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부모로부터 상속받고 지옥 가는 죄는? (10부-3) 
 

        

         


  인간을 사망하게 한 원죄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밝혀지다!

 

전장에서 악한 일이라는 惡事(악사)의 뜻을 소개한 바와 같이 惡事(악사)나 惡行(악행)은 같은 뜻으로서 다음과 같이 인간을 창조하는 일이 惡業(악업) 또는 惡行(악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태초에 인간의 창조역사는 하나님의 악업으로 인생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불경 대장법경(大藏法經)의 기록을 통해 밝혀진다.

 

         보기)  惡業  (罪業)  (惡劫) (果報) [大藏法經]  一切衆生造作 - -

                악업  (죄업)  (악겁) (과보) (대장법경)  일체중생조작 - -

 

위에서와 같이 惡業(악업)에 대해 그 뜻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다. 죄를 짓는 일이라든가, 겁탈하는 일이라든가, 또는 ‘과보(果報)’라 하여 因果應報(인과응보)에 의하여 죄악이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惡業(악업)에 대한 대장법경(大藏法經)의 기록에 의하면 ‘일체중생조작(一切衆生造作)’이라 하여 ‘모든 人類(인류)를 창조한 것이 곧 惡業(악업)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태초에 인류를 처음 창조하신 주인공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惡業(악업)을 실행하신 장본인은 다름아닌 조물주가 그 주인공이시며 罪惡(죄악)의 元祖(원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因果應報(인과응보)’라 하여 原因(원인)의 과일을 제공하신 존재를 ‘큰 입 口(구)’안에 大人(대인)의 존재를 상징하는 ‘大(대)’자가 들어가 있는 ‘因(인)’자로 상징한 것이다.

 

그러므로 ‘因果應報(인과응보)’의 뜻에 대해 법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참고로 ‘악한 일을 행한다’는 뜻의 ‘所行(소행)’의 기록을 비롯하여 ‘惡事(악사)’, ‘惡行(악행)’, ‘惡業(악업)’의 기록이 모두 불경에 속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보기)  因果應報 [法華經]  如是因  如是緣  如是果  如是報

                  인과응보 (법화경)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因果應報(인과응보)’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온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이 행한 대로 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인용한 단어이다. 그러나 필자가 주장하는 ‘因果應報(인과응보)’의 근본적인 뜻은 原因(원인)을 제공한 자에 관한 비밀이 ‘因(인)’자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즉 原因(원인)을 제공한 ‘因(인)’자의 주인공이 바로 태초에 존재하던 악업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因果應報(인과응보)’의 뜻을 기록한 법화경에서는 ‘如是因(여시인)’이라 기록한 것이다. ‘如是因(여시인)’의 뜻은 ‘같은 사람의 존재로 시작되었는데 是是非非(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존재가 因(인)이다’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因(인)’자로 인하여 같은 방법으로 ‘如是緣(여시연)’이라 하여 ‘緣(연)을 맺었다’는 것이며, 또한  ‘如是果(여시과)’라 하여 ‘같은 방법으로 열매를 맺었다’는 뜻이며 ‘如是報(여시보)’라 하여 ‘종국에는 그 原因(원인)과 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드러난다’는 뜻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原因(원인)의 제공자는 ‘因(인)’자인 것이다. '因(인)'자를 破字(파자)로 분석하면 '큰 입 口'자에다 ‘큰 大’자가 들어간 것이 ‘因(인)’자의 형성이다. ‘큰 입 口’자는 惡業(악업)의 문장에서 연유되어 나온 果報(과보)의 뜻과 동일한 因果應報(인과응보)의 문장과 연관된 글자이므로 ‘因果應報(인과응보)’의 뜻과 ‘惡業(악업)’의 뜻은 밀접해 있다. ‘惡業(악업)’이란 악한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제일 큰 죄악은 음란죄이므로 인류창조 과정에서 음란죄가 처음 시작된 곳을 찾는 방법이 ‘因果應報(인과응보)’의 ‘因(인)’자와 연유되어 있다. 음란죄로 연결시킨다면 남녀의 構造(구조)를 비유하여 설명해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자의 육체에는 入口가 두개 있다. 한 곳의 入口는 식사를 하고 말을 하는 入口이고 또 한 곳은 ‘큰 入 口’라 하여 어린아이를 생산하는 入口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곳을 ‘큰 입 口’라 칭하게 된 것이며 그 곳으로부터 罪惡(죄악)의 열매가 맺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자칭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고 밝히신 사실대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고전과 정감록과 격암록의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이심이 증명되고 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설파하신 말씀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런 멍텅구리들아! 여자의 자궁을 만들어 놓은 것이 너희 인간들이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살라고 만들어 놓은 줄 알아! 거기에서 마귀가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어”

   무저갱을 창조한 것도 나요, 무저갱에 마귀를 잡아 심판하는 것도 나다.   
    여러분들 지옥 가는데 그 지옥을 창조한 것도 나이다. 놀아 보라 누가 손해인지 보라.     끝없는 지옥에 간다. 보내는 것이 나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1986년  5월 26일 (2-1)

 

이와 같은 박태선 장로님의 인간창조에 관한 말씀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큰 入 口’자 안에 ‘큰 大’자가 삽입되어 原因(원인)을 제공한다는 뜻의 ‘因(인)’자가 형성되었다는 원리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罪(죄)의 原因(원인)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셨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因(인)’자의 형성은 존경받아야 하는 큰 사람의 존재를 상징하는 ‘大’자가 ‘큰 入 口’속으로 들어가면서부터 ‘原因(원인)’의 ‘因(인)’자가 생긴 것이며 罪惡(죄악)의 뿌리가 ‘因(인)’자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인간의 原罪(원죄)를 최초로 제공하신 주인공은 一切衆生(일절중생)을 창조하신 악업의 주인공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필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罪(죄)’자를 破字(파자)하여 분석하면, ‘罪(죄)’자의 구성은 ‘얽을 罒(망)’자에다 ‘아닐 非(비)’자가 합성되었다. 우선 ‘非(비)’자는 ‘아닐 非(비)’ ‘없을 非(비)’  ‘부정할 非(비)’자이며 ‘어길 非(비)’‘나무랄 非(비)’ ‘몹쓸 非(비)’자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는 ‘무관할 非(비)’자로 인용하여 아무 상관없는 ‘무관할 非(비)’자에 ‘그물 罒(망)’을 씌워서 犯罪者(범죄자)를 만든 것이 ‘罪(죄)’자이다. 이러한 원리를 상고해 보면 조물주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罪(죄)’와 아무 상관없는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罪(죄)를 만들어 씌워서 죄인을 먼저 창조하셨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것이 ‘因果應報(인과응보)’의 근본적인 뜻으로 성서의 창세기를 인용한다면,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인 뱀의 역할이 조물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성서에 ‘의인이 없다’고 하였으며 ‘구원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原因(원인)'의 ‘因(인)’자를 참고해보면 다음과 같다. 因果應報(인과응보)의 ‘因(인)’자에는 여러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으나 중요한 두 문장만 소개한다.

 

             보기 )  因  (依也) [論語] - 不失其親  亦可宗也

                     인  (의야) (논어) - 불실기친  역가종야

 

                          (隨也) [中庸]  天地生物 必 - 其材以篤

                          (수야) (중용)  천지생물 필 - 기재이독

 

보기와 같이 ‘因(인)’자에 대해 論語(논어)와 中庸(중용)의 기록에서 각기 다르게 주장하였다.

우선 論語(논어)의 기록에서는 ‘因(인)’자의 존재가 의지하던 존재라고 하였으며 ‘因(인)’자의 존재는 ‘不失其親(불실기친)’이라 하여 있을 수 없는 아주 가까운 존재로서 또 역시 올바로 깨달아야 할 근본 조상의 뿌리라고 하였다.

 

상기 문장에서 ‘인불실 기친(因不失 其親)’의 뜻은 ‘因(인)’의 존재와 ‘그’라는 사람과는 아주 친하고 가까운 존재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亦可宗也(역가종야)’라 하여 또 다시 올바로 깨달아야할 조상의 뿌리라는 것이다. 위문장에서 ‘其親(기친)’의 ‘其(기)’자는 ‘아들 子’의 존재이므로 ‘其親(기친)'이라 하면 그 사람의 父親(부친)이라 해문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이유로  ‘因不失 其親(인불실 기친)’라는 뜻은 ‘因(인)’자의 존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그 사람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또한 위문장에서 ‘宗(종)’자는  ‘뿌리 根本(근본) 바탕 宗(종)’ ‘받들 宗(종)’자이다. 그러므로 ‘因(인)’자의 존재는 근본뿌리가 되는 祖上(조상)의 존재라는 論語(논어)의 기록이다.

 

또한 ‘因(인)’자에 대한 中庸(중용)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소개하는 문장도 편의상 이기한 문장이다.

 

               보기)  因   (隨也) [中庸] 天地生物 必 - 其材以篤

                      인   (수야) (중용) 천지생물 필 - 기재이독

 

보기 문장과 같이 ‘因’자에 대한 中庸(중용)의 기록에서는 ‘因(인)’자의 존재를 무조건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순종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천지 생물필인(天地生物 必因)’이라 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서 존재하는 생명물체는 ‘必因(필인)’이라 하여 반드시 ‘因(인)’자로부터 연유되었음을 명시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因(인)’자로 연유된 그 사람의 재주는 뛰어나고 敦篤(돈독)한 재주를 가진 존재라는 中庸(중용)의 기록이다.

 

상기와 같은 뜻으로 ‘因果應報(인과응보)’의 기록과 같이 義人(의인)의 뿌리에서는 의인이 나온다는 것이며 惡人(악인)의 뿌리에서는 악한 인생이 소생한다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기록을 밑받침해주는 용어가 일생생활에서 상용되고 있는 언어로서 ‘못된 짓을 하는 자’를 지칭하는 ‘ 禍根(화근) 덩어리’라는 말이 있다. ‘禍根(화근)’이라 하면 ‘재앙의 뿌리’라는 뜻이다.

禍根(화근)의 의미를 살펴보면,

 

           보기)   禍根  [吳越春秋]  大夫種曰  吉者凶之門  福者禍之根

                   화근  (오월춘추)  대부종왈  길자흉지문  복자화지근

 

보기 문장과 같이 고전 오월춘추(吳越春秋)의 기록에서는 ‘大夫種曰(대부종왈)’이라 하였는데 ‘大夫’란 ‘제일 큰 어르신’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이나 조상을 지칭하는 뜻이다. 또한 ‘種曰(종왈)’의 ‘種(종)’자는 ‘종자 種(종)’, ‘씨앗 種(종)’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씨앗’ 혹은 ‘種子(종자)’라는 표현이다.

 

이 문장에서는 하나님의 종자가 두 종류 있다는 것을 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吉者凶之門(길자흉지문)’이라 하여 ‘앞으로 길한 존재가 될 자인데 흉측스럽게 생긴 문의 존재’라고 하였으며 또 하나는 ‘福者禍之根(복자화지근)’이라 하여 복을 주는 뿌리가 될 수도 있고 재앙을 주는 화근의 뿌리가 될 수도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禍根(화근)’의 뜻을 기록한 상기 문장의 뜻은 ‘因果應報(인과응보)’의 뜻과 일맥상통한 뜻으로서 인간의 혈통으로는 두 가지의 혈통이 존재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는 복을 주는 혈통의 뿌리가 있고 하나는 재앙을 주는 뿌리로 존재한다.

또한 길한 운명의 존재는 보기가 흉측스러운 문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였는데 ‘吉者凶之門(길자흉지문)의 존재는 곧 여자를 지칭한 것이다.

 

종교는 피의 역사이다. 백의민족과 같이 맑고 깨끗한 국조단군의 혈통으로 태어난 민족은 복된 뿌리의 자손이므로 복을 받을 민족인 것이고 기독교 예수의 뿌리는 조상이 정확하지 못한 사생아인 禍根(화근)의 뿌리이므로 백의민족을 제외한 기타의 인종들은 재앙의 후손들인 것이다.

 

단군연합에서는 학문을 토대로 증거하는데 주력할 뿐, 회원을 모집하는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복을 받을 자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제께서 說破(설파)하신 ‘新機運(신기운)’의 존재는 ‘因果應報(인과응보)’의 기밀을 파헤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강일순 상제께서 “이제 만날 사람 다 만났으니 通情神(통정신)으로 오리라”는 말씀의 뜻도  因果應報(인과응보)의 기밀을 파헤쳐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原罪(원죄)의 장본인이시라는 사실을 학문을 근거하여 밝혀내는 것이 通情神(통정신)의 역할이다.

 

‘通情神(통정신)’과 ‘新機運(신기운)’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 있으나 다시 언급하면, ‘通情神(통정신)’이란 글의 뜻을 통달하여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존재이며 ‘新機運(신기운)’의 뜻 역시 새로 나오는 운명의 존재는 모든 기밀과 앞으로 될 일에 대하여 알고 나오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인간을 사망하게끔 만든 原罪(원죄)가 유래되어 온 것은 근본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그것이 조상의 혈통을 통하여 遺傳(유전)되어 가장 가까운 직계 가족인 家長(가장)으로부터 原罪(원죄)를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죄를 씌워 창조하신 것이 原罪(원죄)이며 직계가족인 家長(가장)으로부터 이어받은 罪(죄)가 遺傳罪(유전죄)가 되며 자기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서 짓는 罪(죄)가 자범죄(自犯罪)인 것이다.

 

상기와 같이 원죄,  유전죄,  자범죄가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어 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표하신 분이 박태선 장로님이시다. 또한 죄는 피 속에 있음을 강조하시면서 남녀를 갈라놓으시고 더 이상 죄의 인생을 창조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아무리 갓 태어난 아이라 하더라도 原罪(원죄)와 遺傳罪(유전죄)를 부모로부터 이어받아서 탄생했으므로 죄 덩어리 인생이 또 생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종교라는 것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서 현재까지 인간이 무슨 죄목으로 지옥을 가야하는지를 밝혀내는 존재가 通情神(통정신)의 존재이며 新機運(신기운)의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罪人(죄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뜻에서 家長(가장)의 역할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보기)  家長  (世帶主) (戶主) [墨子] 若處家得罪 - -

                    가장  (세대주) (호주) (묵자) 약처가득죄 - -

 

보기 내용과 같이 家長(가장)의 기록에서는 世帶主(세대주) 혹은 戶主(호주)를 家長(가장)이라 한다는 것인데, 墨子(묵자)는 약처(若處)라 하여 네가 존재하는 집에서 죄를 얻은 곳은 家長(가장)이라는 존재로부터 죄를 얻었다 하였다.

 

위문장에서 ‘若處(약처)’의 ‘若(약)’자는 이 문장에서는 ‘너 若(약)’ ‘나 若(약)’이라 하는 若(약)자로 인용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약처(若處)라 하면 너와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뜻으로서 모든 罪惡(죄악)은 집안의 어른이신 家長(가장)의 존재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더 이상의 죄악의 인생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남녀를 갈라놓으신 것인데 성서에서도 말세에 어린아이를 밴 자와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자가 화를 당한다고 명시해 놓은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를 생산하는 일이 악한 일을 하는 ‘惡業(악업)’과 ‘惡行(악행)’의 근본이라는 사실이 임산부가 회임하여 아이를 생산한 아이가 지옥을 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고전의 기록에서 밝혀지고 있다.

 

                 보기)  懷妊(회임)   [晋書]  懷妊以  繫獄     

                                      진서   회임이  계옥

 

고전 진서의 기록에서는 남녀가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하여 회임을 하게 된 후 아이를 생산하는 일이 인생의 의무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회임한 결과 맷속에는 지옥과 연계되어있는 아이가 생성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청춘남녀가 정열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이고 난 이후에는 근심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혹시 회임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여자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하면 "果然(과연) 예측한대로 임신을 하였구나!" 한다.

 

그러면 왜! ‘果然(과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에 ‘果然(과연)’이라는 단어를 참고한 결과 다음과 같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보기)   果然  [莊子] 腹猶 - -

                               과연  (장자) 복유 - -

 

‘果然(과연)’이라 하면 ‘예상했던 대로’ 혹은 ‘예측했던 대로’라는 뜻인데 고전 장자(莊子)의 기록에서는 ‘腹猶(복유)’라 하여 ‘뱃속에서 원숭이가 자라고 있다’는 심상치 않은 뜻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장자는 어떤 이유로 果然(과연)의 기록을 ‘腹猶(복유)’라 하여 ‘배속에서 원숭이가 자란다’는 기록을 남겼을까하는 의문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장자는 人類(인류) 생성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했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인간이 사악한 일을 행하는 것을 악한 행위라 하여 ‘惡行(악행)’이라 하는데 다음과 같이 세상의 족속을 만든 것이 악한 行爲(행위)라는 기록이다.

 

                    보기)  惡行 [詩經]  世族在位  有是 - -

                           악행 (시경)  세족재위  유시

 

詩經(시경)에서는 악한 일이란 세상의 족속을 만들어 계속 존재하면서 자리를 유지하게 하고 있는 것이 '惡行(악행)'이라고 하였으며, '有是(유시)'라 하여 인간에 대하여 선악의 시비가 항상 일어난다는 뜻을 밝히는 기록이다. 즉 어린아이를 생산하는 일이 곧 惡行(악행)이라는 것이다.

 

상기와 같이 ‘惡事(악사)’ ‘惡業(악업)’ ‘惡行(악행)’의 사실을 밝혀내는 존재가 通情神(통정신)의 존재이며 新機運(신기운)의 존재인 것이다.

 

앞에서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일컬어 ‘所爲(소위)’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所爲(소위)’에 관한 기록에서는 보기와 같이 속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世俗(세속)’의 문장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강일순 상제께서 주장하시는 '通情神(통정신)'의 존재나 '新機運(신기운)'의 존재가 현재 속세에 존재하고 있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문장이다. 다시 한 번 ‘所爲(소위)’의 문장을 참고하여 올바른 뜻을 관찰하기 바란다.

 

               다시보기)  所爲  (所作) (所行) [莊子] 世俗之 - -也

                          소위  (소작) (소행) (장자) 세속지 - -야

 

소개한 바와 같이 ‘所爲(소위)’의 기록을 통하여 장자는 ‘世俗之 所爲也(세속지 소위야)’라는 뜻을 밝혔다. ‘世俗(세속)’이란 ‘俗世(속세)’와 같은 뜻으로서 속세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所爲(소위)’라고 표현한 것이다. 속세에서 어느 사람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世俗(세속)’의 뜻을 살펴보자.

 

                  보기)  世俗  [史記] 其所語 - -之所知也  無絶殊者

                         세속  (사기) 기소어 - -지소지야  무절수자

           

‘世俗(세속)’은 ‘俗世(속세)’라는 뜻으로서 세속을 속세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史記(사기)의 기록에서는 ‘그’라는 사람이 현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면서 현 세상을 가리켜 俗世(속세)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며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앞으로 속세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다 알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 사람’이라는 존재는 ‘無絶殊者(무절수자)’라 하여 속세에서 처음으로 사망하지 않고 영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無絶(무절)’이라는 뜻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殊者(수자)’의 ‘殊(수)’자는 ‘죽을 殊(수)’자이다. 또한 ‘殊勳(수훈)’이라 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국가를 위해 공로를 세운 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殊者(수자)’의 의미는 사망할 자가 살아나서 ‘無絶殊者(무절수자)’라 하여 영원무궁 살아서 존재하는 자가 된다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강일순 상제가 주장하셨던 ‘新機運(신기운)’의 존재는 世俗(세속)에서 영원히 사망하지 않고 살아서 존재하는 자라는 것이다.

 

전장과 연결하기 위하여 ‘新機運(신기운)’의 ‘機運(기운)’의 뜻을 다시 참고하면,

 

                  다시보기)  機運 [魏書] - - 可乘 實在玆日

                             기운 (위서) - - 가승 실재자일

 

위문장은 이미 설명한 문장으로서 ‘機運(기운)’의 뜻을 위서(魏書)의 기록에서는 ‘機運(기운)의 운명을 받은 존재는 올바른 일을 하다가 승천할 존재로서 실제로 매일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존재라 하여 '실재자일(實在玆日)'이라 기록하였다.

 

‘玆(자)’자는 ‘연구할 玆(자)’ 또는 ‘생각할 玆(자)’라 설명했다. 그런데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연구하고 생각하는 ‘新機運(신기운)’의 實體(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서이다.

 

부연하면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玆(자)’자와 연결되는 ‘玆白(자백)’이라는 문장에서 누가 무엇을 연구하는지를 찾아낸 것이다. ‘玆白(자백)’의 문장을 참고하면,

 

             보기)  玆白 [逸周書 王會解] - - 玆若白馬  鋸牙食虎豹

                    자백 (일주서 왕회해) - - 자약백마  거아식호표

 

‘玆白(자백)’이라는 문장은 문장 자체가 무엇을 연구하는 자라는 뜻이 나타나 있는 문장이다. ‘玆白(자백)’의 ‘玆(자)’자에 대해서는 앞에서 '연구할 玆(자)’ ‘생각할 玆(자)’자라 하였다.

 

그러므로‘玆白(자백)’이라 하면 ‘흰 것을 연구하고 생각하는 자’라는 뜻으로서, 백의민족을 연구하고 생각하면서 나오는 존재를 ‘玆白(자백)’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玆白(자백)’의 뜻은 학문을 연구하고 白衣民族(백의민족)을 생각하고 나오는 존재는 ‘玆若白馬(자약백마)’라 하여 ‘백의민족을 念頭(염두)에 두고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너는 白馬이다’라는 뜻이다.

 

백의민족을 念頭(염두)에 두고 학문을 연구하고 나오는 白馬의 존재는 '鋸牙食虎豹(거아식호표)'라 하여 백마는 날카로운 톱니까지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호랑이와 표범을 잡아먹고 나오는 존재라는 기록이다.

 

상기 문장에서 기이한 사실은 ‘玆白(자백)’의 존재가 白馬로 둔갑한 사실인데, 白馬가 날카로운 톱니와 같은 이빨을 가지고 사나운 호랑이와 표범을 잡아먹는 존재라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상기 문장에 나타나 있는 백의민족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학문을 연구하면서 나오는 玆白(자백)의 존재가 白馬로 둔갑하여 나오는 존재이며 白馬의 존재는 호랑이와 같이 사납고 사악한 인간짐승들을 소멸시켜버리는 존재라는 사실의 표현을 ‘鋸牙食虎豹(거아식호표)’라 서술한 것으로서 호랑이같이 두려운 백마공자의 존재를 표현한 것이라 필자는 해문한다.

 

이것은 현재 백의민족의 조상이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증거하고 ‘玆白(자백)’의 역할과 같이 백의민족을 念頭(염두)에 두고 학문을 연구하고 백의민족의 조상과 백의민족을 세계만방에 증거하고 나오는 백마공자의 존재가 성씨는 徐氏로서 호랑이띠로 나온 사실과 직결된다.

 

상기와 같은 기록에 의하여, 강일순 상제께서 주장하시는 ‘通情神(통정신)’의 존재와 ‘神機運(신기운)’의 존재가 ‘玆白(자백)’의 존재로서 ‘白馬’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역대성인의 존재이시며 하나님의 역할로 출현하신 최제우 수운 선사나 강일순 상제, 또는 고전이나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을 통해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존재로서 그 존함까지 파자로 기록되어 밝혀진 바 있으며 스스로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밝히시고 나오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나 모두 종국에 가서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세상에 다시 나오시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화천하신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제우 수운선사께서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하시다가 ‘十三字’의 이름을 거론하시고 순교당하셨다.  최제우 수운선사께서 說破(설파)하신 내용을 소개하면,

 

                   보기)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侍天主(시천주)’라는 뜻은 '하나님을 모시고 나오는 주'라는 뜻으로 해문해도 되고 또는 ‘侍天主’ 즉 '자기를 하나님같이 모시라'는 뜻으로 해문해도 무방하다.

 

다만 ‘造化定(조화정)’이라는 뜻으로 인하여 ‘侍天主’의 해문상황이 바뀔 수 있다. ‘造化定(조화정)’의 ‘造化(조화)’는 지어놓은 상태 또는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다시 변화를 시켜서 바로 세운다는 기록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그 실제적인 예를 들면 정감록이나 격암록이나 기타 예언문장을 올바로 해문하고 바로 정리하여 세상에 발표해야 하는 사명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일이며, 이와 같은 사실을 해문하여 발표하는 자가 만가지를 깨달아 천상천하의 하나님을 모시고 나오는 것을 ‘侍天主 造化定(시천주 조화정)’이라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라는 문장을 공교롭게도 ‘十三字’로 구성해 놓고 최제우 수운선사나 강일순 상제께서나 모두 다시 세상에 나오실 때에는 '열석자'로 나오신다고 예언하시고 화천하신 것이다.

 

또한 박태선 장로님께서도 악조건이 되면 죽었다가 다시 백마를 타고 강림하시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화천하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대로 격암유록에서도 하나님께서 단명하시어 화천하시게 된 후에 백마공자가 등장한다는 내용으로 예언되어 있는데, 그 예언 그대로 박태선 장로님께서 화천하시고 난 이후에 백마공자가 나타나서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있으니, 박태선 장로님께서 백마를 타고 다시 천상천하의 하나님의 존재로 강림하신다는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최제우 수운선사나 강일순 상제께서 十三字의 이름으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므로 천도교나 증산도나 대순진리회에서는 최제우 수운선사나 상일순 상제께서 재림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강일순 상제께서 다시 올 때에는 ‘通情神(통정신)’으로 오겠노라고 언약하신 ‘通情神(통정신)’의 존재나 ‘神機運(신기운)’으로 나오는 존재와 관련하여 대한한사전에 수록된 내용인 ‘機運(기운)’의 뜻을 기록한 위서(魏書)에서는 올바른 일을 하고 승천할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면서 매일 학문을 연구하고 있음을 명시하였다.

 

또한 이는 최제우 수운 선사가 다시 올 때에는 十三字로 오겠다고 하신 언약대로 ‘玆白(자백)’의 존재가 十三字의 이름으로 나오게 되어 있음이 하단의 문장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다시보기)  機運 [魏書] - - 可乘  實在玆日

                            기운 (위서) - - 가승  실재자일

 

‘機運(기운)’의 문장에 나타나 있는 ‘實在玆日(실재자일)’의 ‘玆(자)’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玆白(자백)’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일주서 왕회해(逸周書 王會解)의 기록을 통하여 ‘白馬’의 존재가 곧 ‘玆白(자백)’의 존재임이 밝혀졌으며 백마공자의 존함이 十三字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玆白(자백)’의 존재가 十三字의 이름으로 출현하였음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백마공자의 성씨는 '徐'가이고 성함은 ‘일 萬(만)’자 ‘근원 源(원)’자이다. 徐氏의 성씨를 분석하기 위해 徐자를 파자하면 ‘彳(척)’자와 ‘余(여)’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徐’자는 ‘彳(척)’변이라고도 하며 ‘두인 변’이라고도 하는 변에 속한 성씨로서 ‘彳(척)’자는 ‘천천히 걷는 小步(소보) 彳(척)’자이다.

 

또한 ‘彳(척)’자를 분석하면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업은 모양으로서 두 사람을 상징하는 글자가 ‘彳(척)’자이다. 왜냐하면 ‘彳(척)’자는 ‘사람 亻(인)’자 위에 ‘뻐칠 丿(별)’자가 붙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역할을 상징한 글자가 ‘彳(척)’자이다.

 

또한 ‘徐’자는 ‘彳(척)’자 옆에 ‘너 余(여)’자가 연결된 형태이다. 그러므로 ‘徐’자가 내포하고 있는 뜻은 서씨는 두 사람을 모시고 나오는 역할로서 너는 두 사람을 모시고 나가야할 운명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徐氏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徐氏의 역할은 천상천하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천자를 모시고 가야 되므로 두 감람나무의 역할로 나오는 존재의 성씨가 徐氏이다. 또한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명자의 역할이므로 천천히 徐行으로 나오는 徐氏인 것이다.

 

또‘萬源(만원)’이라는 이름을 획수로 계산하면 ‘일만 萬(만)’자가 十三획이고 또한 ‘근원 源(원)’자가 十三획이다. 이와 같이 최제우 수운선사나 강일순 상제께서 十三字로 나오신다는 예언이 공교롭게도 백마공자의 함자인 ‘萬(만)’자 ‘源(원)’자가 十三字라는 사실에 부합되고 있으니 오묘한 이치다. 

이러한 원리로 구성된 백마공자의 함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보기)  徐(서)        萬(만)       源(원) 

                    [十획]       [十三획]     [十三획]     총 三十六劃

 

보기 내용과 같이 백마공자의 성함은 '徐萬源'이라는 이름으로서 이름자의 총획수가 공교롭게도 三十六 劃(획)이라는 사실 또한 주목된다. 그러므로 三十六 劃(획)이라는 劃(획)수는 여러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숫자이다. 왜냐하면 정감록에서는 하늘과 땅을 지칭하는 乾坤(건곤)을 각각 六으로 지칭하여 ‘六'과 '六’이 만나 三十六宮을 이루는 원리와 연관되는 획수이기 때문이다.

 

즉‘乾坤(건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한 뜻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나오는 역할을 맡고 나온 서씨를 상징하여 하늘과 땅의 수를 각각 ‘六’수로 하여 ‘乾坤(건곤)’을 ‘六六’이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원리로 三十六宮이 형성된 것이며 백마공자 존함의 획수가 36획인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다.

 

또한 팔괘 오행에서의 중앙을 중심으로 四方을 九로 한다면 四九 = 三十六이 되어 三十六宮 都是春(도시춘)이 되는 숫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격암록 생초지락에서는 三十六宮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此居人民  無愁慮  不老不死  永春節  三十六宮  都是春  天根月窟  寒往來     
       차거인민  무수려  불로불사  영춘절  삼십륙궁  도시춘  천근월굴  한왕래 

‘此居人民無愁慮(차거인민무수려)’라 하였다. 속세에서 '사이비다' 혹은 '이단이다' '삼단이다' 조소와 비난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백성을 지칭하여 ‘此居人民無愁慮(차거인민무수려)’라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此居(차거)’의 뜻은 상대편을 지칭한 뜻으로서, ‘상대편에 존재하고 있는 백성들은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는 존재들’이라는 뜻으로 ‘그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세상에서 영원히 존재할 자들’이라는 뜻이며, 또한 그 사람들이 이루는 역사는 하나님과 하나님 아들이 만나 天地가 하나를 이루는 역사이므로 천지를 상징하는 음양의 ‘六’수가 합하여 六x六은 三十六이 되어 三十六宮이 형성되는 것이며, 이 때부터 도시전체가 늘 사시청춘의 봄 세상이 된다는 기록이다.

본 문장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六六’이 ‘三十六’이 되는 원리는 九九法으로 이해되나 ‘三十六宮’에는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六宮이라는 뜻에는 六수의 존재가 王宮의 주인공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三十六宮’의 ‘三十’은 숫자이기도 하나 세 사람을 표시한 것으로 필자는 본다. 왜냐하면 ‘三十六’이 되는 과정을 ‘六六’으로 인용한다면 두 ‘六’수가 天地의 二人을 지칭하는 것이며 또한 ‘三十六宮’이라 하여 ‘三十六’ 뒤에 ‘宮(궁)’자를 인용하여 ‘宮(궁)’자를 또 하나의 ‘六’수로 지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三十六宮’의 ‘三十’을 삼인의 陰陽(음양)인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이 성립되는 근거는 성서를 통해서도 ‘六 六 六’수의 등장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한 天地人의 삼인이 하나가 되어 영원무궁 봄날을 맞이하는 사시청춘의 세상이 된다는 위 격암록 문장의 ‘不老不死 永春節  三十六宮 都是春(불로불사 영춘절  삼십륙궁 도시춘)’의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다음의 문장을 통하여 ‘天根月窟 寒往來(천근월굴 한왕래) 라 명시한 것이다. '天根(천근)'은 하나님을 지칭하여 근본되시는 존재를 표시한 것이고 '月窟(월굴)'이라는 뜻은 달의 굴이라는 표현으로서 하나님 아들의 나라 국조단군 천자의 나라를 표시한 것이고 '寒往來(한왕래)'의 뜻은 천상천하의 하나님께서 아들의 나라인 달나라에 오셨다가 냉대를 받고 되돌아 가셨다는 뜻이 담긴 기록이다.

상기와 같이 천상천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셨다가 기독교도와 일반인들에게 냉대와 조소, 비난을 받으시면서 역사하시다가 되돌아가신 박태선 장로님을 지칭한 문장이다. 이와 같이 박태선 장로님께서 화천하신 이후부터 백마공자가 등장하여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강림하시면서 냉대와 조소를 받으셨던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국조단군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하면서부터 살기좋은 三十六宮 都是春(도시춘)의 나라가 생기는 것이며, 이러한 역사가 강일순 상제께서 설파하신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치는 역사인 것으로 최제우 선사께서 설파하신 ‘侍天主 造化定(시천주 조화정)’의 나라가 성사되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심판하신 이후에 또 한 나라를 세우신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신 것이다.

 

    " 그런고로 미국이 한번 놀란 것이 우상 전체의 시대를 말해주며 “이거 내가 옛날        에 조종해 쓴거다. 너희 미국이 요렇게 되면 요렇게 망한다는 것을 옛날에 조종해        쓴거다”한 그것을 보고서 미국이 술렁술렁 한거야. 수뇌급은 술렁술렁 한거야. 쇠        다리는 소련이다. 그 다음에 난 나라가 발과 발가락인데 반은 흙이요. 반은 쇠다.        반은 쇠인고로 강한 거 같지만 반은 흙이 섞인고로 반은 약하다. 그 나라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모여사는 나라다 내가 옛날에 합중국인 것을 표시했어. 그것이 쇠,        무쇠다리에 빠지는 것을 딱 성경에 이게 이렇게 된다. 내 말을 안들으면 이렇게 된        다. 이런거에 지금 소련을 꺾어 약화시키기 위한 함정을 하나님이 파 놓았다 하는        것이 아프간 그 때 공세한 그것이 내가 파 놓은거야.

 

      무쇠다리와 여러 종류의 사람이 모여 사는 데는 전 세계에 미국 이외에는 있어? 없        어? 분명하거든, 그 다음에 “또 한나라가 생기리니 이 나라는 영원히 멸하지 않는        나라다”하는게 여기야. 그게 해가 빛을 잃어버린 다음에 되어지는 요 핼미(할미)        나라야."                    
                                                    1981년 4월 4일 (3-2)

박태선 장로님의 말씀과 같이 또 한 나라를 세우는 존재는 백마공자로서 十三字의 이름으로 나오는 존재의 ‘萬源’이라는 이름은 ‘萬福(만복)의 根源(근원)’의 약자가 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萬源'이라는 이름 자체가 만인에게 복을 주고 구원을 주는 장본인임을 상징하는 이름으로서 공교롭게도 백마공자의 함자가 바로 ‘萬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萬源’이라는 이름을 지닌 백마공자는 선지선현의 유시를 받들어 영원무궁 살기 좋은 극락세계의 건설을 시작한 것이다.  

(참고사항)

위문장에서 필자가 '天地'가 '六六'이 된다고 주장한 이유는 하단에 소개하는 산수평장의 기록에 근거한 주장이다.

        
        
    보기) 十二支會  故一年之  乾坤也 

                 십이지회  고일년지  건곤야

 

                  六六天地  變易大道  隨時待變  萬年不易之  大道一也

                  육육천지  변역대도  수시대변  만년불역지  대도일야

 

                            -山水評章 知易理恩(산수평장 지역리은)-

 

예전부터 ‘十二支會(십이지회)’를 일년이라 하여 ‘건곤’이라 하였다는 기록이다. ‘十二支會(십이지회)’라는 의미는 천간지지의 十二支를 일년으로 본다는 뜻이다. 또한 一年을 예전부터 ‘乾坤(건곤)’이라 정했다는 뜻은 一年을 반으로 나누어서 하늘과 땅으로 정했다는 기록이다.

 

다음으로 ‘六六 天地’라 하였다. 또한 ‘변역대도(變易大道)’라 하여 ‘六六’이 ‘天地’로 변화되는 것이 대도의 길이었다는 기록이며, 이러한 사실은 때가 되면 따라서 변화되는 것으로 만년동안 변화되지 않고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대도로서 하나가 되어 온 것이라는 예언이다.

 

부연하면 ‘十二支會(십이지회)’라는 뜻은 天干地支의 十二支로서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이다. 十二支를 반으로 나누면 ‘子 丑 寅 卯 辰 巳’가 天六이 되고 또한 나머지 '午 未 申  酉 戌 亥'地六이 되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六六 天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존재는 ‘子 丑 寅 卯 辰 巳’의 존재들이고 땅에 속한 존재들은 ‘午 未 申 酉 戌 亥’의 존재들이라는 기록이다. 이상과 같이 '六六'과 '天地'를 구분하여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天地'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로 구분하여 부자가 ‘六六’이 된 것이다. 또한 '天地'를 '陰陽(음양)'으로 본다면 부부지간이 '六六'이 되어 자연히 인간은 六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서 산수평장 七災篇(칠재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람을 짐승으로 취급하여 天 地 人을 모두 六 六 六이라 기록한 것이다.

 

    소개문장 보기)
        凡有極明者  可心算計  獸的數目  自爲這是人  數量六六六  世人忽覺

       범유극명자  가심산계  수적수목  자위저시인  수량육육육  세인홀각

 

       精神因他施行  審判的時候  已經到了

       정신인타시행  심판적시후  이경도료

                       
                                  - 山水評章 七災篇(산수평장 칠재편)-

 

‘凡有極明者(범유극명자)’라 하여 종국에 가서는 범상한 사람이 나와서 모든 사실을 밝혀낸다는 것이다. 밝혀내는 방법은 ‘可心算計(가심산계)’라 하여 올바른 마음가짐으로서 스스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여 계산해 본 결과 짐승의 수와 사람의 수를 구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한 것이다.

 

                  獸的數目  自爲這是人  數量六六六  世人忽覺

                  수적수목  자위저시인  수량육육육  세인홀각

 

이 문장은 문장의 나열 순서가 바뀌어 기록되어 있다. 순서대로라면 ‘自爲這是人 獸的數目(자위저시인 수적수목)’해야만 해문하는데 수월하다. 이를 해문하면 범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일을 하는데, 당시의 범상한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으므로 범상한 사람이 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짐승의 수를 눈으로 확인한 결과 그 수량이 ‘六 六 六’이라는 숫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때서야 범상한 사람을 도와 일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깨닫기 시작하여 다음과 같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참고로 위문장에서 ‘범상한 사람이 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맞이한다’는 뜻으로 해문하는 근거는 ‘自爲這是人(자위저시인)’의 구절에서 ‘這(저)’자가 ‘맞이할 這(저)’ ‘환영할 這(저)’자이기 때문이다.

 

                보기)  精神  因他施行  審判的時候  已經到了

                       정신  인타시행  심판적시후  이경도료

 

범상한 사람을 도와 일을 하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因他施行(인타시행)’이라 하여 이미 인간을 창조하신 분께서 사람과 다른 무리들을 구분하여 심판하시기 시작하시어 살펴보시고 계셨다는 것이며, 이미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여 심판은 끝이 났다는 기록이다.

 

결론적으로 사람과 짐승을 모두 ‘六’으로 표현하여 ‘天地人’을 ‘六 六 六’으로 보았던 것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서 본 문장에서는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강림하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격암록에서는 ‘龍蛇聖君(용사성군)’으로 강림하셨으며 ‘丁巳年生’으로 출현하셨기 때문에 뱀띠로서 ‘六’수가 되신 것이다.

 

그리고 천상천하의 하나님께서 '六'수가 되시며 자연히 산수평장 기록에 근거하여 땅의 존재이신 국조단군 천자께서도 '六'수가 되시며 또한 두 분을 증거하는 백마공자도 '六'수가 되어 나옴으로서 이것을 예견하여 서방의 성서 묵시록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한 것이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 이니라.”                                                       요한계시록 13장

 

상기와 같은 근거에 의하여 인간 중에 지혜가 있는 백마공자가 나와서 짐승의 수를 계산하였으므로 인간 종말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고,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는 심판이 시작된 것이며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는 심판의 사명을 맡은 자로서 상기 山水評章 七災篇(산수평장 칠재편)에 예언되어 있는 ‘凡有極明者(범유극명자)’의 존재는 바로 백마공자라고 필자는 해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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