분별한다는 뜻이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양단일)’의 뜻이다.

 

이와 같이 사람과 짐승이 混沌(혼돈)상태에서 공생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여 사람과 짐승의 세상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兩端日(양단일)이라 한 것이다.

 

兩端日(양단일)의 端(단)자는 ‘올바를 端(단)’ ‘시작 端(단)’ ‘머리 端(단)’ ‘새싹 端(단)’ ‘실마리 端(단)’ ‘끝 端(단)’자로 인용하는 글자이다.

 

위 端(단)자의 뜻을 참고하여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양단일)’의 뜻을 부연하면,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여 양쪽으로 갈라 세우는 시기부터 사람이 사는 세상과 짐승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새로 생긴다는 뜻으로 해문해도 되고, 또는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眞人(진인)이 등장하여 사람과 짐승을 분리해 놓게 되면 세상은 종말이라는 뜻으로도 해문할 수 있다.

 

필자는 후자를 택하여 ‘人獸分別 兩端日(인수분별 양단일)’의 뜻을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여 갈라놓는 眞人(진인)이 등장하면 그 정체가 짐승으로 밝혀진 인면수심 인종의 역사는 끝이 나게 되는 것이며 반대로 사람으로 선발된 선한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해문하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후자를 택하여 해문하는 이유는 다음에 연결되는 ‘飛火落地 混沌世(비화락지 혼돈세)’의 문장에 근거해서이다. 飛火落地(비화락지)의 뜻은 불이 날아와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써 현재 인간들이 전쟁할 때에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공중에서 비행기가 포탄을 투하하는 것을 450여 년 전에 내다보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에 연결되는 문장에서 混沌世(혼돈세)라 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장이다. 混沌(혼돈)이라는 뜻은 사물의 구별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를 지칭한 것으로써 두 가지 이상의 물체가 뒤범벅되어 섞여있다는 뜻이 混沌(혼돈)의 기록이다.

 

混沌(혼돈)의 기록을 한자대자전에서는 開闢(개벽) 초, 天地가 갈라지지 않은 상태에 鷄子(계자) 즉 계란모양과 같이 노란 자위와 흰 자위가 섞여있는 계란을 지칭하여 混沌(혼돈)이라 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사람도 두 가지 이상의 물체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잡종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混沌世(혼돈세)라 한 것이며, 雜種人間中(잡종인간중)에는 人面獸心의 인간들이 많이 섞여있다는 사실을 암시한 混沌世(혼돈세)의 기록이라 본다. 

 

위와 같이 사람과 인면수심의 인간이 混沌(혼돈)되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眞人(진인)의 존재는 서방의 예수를 타고 나오는 대운의 역할로 나오는 眞人(진인)의 운명이라는 하단의 기록이다.

 

                 다시보기)   西方庚辛  四九金   從金妙數  大運也

                             서방경신  사구금   종금묘수  대운야

 

다시보기의 기록과 같이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여 사람은 사람대로 분류하고 짐승은 짐승대로 그 무리를 분류하여 분리시키는 眞人(진인)이 나와서 일을 시작하는 때는 하늘에서 불이 날아와 땅으로 떨어지는 시기로서 사람과 짐승이 혼합되어 사는 세상인데, 이와 같이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眞人(진인)은 서방 예수의 운명을 타고 오는 역할로 서방을 경유하여 동방으로 나오는 眞人(진인)이라는 기록이다.

 

위문장에‘西方庚辛 四九金(성방경신 사구금)’이라 지칭하였다. 西方庚辛(서방경신)의 庚辛(경신)의 문장은 서방을 지칭한 것으로서 오방신장의 天干(천간)에서는 庚辛(경신)에 속하고, 數(수)로는 四九라 하고 五行(오행)으로는 金(금)에 해당되는 것이 西方(서방)이라는 기록이다.

 

또한 ‘從金妙數 大運也(종금묘수 대운야)’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기위해 나오는 존재는 서방의 예수를 추종하는 운명의 묘한 운수를 타고난 존재로서 이와 같은 전철을 밟아 나오는 대운의 역할을 맡은 眞人(진인)의 운명이라는 예언이다. 

 

부연하면 ‘從金妙數 大運也(종금묘수 대운야)’의 기록은 예수를 추종하면서 나오는 묘한 운수라는 기록으로서 從金(종금)이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從金(종금)의 從(종)자는 ‘따를 從(종)’ ‘나갈 從(종)’ ‘스스로 從(종)’ ‘너(爾) 從(종)’ ‘친적 從(종)’자이다. 그러므로 從金(종금)의 뜻은 서방의 존재를 따라가는 존재라는 뜻으로 본 문장에서 서방의 존재를 믿고 따라가는 존재라는 뜻을 필자는 예수를 믿는 존재를 지칭한 것으로 해문한다.

 

또한 妙數大運也(묘수대운야)의 뜻은 동방에서 나온 존재가 서방의 예수를 따라가면서 나오게 되어 있는 묘한 운수로 나오는데, 이 사람이 바로 큰 운의 존재로 나오는 眞人(진인)이라는 뜻이다.

위문장에서 大運也(대운야)의 기록은 ‘天命(천명)을 받은 運(운)’이라는 뜻으로 ‘하늘에 昇天(승천)할 운명’이라는 뜻이다.

 

필자가 大運也(대운야)의 뜻을 ‘하늘에 승천할 운명’이라 해문하는 이유는 大命(대명)의 뜻은 天命(천명)의 뜻이라는  전제로 하여 大命(대명)의 뜻을 고전 後漢書(후한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슬을 하였기 때문이다.  

        
                    보기)  大運  (天命)  [後漢書]  朕承大運也 

                          대운  (천명)  (후한서)   짐승대운야 

 

보기의 위문장 朕承大運也(짐승대운야)의 朕(짐)자는 자기 자신을 지칭한 글자로서 ‘나 朕(짐)’이라 지칭하는 朕(짐)자이면서 또한 兆朕(조짐)의 朕(짐)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朕(짐)자의 기록을 근거할 때 朕承大運也(짐승대운야)의 뜻은 ‘내가 하나님의 대업을 승계할 존재로 나오는 천명을 받은 존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문장의 朕承(짐승)의 承(승)자는 ‘承繼(승계) 承(승)’ ‘받아들일 承(승)’ ‘도울 承(승)’자이다.

이러한 기록에 근거하여 承繼(승계)라 하면 ‘그 其(기)’자의 존재가 天子(천자)의 역할을 承繼(승계)받는다는 뜻을 전하고 있는 고전 白虎通(백호통)의 기록이다.

 

               보기)   承繼  (繼承) (承襲)  [後漢書]   天子承繼 知其數

                       승계  (계승) (승습)  (후한서)   천자승계 지기수

 

보기 承繼(승계)의 기록에서 承繼(승계)는 繼承(계승)이나 承襲(승습)에 관한 내용과 같다는 사실과 後漢書(후한서)의 기록에서는 天子承繼(천자승계)라 지칭하여 天子(천자)의 직위를 이어받을 존재는 知其數(지기수)라 하여 ‘그 其(기)’사람의 존재가 천자의 대업을 이어받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상기문장의 知其數(지기수)의 數(수)자는 ‘숫자 數’자로 해문하는 것이 아니라 ‘運命(운명) 數(수)’자로 해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록에 근거하여 서방을 통하여 나오는 대운명의 역할을 맡은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대행하는 ‘그 其(기)’자의 존재로 나오는 ‘아들 子’의 역할이라는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을 참고하여 위 예언문장에서 이기한 다음의 다시보기 문장을 본다.

 

                   다시보기 )  西方庚辛 四九金   從金妙數  大運也

                               서방경신 사구금   종금묘수  대운야

 

소개한 문장에서는 天子의 대업을 이어받을 존재는 서방의 예수를 추종하다가 나오는 묘한 운명을 타고 나오게 되어 있음을 예언하였다.

상기의 예언문장과 같이 실행하시고 나오신 분이 바로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초창기에 종교역사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를 구세주라 증거 하시면서 감람나무의 출현을 예언한 성서 호세아 14장과 이사야 41장의 기록을 근거하여, 동방의 땅 모퉁이에서 나오기로 되어 있는 동방의 의인 감람나무로 출현하신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1980년도에는 당신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시고 예수를 개자식이라 쳐버리시면서 “내가 예수를 개자식이라 쳐버리지 않으면 감람나무가 나올 수가 없다”는 의아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당신이 감람나무의 존재로 이슬과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존재라 발표하신 분께서 당신자신이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라 밝히시고 승격하신 이후에는 “내가 예수를 개새끼라 치지 않으면 감람나무가 나올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당신자신이 감람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하신 말씀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박태선 장로님의 “내가 예수를 개새끼라 치지 않으면 감람나무가 나올 수가 없다”는 말씀은 곧 ‘감람나무’라는 사람의 출현을 암시하신 말씀으로서 필자는 ‘西方庚辛 四九金(서방경신 사구금) 從金妙數 大運也(종금묘수 대운야)’의 예언대로 실행하는 곳이 단군연합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그 이유는 서방의 예수를 증거하면서 종교역사의 문을 여셨다가 예수를 개새끼라 쳐버리시고 당신께서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승천하신 박태선 장로님에 대하여 현재 단군연합에서는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역할로 나오시는 박태선 장로님의 존함이 격암유록을 통하여 파자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근거하여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상황이 大運(대운)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 필자는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백마공자 역시 처음에는 예수를 믿다가 박태선 장로님을 따라 예수를 믿던 존재이므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나오는 역할 역시 서방의 예수를 통하여 나온 역할인 것으로 필자는 보는 것이다.

 

필자가 이와 같이 주장하는 이유는 서방의 예수를 타고 강림하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한문을 연구하는 자 예수 2,000년을 고도로 앞선 자’라고 말씀하신 바, 상단에서 밝히고 있는 서방을 경유하여 나오는 대운의 역할은 사망할 인간 가운데서 살아나오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이 학문을 연구하고 眞人(진인)의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고 나와 인면수심의 역할로 나오는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여 나오는 자가 서방 예수 역할을 하는 운명의 존재인 眞人(진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여러 기록을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선인과 惡人(악인)의 존재가 함께 존재하도록 하늘의 혈통을 지하에 파견하여 人面獸心(인면수심) 惡人(악인)의 존재를 파종하였으니, 이러한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존재는 바로 사람 같으나 사람이 아닌 짐승의 탈을 쓰고 있는 인간의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이를 구분하여 秋收(추수)해 가시기 위하여 眞人(진인)의 존재를 세우신 이유로서 또한 ‘十年之農 生穀(십년지농 생곡)’의 곡식을 심으셨다는 사실은 秋收(추수)할 인간을 심으셨다는 사실로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탈하지 못하는 人面獸心(인면수심)의 인간은 十年之農 生穀(십년지농 생곡)의 존재로서 人生秋收(인생추수)에 해당하는 獸人得生(수인득생)의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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