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天地公事(천지공사)하는 大盜(대도) 徐氏(서씨) (10부-2) 
 

           

 

 본 내용은 전장과 연결되는 문장이다.

‘天地公事’라 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생소한 용어로서, 이는 아마도 대순전경에서만 볼 수 있는 용어이리라 본다.

대순전경은 강일순 상제께서 설파하신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천지공사란 강일순 상제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을 간파할 수 있으며, 강일순 상제께서 설파하신 대순전경의 문장을 소개하면 천지공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필자가 ‘계룡창업 준공 공사하는 백마공자’를 소개하면서 대순전경에 기록된 강일순 상제께서 설파하신 천지공사의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는 천지공사나 계룡창업이나 본 취지는 일맥상통한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제목을 [천지공사하는 대도(大盜) 서씨(徐씨)]라고 정한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대순진리회의 대순전경의 일부 문장을 인용하여 계룡국 창업의 주인공을 서씨에 연계하여 서술하고 있는 일이 그것이며, 또 격암록, 산수평장, 정감록 등 온갖 예언서의 주인공은 모두 서씨와 연관시켜 주장하고 있으며 성서와 고서에 동일하게 표기되어 있는 '그 其'의 주인공과 '아들 子'의 주인공을 徐氏에 부합시켜 증거하고 있으니 이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그런데 대한한사전에서 '아들 子'자를 찾아보면 그 뜻이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 중에 "쥐 子"라는 뜻과 함께 '鼠也'라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원래 쥐라는 동물은 영리하고 남의 물건을 가지고 오는 습성을 지닌 동물로 알려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성씨 중에 徐氏가 별명이 '鼠生員'으로서 쥐로 상징되어 있다.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또한 현재 백마공자 서씨가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박태선 장로님은 원래 천부교를 세우신 분으로서 단군 연합이 아닌 천부교에서 역사하셨던 분이시다. 그런데 백마공자 서씨는 박태선 장로님의 근영과 말씀을 천부교인들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천부교에서 증거하지 않고 있는 박태선 장로님을 먼저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라 증거하고 있다. 이러하니 서씨가 천부교회의 하나님을 완전히 빼앗은 결과가 된다.

 

뿐만 아니라 천부교회에서 백마공자 서씨가 박태선 장로님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으로 증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박태선 장로님의 근영과 말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했다가 패했으므로 천부교회는 완전히 하나님을 백마공자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大盜(대도) 徐氏(서씨)'란 제목을 정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한 사전에서 '조치(措置)'의 단어와 연결된 '조(措)'자의 기록에는 '靑徐盜賊(청서도적)'이라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기) 措置(조치)의  措  [漢書]  迫措  靑徐盜賊

                                   조    한서  박조  청서도적

 

보기 내용과 같이 한서에 기록된 ‘措(조)’자에서 갑자기 동방에서 나오는 ‘徐盜賊(서도적)’이라 하여 서씨가 동방에서 갑자기 도적으로 나타난다는 기록이다.

 

위문장에서 ‘迫措(박조)’의 ‘迫(박)’자는 ‘급할 迫(박)’ '핍박받을 迫(박)' '곤란할 迫(박)'자이다. '措(조)'자는 '일을 처리할 措(조)' '조정할 措(조)'자이며, 또한 '靑(청)'자는 동방을 상징한다.

'大盜'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그 뜻이 다음과 같이 열거되어 있다.

 

                         大盜  [莊子]    聖人生而 - - 起

                         대도  (장자)    성인생이     기

 

위 뜻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장차 영생을 주는 일을 하는 성인께서 출현하게 되는데 큰 도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러한 뜻을 기독교인들이 접하게 된다면 예수가 '도적같이 나타나리라'고 한 예언의 뜻을 이해하게 되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선 강일순 상제께서 설파하신 내용을 소개하면,

 

先生(선생)이 京石(경석), 公又(공우)다려 일러 가라사대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 물샐 틈 없이 짜놓았으니 제 限度(한도)에 돌아 닫는 대로 新機運(신기운)이 展開(전개)할지니라. 또 神明(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腹中(복중)에 出入(출입)케 하야 그 體性(체성)을 고쳐 쓰리니 이는 비록 木石(목석)이라도 기운을 부치면 쓰임이 되는 연고라. 오직 어리석고 가난하고 賤(천)하고 弱(약)한 것을 편히 하야 心,口,意(심,구,의)'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罪를 조심하고 사람에게 隻(척)을 짓지 말지어다.

 

富(부)하고 貴(귀)하고 智慧(지혜)롭고 强權(강권)을 가진 者는 모든 척에 걸리어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묵은 氣數(기수)가 채워 있는 곳에 大運(대운)을 堪當(감당)키 不能(불능)한 所以(소이)라. 富豪家(부호가)의 府庫(부고)와 廳舍(청사)에는 殺氣(살기)와 災殃(재앙)이 가득히 채워 있느니라.

 

                                                   -第九章 開闢과 仙境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상기 내용은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새로운 선경세계를 건설하시려는 새로운 역사 진행에 관한 강일순 상제의 말씀이다.

그런데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 물샐 틈 없이 짜놓았으니 제 限度(한도)에 돌아 닫는 대로 新機運(신기운)이 展開(전개)할지니라”라고 하신 강일순 상제의 말씀을 증산도나 대순진리에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만약 증산도나 대순진리에서 강일순 상제께서 하신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친다’는 말씀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증산도는 모르나 대순진리회는 선량한 백성을 유혹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많은 거금을 갈취하고, 또는 사람들을 입교시켜 막노동을 시키면서 갈취한 돈을 가지고 성전이라는 명분아래 호화찬란한 건물을 짓고 간부들이 호의호식하며 사회에서 지탄받을 일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대순진리회라는 곳은 강일순 상제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행위를 하고 있는 집단이므로 강일순 상제의 ‘富豪家(부호가)의 府庫(부고)와 廳舍(청사)에는 殺氣(살기)와 災殃(재앙)이 가득히 채워 있느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재앙을 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상기문장에서 ‘富豪家(부호가)의 府庫(부고)와 廳舍(청사)에는 殺氣(살기)와 災殃(재앙)이 가득히 채워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대순진리회라는 단체가 생겨 성인을 빙자하여 치부를 하면서 간부들이 부호가 되고 있는 현실과 초호화판 청사를 건축할 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강일순 상제께서 유시하신 것이라 필자는 해문하는 바이다.

 

선량한 백성이 피땀을 흘려서 번 돈을 갈취한 대순진리의 간부들은 이미 사망하였거나 지금 생존해 있는 자나 모두 ‘新機運(신기운)’이 展開(전개)되는 시기와 동시에 新機運(신기운)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되면 영원무궁 유황불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강일순 상제께서 말씀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가 곧 하늘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치는 역사라고 필자는 보는 것이다. ‘하늘을 뜯어고치는 역사’란 ‘새로운 하나님을 모시는 역사를 개척하라’는 뜻으로서 강일순 상제께서 설파하신 대순전경의 내용으로 보아 강일순 상제께서는 당신이 새로운 하나님으로 드러나게 되는 새로운 선경국을 건설하시기 위해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강일순 상제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셨다.

 

先生이 京石(경석), 公又(우공)다려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通情神(통정신)이 나온다. 나의 일은 비록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西洋大法國(서양대법국) 天啓塔(천계탑) 天下大巡(천하대순)이라.

 

東學呪(동학주)에 '侍天主 造化定(시천주 조화정)'이라 하였으니 내가 天地를 開闢(개벽)하고 造化政府(조화정부)를 열어서 人天의 混亂(혼란)을 安定케 하려하야 三界를 周視(주시)하다가 너의 東土에 그쳐 殘疲(잔피) 에 얽매인 民衆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者는 無窮(무궁)한 寧福(영복)을 얻어 仙境(선경)의 樂(락)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東學이라.

 

弓乙歌(궁을가)에 '朝鮮江山名山이라 道通君子(도통군자) 다시난다' 하였으니 이 일을 일음이니라. 東學信徒間(동학신도간)에 崔水雲(최수운)이 更生(갱생)하리라고 傳하나 죽은 者가 다시 살아오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곳 代先生이로다.

 

상기와 같이 강일순 상제께서는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通情神(통정신)이 나온다. 나의 일은 비록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西洋大法國(서양대법국) 天啓塔(천계탑) 天下大巡(천하대순)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당신이 天地를 開闢(개벽)하고 造化政府(조화정부)를 창업하시는 주인공이시라는 사실을 발표하신 것이다.

 

또한 강일순 상제께서 “東學信徒間에 崔水雲(최수운)이 更生(갱생)하리라고 傳하나 죽은 者가 다시 살아오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곳 代先生이로다”라고 말씀하신 진의는 당신은 영생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분을 대신하여 설파하기 위해 나오신 선생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이셨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이 말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通情神(통정신)이 나온다”한 말씀이다. 이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취지가 강일순 상제께서 通情神(통정신)으로 나오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通情神(통정신)으로 나온다는 것인지를 분간해야 한다.

 

‘通情神(통정신)’이라는 뜻을 잘못 인식하면 ‘정을 통하는 신’이라 잘못 인식할 수 있으나 그 본 뜻은 ‘글의 뜻을 통달하는 신’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라 필자는 해문하는 것이다.

 

그 근거는 ‘通情神(통정신)’의 ‘情(정)’자가 ‘정을 통하는 情(정)’자가 아니라 ‘마음중심 情(정)’ ‘뜻 情(정)’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情(정)을 통하는 것도 뜻이 통해야만 情(정)을 통할 수 있기 때문에 情(정)이 통하는 것을 ‘通情神(통정신)’이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강일순 상제께서 직접 ‘通情神(통정신)’으로 나오신다는 말씀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通情神(통정신)’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인지를 분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필자의 주장은 강일순 상제께서 그 때 당시 通情神(통정신)으로 나오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강일순 상제께서 화천하셨다가 다시 通情神(통정신)으로 나오신다는 뜻을 밝히신 말씀이라 본다.

 

왜냐하면 다음에 연결되는 문장을 통해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라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일은 비록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西洋大法國(서양대법국) 天啓塔(천계탑) 天下大巡(천하대순)이라”

 

위문장에서 강일순 상제께서 하시는 일을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西洋大法國(서양대법국) 天啓塔(천계탑) 天下大巡(천하대순)이라”라 하셨다. 강일순 상제께서 하시는 일은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진의는 강일순 상제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신 것이며 또한 “西洋大法國 天啓塔 天下大巡(서양대법국 천하대순)이라”의 말씀을 통해 당신이 서방 천주교와 기독교 하나님의 존재로 강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밝히신 것이다.

 

‘西洋大法國(서양대법국)’이라는 의미는 기독교나 천주교를 신봉하는 나라를 표시한 문장이다. 왜냐하면 ‘西洋大法國(서양대법국)’의 문장에서 ‘大法國(대법국)’의 뜻은 천주교나 기독교를 신봉하는 나라를 가리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강일순 상제께서 서방 천주교회나 기독교회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父母兄弟妻子도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서 강일순 상제 자신이 스스로 서방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西洋大法國 天啓塔 天下大巡(서양대법국 천하대순)이라’고 밝히신 것이다.

 

본 문장에서 ‘天啓塔 天下大巡(천계탑 천하대순)’의 ‘天啓塔(천계탑)’의 뜻은 '하나님의 존재로서 계시를 주신 분'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天啓塔(천계탑)’의 ‘啓(계)’자와 ‘塔(탑)’자는 각각 啓示(계시)를 상징하는 ‘啓(계)’자와 서방에서는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상징하는 ‘塔(탑)’자이기 때문이다.

 

‘天啓塔 天下大巡(천계탑 천하대순)’의 뜻은 서방 천주교회와 기독교 성서의 요한계시록을 통해 계시하시고 동방으로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천하를 巡廻(순회)하신다는 사실을 표현한 문장이다.

 

필자가 강일순 상제를 서방의 천주교회나 기독교의 성서에서 啓示(계시)를 주신 하나님의 존재이시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연결되어지는 말씀에 근거해서이다.

 

天地를 開闢(개벽)하고 造化政府(조화정부)를 창업하시는 주인공이시라는 사실을 발표하심과 동시에 강일순 상제께서는 “東學 信徒間(동학 신도간)에 崔水雲(최수운)이 更生(갱생)하리라고 傳(전)하나 죽은 者가 다시 살아오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곳 代先生이로다.”라는 사실을 밝히셨다.

 

이러한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강일순 상제께서는 당시의 상황에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부각되어질 소지의 내용으로 설파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天地를 開闢(개벽)하고 造化政府(조화정부)를 세우시는 주인공이시라’라고 발표하신 것은 당시 정권차원에서는 반역행위로 오인될 수 있는 발설이었다. 종교인들과는 달리 정치인들에게는 ‘天地를 開闢(개벽)한다’는 뜻을 옳게 인식한다는 것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이 뜻을 잘못 인지하면 강일순 상제에게 세상적으로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반역행위에 해당되는 죄를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했다.

 

‘天地를 開闢(개벽)하신다’한 뜻은 하늘 문을 여심과 동시에 땅을 폐하신다는 뜻이다. 또한 ‘造化政府(조화정부)를 건설한다’는 뜻은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다'는 뜻으로서 ‘강일순 상제를 하나님으로 모시는 하늘나라를 건설하신다’는 뜻이다.

 

‘造化(조화)’라는 뜻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변화시킨다’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나라가 사악한 인종의 나라로 변해버렸으므로 다시 선인들만이 살기 좋은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강일순 상제의 설파이신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강일순 상제께서는 당신께서 영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동학신도를 비유하여 발표하셨다.

 

東學 信徒間(동학 신도간)에 崔水雲(최수운)이 更生(갱생)하리라고 傳(전)하나 죽은 者가 다시 살아오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곳 代先生(대선생)이로다.

 

이 말씀에서 강일순 상제께서는 당신자신께서는 영생하시는 분이시며,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대신 說破(설파)하기 위해 나오신 代先生(대선생)이라 발표하신 것이다. 그런데 강일순 상제께서는 당신이 영생하신 분이라 하시면서 왜 代先生(대선생)이라 하셨을까?

 

‘代先生(대선생)’이라 하신 뜻을 대순진리교나 증산도에서는 심사숙고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代先生(대선생)’이라는 뜻은 강일순 상제께서 큰 선생님으로 나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를 대신하여 나오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代先生(대선생)’이라 하신 ‘代(대)’자가 ‘누구를 代身(대신)하여 나온다’는 뜻의 ‘代身(대신)할 代(대)’자이기 때문이다. 상기와 같은 ‘代(대)’자의 뜻으로서 강일순 상제께서는 당신께서 영생하시는 주인공이 아니라 당신 후대에 나오는 존재가 영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먼저 나온 존재라는 사실을 ‘代先生(대선생)’이라고 밝히신 것이다.

 

그러므로 강일순 상제께서는 후대에 나올 사람을 위하여 나오신 선생이시라는 사실을 ‘代先生(대선생)’이라 발표하신 것이다.

 

이것은 곧 강일순 상제께서는 누구를 대신하여 선생님의 역할을 하셨다는 뜻이므로 누구를 대신하여 선생 노릇도 하시고 또한 천지개벽을 하여 조화정부를 세우시는 역할을 하신 것인지 그 주인공을 찾아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代先生(대선생)’의 뜻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이다.

 

또한 필자가 강일순 상제께서 영생하는 주인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강일순 상제께서는 분명히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十三字의 이름으로 오신다고 하셨으며, 당신을 다시 보려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일순 상제께서는 다음과 같이 동학을 비유하여 東學呪(동학주)에 '侍天主 造化定(시천주 조화정)'이라 하였으니 '내가 天地를 開闢(개벽)하고 造化政府(조화정부)를 열어서 人天의 混亂(혼란)을 安定케 하려하야 三界를 周視(주시)하다가 너의 東土에 그쳐 殘疲(잔피) 에 얽매인 民衆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者는 無窮(무궁)한 寧福(영복)을 얻어 仙境(선경)의 樂(락)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東學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상기말씀은 당신의 말씀을 믿는 것이 참 東學(동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이다. 여기서 참 東學(동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이유를 알아야하는 것이다. 강일순 상제께서 참 東學(동학)이라 밝히신 이유는 당신께서 서방 하나님의 존재로서 동방의 東土(동토)로 강림하신 하나님의 존재이시기 때문에 강일순 상제께서 설파하신 말씀만이 참 東學에 해당되는 진리라는 말씀인 것이다.

 

부연하면 강일순 상제께서 天地를 開闢하시고 세우시는 造化政府(조화정부)만이 참 東學(동학)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東學이라 하면 東方(동방)의 학문이라는 뜻으로서 동방의 한문을 주축으로 구성된 학문이 동학인 것이다. 이와 같이 최제우 수운선사께서 동학을 창시하신 근본적인 취지는 서방의 기독교를 배척하고 토속 신앙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그 목적으로  '侍天主 造化定(시천주 조화정)'라 하여 하나님을 모신 것이 동학이며, 이것은 곧 단군을 모시는 종교라는 것이 東學(동학)을 보는 필자의 견해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강일순 상제께서는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쳐 물샐 틈 없이 짜놓았으니 제 限度(한도)에 돌아 닫는 대로 新機運(신기운)이 展開(전개)할지니라’ 하시면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는 新機運(신기운)의 운명의 존재가 나오시기를 바라시어 이 땅에 강림하시어 갖은 비난과 조소를 받아 가면서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설파하시고 당신은 ‘代先生(대선생)’이라 밝히시고 화천하신 것이다.

 

여기서 ‘新機運(신기운)의 존재가 나와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는 역사가 시작된다’는 기록이 주목된다. ‘新機運(신기운)이 展開(전개)된다’는 그 新機運(신기운)이 무엇인지, 또 무슨 機運(기운)이 新機運(신기운)인지 알아야하는 것이 숙제로 남게 된다.

 

새로운 기운이라는 新機運(신기운)의 ‘新(신)’자를 모르시는 사람은 없으리라 사료되나 필자는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만 새로운 조짐의 기운이 나오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새로울 新(신)’자를 한자사전에서 참고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기)  新  (初也) [易經] 日新其德  

                            신  (초야) (역경) 일신기덕 

         

보기 내용과 같이 역경의 기록에서는 ‘새로울 新(신)’자의 존재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였으며 ‘日新其德(일신기덕)’이라 하여 ‘그 其(기)’ 사람의 덕으로 매일매일 새롭게 된다는 뜻을 기록하였다. ‘日新(일신)’이라는 단어를 강일순 상제 말씀의 ‘하늘도 뜯어고친다’는 말씀에 접목시켜 ‘日新(일신)’의 ‘새로운 하늘을 만든다’는 뜻을 ‘하늘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인용한다면 하늘을 새롭게 뜯어 고치는 존재가 역경에서는 ‘日新其德(일신기덕)’의 ‘그 사람의 덕으로 새로운 하늘이 시작된다’하여 ‘그 其’의 존재로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새롭게 德(덕)을 베푼다’는 뜻의 ‘其德(기덕)’의 문장에서 ‘그 其(기)’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 사람을 상징하는 ‘그 其(기)’자의 뜻은 수차 본 홈에서 설명한 글자로서 ‘그 其(기)’자의 역할은 ‘天干地支’의 ‘地支’의 ‘甲子’의 역할로서 밤에 활동하는 쥐의 역할을 하는 ‘鼠(서)’자의 역할이면서 ‘아들 子의’ 역할로서 一人이역의 존재이면서 성씨는 鼠生員(서생원)의 별명을 가진 성씨인 徐氏로 온 존재가 ‘그 其(기)’사람의 주인공인 것이다. 또한 ‘其揆一也(기규일야)’라 하여 孟子(맹자)에서는 ‘그 其(기)’ 사람의 존재는 ‘先聖後聖人’의 존재라 기록되어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徐氏가 新機運(신기운)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또한 ‘新機運(신기운)’이라는 뜻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운명으로 나와서 새로운 일을 하는 존재라는 뜻이므로 ‘機(기)’자는 ‘조짐 機(기)’ ‘기미 機(기)’ ‘기밀 機(기)’ ‘천기 機(기)’ ‘기게 機(기)’ ‘베틀 機(기)’자로 사용되는 글자이다.

 

'조짐 機(기)'자 보기

 

                보기)  機  (發動所由) [大學] 其機如此

                       기  (발동소유) (대학) 기기여차

 

                           (氣運之變化) [莊子] 萬物皆出於 -

                           (기운지변화) (장자) 만물개출어 -

 

                           (天眞) [莊子]  嗜慾深者  天機淺

                           (천진) (장자)  기욕심자  천기천

 

상기와같이 ‘機(기)’자에 대한 大學(대학)의 기록에서는 모든 것의 시작은 ‘그 其(기)’ 사람의 機略(기략)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으며, ‘그 其(기)’ 사람은 심장부와 같은 사람의 존재로서 상대적으로 반대되는 곳에서 나오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미 機(기)’자 혹은 ‘조짐 機(기)’ ‘천기 機(기)’ ‘기관 機(기)’자의 조짐은 ‘그 其(기)’ 사람의 존재가 있는 곳으로부터 시작되면서부터 ‘그 其(기)’ 사람으로 인하여 변화의 兆朕(조짐)이 시작된다는 기록이다.

부연하면 모든 일의 발단은 그 사람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기록이다.

 

또한 ‘機(기)’자에 대하여 장자(莊子)의 기록에서는 ‘氣運之變化(기운지변화)’라 하여 기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機(기)’자라는 것이며, 만물이 소생하는 근원은 ‘그 機(기)’자에 의하여 모든 것이 만들어져 나온다는 기록이다.

또한 장자(莊子)는 ‘機(기)’자에 대하여 ‘天眞(천진)’이라 하였다. ‘天眞(천진)하다’는 뜻은 ‘天眞爛漫(천진난만)하다’는 뜻으로 어린 아이와 같다는 뜻인데 ‘嗜慾深者 天機淺(기욕심자 천기천)’이라 하여 깊은 것을 연구하기 좋아하는 의욕이 많은 자로서 하나님의 기밀을 가벼이 여기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자라는 장자의 기록이다.

상기 문장의 ‘嗜慾(기욕)’의 ‘嗜(기)’자는 ‘즐길 嗜(기)’ ‘욕심을 낼 嗜(기)’자이다.

 

이와 같은 기록의 뜻으로 볼 때,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존재는 ‘新機運(신기운)’의 운명으로 나온다는 결론이며, ‘新機運(신기운)’의 운명으로 나오는 존재는 ‘그 其(기)’의 주인공이므로 이는 곧 ‘徐氏’와 직결된다.

 

한편 ‘機運(기운)’의 뜻을 고전 위서(魏書)의 기록에서 참고한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기)  機運 [魏書] - - 可乘  實在玆日

                            기운 (위서) - - 가승  실재자일

 

위에서와 같이 ‘機運(기운)’이라 하면 조화와 변화를 시키는 운명을 가지고 나오는 존재로서 이에 대해 위서(魏書)에서는 ‘可乘(가승)’이라 하여 올바른 것을 알고 이기고 승천할 존재이며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상대편에서는 태양의 존재로 나오는 존재라고 명시하고 있다.

 

‘실재자일(實在玆日)’의 뜻은 실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면서 ‘玆日(자일)’이라 기록한 것이다. ‘玆日(자일)’의 ‘玆(자)’자는 ‘생각할 玆(자)’ 또는 ‘연구하고 있을 玆(자)’자 혹은 ‘검을 玆(자)’자이다.

 

그러므로 ‘실재자일(實在玆日)’의 뜻은 ‘그 其(기)’의 존재로서 세상의 변화의 조짐을 일으킬 장본인인 ‘機運(기운)’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면서 매일 연구하고 하루하루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라 필자는 해문한다.

‘玆(자)’자를 한자 대 자전에서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보기)  玆  (此也) [書經] 念玆在玆

                         자  (차야) (서경) 념자재자

          

                             (濁也) [左傳] 何故使  吾水 -

                             (탁야) (좌전) 하고사  오수 -

 

                             (黑也) (玄也)

                             (흑야) (현야)

 

‘玆(자)’자에 대해서는 ‘此也(차야)’라 하였다. 이 뜻은 상대편을 지칭한 것으로 여기에서 상대편이란 현 세상의 종교나 기타 속세 생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를 지칭한 뜻이다.

또한 ‘염자재자(念玆在玆)’라 하여 현재 연구하고 생각하고 글을 읽고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자라는 것이 書經(서경)의 ‘玆(자)’자의 기록이다. 또한 ‘玆(자)’자는 검은 자라는 뜻으로 현명한 ‘玆(자)’에 속한 자이기도 하다는 기록이다.

 

또한 ‘玆(자)’자에 대한 고전 좌전에서는 ‘흐리고 더러우며 오염을 주는 존재’로서 ‘何故使 吾水-(하고사 오수-)’라 하여 어떻게 하여 흐리고 더러운 존재가 예전부터 심부름을 하는 사신의 존재로서 나의 물에서 있었다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신기운(新機運)’의 존재는 생각하고 연구하는 존재로서 올바른 일을 하는 존재가 ‘玆(자)’의 존재로서 좌전에서 ‘何故使 吾水玆(하고사 오수자)’라 하여 ‘예전부터 나의 사신의 존재로서 나의 물에서 함께 존재하는 자’라는 기록이 매우 흥미롭다.

이 문장에서 ‘吾水玆(오수자)’의 ‘나의 물’이라는 문장에서 ‘나’를 지칭한 ‘吾(오)’자의 의미와 ‘물’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吾(오)’자를 한문사전에서 참고한 결과 다음과 같이 하나님 딸의 역할과 아들의 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보기)  吾  (我也) [大學] 子曰  聽訟  吾  猶人也  ;  聽獄(청옥)

                 오  (아야) (대학) 자왈  청송  오  유인야   

 

                     (子稱)  [韓愈] 今吾子  所爲  皆善矣 

                     (자칭)  (한유) 금오자  소위  개선의

 

위 보기 내용과 같이 ‘吾(오)’자의 기록에는 여러 가지의 뜻이 기록되어 있으나 그 중에서 大學(대학)의 기록과  韓愈(한유)의 기록을 참고하면, 大學(대학)의 기록에서는 ‘吾(오)’의 존재는 ‘子曰’이라 하여 아들이나 여자를 지칭하였으며, 아들의 존재는 ‘聽訟(청송)’이라 하여 선악을 구분하여 심판하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이 ‘나’라 하여 ‘吾(오)’라고 기록했다. 즉 ‘猶人也(유인야)’라 하여 원숭이 인간과 사람을 구분하는 신판을 하는 존재가 ‘나’라는 ‘吾(오)’의 존재인 것이다. 

 

이를 성서에 나타나 있는 에덴동산에 비유한다면 ‘子曰’을 ‘여자가 한 일’이라 인용하고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범죄한 일에 대해 시비를 가린다’는 뜻으로서 ‘聽訟(청송)’이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聽訟(청송)’의 ‘聽(청)’자는 ‘들을 聽(청)’, ‘결단을 내릴 聽(청)’자이며 ‘訟(송)’자는 ‘송사 訟’자이다.

 

위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은‘吾 猶人也(오 유인야)’의 문장으로 ‘나와 원숭이 인간과의 시비를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吾(오)’자는 ‘나 吾(오)’자이므로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아담에게 부합된다. 그러므로 ‘吾 猶人也(오 유인야)’라 한 것은 아담이 한 말로서 ‘어떻게 하여 나와 원숭이 인간과 연관되는지 송사를 시작하여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뜻으로 해문해도 하자가 없는 문장이다.

 

또한 한유(韓愈)의 기록에서는 스스로 아들이라 子稱하고 나오는 존재로서 ‘현재 실존하고 있는 ‘吾(오)’의 존재는 모든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될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기록하였다.

 

‘今吾(금오)’라는 뜻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나’라는 뜻이며 ‘子 所爲(자 소위)’의 뜻은 아들의 신분으로 마땅히 할 일을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 吾(오)’자에 기록된 ‘今吾子 所爲 皆善矣(금오자 소위 개선의)’의 뜻은 ‘현재 하나님 아들의 신분으로서 나는 속세에서 할일을 하면서 무엇이 선인지를 세상에 밝혀주는 아들의 신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더러운 존재로서 玆(자)의 존재는 하나님 아들의 사신 즉 심부름을 하는 존재라는 기록이다. ‘玆(자)’자의 뜻으로 기록되어 있는 ‘何故使 吾水玆(하고사 오수자)’의 뜻은 곧 玆(자)의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한 물 안에서 있는 자라는 기록이다. 한 물이라는 뜻은 한 핏줄이라는 뜻이다.

 

또한 세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所爲(소위) 말한다’의 ‘所爲(소위)’의 뜻을 장자의 기록에서는 ‘所作(소작)’ 혹은 ‘所行(소행)’이라 하여 ‘그 곳에서 하는 일’ 혹은 ‘그 곳에서 만드는 일’이라 하여 ‘所爲(소위)’의 뜻을 ‘속세에서 하는 일’이라 기록하였다.

‘所爲(소위)’의 뜻을 한자 대 자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보기)  所爲  (所作) (所行) [莊子]  世俗之 - -也

                      소위  (소작) (소행) (장자)  세속지 - -야

 

                      所行  [法苑珠林]  - -惡事

                      소행  (법원주림)  - -악사

 

이와 같이 ‘所爲(소위)’라는 용어는 장자에서는 ‘속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所爲(소위)’라 한다는 것이며 ‘所行(소행)’이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所作(소작)’이라 하여 ‘거처하고 있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일’을 ‘所爲(소위)’라 표현하였다.

 

부연하면 世俗(세속)은 俗世(속세)의 뜻으로서, 성인들이 현 세상을 속세라 표현하고 있으므로 속세에서 만들어지는 일, 즉 農事(농사)를 짓는다든지, 공장에서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일이 아니고 여기에서 ‘所爲(소위)’라는 뜻은 人生 創造(창조)역사를 뜻하는 것이다. 즉 어린아이를 생산하는 일을 일러 ‘所爲(소위)’라 표현한 것이다.

 

‘所爲(소위)’나 ‘所行(소행)’이나 같은 뜻으로서 ‘所行(소행)’이라 하면 악한 짓거리를 ‘所行(소행)’이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주림(法苑珠林)의 기록에서는 惡(악)한 일을 하는 것을 ‘所行(소행)’이라 하였다.

 

                     보기)  所行  [法苑珠林]  - -惡事

                            소행  (법원주림)  - -악사

   

또한 다음과 같이 악한 일을 한다는 惡事(악사)의 뜻을 기록한 傳燈錄(전등록)에서는 惡事(악사)를 사악한 죄악을 짓는 일이라 하여 ‘罪惡(죄악)’이라 기록하였다.

 

               보기)  惡事  (罪惡) [傳燈錄]  好事不出門  - -行千里

                      악사  (죄악) (전등록)  호사불출문  - -행천리

 

이와 같이 ‘惡事(악사)’의 뜻을 기록한 전등록(傳燈錄)에서는 해서는 안 될 죄악으로서 좋은 일은 두문불출하면서 타인이 알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라 소문이 나지 않으나 惡事(악사)는 천리 길을 여행하면서 하는 일이라도 소문이 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부연하면 상기 ‘惡事(악사)’에 관한 기록을 순수한 가정에 비유한다면 한 가정에서 부부가 어린아이를 생산하는 일을 좋은 일이라 하여 ‘好事(호사)’라 기록한 것으로서 부부가 어린아이를 생산하는 일은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집안에서 두문불출하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하는 남녀가 공히 외도를 하려면 집밖에 나가서 할 뿐만 아니라 집 밖에서 하는 나쁜 惡事(악사)는 발이 없어도 천리까지 소문이 난다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여러 가지의 정황으로 볼 때에 ‘所爲(소위)’라는 표현은 본 문장에서 만큼은 현재의 속된 世俗(세속)에서 남녀가 음란행위 하는 것을 ‘所爲(소위)’라고 표현한 것이라 필자는 해문한다.

 

이어지는 문장은 ‘부모로부터 상속받고 지옥가는 죄는?(10부-3)'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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