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살아남을 자와 사망할 자는 어떤 존재들인가? (14부-2)
 

             

 


전장에서 논했듯이 불원간 이 세상에  대재앙이 오게 되어 있다. 소개하는 내용은 전장과 바로 연결되는 것으로 주제는 살아남을 자와 사망할 자를 분별하는 내용이다.

 

     殺我者誰  小頭無足  活我者誰 三人一夕  求出生命  一五六死  飛火落地  不出十勝

     살아자수  소두무족  활아자수 삼인일석  구출생명  일오륙사  비화락지  불출십승

 

     生者何謀  天佑神助  信天者生  天神指導  隱居四年  後更逢  新天地

     생자하모  천우신조  신천자생  천신지도  은거사년  후갱봉  신천지

 

殺我者誰(살아자수)라 하여 자기를 죽이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小頭無足(소두무족)이라 답한 것이다. 小頭無足(소두무족)이란 작은 머리에 다리가 없는 물건으로 이런 모양을 하고 사람을 살생하는 무기는 총알 밖에 없다. 이렇듯 450여 년 전에 남사고 선생께서는 말세에 총알이나 포탄으로 사람을 살생하게 될 것을 이미 내다보고 예언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오늘날 小頭無足(소두무족)의 총알이나 포탄이 사람을 살생하고 있다.

 

반면에 活我者誰(활아자수)라 하여 나를 살려주는 것은 누구냐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三人一夕 求出生命(삼인일석 구출생명)’이라 하였다.

三人一夕(삼인일석)의 문구는 ‘修行(수행)할 修(수)’자를 파자한 것으로 이것은 修行(수행)하여 올바른 길을 아는 자는 살아남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수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자기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은 수행하는 곳을 찾아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하늘에서 불이 비 오듯 쏟아질 때에 이 재앙을 받는 자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그 해답을 하단의 문장에서 말하고 있다.

 

                        보기)  一五六死  飛火落地  不出十勝

                                일오륙사 비화락지  불출십승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쏟아져 사망하는 재앙이 오게 되는데 이 때 사망하는 자들의 숫자가 一五六수에 해당되는 것으로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에는 십승지가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不出十勝(불출십승)이라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사망하게 되는 자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一五六死의 숫자가 뜻하는 의미를 분석해야 한다. 一五六死란 숫자의 의미는 사람이 많이 죽는 장소를 숫자로 표기한 것이다. 一數와 五數 및 六數는 각각 오방신장에서 북한과 삼팔선의 경계선 근방과 남쪽은 역시 삼팔선 경계선 근방인 서울 경기도 일대를 지칭한 숫자이다.

 

그 입증으로 ‘一五六死’의 數字(숫자)중에서 一六의 숫자는 오방신장에서 북방을 지칭한 것이며, 五자의 숫자는 중앙을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飛火落地(비화락지)’라 하여 불이 날아와서 땅에 떨어지는 상황을 그린 것은 포탄과 미사일로 인한 전쟁을 표현한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자연히 3차 전쟁이 되므로 만약 이것이 현실화 될 시 미국 무기의 화력으로 짐작해 볼 때 북한을 초토화시킬 것은 기정사실이고 남한 역시 삼팔선 근방 일원인 경기도 지역을 위시하여 서울까지 엄청난 인명이 사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므로 이러한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예언으로 필자는 해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不出十勝(불출십승)’이라 한 것은 십승지는 구원받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전쟁이 발발할 시, 십승지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두문불출한다는 예언이다. 이 십승지의 역할은 당연히 단군연합이다. 그 이유는 현재 단군연합의 회원들은 상기와 같은 예언이 현실화 될 것을 믿고 이 사실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자들로서 피난처에 미리 피난하기 위하여 그간의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한다는 예언이 ‘不出十勝(불출십승)'이다.

 

이러한 현실을 남사고 선생은 450여 년 전에 내다보고 예언한 것이며, 그 예언대로 현재 상황이 그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자체가 매우 심각한 것임을 각성할 때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살아남는 자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자가 하고 있는 일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보기)  生者何謀  天佑神助  信天者生  天神指導  隱居四年 後更逢  新天地

              생자하모  천우신조  신천자생  천신지도  은거사년 후갱봉  신천지

 

재앙이 올 때에 살아남을 자가 하는 일을 ‘生者何謀(생자하모)’라 하였다. 生者何謀(생자하모)의 ‘何謀(하모)’의 뜻은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뜻이다. 여기서 何謀(하모)의 ‘何(하)’자는 ‘무엇 何(하)’ ‘누구 何(하)’자이다. 何(하)자의 존재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인 鼠生員(서생원) 서씨가 ‘何(하)’자의 존재임을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또한 ‘謀(모)’자는 ‘그림 그릴 謀(모)’ ‘계획 謀(모)’ ‘모의할 謀(모)’자로 易經(역경)에서는 作事謀始(작사모시)라 하여 ‘일을 만들기 시작할 謀(모)’자라 설명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生者何謀(생자하모)의 살아남는 존재는 ‘그 사람’의 장본인인 鼠生員(서생원)이며 그는 作事謀始(작사모시)의 뜻과 같이 어떤 일을 새로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단군연합에서는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또한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라고 증거하는 일이 作事謀始(작사모시)의 일인 것이다.

 

또한 이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도와야 신의 도움도 받는다’는 天佑神助(천우신조)의 도움을 받는 자로서 하나님을 믿은 덕분에 살아남게 되어 하나님 神(신)의 인도를 받아 4년 동안 안전한 곳에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종국에는 新天地(신천지)에서 다시 만나게 될 운명의 소유자라는 예언이다.

 

이 예언에서 기이한 부분은 天佑神助(천우신조)의 문구이다. 天佑(천우)라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이다. 또한 神助(신조)는 신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神(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神(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天佑神助(천우신조)의 뜻으로 볼 때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며 단지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역할까지만 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을 구원해 주는 실상의 존재는 神(신)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 天佑神助(천우신조)의 기록이다.

 

위와 같이 天佑神助(천우신조)의 뜻이 성취되려면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어 神(신)을 도와주시는 일을 하셔야만 그 뜻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강림하신 하나님이 바로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이 땅에 강림하시어 전도관을 세우시고 신앙촌을 세 곳에나 건설하시고 종교역사를 하시면서도 백의민족의 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정결한 피라는 사실과 백의민족의 피가 맑고 정결하므로 당신 자신도 백의민족의 혈통으로 강림하시어 백의민족을 구원주시기 위하여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은 백의민족의 조상이신 단군을 간접적으로 증거하신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1980년 4월에는 청천벽력과 같이 "내가 바로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신 후 1990년 2월 7일에 화천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신 이유는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라 증거해 줄 사명자인 백마공자가 나오게 되어 있는 사실을 아시고 떠나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당신이 화천하셨다가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결론적으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가고 증거하는 白馬神將(백마신장)이 나온다는 사실을 암시해 놓으셨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信天者生(신천자생)’이란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살아남는 존재로 天佑神助(천우신조)의 역할을 하시면서 강림하신 박태선 장로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는 살아 남게 된다는 예언이다. 

 이것이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존재이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天佑神助(천우신조)의 역할을 하신 분이심을 밝혀주는 증거이며 또한 박태선 장로님께서도 당신 자신은 구원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하나님은 구원을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시고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당겨 깨끗하게 씻어 구원을 주는 사람이다

                                   -1980년 8월 23일 말씀 중에서-

 

이러한 박태선 장로님의 역할을 상징하기 위하여 ‘天佑神助(천우신조)’라는 고사성어가 존재하는 것이라 필자는 보며 또한 이것이 天地開闢(천지개벽)이라 본다.

 

다음에 연결되는 문장은 피난처가 어디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訪道君子  解見避亂之國  却人來否  隨時待變  篤行工夫  水昇火降之人 萬無一失

       방도군자  해견피난지국  각인래부  수시대변  독행공부  수승화강지인 만무일실

 

       然不通之人用事  無驗矣 利在弓弓之間矣

       연불통지인용사  무험의 이재궁궁지간의

 

       一日如千是日  喪皆願死  七李相爭  無罪蒼生  萬無一生  殺我十處運去  智短兵火

       일일여천시일  상개원사  칠이상쟁  무죄창생  만무일생  살아십처운거  지단병화

 

       連天圖名之急  仁富之間  夜泊千艘  不居仁富  愼之

       연천도명지급  인부지간  야박천소  불거인부  신지

                                

                                     -山水評章 林出將軍(산수평장 임출장군)-

 

이것은 3차 전쟁과 같은 대재앙이 시작될 시에 살아남기 위하여 대피할 안전한 피난처를 소개한 것으로서, 정감록이나 격암유록 기타 고전을 연구하는 군자들에게 피난처를 알려주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피난지국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으며, 그것은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왔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떠났던 사람을 수시로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떠나갔던 사람은 敦篤(돈독)하게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 사람이 돌아오면 그가 할 역할은 격암유록을 통해 물의 역할로 밝혀진 水(수)의 존재가 승천한 이후에 불의 역할인 火(화)의 존재로 강림하는 역할의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그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도 손해 볼일이 없는 무일푼의 존재로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또한 그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이지만 아무 경험이 없는 자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는 吉兆(길조)의 운명을 가진 자가 존재하는 弓弓之間(궁궁지간)에서 한 弓(궁)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 하였다.

 

그런데 하루가 천년 같은 세상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때가 온다는 것이며, 이러한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일곱 번째로 나오는 李(이)씨와 싸우는 시기라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 등장하는 시기이며, 이러한 때에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 재산도 소유하지 않은 탐욕이 없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예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때에는 자기 자신을 죽이려했던 십처지의 운명이 다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혜가 있는 자는 3차 전쟁과 같은 대재앙은 짧은 시일 안에 끝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대재앙이 끝난 직후 지상천국을 건설할 시기가 도래함으로써 경인지방을 통하여 외국에서 하루에도 금은 보화를 실은 천척의 선박이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인천과 부천지방 일대에는 사람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산수평장의 문장을 부분적으로 이기하여 상세히 설명하면, ‘訪道君子(방도군자)’란 도를 닦는 군자라는 뜻으로 정감록이나 격암유록 등 기타 고서나 고전를 연구하여 진리의 길을 찾는 군자를 지칭한 것이다.

이 방도군자의 존재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보기)  訪道君子  解見避亂之國  却人來否  隨時待變

                        방도군자  해견피난지국  각인래부  수시대변

 

위 문장에서는 ‘解見避亂之國(해견피난지국)’이라는 내용이 중요하다. 解見(해견)이라는 뜻은 ‘모든 것을 보고 해석하고 나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방도군자의 존재가 학문을 해석하고 나오게 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학문을 해석하고 있는 방도군자의 존재가 있는 곳이 곧 재앙이 올 때 피난지국이 된다는 예언이다.

 

부연하면 訪道君子(방도군자)의 訪(방)자가 ‘방문을 할 訪(방)’ ‘심방할 訪(방)’ ‘의논할 訪(방)’ ‘문의할 訪(방)’자이기 때문에 이 뜻은 어느 길을 찾아가는 군자라는 뜻으로서 그 길을 찾아 가는 자를 지칭하여 ‘解見 避亂之國(해견 피난지국)’이라 하였다. 이는 글을 해석하면서 가는 자가 방도군자의 존재이며, 방도군자의 존재가 있는 곳이 피난처라는 것이다.

 

또한 訪道(방도)의 道(도)자가 뜻하는 의미가 사람이나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알고 있겠으나 진정한 道人(도인)이 가는 길이 무엇인지는 ‘길 道(도)’자의 기록을 관찰하면 상세히 알 수 있다.

 

‘길 道(도)’자의 뜻은 여러 고전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보기)   道    (仁義忠孝之德義)  (言也) [孝經] 非先王之法言  不敢道

               도    (인의충효지덕의)  (언야) (효경) 비선왕지법언  불감도

 

                     (由也)  [中庸] 尊德性而  道問學

                     (유야)  (중용) 존덕성이  도문학

 

                     (理也)  [易繫辭] 一陽一陰之謂道

                     (리야)  (역계사) 일양일음지위도

 

보기와 같이 ‘길 道(도)’자에 대하여 여러 문헌에서 각기 달리 주장하였으나, 필자의 견해로 본 문장에 합당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기록들만을 한문사전에서 발췌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우선 고전 孝經(효경)에서는 仁義忠孝之德義(인의충효지덕의)를 지키는 것을 道(도)라고 명시하였으며 또한 非先王之法言(비선왕지법언)이라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이 뜻은 선왕의 존재는 질책하시는 존재이시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선왕의 법도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연하면 부모에게 孝道(효도)하는 것이 道(도)의 근본으로 어질고, 의롭고, 덕을 베풀고, 효를 하는 자가 가는 길이 올바른 道(도)라는 뜻을 전하는 孝經(효경)의 기록이다.

 

또한 中庸(중용)에서는 선조로부터 유래되어온 것을 도라 하였는데, ‘尊德性而 道問學(존덕성이 도문학)’이라 하였다. 이 뜻은 학문을 연구하여 그 뜻을 준행하여 타의 존경을 받고 마땅히 선을 베푸는 올바른 근본 바탕의 성품을 소유한 자가 진정한 도를 찾는 자라는 것이다.

 

부연하면 방도군자의 존재가 찾아 가는 길이란 학문을 연구하여 올바른 진리의 道(도)를 찾아가는 것이 訪道君子(방도군자)의 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계사(易繫辭)의 기록을 살펴보면 一陽一陰之謂道(일양일음지위도)라 하였다. 이는 양음의 원리를 알고 가는 것이 올바로 가는 길이라는 뜻인데 謂道(위도)라 하여 그 사람이 가는 길이 올바른 陽陰(양음)의 도라는 것이다.

 

一陽一陰(일양일음)의 뜻은 하나님과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한 것이며 또한

一陽一陰(일양일음)의 뜻은 남녀를 지칭하기도 하는 문구로서 太極(태극)의 원리를 깨닫고 가는 존재가 올바른 도를 가는 존재인데 그 길을 가는 존재를 謂道(위도)라 하였으므로 謂(위)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로써 謂道(위도)의 謂(위)자를 한문사전에서 참고한바 다음과 같은 뜻을 전하고 있다.

 

              보기)  謂  (告也) [詩經]  求我庶士  迨其謂之

                     위  (고야) (시경)  구아서사  태기위지

 

                          (與之言) [易經] 何謂  [莊子] 果有謂乎 果無謂乎

                          (여지언) (역경) 하위  (장자) 과유위호 과무위호

 

謂(위)자를 두고 고전 詩經(시경)과 易經(역경), 莊子(장자)에서는 각기 달리 기록하였다. 우선 詩經(시경)에서는 告(고)하는 일을 맡은 존재를 지칭하고 있으며 ‘求我庶士 迨其謂之(구아서사 태기위지)’라 하여 자기 자신은 庶士(서사) 즉 선비의 역할로서 그 사람이라는 역할을 겸하는 謂(위)자의 존재로 나오는 자라 주장하고 있다.

 

부연하면 謂(위)자의 역할은 ‘그 其(기)’의 역할과 같다. 그러므로 謂道(위도)는 ‘그 其(기)’ 사람이 가는 길 즉 其道(기도)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迨其謂之(태기위지)의 迨(태)자는 ‘도달할 迨(태)’ ‘지금 迨(태)’자이다. 迨今(태금)이라 하면 至今(지금)이라는 뜻으로 迨其謂之(태기위지)의 뜻은 ‘그 其(기)’ 사람의 존재가 謂(위)자의 역할로 변화하여 지금 왔다는 뜻이 된다.

 

또한 역경에서는 何謂(하위)라 하여 누구인지 모르고 무엇을 하는 자인지도 모르는 존재가 바로 謂(위)자의 역할로 나오는 ‘그 其(기)’ 사람의 존재라 하였다.

 

또한 장자에서는 謂(위)자의 역할에 대하여 ‘果有謂乎 果無謂乎(과유위호 과무위호)’라 하였다. 이 뜻은 결실을 맺는 존재를 謂乎(위호)라 하여 謂(위)자의 역할로 나오는 존재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이라는 뜻이며, 또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나오는 존재 역시 세상의 어느 물질도 소유하지 않은 ‘그 其(기)’자의 존재가 謂乎(위호)의 존재라는 것이다.

 

부연하면 謂(위)자의 역할로 나오는 ‘그 其(기)’사람의 존재는 아무런 열매도 갖지 못하여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열매를 맺는 일을 하여 원하는 뜻을 성취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道(도)자를 설명한 여러 문헌의 뜻을 종합해 볼 때, 현재 한문을 연구하여 그 근거를 토대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는 백마공자의 직함을 행사하는 ‘그 其(기)’ 사람의 주인공인 鼠生員(서생원) 서씨가 바로 방도군자의 존재임이 여러 가지 문장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다.

 

다시 산수평장 임출장군의 본장으로 돌아와서 ‘却人來否 隨時待變(각인래부 수시대변)’이라는 내용을 볼 수 있다. 却人(각인)은 내어 쫓아버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却人(각인)의 ‘却(각)’자는 ‘물리칠 却(각)’ ‘물러갈 却(각)’ ‘받아들이지 않을 却(각)’ ‘반대할 却(각)’자이다.

 

이와 같이 却人來否(각인래부)라는 뜻은 내어 쫓아버린 존재가 다시 왔는지 안 왔는지 알 수가 없다는 뜻으로 수시로 기다려진다는 뜻이다. ‘來否(래부)’는 왔다고도 할 수 없고 오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내쫓아버린 자를 수시로 기다리는 이유는 그 자가 다른 모양으로 변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기다려진다는 것을 隨時待變(수시대변)이라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待變(대변)의 ‘待(대)’자는 ‘기다릴 待(대)’ ‘맞이할 待(대)’자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사람이 변화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待變(대변)이라 한 것이다. 부연하면 방도군자의 존재는 언제 내쫓긴 자인지는 모르나 내쫓겨 버림 받았던 방도군자의 존재가 예언서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상기와 같이 내어 쫓아버린 却人(각인)의 존재는 다음 보기와 같이 篤實(독실)하게 학문을 연구하고 나오는 자라는 것이다.

 

                      보기)  篤行工夫  水昇火降之人  萬無一失

                             독행공부  수승화강지인  만무일실

 

여기서 篤行工夫(독행공부)라 한 문장은 열심히 독실하고 돈독하게 공부하는 존재라는 뜻으로서 篤行(독행)의 ‘篤(독)’자는 ‘진실 篤(독)’ ‘너그러울 篤(독)’ ‘순진 篤(독)’자이다.

 

篤志(독지)라 하면 남이 갖지 않은 돈독한 뜻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는 남을 돕는 선행을 행하는 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篤行(독행)이라는 뜻은 한 가지의 일에 전념하여 실천하는 자라는 뜻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실천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버림받은 却人(각인)의 존재는 돈독한 공부를 하는 존재로 둔갑하여 물이 승천한 이후에 불의 존재로 강림한 사람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하나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水昇火降之人(수승화강지인)’의 뜻은 오방신장에서 북방은 水(수)에 해당하고 남방은 火(화)에 해당하므로 북방의 水(수)의 존재는 하나님을 뜻하고 남방의 火(화)의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이다.

 

그 근거는 격암유록에서 하나님으로 등장하시는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북방에서 탄생하셨으며 오방신장에서도 역시 북방을 水(수)에 해당시켰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방은 火(화)에 속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대행하는데 이 존재가 바로 남쪽에서 태어난 鼠生員(서생원) 서씨 백마공자이다. 이러한 근거로 却人來否(각인래부)의 존재로서 버림받은 존재는 鼠生員(서생원) 서씨이다.

 

이에 대한 또 다른 근거를 篤行工夫(독행공부)의 뜻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공부하는 존재는 바로 篤行(독행)의 존재로서, 이에 대해 中庸(중용)의 기록에서는 ‘明辯之 篤行之(명변지 독행지)’라 한 것이다.

부연하면 篤行(독행)의 의미는 성실하고 충실하게 실천하는 존재로 학문을 근거하여 명확하게 설명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篤行工夫(독행공부)의 주인공은 현재 단군연합에서 한문을 연구하고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라고 증거하는 鼠生員(서생원) 서씨 백마공자가 그 장본인이다.

 

다음은 버림받고 학문을 연구하고 나오는 존재가 하는 일을 소개한 내용이다.

 

                   보기)  然不通之人用事  無驗矣  利在弓弓之間矣

                          연불통지인용사  무험의  이재궁궁지간의

 

이 뜻은 독실하게 고전을 공부한 백마공자가 맡은 책무에 관한 기록이다. 즉 백마공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남모르게 일을 하고 있는데, 깨닫지 못한 사람을 깨우쳐 주고 그 깨우친 사람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백마공자가 하늘의 역사를 하는 존재로서 전혀 경험이 없으나 弓弓之間(궁궁지간)의 吉(길)한 곳에 존재하는 자라 하였다.

 

弓弓之間(궁궁지간)의 弓弓(궁궁)에 대해 격암유록에서는 天弓地乙(천궁지을)이라 혹은 一陽一陰(일양일음)을 弓乙(궁을)이라 하였으므로 ‘弓弓之間(궁궁지간)’이라는 뜻은 두 하나님의 존재가 계시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천상천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가 계시는 곳이라는 뜻으로 버림받은 鼠生員(서생원)의 존재가 있는 곳은 천상천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국조단군께서 존재하시고 계신 사이에 있는 자라는 것을 ‘弓弓之間(궁궁지간)’이라 서술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현재 백마공자가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며, 국조단군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천자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상황을 ‘利在 弓弓之間矣(이재 궁궁지간의)’라 한 것이다.

부연하면 천상천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나온 존재는 이익이 나오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서 존재하는 자라는 예언이다. 

 

다음은 결론적인 예언으로 하루가 천년 같은 지루한 세상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一日如千是日  喪皆願死  七李相爭  無罪蒼生  萬無一生  殺我十處運去  智短兵火

     일일여천시일  상개원사  칠이상쟁  무죄창생  만무일생  살아십처운거  지단병화

 

     連天圖名之急  仁富之間  夜泊千艘  不居仁富  愼之

     연천도명지급  인부지간  야박천소  불거인부  신지

                                

하루가 천년 같은 시기가 오게 되면 이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루 빨리 죽기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가 오는 시점을 七李相爭(칠이상쟁)이라 하여 2002년 당시를 예언한 기록이다. 이것은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의 이회창씨와 정몽준씨를 지칭한 뜻으로 격암유록 송가전에는 ‘八鄭七李 蜂起時(팔정칠이 봉기시)’라 기록되어 있다. 대선 당시에 이씨와 정씨가 나와서 활동한 사실을 지칭한 문장이다.

 

또한 2002년부터 아무 죄가 없는 깨끗한 백성 한 사람이 나오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 사람의 존재만이 당당히 대재앙에서 살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 사람이 등장하면서부터 스스로를 죽이는 십자가를 단 곳은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이 시작된 후 오랜 시일을 끌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이 끝난다는 사실을 지혜 있는 자는 알고 있다고 하였다.

 

부연하면 상기한 ‘殺我 十處運去(살아 십처운거)의 뜻은 자기를 죽이는 곳을 十處(십처)라 하였는데, 여기서 十處(십처)를 자기를 죽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문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이러하다.

十處(십처)는 十字架(십자가)가 상징하고 있는 기독교를 지칭한 것으로, 현재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 개개인은 자기만큼은 예수가 구원해 줄 것으로 믿고 있지만 ‘十處運去(십처운거)’라 하여 十字架(십자가)를 걸고 있는 운명이 다 되어 예수가 자신조차도 구원하지 못하고 떠나 가야할 운명에 처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十處地(십처지)의 주인공인 예수는 기독교인들에게 구원을 줄 수 없으므로 결국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길을 잘못 들어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殺我者(살아자)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 이상을 지탱하던 기독교 역사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리하여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은 지상낙원이 생기는 시기가 도래하면서부터 기독교인들은 모두 殺我者(살아자)의 존재가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반대편에 서서 박태선 장로님을 조소하고 비방하고 중상모략을 일삼았던 목사들과 그를 추종하던 기독교인들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이 끊어지기를 원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智短兵火(지단병화)’라는 문장을 설명하면, 지혜가 있는 자는 전쟁이 오랜 시일동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단시일 내에 끝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지혜있는 자라는 것이다. 부연하면 앞으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제는 화학전이기 때문에 시일을 오래 끌지 않고 금방 결판나는 전쟁이 될 것이라는 기록이다.

 

이와 같이 전쟁이 발발되자마자 끝이 나게 되는데 이 때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천운의 시기도 도래되므로 급히 서둘러 지상천국 건설에 필요한 설계를 해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다.

 

             보기)   連天圖名之急  仁富之間  夜泊千艘  不居仁富 愼之

                     연천도명지급  인부지간  야박천소  불거인부 신지

 

‘連天圖名之急(연천도명지급)’이라는 문장은 하늘의 운이 연결되는 시기가 되어 천국의 설계를 세울 바쁜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부연하면 천국의 설계를 속히 하라는 뜻이다.

‘連天圖名(연천도명)’이라는 뜻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는 존재가 천국을 설계하는 자라는 것인데, 하늘의 설계책무를 맡은 존재는 급히 그것을 끝내라는 뜻을 전하는 기록이다.

위문장에서 ‘連天圖名(연천도명)’의‘ 圖(도)’자는 ‘그림 그릴 圖(도)’ ‘계획할 圖(도)’자이다.

 

설계를 빨리 해야 하는 이유는 장차 경인지방으로 한밤중에 수천척의 배가 천국을 건설할 보화와 자재를 싣고 들어와야 하므로 앞으로 인천과 부천지방에는 사람이 기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인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한다는 사실을 심사숙고하여 이전시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不居仁富 愼之(불거인부 신지)’라는 뜻은 경인지방에서는 사람이 거하지 못하도록 심사숙고하여 조치를 취하라는 하나님의 하명이시다.

 

뿐만 아니라 이 예언의 기록과 같이 경인지방이 지상천국이 건설될 부지라는 사실이 격암유록 가사총론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를 소개한다.

 

             平沙福地  三十里로  南門復起  南朝鮮에  紅鸞赤霞  避亂處를

             평사복지  삼십리    남문복기  남조선    홍난적하  피란처

               

             自古只今此世까지  儒佛仙名哲들이  參禪性覺  道通으로

             자고지금차세      유불선명철      참선성각  도통

 

             肉死神生  重生法과  河洛運去 來世事를  先覺無疑  知之故로

             육사신생  중생법    하락운거 내세사    선각무의  지지고

 

             中天弓符  先天回復  四時長春  新世界라

             중천궁부  선천회복  사시장춘  신세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예언이다. 한반도 남조선에 피난처가 세워지는데, 경기도 부평과 소사사이에 그 복지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상고시대부터 自己라는 주인공의 사람이 나올 때까지 유불선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참선하면서 도를 통달하여 연구한 결과이며 자기라는 주인공은 근본의 性稟(성품)을 깨닫고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神(신)의 존재로 갱생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기록의 예언이다.

 

또한 천지가 왕래하여 먼저 미래에 되어질 來世(내세)사 까지 상세히 터득하고 나온 철학자들은 사람이 중생하는 일과 미래에 지상천국이 건설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그들이 연구하여 기록한 그대로 미래에 도달하여 그대로 실행된다는 예언이다.

 

이를 상세히 해문하기 위하여 문장을 이기하여 해문하면 다음 보기와 같다.

 

           보기)  平沙福地   三十里로  南門復起  南朝鮮에  紅鸞赤霞  避亂處

                  평사복지   삼십리    남문복기  남조선    홍난적하  피란처

 

여기에서 밝히고자 하는 요지는 남조선에 피난처가 세워진다는 사실이다.

무너졌던 남쪽의 문이 다시 복구되어 일어나기 시작하여 봉황의 존재가 경기도 일원에 나타나면서 그 때에 피난처가 생기는데 그 곳은 平沙(평사) 삼십리로서 이 곳이 복지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한 ‘平沙福地 三十里(평사복지 삼십리)’는 현재 경기도 부평과 소사를 지칭한 것으로 소개하는 본 문장 앞뒤에서는 ‘仁富平沙 桃源地(인부평사 도원지)’라 기록하였다. 여기서 仁富平沙(인부평사)가 복숭아가 생긴 원조라는 기록에 의하여 平沙福地(평사복지)의 平沙(평사)는 현재 仁川市 富平(부평)과 복사골로 알려진 경기도 부천시 素沙(소사)지방을 지칭한 것으로 富平(부평)과 素沙(소사)의 略(약)자가 平沙(평사)인 것이다.

 

또한 平沙福地(평사복지) 三十里(삼십리)는 素沙(소사)에서 부평까지가 삼십리가 되므로 소사를 기점으로 하여 사방 삼십리가 복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不居仁富(불거인부)의 예언을 통하여 소사의 부천에서부터 부평지역까지 사방 삼십리 지역에는 인종이 거하면 안된다는 뜻을 전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곳은 鳳凰(봉황)의 존재가 거하실 피난처인 지상선국이 건설될 곳이기 때문에 함부로 아무 인종이나 들어갈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이다.

 

또한 상기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南門(남문)의 존재이다. 南門(남문)을 다시 복구하여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 진짜 門을 지칭하는 것인지, 사람이 남문 밖에서 부활하여 나온다는 것인지를 분간해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南門의 ‘南(남)’자는 방위에서 午方(오방)이 되며 正午(정오)를 지칭한 것이다. 또한 金南이라 하여 황금을 지칭한 ‘南(남)’자이면서 前面(전면)을 지칭하는 南(남)자이다. 또한 ‘午(오)’자는 正午(정오)를 가리키는 ‘午(오)’자이면서 ‘말 午(오)’자이며 ‘五月(오월) 午(오)’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록에 근거하여 필자는 南門(남문)의 ‘南(남)’자의 주인공을 찾아내기 위하여 한자대자전을 참고한 결과 다음과 같은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보기)  南    (前也) [午方] (論語子輅) 南人有言 

                      남    (전야) (오방) (논어자로) 남인유언

 

                            (金名)  [杜甫詩] 許身愧言   

                            (금명)  (두보시) 허신괴언

 

‘南(남)’자는 앞을 가리키는 글자로서 午方(오방)이라 하여 正午(정오)에 해당하는 존재로서, 論語(논어)에서는 ‘南人有言(남인유언)’이라 하여 남쪽에서 나오는 사람이 말을 하는데 이 사람은 근거를 가지고 말을 하는 존재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

 

또한 두보시(杜甫詩)의 기록에서는 ‘南(남)’자를 금과 같은 귀중한 존재라고 설명하였으며 ‘許身愧言(허신괴언)’이라 하였다. 이는 하나님에게 許諾(허락)받은 몸의 존재로서 南(남)자의 주인공은 상대방에게 수치스러운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여기서 許身愧言(허신괴언)의 許身(허신)의 ‘許(허)’자는 ‘허락 許(허)’ ‘나아갈 許(허)’자이다.

또한 愧言(괴언)의 ‘愧(괴)’자는 ‘수치 愧(괴)’ 혹은 ‘부끄러울 愧(괴)’자이다. 그런데 필자가 위문장의 許身愧言(허신괴언)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許身(허신)의 존재를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몸의 존재라고 설명한 이유는 이 세상에서 수치스러운 말을 하도록 허락하는 부모는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 허락받은 존재만이 인생창조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수치스러운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문을 토대로 연구하여 구원의 길을 찾은 선구자는 인생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수치스러운 부분을 미화시켜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南門(남문)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나오는 ‘南(남)’자의 주인공까지는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나오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이를 南門(남문) 문장 다음에 연결되는 부활하여 나온다는 뜻인 復起(복기)의 단어에서 부활하여 나오시는 주인공을 찾기 위해 復起(복기)의 ‘復(복)’자를 연구하면 다음과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보기)  復   (除也) [漢書高帝紀] - 其身及乎

                     복   (제야) (한서고제기) - 기신급호

 

                          (又也 再也) [詩經 大雅大明序]  天復命武王也

                          (우야 재야) (시경 대아대명서)  천복명무왕야

 

‘復(복)’자에 내포된 뜻에 대하여 고전 漢書(한서)의 기록에서는 다시 부활하는 존재는 ‘其身及乎(기신급호)’라 하여 ‘그 其(기)’ 사람의 존재가 부활하여 오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서 ‘그 其(기)’의 주인공은 전장에서 수차례 설명한 바 있는 鼠生員(서생원) 서씨가 그 주인공이다.

 

또한 書經(서경)에서는 다시 오는 존재 혹은 또 오는 존재를 ‘天復命武王也(천복명무왕야)’라 하여 하늘을 회복시키는 천명을 받고 오는 힘이 센 왕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武王(무왕)’의 정체는 무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문을 근거한 文武(문무)를 겸비한 존재이다. 그 이유는 武(무)자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武(무)’자의 기록에서는 武力(무력)만을 행사하는 ‘武(무)’자가 아니라 학문을 겸비한 선비가 힘이 있는 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비의 근본정체는 서생원 서시를 말하며 힘이란 바로 해인의 권능을 말한다.

 

                보기)   武    (威也) [書經] 乃武乃文

                        무    (위야) (서경)  내무내문

 

                              (禮記) 牛曰一元大武   (勇也) (剛也)        

                              (예기) 우왈일원대무   (용야) (강야)   

 

書經(서경)의 기록에서는 두려운인 ‘나’乃(내)라는 존재는 무력과 학문을 겸비한 존재라 하였다. ‘나 乃(내)’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중보자 역할을 하는 존재이며 상하를 연결하는 존재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乃聖乃神(내성내신)의 뜻은 聖神(성신)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나 乃(내)’자의 존재이므로 ‘武(무)’자의 역할은 聖神(성신)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또한 禮記(예기)에서는 ‘牛曰一元大武 (우왈일원대무)’라 하여 ‘소 牛(우)’의 존재가 唯一(유일)한 근본의 존재로 큰 힘을 가지신 존재라는 기록이다. ‘소 牛(우)’의 존재는 곧 조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격암유록에서는 ‘소 牛(우)’의 존재를 天牛(천우)라 하여 하나님을 지칭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근본의 존재로서 큰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武力(무력)이라 하면 군사상의 힘이 아니라 성인의 통치를 말하는 것이다.                             

                 보기)  武力  [說苑]  聖人之治天下也  先文德  後武力也

                        무력  (설원)  성인지치천하야  선문덕  후무력야

 

고전 설원(說苑)의 기록에서는 聖人(성인)께서 천하를 통치함에 있어서 먼저 한문을 가리키고 덕을 베풀어 지구촌의 인류를 교화시키는 문덕의 통치를 펼치시다가 여의치 않으면 무력으로 통치를 하신다고 하였다.

 

상기와 같은 기록에 근거하여 남쪽에서 다시 부활하여 나오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나오는 聖神(성신)의 존재이다. 그리고 鼠生員(서생원) 서씨의 존재가 ‘나 乃’의 역할까지 겸하고 나오는 존재로서 선성인과 후세성인으로 나오는 聖神(성신)의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또한 고전 禮記(예기)에 수록된 ‘牛曰一元大武(우왈일원대무)’의 뜻과 같이 ‘소 牛(우)’의 존재를 근본 하나님의 존재로 모시고 나오는 성인의 존재가 바로 서생원 서씨이다.

 

그런데 禮記(예기)에 기록된 ‘소 牛(우)’의 존재는 격암유록에서 소의 역할로 나오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天牛(천우)의 역할로 나오시는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또한 성신의 역할은 두 사람의 역할이 성신의 역할이므로 학문과 고전, 예언을 근거하여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 천자이시라 증거하면서 설득하는데도 이를 믿지 않고 배타할 시에는 만부득이 聖神(성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武力(무력)으로 통치하게 되는데 이 때 성신의 존재로 나오는 자가 南門復起(남문복기)의 존재로서 鼠生員(서생원) 서씨가 남문에서 부활하여 나오는 자라는 것이다.

 

필자가 南門復起(남문복기)의 주인공을 ‘그 其(기)’사람의 존재이면서 鼠生員(서생원) 서씨라는 주장을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님은 '그 其(기)’ 사람의 역할을 명시한 復起(복기)의 ‘일어날 起(기)’자를 통해 입증된다.

 

              보기)   起   (起居擧事動作) [禮記] 雖危起居  竟信其志 

                      기   (기거거사동작) (예기) 수위기거  경신기지  

 

이와 같이 禮記(예기)에서는 모든 움직이는 동작의 역할이 ‘起(기)’자의 역할이라 하고 있다. 그 사람의 존재는 매우 위험한 곳에서 기거하며 그 사람의 존재는 그 사람이 믿고 받드는 분을 모시고 그 사람의 뜻대로 일을 성사시키어 마무리를 짓는 존재라 하였다.  

 

雖(수)자는 ‘물러갈 雖(수)’ ‘양쪽을 비교하여 말할 雖(수)’자이다. 또한 竟(경)자는 ‘끝마칠 竟(경)’자이다

 

또한 復起(복기)라는 뜻은 復初(복초)라는 뜻과 일맥상통한 뜻으로 복초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고전 장자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其(기)’자의 존재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보기)    復初    [莊子] 學究以復初其

                             복초    (장자) 학구이복초기

 

장자(莊子)의 기록에서는 처음으로 돌아온다는  復初(복초)의 뜻이 ‘學究以 復初其(학구이 복초기)’라 하여 ‘그 其(기)’ 사람의 존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데 학문을 연구하면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학문을 연구하고 나오는 존재는 復初其(복초기)라 했으며 이는 처음의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존재는 ‘其(기)’라 하였다. 그리고 詩經(시경)의 기록에서는 彼其之子(피기지자)라 하였다. 이는 ‘그 其(기)’자의 주인공이 ‘아들 子(자)’의 존재가 된다는 뜻으로써 夜如何其(야여하기)라 하여 그 자의 주인공은 밤에 존재하는 ‘그 其(기)’의 존재라는 뜻과 일맥상통한 뜻이다. 이는 鼠生員(서생원)을 지칭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易經(역경)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글을 근거하여 말을 하며 먼 곳에서 온 자라며 ‘그 其(기)’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보기)   其  [易經] 其旨遠 其文辭

                              기  (역경) 기지원 기문사

 

먼 곳에서 온 ‘그 其(기)’ 사람의 존재는 글의 뜻을 알고 온 자이다. 또한 그 사람의 존재는 모든 것을 말하는데 반드시 글을 근거하여 조목조목 말을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其(기)’자의 뜻과 일맥상통한 뜻을 담고 있는 내용을 앞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것은 남문의 南(남)자의 뜻을 기록한 論語(논어)의 기록이다. 여기에서도 南人有言(남인유언)이라 하여 남쪽에 있는 사람은 말을 할 시에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말을 하는 존재라 하였다.

여기서 ‘南(남)’자의 기록과 ‘其(기)’자의 기록을 비교해 볼 때에 ‘其(기)’자의 뜻이나 ‘南(남)’자의 뜻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로써 復初(복초)의 기록에 의하여 남쪽에서 부활하여 나오는 南門復起(남문복기)의 주인공은 鼠生員(서생원) 서씨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平沙福地 三十里로  南門復起 南朝鮮에  紅鸞赤霞 避亂處를

               평사복지 삼십리    남문복기 남조선    홍난적하 피란처

 

앞에서 南門復起(남문복기)의 내용까지는 설명했으나 다음에 연결되는 문장은 남조선에서 피란처가 생기는데 紅鸞赤霞(홍난적하)라는 곳이 피란처라고 하였다. 紅鸞(홍난)은 鳳凰(봉황)을 상징하며 鳳凰(봉황)의 존재는 상상의 길조로 구전해오기만 할 뿐, 실체를 본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상상의 새이다.

 

그러나 필자는 鳳凰(봉황)을 하나님을 상징하는 새라 주장한다. 그 이유는 현재 청와대에는 鳳凰(봉황)의 문장이 집무실에 부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賞狀(상장)의 표지에도 봉황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볼 때 봉황은 모든 사람이 숭배하는 존재의 새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봉황의 존재가 거하는 곳이 피난처라 한 이유는 鳳凰(봉황)을 하나님의 상징으로 보는 이유이다.  말세에 닥쳐오는 대재앙의 피란처는 하나님이 계신 곳 이외에는 피난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赤霞(적하)란 붉은 저녁노을을 지칭한 뜻이다. 그러므로 봉황의 존재는 대낮이 아니라 저녁노을 질 무렵에 나온다는 것을 李白(이백)이라는 사람은 赤霞動金光(적하동금광)이라 하여 저녁노을이 지면서부터 금광을 실은 존재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을 참작할 때에 피난처를 찾아오는 존재는 저녁이 되는 시점에 황금을 싣고 봉황이 존재하시는 피난처를 찾아온다는 예언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앞문장과 연결되는 문장으로서 이미 서두에서 총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어 읽을 수만 있으면 그 뜻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경기도 부천시와 부평사이에 복지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유교, 불교 그리고 선교의 명철학자들이 상고시대부터 전해온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自古只今此世까지  儒佛仙名哲들이  參禪性覺  道通으로

                자고지금차세      유불선명철      참선성각  도통

 

                肉死神生  重生法과  河洛運去  來世事를  先覺無疑  知之故로

                육사신생  중생법    하락운거  내세사    선각무의  지지고

 

                中天弓符  先天回復  四時長春  新世界라

                중천궁부  선천회복  사시장춘  신세계

        

                                          -格菴 歌辭總論(격암 가사총론)-

 

게시한 내용과 같이 상고시대부터 현재 또는 다음 세상까지 등장했던 유불선의 명철학자들은 참선하면서 올바른 도를 통달한 존재들로서 사람이 사망하여 다시 신의 존재로 재생하는 방법과 河洛運去(하락운거)라 하여 천지의 운명이 다되어 떠나는 시기가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서 천지를 지칭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이나 이 문장은 종교적인 내용이므로 여기서의 天地는 유교와 불교를 의미하고 있으므로 유교와 불교의 운명은 종지부를 찍고 떠나가야 할 시기임을 암시한 예언이다.

 

이로써 천지의 존재 유교와 불교의 존재가 떠나고 나면 來世事(내세사)가 시작되는데 내세사를 이루는 존재는 먼저 모든 것을 깨닫고 나오는 존재로서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움직이는 中天(중천)의 존재로서 弓符(궁부)를 가지고 나와 先天(선천)을 회복시키고 늘 사시사철의 봄날이 되는 신세계를 만들고 나오는 존재라는 예언이다.

 

참고로 중요한 부분을 이기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보기)  中天弓符  先天回復  四時長春  新世界라

                          중천궁부  선천회복  사시장춘  신세계

 

中天(중천)의 뜻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나와 역사하는 시대를 중천시대라 한 것이며 弓符(궁부)는 靈符(영부)를 말하는데 靈符(영부)는 靈(영)의 符籍(부적)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사명자에게 하사하시는 징표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先天回復(선천회복)이라는 뜻은 국조단군께서 창건하신 고조선이 선천이므로 국조 단군 왕검께서 세우신 나라를 복원시켜 四時長春(사시장춘)의 새로운 나라를 경기도 부천시 소사 신앙촌 부지에서 사방 삼십리 거리의 부지가 지상천국을 건설을 할 부지이므로 그 곳에 거하는 자들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시기가 도래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세상이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불원간 반드시 이 예언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히는 바이며, 이러한 일이 성사되는 것을 천지개벽이라 하는 것이다. 

        

             

 

    참고할 원문

 

   殺我者誰 小頭無足  活我者誰 三人一夕  求出生命 一五六死  飛火落地 不出十勝

   살아자수 소두무족  활아자수 삼인일석  구출생명 일오륙사  비화락지 불출십승

 

   生者何謀 天佑神助  信天者生 天神指導  隱居四年 後更逢 新天地

   생자하모 천우신조  신천자생 천신지도  은거사년 후갱봉 신천지

 

   訪道君子 解見避亂之國  却人來否 隨時待變  篤行工夫 水昇火降之人 萬無一失

   방도군자 해견피난지국  각인래부 수시대변  독행공부 수승화강지인 만무일실

 

   然不通之人用事  無驗矣 利在弓弓之間矣

   연불통지인용사  무험의 이재궁궁지간의

 

   一日如千 是日  喪皆願死 七李相爭  無罪蒼生 萬無一生  殺我十處 運去 智短兵火

   일일여천 시일  상개원사 칠이상쟁  무죄창생 만무일생  살아십처 운거 지단병화

 

   連天圖名之急  仁富之間 夜泊千艘  不居仁富 愼之

   연천도명지급  인부지간 야박천소  불거인부 신지

 

                                   -山水評章 林出將軍(산수평장 임출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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